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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수상 창고

시민 가족농장을 시작하면서

작성자최창의|작성시간03.01.06|조회수23 목록 댓글 0
시민 가족농장을 시작하면서
최창의(고양시민회 회장)

얼마전 시골로 이사간 어느 선생님의 글에서 사람처럼 큰 해충이 없다는 말을 읽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 선생님이 사는 집 앞 들녘에서는 농번기만 되면 온통 농약 치는 소리로 요란한데 그 속에서는 조그만 벌레 한 마리도 살 수 없을 거라며 한탄을 한다. 그러면서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 모두 필요한 만큼만 힘들게 만들어 쓰고, 쓰레기를 만들지 말고, 몸을 작게 웅크리고 살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마침 그때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인디언의 가르침을 담은 '작은나무야 작은나무야'라는 책을 읽고 있던 터라 더욱 그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는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정말 사람처럼 자기의 욕심이나 이로움을 위해 다른 동물이나 식물을 해치고 괴롭히는 생물도 없을 것 같다. 짐승들은 아무리 사납고 힘이 세더라도 자기 먹을 만큼만 다른 동물을 잡는다. 쌓아 두고 배불리 혼자 먹고 팔아치우기 위해 거침없이 잡고 죽이지는 않는다. 또 자기가 편하게 지내려거나 노리갯감으로 애꿎은 생명을 해치는 일도 없다.
그러나 우리 사람들은 어떤가? 돈에 눈이 팔려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죽이는가? 제 몸뚱아리 조금 편하게 지내려고 얼마나 자연을 더럽히고 짓밟는가? 이 세상은 우리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물을 더럽히고 땅에 독을 쏟아 부어 물고기와 벌레들, 새들을 죽였다. 나무도 베어내고 산짐승도 거둬들이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살다가는 결국 이 세상이 망해 없어질 것 같다.
그래도 시골 사람들은 좀 낫다. 도시에 사는 내 처지에서는 자연을 살리기는커녕 온통 짓밟고 더럽히는 일만 부추기고 있다. 내가 먹고 마시고 입고 자는 것은 아무 것도 내 손으로 가꾸거나 만든 것이 없다. 모두 소비하는 일뿐이다. 그러고도 남기고 싸서 또다시 자연을 망가뜨린다.
내가 조금이라도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고 작아질 때는 가족농장에 올 때이다. 나는 얼마 전 겨우내 묵었던 밭에 소똥을 퍼 나르고 펼치면서 몸은 힘들지만 참 즐거웠다. 사람들에게 젖을 준 소들이 먹고 싸놓은 것들을 내 손으로 고스란히 땅으로 돌려 준다고 생각하니 소똥 냄새가 구수하기까지 했다. 작물을 심고 돌보느라 농장에 오면서도 애써 가꾸고 보살펴 주는 대로 크고 자라는 생명이 얼마나 놀랍고 귀중한지 새삼 깨닫는다. 그러면서 조금 먹고 조금 버리며 살아야지 다짐하곤 한다.
농장에 다니면서 흙에게만 배우는 게 아니라 이웃 사람들의 태도를 보며 깨닫는 것도 많다. 지난 해 가족농장에서 내가 본 두 종류의 가족이 있다. 한 쪽은 땅을 살리고 이웃을 돕는 일에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그 식구들은 자기 땅에 애써 거름을 주고 풀을 자주 뽑아 주면서 알뜰하게 작물을 기른다. 둘레의 이웃들을 위해 뭐 도와 줄 게 없나 늘 살핀다. 이런 가족은 회비 8만원을 내고 수만금보다 귀중한 소득을 얻어가는 사람들이다. 또다른 한 쪽은 농장에 와서 무슨 대단한 써비스라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저 어떻게 하면 손발을 적게 놀릴까 궁리하면서 남이 돌보아 주기만을 바란다. 그 사람들이 가꾸던 밭은 얼마 안 가 온통 잡초 투성이로 뒤덮여 다른 이웃들에게까지 피해를 준다. 이런 가족은 8만원을 내고 몇 곱절의 손해를 입히는 사람들이다.
가족농장은 남이 땀흘려 가꾸고 만든 것들을 소비만 하던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곳이다. 나는 올해도 가족농장에 오면 손발을 부지런히 놀려 일하고 불편한 것이 많을수록 달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래야 농장의 벌레나 새들이 나를 비웃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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