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땅 대마도 ★♣
우리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이 원인불명의 폭발로 백령도 남방
대청도와 소청도 사이 바다에 침몰하여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침통한 분위기다.
한사람의 생존자라도 더 구했으면 하는 바램인데
갈수록 희망이 없어지는 느낌이라 안타깝기만하고
실종해군 가족들의 가슴을 찢어지게 하고 있다.
우리 정부나 군 당국은 빨리 실종군인들의 생사가 확인되고
침몰원인을 밝혀 기족들과 국민들의 시름을 덜었으면 하는
마음에 가슴을 졸이고 있는 차제에
비열한 쪽바리들은 영토침략의 혓바박을 들어내고 있다.
에다오 유기오라는 일본 현직각료가 ‘중국이나 조선반도(한반도)가 식민지로서
침략을 당하는 쪽이된 것은 역사적 필연 이었다’고했다.
더구나 그의 망언이 안중근 의사 순국 100년을 맞은 다음날에 나왔다는 사실에
한층 분노가 치민하다.
이 쪽바리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일본은 영토와 지리개념을 처음으로 배우는
쪽바리들의 모든 초등학생에게 ''한국이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가르쳐 우리의 영토를 침탈하려 하고있다는 것이다.
과거사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역사적 필연’운운하고
명백한 우리의 영토 독도를 털도 뜯지 않고 집어삼키려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독도는 예전부터 우리나라 땅이었고, 대마도도 본래 우리나라 땅이었다
이런 고지도가 현존해 있고 지도를 흘겨보아도 대마도는
우리나라에서 가깝다.
한국 남단에서는 53km 이지만 일본 큐슈 섬에서는 147km 떨어져 있다.
지금 당장 우리의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대마도가 우리의 땅인데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점유해서 지금까지 쪽바리들이 살고있음을 교육시키고
조선조 세종 때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 정벌을 위해 마산포를 출발한 6월19일을
’대마도의 날’로정하여 대마도가 우리 영토임을 대내외에 각인시키고
영유권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일본은 우리영토임이 분명한 독도조차 자신들의 영토라고 억지 주장하며
동해를 분쟁지역화 하는데 성공하였다.
우리역시 대마도를 최소한 분쟁지역화 함으로써, 현재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배타적 경제수역 문제에 대해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소모적인 논쟁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지만, 대마도 확보는 일본에게
외교적 우위를 점할 수 있음은 물론, 앞으로 해양진출의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대마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였다는 역사적 근거
1. 13세기 말 가마쿠라 막부 '진대 제 2권'의 기록
"무릇 대마도는 옛날에는 신라국과 같은 곳이었다.
사람의 모습도 그곳에서 나는 토산물도 있는 것은 모두 신라와 다름이 없다"
2. 고려 공민왕 17년의 기록
"대마도 만호(萬戶)가 사자를 보내와 토산물을 진헌하였다.
윤 7월 강구사 이하생을 대마도로 보냈다"
"대마도 만호(萬戶) 송종경이 사자를 보내어 조공하였다.
종경에게 쌀 1,000석을 내렸다"
3. 태종이 대마도의 왜구들에게 보낸 항복을 권하는 유서에서
"너희들이 살고있는 대마도는 경상도 계림(신라)에 예속되었으니,
본시 우리땅이란 것이 문적에 실려있고,
분명 상고할 수 있다. 만약 항복을 하지 않거나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병선을 동원하여 공격할 수 밖에 없다"
4. 세종 때 대마도 정벌을 하기 전 당시 상왕이었던 태종의 교유문
"대마도는 섬으로서 본래 우리 나라의 땅이다. 다만 궁벽하게 막혀 있고,
또 좁고 누추하므로 왜놈이 거류하게 두었더니,
개같이 도적질하고 쥐같이 훔치는 버릇을 가지고 경인년부터 뛰어놀기 시작하였다"
5. 세종 2년 대마도주가 조선에 보낸 서
"만약 우리 대마도를 귀국 경내의 주군의 예에 의하여 주명을 정하여 주고
인신을 주면, 마땅히 신하의 도리로 따르겠습니다.
왜적선의 침입이 극심함으로 대마도인을 거제도 등지에 가서 살게 해주고
하루빨리 관원을 파견해 주십시오"
6. 에도 막부 쇼군의 측근이 대마도 고위관리에게 한 말
"너희 섬(대마도)은 조선 지방이니, 마땅히 조선 일에 힘을 써야 한다."
7. 임진왜란때인 1592년 토요토미 히데요시 부하가 만든 '팔도총도'라는
지도에도 대마도를 조선영토로 표기하고 '공격대상'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제시하는 증거보다는 대마도가
한국 땅임을 입증할 수 있는 사료가 훨씬 풍부하다. 또한 독도에
대한 일본인의 역사적 인식보다도 대마도에 대한 한국인의 역
사적 인식이 훨씬 깊다.
이러한 역사를 근거로 이승만대통령은 1948년 8월18일 '대마도 반환요구'
를 전격 발표했고, 이후 9월9일에도 또다시 반환성명을 발표했으나
당시 맥아더 원수로 부터 동아시아 안정화를 빌미로 제지 당했었고
그 전 미군정 시기였던 1948년 2월 17일 당시 임시 입법회의에선 대일강
화조약에 대마도 반환을 포함시키려 했으나 당시 가장 최우선 문제였던
정부 기초작업으로 인해서 결국 유야무야 되고 말았었다.
현 정부는 대마도가 우리 땅밈을 역사교과서에 기술하여 우리 후세로하여금
철저한 교육을 하여 그 땅를 회복할 수 있은 기틀을 마련한는 것이 후세에
기리 남을 역사적사명일 것이다.
"개같이 도적질하고 쥐같이 훔치는 버릇을 가지고 경인년부터 뛰어놀기 시작하였다"
라고 우리 선조들이 말씀한바와 같이 이쪽바리들에게 무슨 미래지향적 선린우호의
뜻을 같이 하겠는가?
雲海
萬 事 如 意 亨 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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