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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수상 창고

북한산을 오르며

작성자교육자치|작성시간04.01.25|조회수35 목록 댓글 0
북한산을 오르며
최창의(경기도교육위원) / 12월 24일 경기일보에 실림

일요일이 되면 산에 갈 때가 많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기분이다. 이번 일요일에도 북한산을 올랐다. '더오름 산악회'와 약속이 되면 함께 가기도 하지만 오늘처럼 혼자 갈 때가 많다. 혼자라서 조금 쓸쓸하다. 하지만 그런 마음 곧 잊는다. 내 힘에 맞게 걷거나 쉬는 걸 마음대로 할 수 있어 편하다.

북한산 들머리에 들어서니 겨울 찬 공기가 코끝에 싸하게 닿는다. 그래도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어 산을 오르기에 좋은 날이다. 산줄기에 이르니 언제 오셨는지 하얀 눈들이 희끗희끗 내려앉아 있다. 계곡의 얼음장을 타고 잘잘잘 흐르는 물소리가 반갑다. 멀찍이서 까마귀 한 녀석이 까옥까옥 우짖는데 듣기 싫지 않다. 경국정사에서 똑똑똑 목탁소리가 번져나온다. 산사 앞에 현수막 글씨가 큼직하게 다가온다.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그 여름내 푸른 잎사귀를 팔랑대던 나무들은 모두 옷을 벗어 던졌다. 신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 같은 참나무 식구들은 잎사귀를 다 떨궈서 누가 누군지 구별하기 어렵다. 층층나무, 단풍나무, 함박꽃나무도 가지만 앙상하다. 소나무들만 산허리를 푸르게 두르고 있다. 지난 봄에 산길 귀퉁이 곳곳에서 피어나던 봄맞이꽃, 양지꽃, 노랑제비꽃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풀 숲 사이에서 수줍게 웃음짓던 족도리꽃들도 그리워진다.

오늘도 어김없이 산길에는 나이 지긋한 부부들이 자주 눈에 띈다. 나이 든 부부들을 만나면 복스러워 보인다. 세상일 접고 함께 주름진 세월을 이야기하며 등산하는 모습이 얼마나 정겹고 따뜻한가. 젊은 부부들도 앞으로 지나간다. 함께 온 아이들이 깡총댄다. 산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생기가 돌고 믿음직스럽다. 마치 곧게 자라는 푸르른 아기나무 같다. 사랑스런 아이들아, 산처럼 푸르게 자라거라.

어느덧 백운대 정상에 올랐다. 아내가 떠오른다. 지금쯤 아내는 교회에 가 있을 게다. 아침에 나올 때 함께 교회에 가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래도 자기 뜻을 말하지 않고 산에 갈 준비하는 나를 지켜본 사람! 아내는 세상의 평화와 모두의 건강한 삶을 기도하겠지. 나도 산 위에 서서 두 손을 모은다. "세상 사람들이여! 나무, 풀, 새, 풀벌레, 산짐승, 달빛, 비바람 눈보라 가리지 않고 모두 품에 안은 산처럼 늘 건강하고 행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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