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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시인 노천명의 묘앞에 시비라니

작성자교육자치|작성시간04.01.25|조회수65 목록 댓글 0
친일 시인 노천명의 묘앞에 시비라니
겨레 위해 몸바친 민족선열의 영령이 두렵지 않은가

최창의 / 고양신문 1월호에 실림

예수 탄생의 기쁨이 충만한 세밑 성탄절에 경기지역 지방신문에는 「사슴」의 주인공 노천명시인의 묘가 고양 벽제동에서 발견된 일이 마치 지역의 대단한 경사인냥 보도되었다. 이 묘를 찾아낸 이는 고양시 향토사 전문위원이고, 소식을 들은 고양시장은 노천명 시인의 묘에 시비를 비롯하여 안내문, 설명판까지 설치할 계획을 밝혔다고 한다.

노천명 시인이 어떤 사람인가?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되는 그의 대표작 '사슴'처럼 그저 가냘프고 고고한 여류 시인인가? 물론 그의 일부 시에서는 고독, 슬픔의 감정 표현을 통해 자신을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이거나 농촌 생활의 정경을 그려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켜 독자들의 호감을 사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일본제국주의 가 한반도를 식민통치하던 시기에 시를 팔아 일제 침략을 찬양한 과오까지 덮기에는 그 해악의 정도가 크고 깊다.

노천명은 1940년대 일제 침략전쟁을 옹호하고 징병, 징용은 물론 일본어 상용 운동에 앞장섰던 친일잡지 『조광』에 시 「기원」을 통해 '신사의 이른 아침에 일본의 전 아세아의 무운을 경건히 손 모으며 기원하는 여인'이었다. 또 『매일신보』에는 「싱가폴 함락」이라는 시를 써서 '거리거리에 일장깃발이 물결을 친다. 아세아민족의 큰 잔칫날, 싱가폴을 떨어뜨린 이 감격'을 노래하며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땅에 일장기가 나부끼고 있는 한 너희는 평화스러우리 영원히 자유스러우리'라 찬양하였다.

더구나 일제가 우리 조선청년들을 징용에 불러들이고, 꽃다운 조선처녀들을 정신대로 내몰며 침략전쟁에 미쳐 날뛰던 시기에 시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에서 '남아면 군복에 총을 메고 나라 위해 전장에 나감이 소원이리니'를 외치고 「부인 근로대」에서 '나라를 생각하는 누나와 어머니의 아름다운 정성은 오늘도 산만한 군복 위에 꽃으로 피어있네'라 칭송하였다. 일제시대의 조류에 아첨하고 영합하던 그는 해방 이후에는 매국노로 낙인찍혔지만 6.25전쟁 즈음에는 문학가동맹에 가담한 죄로 부역 혐의를 받아 한때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뒤에는 반공, 애국시를 쓰는 등 변신을 거듭하였다.

문학을 팔아 이처럼 겨레의 역사와 정신을 멍들게 하고 지조없이 친일에 나섰던 시인이 그나마 고양동 벽제관길 외진 곳에 묘자리라도 잡아 소리없이 잠들었던 게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뒤늦게 찾아낸 것이 대단한 업적인냥 지역사회에 퍼뜨리는 불분명한 역사인식도 이해하기 어렵거니와 즉흥적으로 시비를 세우고 안내판까지 설치하겠다는 발표를 듣자니 실망스러움에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고, 곧은 기상을 세워야 할 위치에서 어찌 그리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는가? 일제의 간악한 탄압과 회유에 맞서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겨레의 독립 해방을 위해 싸웠던 민족선열과 독립운동가의 영령 앞에 부끄럽지도 않은가?

올바른 역사를 간직하고 싶은 고양시민이라면 누구나 친일 시인의 시비나 안내판이 고양 땅에 버젓이 세워지는 걸 그대로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난 1990년 11월 통영의 남망산 공원에 극작가 유치진의 흉상이 세워지자 통영 시민들이 유치진의 과거 친일 행적을 밝히고 '유치진 흉상 철거 대책위원회'까지 구성하여 흉상을 철거한 일을 기억한다. 1996년에는 충북의 시민사회단체가 친일 행위를 한 '정춘수'의 동상에 밧줄을 걸어 철거한 일도 있었다. 후손들에게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고 역사의 올바른 교훈을 심어주려는 시민들의 이같은 눈물겨운 실천운동이 고양시에서도 되풀이되길 바라는가?

노천명 시인이 고양시 한 귀퉁이 땅이라도 빌어 영혼을 쉬고 있다면 그만이다. 자꾸 알리려 들지 말고 지금 그대로 두어라. 그가 죽어서라도 후세에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말이다. 이미 무덤가에는 그의 심정을 나타내듯 '눈물어린 얼굴을 돌이키고 나는 이곳을 떠나련다'는 「고별」이라는 시비도 서 있다지 않은가? 이러한 충심어린 고언을 마다하고 고양시가 끝내 시인을 기리겠다면 '친일 시'를 새기고 '역사의 교훈장'으로 삼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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