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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만장일치 외 1편/최재경

작성자황구하|작성시간13.04.26|조회수29 목록 댓글 0

  만장일치 외 1편

 

                                    최재경

 

 

   섣달이 되면 논 갈아 밥 먹고 밭 갈아 콩 먹던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
   땅이 얼든 말든 한나절 가웃쯤 되면 하나 둘 방바닥이 절절 끓는 회관으로 모인다
   무서리 허옇게 내린 마을에 이장이 방송을 할 참이면, 먼저 신명나는 노랫소리가 한바탕 시끌하다
   “주민 여러분, 오늘은 마을 총회가 있는 날이니, 모두 참석하여 이장도 다시 뽑아야 하고 마을 기금이 얼마나 남았나도 알려드릴 터이니, 아침 대충 잡수고 싸게 회관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요.”
   며칠을 꿈쩍도 안 하고 집구석에서 제수띠기 화투를 신물 나게 치던 사람,
   보일러 기름 아끼려고 온종일 이불을 펴 놓고 뭉기적거리던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기별이다
   강바람이 일사천리로 미끄러져 내려오고, 북풍이 회관 마빡을 정면으로 후려치면 뻔질나게 다니는 개장수 소리도 감감하다
   노상 기운차던 이장이 오늘은 초상집 상주처럼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한다
   “그동안 주민 여러분의 힘을 입어 여태 이장을 봐온 것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이번 판에 한번 더 뽑아주시면 있는 힘을 다해 열심히 하겠습니다요.”
   아무 말이 없이 침묵이 흐른다, 누가 썩 나서질 못하고 모두 눈치만 보고 있다
   내가 한마디했다
   “아 지금까지 봐온 이장 따라갈 사람이 없지요. 찜질방이며 미장원에 공과금까지도 도맡아 해왔고 자가용 없으면 그렇게 절대 못한다니까요. 마을 기금 쓴 영수증은 없어도 아 이장이 뭐 돈 떼먹을 사람도 아니니 다시 봐야 합니다. 뭐 딴 얘기 있나유? 없으면 만장일치로 다시 선출된 것으로 간주하고, 박수 크게 쳐봐유.”
   늙은이 젊은이 중간치기 모두 박수가 터져 나왔고, 이것으로 총회가 끝이 나고 있었다
   좁아터진 부엌에서 김칫국 냄새가 푸짐했고, 일번 해내온 쌀밥에 검정 서리태가 반지르하다
   담배 한 대 물고 오줌을 싸는데 이장이 따라나와 한마디 한다
   “붱골 가는 길 포장 다 안 됐지?”
   한참 뜸하던 이동슈퍼가 마을로 들어오나 시끄럽다
   겨울이 어디쯤 와있나 보니, 소한네 집 근처에 와있었다


 

 

 

   너구리와 도둑괭이


 

   하루라야 마실 한번 다녀오면 그만이고 보면 솔찬히 밤이 길다는 얘긴데
   왼종일 강바람에 시달리던 햇살이 산 그림자 쫓아가는 모습이 어설프고
   주름 깊게 패인 노을이 피식 끄무러질 판이면 하나 둘 등짝 눕히러 집으로 가야 한다
   고개 너머 색시집이 새로 생겼다는 소리에 상수가 밍기적거리고 눈치를 본다
   낮에는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들에게 커피를 팔다가
   어두워지면 화장 고치고 마담이 자는 골방에 술상이 차려진다는데
   황룡재 바람이 만만치 않아 불알이 얼어 달그락 소리 나게 달려갔더니
   조합 대출담당을 만난다고 먼저 나간 학수가 터를 잡고 있었더라
   상수가 가만히 들어보니 내일 해 뜨면 다 알고도 남을 거짓말을 지껄이고 있다
   “나가 말여, 이 근동이서는 논마지기도 있구 조합 대의원에 면 소방대장도 한 사람 여여가 좀 드시기는 한디 누가 찌적거리면 바로 연락혀, 내버려두지 않을 챔이니께 알지 응?”
   연탄난로가 꺼진 바깥에서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상수가 참을 수 없어 문을 팍 열고 소리를 지른다
   “야 이 썩을 놈아 여기가 조합이냐, 뭐 논마지기? 스마지기도 논이냐? 대의원? 소방대장? 급살 물어갈 새깽이야 너하고 나하고 그럴 수가 있냐? 하냥 가자고 하면 얼마나 좋으냐 새끼야, 도둑괭이처럼 저 혼자 살살 먹을 거나 찾아 밤새 쏘다니고 말질만 하는 씹새야.”
   느닷없이 벼락을 맞은 학수가 어리어리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야이 씨뱅아, 너는 너구리 새끼 아녀? 어두워지면 혼자 나다니며 어디 문 열린 닭장이나 없나 살피는 새끼가. 왔으면 싸게 들어와 씨팔놈아.”
   쌀밥 고실고실하게 지어 오붓하게 막 먹을 판에 밥상이 엎어지고,
   학수 국 쏟고 거시기 데이고 영 아니었더라
   서로 번갈아 메뉴큐어 칠한 손을 조물락거리던 밤이 이슥해지고 얼근히 취한 두 사람이 일어난다
   “여기 술값이 얼마여?”
   두 사람이 서로 돈을 내려고 안달났다
   상수가 말했다
   “그려 대의원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지 뭐 조합원이 뭐 돈이 있간디?”
   돌아오는 길에 상수가 말을 걸었다
   “야 마담 어디서 왔댜? 및 살 먹었다냐? 이쁘기는 참 이쁘더라야 살결도 뽀얗고.”
   학수가 소락대기를 질렀다
   “시끄러워 염병할 놈아, 다음에는 니가 술 사 웬수 새끼야.”
   고갯마루 찬바람이 귀때기를 때리고, 학수가 떠드는 소리에 마을 개가 컹컹 짖기 시작했다
   너구리와 도둑괭이가 살금살금 마을로 내려오고 있는 겨울밤이었다

                ─문학 무크 『시에티카』 2013년 · 상반기 제8호

 

 

   최재경
   대전 출생. 2006년 『문학세계』로 등단. 시집 『그대 잊은 적 없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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