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에 소등한다는 말을 듣고 바로 잠든다.
주위엔 나보다 나이 지긋한 이들이 단체도 있고 혼자 잠든 이도 많다.
깔개가 포근해도 대피소 안의 분위기는 잠을 자주 깨게 한다.
두세번 깬 다음에 옆자리에서 일어나니 나도 따라 일어난다.
일출시각이 5시 14분이니 4시에 올라가 대기하면 일출을 보겠다.
화장실 앞의 하늘 위엔 별들이 가득하다.
취사장에 들어가니 건장한 남자 두명이 배낭을 매고 랜턴을 켜고 있다.
난 물병과 구론산병에 따뤄놓은 소주를 점퍼 주머니에 넣고 맨몸으로 랜턴을 켜고 제석봉 돌계단을 올라간다.
사람들이 늘어설 시각인데 조금 이상하다.
제석봉을 헐떡이며 올라가니 힘이 떨어진다.
제석봉을 내려가며 천왕봉을 보니 불빛이 한 둘만 보인다.
힘이 없어 길에 앉아 쉬며 한 사람을 지나 보낸다.
시계를 보니 이제 3시 반이다. 시간을 한시간이나 착각했다.
바닥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다 물한모금 마시고 힘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힘이 나게 해줄 술은 아껴 참는다. 어제 인월에서 사온 에너지바를 챙기지 못해 아쉽다.
하늘의 별과 멀리 남해쪽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놀다가 등이 차가워져 일어나 다시 걷는다.
조금 힘이 나는 것도 같다.
천왕봉 위엔 그믐달이 떠 올라 환하다.
반야봉 쪽으로도 도시의 불빛 기운이 느껴지고 가끔 랜턴이 따라온다.
4시가 넘어 천왕봉이 건너다 보이는 돌봉에 닿아 또 기다린다.
그믐달이 봉 위로 떠 있고 양쪽으로 빨간 해기운이 수평선처럼 보인다.
천왕봉에 올라있는 몇이 보인다. 뒷쪽에서 사람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 나도 천왕봉으로 간다.
사진찍고 있는 이들을 지나 아랫쪽 바위에 앉아 정상석을 배경으로 셀타를 찍는다.
동쪽 바위 사이에 자릴 잡고 앉아 안개에 싸인 섬같은 산봉우리 위로 해가 떠오는 하늘을 본다.
이제 중산리쪽에서도 사람들이 올라와 천왕봉은 번잡해진다.
동쪽 하늘을 쳐다보며 사람들을 무시하고 혼자 즐긴다.
구론산병에 들어있는 소주는 생각보다 양이 많다.
많이 놀았다.
아직 5시가 되기 20분 전인데 사위가 밝아진다.
그믐달과 올라오는 해기운에 반야봉쪽은 색깔을 드러낸다.
30분은 기다려야 해가 뜰 시각이다. 포기하고 내려온다.
돌아오며 천왕봉을 보며 몇번이나 멈춘다.
정상에서 보는 것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일출을 보기보다 일출 전의 모습을 보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다.
칠선에서 올라오는 입구를 지나는데 아랫쪽에서 학생들이 떼지어 올라온다.
장한 아이들이다. 전라북도 진안 장승초 5,6학년이란다.
반야봉 뒤로 무등산과 모후산 조계산이 뿌연 구름 위로 솟아 있다.
동과 서를 보며 사진을 찍다가 제석봉을 내려와 장터목에 이르니 5시 반이다.
내 자리에 들어가 또 곯아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