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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집 출판원고방

35집원고 수필 두 편

작성자달마야소|작성시간21.11.15|조회수78 목록 댓글 0

 

내 말을 전해 줘

                                                    박귀주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소곤소곤 말 전달하기’ 놀이를 한 적이 있다. 행위의 원인과 결과가 담긴 간단한 이야기를 쪽지에 써서 첫 아이에게 보여주고 이 말을 다음 사람에게 차례로 전달하는 놀이이다. 전달할 때는 주변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소곤소곤 단 한 번만 말하되, 몸짓과 표정을 사용할 수 있다. 가령 ‘영희가 커피숍에서 코를 파다가 코피가 나자 철수가 벌떡 일어났다.’라는 문장을 전달하면 여러 사람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전달받은 사람이 처음 내용과 엉뚱한 내용을 말하여 모두 배꼽을 잡고 웃곤 하였다.

 

  진상이나 진실은 말을 통해 와전되기 쉽다. 그런데 이렇게 왜곡된 말을 듣고 웃어넘길 수가 없을 때가 있다. 때로 슬픔을 넘어 분노와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5.18은 북한 특수군 600명이 일으킨 게릴라 전쟁이다. 시위대를 조직한 사람도 없고, 지휘한 사람도 한국에는 없다. 광주의 영웅들은 이른바 북한군에 부역한 부나비들이다.”

 

  이 말을 한 지만원은 육군 사관학교 22기 졸업생으로 대령으로 예편한 뒤에 전두환 정권 당시 국방연구위원으로 활동한 자이다.

 

    “정치적으로 이용한 세력들에 의해, 그냥 폭동이 민주화 운동으로 된 겁니다. 이젠 사실적인 연구를 통해 북한군 개입설을 입증해야 합니다.”

 

  이 말은 20대 새누리당 국회의원인 이종명의 발언이다.

 

    “종북 좌파들이 지금 판을 치면서 5.18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 집단을 만들어 내면서 우리의 세금을 축내고 있습니다.”

 

  이 말은 대한여성약사회 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회장을 역임한 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을 거처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이 된 김순례 의원이 한 말이다.

 

  그리고 이 와전의 근원은 전두환의 말이다. 그의 왜곡은 철면피하다.

 

    “(5·18) 광주는 그거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 그러니까 계엄군이기 때문에 계엄군이 진압하지 않을 수 없잖아.”

    “나 돈이 없어 못내. 호주머니에 있는 29만 원이 전재산이야”

    “조비오 신부가 사격을 목격했다고 하는데,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야.”

 

  5.18 당시 나는 전남대학교 1학년이었고 이 끔찍한 현대사의 비극을 운명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소심하고 용기가 없었기에 데모 대열에서도 앞장서는 법이 없었고 가능하면 뒤쪽에서 그것도 가능한 눈에 띄지 않도록 가운데쯤 줄에 섞여 토끼 눈이 되어 뒤따라 다녔었다.

  5월 18일, 태평극장 앞 시위에서, 데모대는 앞에서부터 순식간에 뱃전에 물살처럼 갈라지며 뒤에 있는 내 눈앞에 난생 처음의 장면이 펼쳐졌다. 완전 무장한 전쟁터의 군인들이 마치 적을 살해하듯 가차없이 검으로 찌르고 개머리판으로 내리찍는 무자비한 살상의 장면을 목도하였다. 나는 뒤돌아서 뛰다가 오직 살겠다는 일념으로 3 미터가 족히 될 광주천 아래로 뛰어내렸다. 질척거리는 개천가를 정신없이 내달아 신안동 자취집에 숨어들었지만 뛰는 가슴을 진정하기 어려웠다.

이튿날 아침, 개인 전화기도 없는 시대라 도통 안절부절하다가 이웃에 자취하던 선배와 두려움 속에 밖으로 정찰이나 해 보려는 우리를 주인집 아주머니가 막아섰다. 직업이 경찰인 주인 아저씨한테 전화가 왔는데 밖으로 나와 군인들한테 잡히는 순간, 죽는다고 절대 학생들 밖으로 나오지 않게 보호하라고 하셨단다. 이날 멀리서 총소리도 들려왔다. 저녁 무렵이 되자 신안동 일대의 전남 대학생들을 수색하여 잡아들이고 있다는 소식이 아저씨로부터 왔다. 주인 아주머니는 자취방을 비우게 하고 신발만 지참하게 하여, 윗채 할머니 방에 한밤중이 되도록 우리를 숨겨 주었다.

  그렇게 이틀을 보낸 후, 우리 부모님의 걱정과 누님의 성화에 궁리를 거듭한 매형이 트럭을 끌고 자취집에 나타났다. 나와 삼섭이 형(전남대 상대 2학년)은 배니어판 적재 차량으로 위장한 8톤 트럭에 숨어 광주를 탈출할 수 있었다.

  휴교령은 길었다. 답답한 마음에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이다가도 우리를 폭도로 낙인 찍는 뉴스를 들으면 울화통이 터졌다. 고향의 뒷산에 올라가 소나무에 기대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 박관현 열사는 내가 대학에 입학하여 최초로 가입한 검도반의 회장이었고 내가 처음으로 투표하여 당선된 전남대학교 학생회장이었다. 지금 5.18 묘지에 잠든 내 친구 위영이는 그 때 계엄군에 잡혀 들어가 한 달간 모진 고역을 겪은 후 그 휴유증에 힘들어 했고 취업은 포기하고 일찌감치 개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40대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정치적인 용어(가령 좌익, 우익, 공산주의, 자본주의 등)에 낯설어 했고, 또다시 군부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지만,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기보다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개인적인 우정과 의리 쌓기를 더 중요시하였다. 그는 단지,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을 두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아이들과 즐기는 ‘말 전달하기 놀이’의 마지막에는 항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답이 존재한다. 첫 쪽지가 공개되므로 나중 것이 진실이라고 왜곡하고 합리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툼의 여지가 없어 그 실수를 재미로 느끼며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 현실은 다르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가리기조차 힘들다. 그래서 첫 경험자들의 증언이 필요하다.

