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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 캐슬’, 다시 이야기 ① [한 닦]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19.03.03|조회수59 목록 댓글 0
‘SKY 캐슬’, 다시 이야기 ①


 


 


한 닦 (교육자)


 


 머리에


 


  ‘SKY 캐슬’이 조성한 계기를 빌어, 우리 교육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SKY 캐슬’과 교육에 대해 이야기했고 또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그 흔한 이야기들과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흔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이야기가 아닌, 생뚱맞다 여겨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굳이 꺼내고자 하는 것은, 익숙한 이야기보다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가 매우 긴요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생각을 하고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려면, 익숙한 이야기에 젖어 지내선 안 됩니다. 익숙한 대로만 세상을 보았다면, 우리 인류는 아직도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여기고 있었을 것입니다. 진리는 종종 아침에 뜨고 저녁에 지는 해처럼 너무도 익숙한 현상 뒤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축복이기보다는 저주로 받아들여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SKY 캐슬’은 그런 일면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교육이 저주일 리는 없습니다. 인류를 야만에서 문명으로 끌어 올린 것은 교육이었습니다. 우리가 교육을 저주스럽게까지 여기게 된 것은 우리의 교육 이야기가 뒤틀리고 뭉개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이야기를 살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따르게 됩니다. 교육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는 새로운 교육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익숙한 일상에 묻혀 있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새롭게’ 채굴되고 닦여져야 할 뿐입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겠지만, 우리는 새로운 교육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새로운 교육을 시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SKY 캐슬’의 이야기 대강


 


  ‘SKY 캐슬’은 하나의 교육 이야기를 아주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퍼뜨렸습니다.1) 그 이야기는 여러 에피소드를 담고 있고, 여러 측면과 층위에서 다양하게 해석하고 비평할 여지를 안고 있습니다. 언론의 보도나 논평 등을 둘러 보건대, 많은 사람들은 ‘SKY 캐슬’을 ‘학종’(학생부종합전형)에 연루된 전략과 비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실지로 ‘SKY 캐슬’의 이야기 뼈대는 ‘학종’을 통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같은 ‘극상층’의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과 그들의 가정이 구사하는 전략과 노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SKY 캐슬’ 이야기를 매우 간략하게 정리한다면 아래와 같을 것입니다.


 


학종을 통해 서울대 의대에 합격하려면 수십 억 원을 들여 “내 아이와 딱 맞는 입시 코디”를 고용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정보를 ‘강예서’ 엄마가 얻었다. ‘신아고’라는 명문고에 수석으로 입학한 ‘예서’의 엄마는 그런 코디를 잡는 데 성공했다. 코디는, 내신 성적부터 봉사활동 기록 그리고 학생회장 이력까지, 모든 요건을 최적이게 갖추어 주며, 학생의 ‘멘탈’까지 관리해준다. 코디의 조치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모든 과정을 감수한다면, 서울대 의대 합격이 ‘백프로’ 확실할 것으로 믿어진다. “아주 출중한 파트너”들을 갖춘 코디는 ‘100점’을 위해 학교 중간·기말고사 시험 문제지도 빼내며, ‘고객’이 희망 대학에 합격하는 데 장애가 된다면 살인도 감행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코디 의존 전략이 합격이란 성과까지 이어지지는 못한다. 3학년 1학기 무렵, 코디의 범죄에서 파급된 가치와 심리의 혼란을 겪으면서, 드라마 속 인물들은 대오각성, 명문대 입학에 모든 것을 걸었던 행태를 악몽에서 깨듯 버리고 ‘행복한’ 길을 간다. (인용구들은 ‘SKY 캐슬’의 대화 구절에서 따옴)


 


 


‘SKY 캐슬’에 대한 관심과 반응


 


  위와 같은 이야기에 접하여, 사람들은 다양한 관심을 드러냅니다. 적어도 언론이 보도하는 대로만 보면, 가장 큰 관심은 그런 ‘코디’가 정말 있느냐는 데 모아지는 듯합니다. 이른바 대입 컨설팅 ‘베테랑’이라는 사람들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인터뷰 기사를 쉽게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버금으로 또 많은 사람들은 ‘학종’에 대해 분개합니다. 과연 듣던 대로 그것은 ‘스펙’을 꾸밀 수 있는 ‘캐슬 주민’들의 전유물이란 걸 확인했다며, 정시(수능위주 전형) 확대를 주장합니다. 더 공정한 대입전형을 위하여 수능 위주로 가야한다며, 청와대 앞까지 몰려가서 시위도 했답니다.


