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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주유천하

조용헌의 주유천하(11)축사(祝辭)의 달인

작성자풍경소리|작성시간26.06.21|조회수34 목록 댓글 0

조용헌의 주유천하(11)축사(祝辭)의 달인

전국 방방곡곡 행사장에서 하루 일곱 차례 축사할 때도
‘축사의 달인’ 비결은 상대방의 장점을 정확하게 조목조목 말해주는 ‘칭찬’

 다선 국회의원에게 들었다. 선거는 공중폭격과 땅개작전이 필요하다고. 공중폭격이란 워딩이다. ‘귀족노조’ ‘오렌지족’ ‘군정종식’. 선거에서 이런 단어 하나는 비행기가 공중에서 내리 투하하는 폭탄과 같은 위력을 발휘한다. 여러 말이 필요 없다. 그렇지만 이 한마디 워딩은 쉽지 않다. 그 정치인이 살아온 인생의 총체적 경험과 사색·통찰이 버무려져야 나올 수 있는 워딩이다.

 워딩으로 공중폭격을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땅개작전이 이뤄져야 한다. 보병이 총을 들고 점령해야 한다. 시장을 돌면서 상인들과 악수하고, 떡볶이 사먹고, 사거리에서 지나가는 유권자들에게 일일이 머리 숙이고 악수하고, 각종 모임에 나가 명함 나눠주는 일이 땅개작전에 해당한다. 그 사람의 업보에 따라 공중폭격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땅개작전에 익숙한 사람이 있다.

 문화계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두명의 인물이 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79)이다. 이어령은 20대 후반부터 붓을 잡고 필명(筆名)을 떨쳤던 인물이다. 말하자면 공중폭격하면서 살아온 인생이라고나 할까.

 김종규 이사장은 땅개작전의 인생이다. 이어령이 비행기 타고 공중에 떠 있을 때 김종규는 시장바닥을 돌았다. 형님의 뒤를 이어 삼성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문화계·정치계·사업계·관계 인사들과 밥 먹고 술 마시면서 씨줄 날줄의 교분을 쌓았다.

 출판사는 문사(文士)들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젊었을 때부터 구상 선생, 중광스님과 같은 수많은 기인 문사들과 어울리면서 풍류를 배우고 격조를 접하며 내공을 쌓았다. 그 내공이 70대에 들어와 만개했다. 어디 가서 축사를 잘하는 내공이다. 그래서 ‘축사(祝辭)의 달인’이란 이채로운 칭호를 득(得)했다. 80세 다 돼가는 양반이 하루에 평균 서너군데 행사장에 가서 축사를 한다. 박물관·미술관·각종 문화행사의 오프닝 세리머니 축사가 대부분이다.

 어떤 날은 일곱군데나 가서 축사를 했다. 서울은 물론 경주·광주·부산에 내려가서도 축사를 한다. 물론 돈 받고 하는 것도 아니고 공짜로 한다. “아니 선생님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축사하시는 게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아녀, 나를 불러준다는 게 고마울 뿐이야. 내가 필요하다는 거 아니겠어. 보람 있는 일이지!” 같은 일이라도 보람으로 생각하니까 몸도 건강하다. 어떤 때는 축사하러 중국 베이징까지 가는 일도 있었다.

 하루에 일곱군데 축사를 하려면 세심한 조정이 필요하다. 동선에서부터 행사장 개막시간도 겹치지 않도록 주최 측과 협의해야 한다. 언젠가 이 축사의 달인에게 “축사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던 적이 있다. 아마 MBA(경영전문대학원) 커리큘럼에도 축사 비결은 안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 양반에 의하면 그 비결은 우선 자신보다 앞서 축사한 사람이 한 말을 집어서 칭찬하는 일이다. 되집어주는 것이다. ‘아무개 장관이 축사에서 이 말씀을 하셨는데 나도 몰랐던 부분이다. 이번에 알았다’는 식이다. 그리고는 사회자를 칭찬해야 한다. 사회자는 그 행사의 중심이다. 사회자를 칭찬해야 분위기가 살아난다. 다음엔 주최 측과 주빈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주최 측과 주빈을 언급하면서 한마디하는 것이다. 물론 한마디는 짧아야 한다. 너무 길면 김이 빠진다. 유머도 중요하다. 두세번 하객들을 웃겨야 한다.

 칭찬을 할 때도 구체적으로 내용을 찍어서 하는 게 중요하다. 두루뭉술하게 칭찬을 하면 ‘립서비스’로 전락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주의할 일이 있다. 보통 축사에서 칭찬과 덕담을 하고 나면 균형을 잡는다는 생각에서 무엇인가 하나를 지적하고 집어내려는 경향이 있다. ‘옥에 티라면 뭣뭣이다’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 안된다. 옥에 티 어쩌고 저쩌고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주최 측과 주빈을 아주 기분 나쁘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앞에서 한 칭찬을 한방에 다 까먹으면서 분위기 가라앉힌다. 듣기에 따라서는 축사하는 사람이 자기 잘난 체하는 말로 들릴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는 클로징 멘트도 어찌할지 연구해야 한다.

 한국사회가 앵그리(angry) 사회가 됐다. 분노와 욕이 넘쳐나고 있다. 상대방의 장점을 이야기하는 축사가 너무 부족하다. 그래서 축사의 달인을 썼다.

 

출처 ; 농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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