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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수상 창고

마음에는 평화가 얼굴에는 웃음이

작성자교육자치|작성시간04.01.25|조회수4 목록 댓글 0
마음에는 평화가 얼굴에는 웃음이
최창의(경기도교육위원) / 2004년 1월호 "우리교육"에 실림

2000년도가 저물어가는 12월말이었다. 가방 하나 달랑 메고 계룡산 숲속에서 열리는 "동사섭" 수련원을 찾았다. 숲길은 한적하고 바람소리만 을씨년스럽게 나무를 흔들고 지나간다. 나는 왜 한 해가 끝나가는 그 겨울에 길을 떠났던가?

2000년은 내가 전교조 결성과 관련하여 10년 가깝게 해직되었다가 뒤늦게 복직한 지 2년이 되던 해이다. 복직을 결정하면서 애초 힘이 들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뜻밖에 고통이 심했다. 돌아온 학교는 10년전과 달리 무언가 바뀌고 달라진 것 같았지만 정작 달라져야 할 것은 그대로여서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학교 운영에 관한 의사 결정을 하는데 관리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교무회의 풍경은 지시 전달 중심이고, 교사들은 학교 운영에서 여전히 구경꾼이다. 교실 안에 50여명의 아이들이 꽉 들어차 바글거리는 건 똑같은데, 아이들 하나 하나는 개성이 뚜렷하고 종알종알 수근대거나 돌아다는 일이 보통이다. 사회에서는 '교실 붕괴'라는 말이 떠돌고 그나마 희망을 걸었던 합법 전교조마저 성에 차지 않는다.

80년대 중반부터 교육운동과 지역운동에 목을 매다시피 살아온 나에게 그때만큼 큰 좌절과 고통이 없는 것 같았다. 사회 변화에 삶의 의미를 둔만큼 뜻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화가 쌓이고 앞날이 안 보였다.

돌덩이처럼 이렇게 무거운 가슴을 안고 찾아든 게 불교이치에 따라 마음을 닦는 "동사섭"이다. 세상과 학교교육이 쉽사리 변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 지나온 날과 마음자리를 돌아보면서 새 삶을 열어야지.' 하는 막연한 심정으로 찾은 길이다.

동사섭 첫날, 경계심으로 멀찍이 떨어져 관찰하고 웅크리던 내 모습은 거울 스님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벗겨지고 부서져 갔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 앞에 얼른 뚜렷한 대답을 내놓을 수가 없다. '참된 세상, 평등, 평화...'부터 시작해 '잘먹고 잘 사는 것'까지 잡다한 것들이 떠오른다. 거울 스님은 '행복'이라고 툭 내놓고 '행복은 좋은 느낌, 기분 좋은 것'이며 '우리 모두의 행복'이라고 매듭을 지었다. 결국 5박 6일의 동사섭 수련이 우리 인생의 목표인 '모두의 행복'을 찾아가는 시간이라고 한다.

그때 나는 행복하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세상이 좀 잘못되고 교육이 뒤틀려 있더라도 내 마음은 평화로웠으면 했다. 행복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행복해 버려라. 양쪽 입술 끝을 약간 위로 치켜 들고 미소를 지어라. 그러면서 마음은 지금 나는 행복하다고 선언을 한다.' 이렇게 시작해 행복하기 위해서 마음을 닦고(수신), 서로 마음을 나누며(화합), 바른 일을 하며(작선) 살아가는 이치를 5일 동안 차근차근 깨닫게 해 주었다.

"기적의 미세 정서" 시간에는 내가 '행복의 조건'이라고 붙들고 살았던 '거대 담론'들이 결국 나를 얼마나 옥죄었던가를 깨닫게 해 주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행복했던 순간들과 느낌들을 되살려 내보니 한두 가지를 제외하고 대부분 아주 작은 일들이었다. 내 둘레와 마음 안에서 일어난 그 작고 짧은 느낌들을 행복이라고 여기지 못하고 나라와 사회의 변화에만 행복의 조건을 걸었던 삶의 방식이 문제였다. 작은 느낌에 충실하지 못하고 머리로 생각하는 행복이 마음까지 불행하게 만든 것이다. '머리는 떼어내고 몸과 가슴으로 살아라.' 어느 행복한 농사꾼의 말이 깊이 새겨들었다.

마지막 날 "맑은 물 붓기" 시간에는 교단의 교사로서 큰 깨우침을 얻었다. 컵에 가득 담긴 맑은 물이 한 방울의 먹물이 떨어지니 온통 새까맣게 된다. 저 컵에 처음 담긴 물처럼 맑고 깨끗한 우리 아이들 가슴에 먹물을 얼마나 뿌려댔던가? 나는 그 날 밤 오랫동안 죄를 씻어내는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하며 맑은 물을 거듭 붓고 부어서 먹물을 맑게 하였다.

동사섭 수련을 마치고 나오는 날, 내 자신의 외부 환경이 바뀌거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산은 그대로 산이고, 물은 그대로 물이었다. 그러나 그 산과 물은 보는 내 마음과 느낌은 달라져 있었다. 행복한 삶을 바깥의 변화에만 매달리지 않고 마음 안에서도 찾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음에 평화가 오고 얼굴에는 웃음이 피어나왔다.

그 뒤로 나는 아이들과 사는 교실살이가 행복해진다. 또 뜻이 조금 다른 동료교사들도 마음 안에 따뜻하게 품어 안을 수 있게 된다. 아이들 앞에서 화가 사그라지고 맑은 물을 부어 주는 교사가 되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던 기운이 새롭고 험한 교육위원의 길도 서슴지 않고 걸어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나는 그때부터 해마다 겨울이면 동사섭 마음수련장을 찾아 계룡산 삼동원을 찾는다. 올 겨울에도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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