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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군 부남면 굴암리 】

작성자대전점포|작성시간10.02.02|조회수620 목록 댓글 0

 

 부남면 굴암리(屈岩里)

굴암리는 조선시대까지 금산군과 무주가 경계를 이루던 금강 천변마을로
옛 가정자마을과 함께 금산 땅에 속했던 마을이다.
그러나 일정 때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무주군 부남면으로 편제되면
서 밤소, 새목, 상굴암, 하굴암, 개대, 새터 등을 같은 행정구역으로 구획
하고 굴암리로 지명을 붙여 법정리로 삼았다.
그 후 굴암리는 상굴암, 하굴암, 신대(개대포함) 마을을 굴암1리로 하고
강건너 마을인 밤소, 새목을 굴암2리로 나누었던 것을 1972년 군조례를 개
정할 때 자연부락 단위의 행정분리로 조종하면서 율소, 상굴암, 하굴암등 3
개 분리로 나누었다.
이 마을을 굴암으로 부르게 된 것은 옛날 상굴암과 하굴암 사이를 왕래하
던 행길가에는 부러진 뼈를 맞출 때 접골재로 쓰이던 산골이라고 하는 자연
동이 박힌 바위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 산골을 캐기 위해 바위를 뚫어 굴
을 판 것이 연유되어 굴암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굴암리는 동쪽의 베틀봉에서 남으로 흘러내려 금강에 닿고 행새목으로 거
슬러 올라가면서 무주읍과 경계를 이루며 남쪽은 조항산에서 서북쪽으로 흘
러내린 능선을 따라 봉길 앞에서 금가에 닿아 각시바위 주변의 깊은 곳에서
대소리와 인접한다. 도한 서쪽은 금강에서 물뿌리재를 넘어 갈선봉까지 선
을 그으며 대유리와 가당리를 스치고 동북쪽은 베틀봉에서 갈선봉으로 거슬
러 올라가며 충청남도 금산군과 도계를 이른다.

1.굴암리 상굴암(上屈岩)마을
상굴암은 굴암 마을 중에 윗동네라는 뜻이다.
상굴암 마을은 조선시대까지 금산군에 속해 있다가 일정 때인 1914년 행
정구역 개편 때 무주군 부남면으로 편입되면서 하굴암, 율소 마을과 함께
굴암리로 편제된 후 굴암리를 2개 분리로 나눌 때 하굴암 마을과 함께 굴암
1리로 구획되었다.
그 후 1972년 군조례의 개정으로 자연부락 단위 행정분리로 바꾸어지면서
하굴암 마을과 분리됨에 따라 상굴암으로 지명을 붙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마을은 대유리를 돌아 나온 금강 천 변에 위치한 마을로 강 건너 남쪽
으로 바라다 보이는 새목 입구에서부터 이루어진 절벽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물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이다.
이 강은 감동을 돌아온 강이라고 하여 감동강이라고도 불러왔는데 조선
정조 때 이 고장에 살던 송계원이라는 효자가, 어느 엄동의 추운 겨울에 병
중인 부모님께 지성을 다할 때 꽁꽁 얼어붙었던 가물이 깨어지며 잉어가 뛰
어나와 부모님께 공양하여 효행을 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에 나라에서 소문
을 듣고 1872년(고종 9년) 정려를 내림으로서 그 후손들에 의해 마을 입구
의 양지바른 언덕에다 효자각을 세웠다.
이 마을의 동쪽은 하굴암 마을이 인접하고 남쪽으로는 금강을 사이에 두
고 율소와 인접하며 서쪽은 물뿌리재를 경계로 대유리와 경계를 이룬다.

2.굴암리 율소(栗所)마을
율소마을은 본래 대소리에 속하고 있었으나 후에 굴암리로 편입된 마을이
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까지 금산군에 속하고 있다가 일정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무주군 부남면으로 편입되어 상굴암, 하굴암 마을과 함께 굴
암리로 편제되었는데 후에 행정분리로 나누어지면서 새목과 함께 굴암2리로
구획되었다.
그 후 1972년 군조례의 개정으로 행정분리의 명칭을 자연부락 명칭으로
바뀌게 되면서 옛 지명이던 율소로 붙이고 오늘에 이른다.
이 마을의 지명은 본래 밤소로 부르던 것을 한문으로 표기하면서 율소(栗
所)가 되었는데 이 마을의 지세가 마치 밤송이 속에 들어있는 알밤 같은 형
국이라고 하여 밤소가 되었다고도 하며, 더러는 이 지방에 대곡소가 설치되
어 있을 때 밤나무가 많아 생율을 생산하던 곳이라고 하여 밤소라는 지명이
생겼다고도 한다.
밤소의 동편으로 우뚝한 조항산 북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능선이 마치 황
새모가지처럼 생겼다고 하여 황새목으로 부르는 재가 있는데 밤소에서 골짜
기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새목이라는 마을이 있다. 이에 따라 산의 명칭도
조항산으로 부르고 있다.
또한 이 조항산 깊은 계곡에는 옛날 이태조가 중병이 들었을 때 새목위에
있는 약수터에서 목욕을 하고 완쾌했다고 하여 왕바위골 이라고 부른다는
전설도 있다.
이 마을은 동남쪽으로 우뚝한 조항산 북쪽에 위치하여 동쪽은 황새목에서
무주읍과 경계를 이루고, 황새목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 조항산에 올라서면
적상면과도 경계를 이루며, 이 마을을 휘어 감돌아 나가는 금강을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는 대유리와 경계를 이루고 북쪽은 상굴암, 하굴암 마을과 인
접하고 있다.

3.굴암리 하굴암(下屈岩)마을
하굴암마을은 상굴암 아랫마을이라고 하여 하굴암이라고 지명을 붙였다.
이 마을은 상굴암마을 아랫여울에서부터 무주읍과의 경계를 이루는 베틀
봉 아래 벼랑 모퉁이까지 이어지고, 덕기봉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흐르
는 가당천이 금강에 유입되며 갯마을을 이루는 갯터(일명 개대)에서 샛등이
로 부르는 신대마을까지가 이 마을에 속한다.
하굴암마을은 조선시대까지 옛 가정자로 부르던 가정마을고 함께 금산군
에 속해있었는데 일정 때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무주군 부남면으로 편
입되어 상굴암 밤소 마을과 굴암리로 편제되었다가 후에 상굴암 마을과 같
은 구역인 굴암1리로 구획되었었다.
그 후 1972년 군조례의 개정으로 상굴암과 분리되면서 행정분리의 명칭을
하굴암으로 붙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마을은 샛등이, 새터, 개대(일명 갯터)등의 자연부락이 있는데 샛등이
는 대유리로 넘어 다니던 샛등이재 밑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
이고, 신대는 새로 생긴 마을이라고 하여 새터로 부르다가 후에 샛등이와
함께 같은 부락이 되면서 신대라는 지명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또한 가정자에서 흘러나온 가당천이 금강에 닿으며 삼각지를 이르는 개대
는 옛날 금산과 무주를 오가던 행인들이 강을 건너기 전에 잠시 쉬던 주막
이 있어서 주막담이라고도 불렀는데 강변에 붙어있는 갯마을이라고 하여 갯
터 또는 개대로 부르고 있다.
이 마을은 상굴암에서 흘러나온 강물이 황새목에 부딪치고 북쪽으로 곡류
하며 무주읍과 경계를 이루고, 남쪽은 율소, 서쪽은 상굴암과 가당리가 인
접하며 북쪽으로는 베틀봉에서 충청남도 금산군과 도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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