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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수상 창고

함께 사는 세상

작성자교육자치|작성시간04.01.25|조회수24 목록 댓글 0
함께 사는 세상
최창의(경기도교육위원) / 12월 12일 경기일보에 실림

이천의 한 중학생이 어머니의 주검과 한 방에서 6개월을 지낸 이야기는 우리가 얼마나 차가운 세상에 살고 있는지 일러준다. 이 학생은 죽은 어머니의 추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었다면서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것이 편했다고 한다. 어른으로서 비정한 현실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싶다.

이번에 일어난 사건에서 우리 사회 가족주의의 슬픈 단면을 본다. 이 사건이 알려지기 전까지 상황을 돌이켜 보자. 어머니가 병환으로 돌아가 시신이 썩어가고 있다. 아이는 무려 6개월 동안이나 학교를 가지 않았다. 장발에 때묻은 옷을 입고 부랑아처럼 길거리를 돌아다녔을 것이다. 먹는 것이나 제대로 있었겠는가. 바짝 마르고 눈자위는 퀭하고 힘이 없었겠지.

그런데도 이 아이는 우리 사회의 관심밖에 내던져 있었다. 그것은 주변에 형제나 친척 하나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가족이나 친척 피붙이가 없으면 누가 죽든 버려지든 철저히 상관없고 알려지지 않는 게 오직 제 가족 중심의 사회 모습이다.

아이를 발견한 학교 선생님을 두고도 말이 많다. 왜 6개월이 되도록 아이를 방치했느냐는 나무람이다. 내가 확인해 본 바로는 아이의 학교 선생님은 누구보다 아이를 찾기 위해 진심으로 걱정하고 노력하였다. 과연 우리 사회가 선생님에게 책임을 넘기고 홀가분할 수 있는가? 학교 선생이 찾지 않으면 이웃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몰라야 하는지 되묻고 싶다.

사람들은 요즈음의 냉정한 세태와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꼬집기도 한다. 그러나 이웃의 인정에 의존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공동체의 삶이 깨어졌다. 오히려 가족이 해체되거나 홀로 된 어린 아이들이 사회의 안정된 보호 속에 성장할 수 있는 국가 복지시스템이 작동되어야 하는 시점에 있다. 어린 중학생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정부 기관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도 깊이 따져볼 일이다..

이제 어린 중학생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학교로 돌아왔다. 또 여러 곳에서 학생을 돕겠다는 손길도 밀려들고 있다. 하지만 이 아이처럼 우리 사회의 또다른 곳에서 따돌림받고 떠도는 어린 영혼들은 없는가? 눈을 크게 뜨고 가슴을 활짝 열어야 하겠다. 함께 사는 세상이라야 앞날에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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