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이야기사랑방

<이주의 시> 강릉 점집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24.01.16|조회수21 목록 댓글 0

<이주의 시>

 

    강릉 점집


                       정끝별

 

쉬운 일이 없어 나는 숨어듭니다 그러다 문득

왜 이리 쉬운 일이 없는지 묻고 싶어집니다

 

못내 지나 끝내 넘어 달마처럼 동쪽으로 가고 또 가

한 줄 수평선에 엉망의 끝을 부려놓고 싶어집니다

 

해가 뜨고 달이 뜨는 일이 그러하듯

물은 지치지 않고 바다에 이른다는데

숨어들어서라도 지지 않는 길을 찾는다는데

 

섣달 찬 바람에 길을 물으며 강릉 천변을 지날 때

거두지 못한 빨래처럼 깃대에 묶여 펄럭이는 

 

소란한 바람에 휘청이는 풍마(風馬)인 듯

파닥이는 돛인 듯 주저앉은 닻인 듯

 

물 반 卍 반인 강릉 천변에서 나는

쉬운 일이 없어 숨 쉴 수도 없는 나를 숨겨주기로 합니다

긴 숨을 몰아쉬고 엎어진 김에 쉬어 가기로 합니다

 

물물처럼 卍卍처럼 쉬어지기로 합니다

 

모래는 뭐래』 (2023, 창비)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