 


  이와 같은 반응과 논란은 매우 피상적이고 즉응(卽應)적입니다. 긴가민가 봤더니 그런 ‘코디’가 실지로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 놀라고, 그런 ‘코디’까지 사서 부릴 수 있는 ‘극상층’의 수완과 행태를 신기하게 보고 난 뒤에는 박탈감을 삭이기 어렵습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학종’이란 제도를 비난하는 데 온 힘을 모으게 되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눈앞의 문제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조급하게 바글바글 끓는 논란으로는 해낼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능 위주 전형을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있답니다. 수능은 극상층이 이용해 먹기에 ‘학종’만큼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겠습니다. 수능이 ‘학종’보다 ‘실력’을 더 타당하게 평가해 준다고도 믿는 듯합니다. 이런 요구와 인식의 와중에, 교육부의 움직임도 그런 장단에 놀아나는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SKY 캐슬’의 ‘최고 시청률’을 의식하며 내놓은 대책이란 것이 겨우 ‘단속 강화’입니다. ‘SKY 캐슬’의 코디와 같은 불법적인 ‘사교육’ 행태가 있는지 조사하고 단속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게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점은 이제 부연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입학전형 제도를 두고 (나아가 교육 전반에 대해서도) 일어나는 이런 논란 양상은 어제오늘의 꼴이 아닙니다. 광복 이후만 따져서 70년 넘게 쳇바퀴 돌려온 우리의 역사입니다. 그 바퀴를 계속 더 돌려야 하겠습니까?


 


 


달리 던져야 할 질문


 


  ‘SKY 캐슬’은 우리 사회에서 100년 가까이 지속되어 온 ‘입시 지옥’의 드라마 속편일 뿐입니다. 그 긴 ‘지옥’의 역사를 거치면서도 우리는 ‘입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괴물’로 키워버렸습니다. ‘SKY 캐슬’과 같은 극단적인 드라마가 실지로 있을 법한 이야기로 수긍될 만큼, 우리 대입제도는 (사실 교육 그 자체가) 괴물이 돼버렸습니다. 이제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교육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스스로 묻고 숙고하는 것입니다. ‘수능’과 ‘학종’이 유리하다 불리하다 논란하는 것은, 적어도 우리 사회를 걱정하는 맥락에서는, 천박할 뿐만 아니라 사소합니다. 눈앞의 이해(利害)에 몰입하는 불나방의 맹목성과 조급성을 이제는 누를 수 있어야 합니다.


 


  ‘SKY 캐슬’이 던지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SKY 캐슬’이 ‘학종’의 이면을 드러냈다는 데서 찾아선 안 되는 것입니다. ‘SKY 캐슬’은, 역사가 누적될수록 거듭 음험하고 영악해져 온, ‘입시 부정과 비리’의 현대판 묘사일 뿐이라는 데서 찾아야 합니다. 오늘날 명문대 입학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으리라고 여겨지는 우리의 태도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서울대 의대’ 같은 ‘명문대’에 합격할 수 있기만 한다면, 학생이나 부모 모두 솔깃해서 그 방책을 사려고 달려들지 않겠습니까? 부패가 만연했던 수십 년 전과 다르기는 할 것입니다. 이제는 범법의 수단과 방식이라도 모험하려고 달려들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합법의 방책이 될 때 사들이려고 할 테지만, 그런 방책을 갈구하면서 뿜어내는 광기나 비도덕성은 과거에 비해 결코 식지 않았을 것입니다. ‘SKY 캐슬’은 바로 이런 가능성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이야기에 수긍했습니다.