  다시 군부 정권이 들어선 후 우리는 쓸쓸히, 그러나 선명하게, 이 사건의 실체를 인식할 수 있었다. 5.18은 저들이 기획해 낸 자작극이었고, 우리는 그들의 애꿎은 희생양이 되었음을 .....

 

 

혼자서

                       박귀주

  혼자서 밥을 먹는다.

아침에 혼자서 밥을 먹는다. 부엌으로 들어갔다. 가스레인지를 보았다. 어제 끓여놓은 누런 된장국이 남아 냄비에 들러붙어 있었다. 그 옆에 압력밥솥, 뚜껑이 열린 채 흰 주걱 아래로 잡곡밥이 보인다. 냄비에 불을 붙이고, 공기와 주걱을 가져와 압력밥솥에 밥을 긁어 담았다. 냄비에 된장국이 지직거린다. 숟가락으로 냄비 속을 한 번 휘젓고 끓기를 기다리는데 피어오르는 연기에 짠내가 난다. 불을 끄고 된장국을 냄비 채 뒤집어 국그릇에 담는다. 국물이 옆으로 흘러내린다. 설거지통에 냄비를 집어넣고 한 손에 밥, 한 손에 된장국을 들고 식탁에 앉는다. 3분, 아침밥을 마쳤다.

  물을 떠 와 약을 먹는다. 당뇨약, 혈압약, 고지혈증 약, 그리고 각종 건강식품이 식탁의 한 쪽에 도열해 있다. 지난번 누군가가 당뇨에 좋다고 해서 산 여주 그리고 필수 영양소라고 해서, 세포막에 좋다고 해서, 노화를 방지한다고 해서, 전립선염에 좋다고 해서, 한 주먹 입에 넣고 물을 마신다.

 

  혼자서 봉화산을 오른다.

  목이 마른다. 배낭을 연다. 500 밀리리터 패트병이 보인다. 물이 반쯤 남아있다. 이게 그제 담아 둔 것이가? 그전에 담아 둔 것인가? 그냥 입에 대고 말끔히 마셔 버린다. 젊은이가 앞서 지나간다. 따라가 보려고 기를 쓰자 가슴이 헉헉거리고 고관절이 삐그덕 거린다. 소나무 그루에 손을 기대고 하늘을 본다. 더럽게도 맑다. 비둘기 한 마리 보이지 않고 휑하다.

 

  혼자서 여행을 떠난다. 야외로 나간다. 바퀴 닿는 대로 차를 몰고 나간다. 들녘이 보이는 곳에 차를 세운다. 가을 햇볕이 따갑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금빛이던 논은 곳곳에 갈색 맨몸을 드러내고 흰 비니루에 감긴 짚더미만 팝콘을 뿌려놓은 듯 나뒹굴고 있다. 트랙터 한 대가 장난감처럼 움직이는데 사람이 없다. 논길을 걸어도 사람이 없다. 한참을 달려 장흥에 닿았다. 주차할 곳이 많을 듯한데 막상 대려니 쉽지 않다. 저녁 먹을 곳 찾는 것도 그렇다. 좀 번화하다는 곳에 차를 대고 길거리로 나섰다. 길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다. 장터거리로 들어서서 배회하다 한 식당 앞에 섰다. ‘앙푼이 동태탕’, 막상 들어서려다 시계를 보니 4시 반, 이르다. 발걸음을 돌려 pc방을 찾는 데 근처에는 없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다시 차로 돌아와 타고 읍내를 한 바퀴 돌다가, 천변에 차를 대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벽에 붙여놓은 메뉴판을 보니 (2인 이상)이란 메뉴가 많다. 주인에게 혼자서 먹을 수 있는 것을 물으니 흘끗 보고 ‘섞어 동태탕이오’ 한다. 식당만큼은 혼자를 환영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불러준 대로 시켜 먹고 차로 돌아온다. T맵으로 검색을 한다. 주변 검색>모텔 검색>옥천 모텔. 2인 1실, 3만 2천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들어서니 할머니가 빼꼼히 유리창을 연다. ‘얼마요’ 내 목소리가 왜 이렇게 크게 나오는지. 흘끗 보더니 숙박계를 내놓고 3만 2천 원이라고 한다. 인적 사항을 대강 아무렇게나 적고 들어와 보니 바닥이 차다. 마침 전기담요가 있어 방 바닦에 깔고 요를 깔고 이불을 펼쳤다. 목욕탕에 들어가 몸을 씻고 TV를 켜고 아무런 곳이나 보다가 잠이 들었다. 손등이 가렵다. 눈을 뜨니 캄캄하다. 귓가에 모기의 소리가 들린다. 일어나 불을 켠다. 첫 번째 모기를 벽에서 발견하고 손바닥으로 압살한다. 피가 벽지에 화룡점정, 다시 레이저 눈빛으로 벽면을 훑어본다. 두 놈을 더 발견하여 마저 처치하고, 천장을 올려다보니 또 한 놈이 매달려 있다. 하얀 수건으로 휘둘렀지만 실패, 3평 사냥터를 10분 동안 휘젓고 다니다, 마침내 성공, 그렇게 또 여명이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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