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주유천하(12)운명을 바꿀 수 있는가
40년 전 점쟁이
“아들이 붓으로 먹고 사는데 40대 중반까지 타고난 명이오”
2006년 병술년
몸 아플때 찾아온 수산선생 “저승사자 와 있으니 이사를…”
‘인연복’ 있으면 죽을 운명도 바꿀 수 있어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중학교 1학년 때로 기억된다. 어머니께서 용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점쟁이를 찾아갔다. 사방에서 몰려든 문복객(問 卜客)들이 하도 많아 번호표까지 들고 두시간 남짓 기다려야만 했다고 한다. 드디어 순서가 돼 아들인 필자의 사주팔자를 들이밀었다. “이 아들은 붓으로 먹고살겠소. 그런데 명이 짧어. 40대 중반까지가 타고난 명이오.”
어머니는 아들의 명(命)이 짧다는 이야기에 꽂혔다. 붓으로 먹고산다는 이야기는 건성으로 들었을 것이다. 그까짓 거, 뭐로 먹고살던 그게 뭐가 중요해. 아들 명이 짧은 게 문제이지. 어머니는 그 점쟁이의 말을 확신한 탓인지 그날 이후부터 아들 명 좀 길게 해달라고 칠성님께 빌었다. 매일 새벽 5시에 정화수 떠놓고 칠성기도를 드렸다. 새벽 잠결에 보면 어머니가 찬물 들어 있는 사발 앞에 두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
나는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그렇게 글을 잘 쓰지 못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고, 이 분야에 별로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대학원 석·박사과정 때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학교 졸업하고 2년간 은행에 다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대학원에 들어갔던 것이다. 전공도 하필 ‘목탁과’ 불교학(佛敎學)이었다. 남들은 거의 선택하지 않는 분야였다. 이 산 저 산의 사찰과 암자를 돌아다니는 게 좋아 보여 선택한 전공이었다. 한량으로 놀기에는 아주 좋은 분야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대학원이라는 데를 가보니까 그 핵심이 논문을 쓰는 일이었다. 공부한 것은 결국 논문으로 출력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논문 하나가 원고지 평균 100매 분량이다. 처음에는 이 100매의 칸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눈앞이 캄캄했다. 돛단배 하나로 망망한 태평양을 건너야 하는 기분이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스토리의 기승전결을 생각했다. 기한 내에 어떻게 해서든지 제출해야 하니까 말이다.
처음에는 두달 걸리던 작업이 몇번 해보니까 한달로 줄어들고 나중에는 2주일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야기의 기승전결만 머릿속에서 구상이 되면 글로 쓰는 데는 사나흘이면 되는 게 아닌가. 아, 글 쓰는 것도 노력하면 되는 거구나! 필자는 20대에 소설책도 별로 읽지 않았다. 논리적이고 핵심만 간추려야 하는 논문을 쓰다가 글쓰기에 자신감을 얻었다. 문장을 아름답게 쓰기보다는 핵심을 어떻게 잘 짚어내고 쉽고 간결하게 표현해내는가에 집중했다.
말을 옮기면 그대로 글이 되도록 노력했다. 그래야 부담이 적다. 말과 글이 따로 놀면 피곤하다. 자연히 짧은 문장을 선호하게 됐다. 어찌어찌 하다보니까 30대 중반부터 잡지·신문에도 장기간 연재를 하게 됐다. 일간·주간·월간지에 동시에 연재를 했다. 매일 원고지 20~30매씩을 썼다. 일간지는 짧고 함축적으로 써야 하고, 주간지는 한두 호흡이 들어가게 써야 하고, 월간지는 분량이 많으니까 유장한 맛이 나게 써야 한다.
노트북 앞에 앉으면 신기하게도 스토리가 생각이 났다. 그러다가 2006년 병술(丙戌)년이 왔다. 병술년은 나의 팔자와 참 맞지 않는 해라고 진작부터 여겨왔다. 문제의 40대 중반에 해당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나는 여름에 태어나 불이 많은 팔자다. 태어난 날이 병진(丙辰)일인데, 여기에서 진(辰)이 용이고 습토(濕土)라서 다행히 불을 식혀주는 역할을 한다. 사주명리학에서는 이때의 진(辰)을 용신(用神)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병술은 ‘불붙은 개’의 해다. 술(戌)은 진(辰)과 상충(相沖)의 관계다. 개와 용은 상극이다. 더군다나 병술은 ‘불개’가 아닌가. 불이 많은 팔자에 불개가 들어오면 용과 박치기를 해서 내 팔자에 불을 지르는 시기가 된다. ‘병술년에 교통사고가 나려나?’ 하고 차 조심만 했더니만 심장으로 액운이 다가왔다. 인체에서 심장이 불에 해당한다. 불개가 심장을 때린 것이다. 왼쪽 겨드랑이 밑에 있는 혈자리인 극천혈(極天穴)·천지혈(天池穴), 그리고 어깻죽지 뒤에 있는 천종혈(天宗穴)·견정혈(肩貞穴) 등이 굳어버리니까 심장과 소장 쪽에 이상이 생겼다. 초기 심근경색 증상이었다. 그때야 알았다. 아, 중학교 때 점쟁이가 말한 40대 중반에 죽는다는 말이 이거였구나.
그 시기에 대구 팔공산에서 20년간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의 화두를 연마했던 수산(水山) 선생이 내가 사는 아파트를 방문했다. 내가 아프다니까 걱정이 돼 온 것이다.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온 수산 선생의 얼굴 표정이 굳어지는 게 아닌가. “왜 그럽니까? 뭐가 있습니까?” “저승사자가 이 집에 와 있네요. 우선 임시방편으로 보냈습니다.”
사람이 죽음에 임박하면 저승사자가 미리 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이사를 가는 것도 방법이다. 우선 번지수를 바꿔야 한다. 다음날 바로 택시를 타자마자 기사에게 주문했다. “분양 중이거나 어디 분양 안된 아파트 있으면 그쪽으로 가봅시다.” 이렇게 해서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이 이사를 하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11년 전인 2006년 병술년에 나는 죽을 수도 있었지만 죽지 않고 명을 이었다. 수산 선생과의 인연복(因緣福)이 크게 작용했다. 운명을 바꾸는 방법 중의 하나가 인연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