  ‘SKY 캐슬’ ‘예서’네 집안에 대해 법적으로 (심지어는 도덕적으로도) 죄를 묻기 어려울 것입니다. ‘예서’라는 학생은 악착스럽게 공부했고 성적도 탁월했으며, 온 집안은 할머니까지 합심해서 수십 억 원을 들여가며 그녀의 공부를 지원했습니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드라마틱한’ 변수나 사건들이 삽입됐고, 그래서 ‘예서’는 극중에서 학교를 자퇴해야 했지만, 만약 그런 굴곡이 없었을 현실에서라면, 필경 그녀는 서울대 의대에 합격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합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극중에서 ‘예서 엄마’는 사실상 코디 ‘쓰앵님’의 공범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지만, 그 이기심과 철면피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청자들은 그 인물에 오히려 공감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상황이 이러한데도 우리는 ‘SKY 캐슬’을 두고 ‘학종’의 이야기이고 ‘코디’나 ‘컨설팅’의 이야기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SKY 캐슬’은 마치 대입을 위해 미처 생각지 못했던 기발한 전략이나 도구를 힌트해준 드라마인 듯합니다. 자기가 맡은 학생을 ‘백프로’ 서울대 의대에 합격시킬 수 있는 ‘코디’가 정말 있을 수 있느냐, 은행들은 정말 ‘VVIP’를 위해 그런 ‘코디’와의 ‘매칭’을 주선하느냐, ‘학종’이 그런 코디의 도움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수능 전형 쪽으로 제도를 틀어야 맞지 않느냐 하는 이야기들만 무성합니다. ‘SKY 캐슬’에는 공부나 대학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고, 아들을 서울대 의대에 합격시켜 만인의 선망을 받던 엄마가 자살하고 결국 가정이 풍비박산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후자 이야기들은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태 역시 현실에서도 구태의연한(기시감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성적 경쟁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이미 숱하게 들었고, 명문 대학에 입학했다가 의미 없다고 자퇴한 학생들의 이야기도 들었으며, 성적을 올리라는 엄마를 죽인 ‘우수했던’ 아들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아이들을 성적 경쟁에 내몰며 다그치고 있고, 아이들은 엄마의 ‘정보력’이 빚은 프로그램을 따라, ‘공부’에서 해방될 날을 꼽으며, ‘의미 없는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질문을 할 때가 됐습니다. 어떻게 내 아이 수능과 내신 성적을 올릴 수 있을까, ‘극상층’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어떻게 내 아이 ‘서울대’ 합격 확률을 높일 수 있을까 궁리하기보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과연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는가, 경쟁은 불가결한가, ‘성적순의 원리’는 정말 공정한가,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자문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다시 긴 세월이 지난 후 미래 어느 날, 우리는 ‘SKY 캐슬’에 다름없는 새 버전 드라마가 다시 방영되는 현실에 있게 될 것이고, 과거 몇 달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많은 가십을 만들어내며, 그 드라마의 시청률을 올리는 데 열렬히 기여하고 있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고 진정 성찰한다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까요?


  다음 글에서부터 우리가 정말 문제 삼아야 하리라고 여기는 ‘문제’들을 거론해보겠습니다. 기회가 주어지는 데 따라, 몇 차례에 나누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함께 의견 나눌 수 있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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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KY 캐슬’을 ‘교육 이야기’라고 규정하려면 단서를 달아야 할 것이다. ‘SKY 캐슬’이 교육 현실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 드라마의 ‘성공’이 그 덕분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비지상파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드라마 ‘내용’이 교육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내용 ‘편집’이 절묘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수긍할 만하다. (물론, 연출이나 영상 등의 요인도 중요하게 기여했을 터이다.) 매회 ‘엔딩’이 해당 장르를 추리물로 분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시청자들을 쪼였고, 급기야 ‘대본 유출’의 해프닝까지 야기하면서 대중의 관심이 크게 증폭되었다. 그러나 적어도 ‘교육계’에서는 ‘SKY 캐슬’을 ‘드라마’로 감상하며 평가하기보다는 대입 전략의 ‘다큐’인 듯 받아들여 논란해오고 있다. 여기에서는 이렇게 논란되는 이야기들을 음미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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