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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서 배우고 실천하는 권정생 선생님 동화

작성자교육자치|작성시간04.07.27|조회수40 목록 댓글 0
삶 속에서 배우고 실천하는 권정생 선생님 동화

최창의(2001년도, 녹색평론)

나는 권정생 선생님 얼굴을 직접 뵌 적은 없다. 다만 책 같은 데서 사진으로 보고 선생님이 쓴 동화나 시, 수상들에서 삶을 만나고 생각을 알 뿐이다. 권정생 선생님을 직접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이 들다가도 그 아픈 몸을 이끌고 좋은 글을 쓰고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 주고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 일인가 생각하면서 얼른 욕심을 접는다.

내가 권정생 선생님이라는 이름 석 자보다 먼저 만난 것은 《몽실 언니》라는 동화 이름이다. 80년대 초반에 부정기 문학 잡지를 가끔 사 보았는데 내용 가운데 인민군 아버지나 인민군 소년 병사를 적대 관계로만 보지 않고 인간으로 만난다는 몽실 언니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동화 문학에서 보기 드문 통일 이야기로 소개한 걸 보고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그 때는 내가 교직에 처음 나온 햇병아리 시절로 으레 동화라면 현실을 떠난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알고 있던 터라 눈이 번쩍 뜨였던 거다. 그 책 소개를 보고 우리 어린이 문학계에도 이런 이야기를 용기 있게 쓰는 분이 있구나 생각하면서 ≪몽실 언니≫를 한 번 읽어 보았으면 생각했다. 하지만 출판사도 제대로 몰랐고 시골이라 서점에 ≪몽실 언니≫ 같은 책은 꽂혀 있지 않았다. 책을 사러 서울에 나간다는 생각은 전혀 해 보지 못했던 시골뜨기 교사라 그저 마음에만 책 이름을 간직한 채 시간이 흘렀다.

85년 들어서 학교를 서울 가까운 고양 지역으로 옮겨 YMCA초등교육자회와 글쓰기연구회 경기 지역 모임에 나가면서부터 비로소 ≪몽실 언니≫를 사 읽게 되고 권정생 선생님의 다른 동화책들도 만나게 되었다. ≪몽실 언니≫를 처음 읽던 날 그 긴박감이나 새로운 세계에 눈 뜨는 기쁨이 너무 커서 한 번 멈추지 않고 단숨에 읽은 기억이 새롭다. 몽실이가 새아버지를 만나 다리가 부러질 때 이야기는 내 일처럼 가슴이 저려 왔다. 몽실이는 우리 겨레가 겪은 전쟁의 아픔과 고난을 자신의 몸으로 잔잔하게 때로는 아릿하게 들려 주고 마음을 적셨다. 그 뒤로 ≪몽실 언니≫를 가까운 선후배나 학부모들에게 권해 주거나 사 주는 일이 잦아졌고, 책을 읽고 난 뒤 감동을 많이 받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권정생 선생님의 다른 동화책들도 젊은 날의 교사였던 나를 많이 일깨우고,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도 귀한 양식이 되었지만, ≪하느님의 눈물≫이라는 유년 동화책은 참 즐겨 읽고 아이들에게도 많이 들려 준 책이다. 지금은 그 책의 동화 가운데 <산버들나무 밑 가재 형제> 같은 잔잔하고 아기자기한 동화들에 더 마음이 가지만 10여 년 전인 그 때는 <다람쥐 동산>이나 아이들이 이해하기는 좀 어렵지만 <가엾은 나무> 같은 우리 겨레의 분단 문제를 은유로 그린 동화들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다람쥐 동산>과 얽힌 이야기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 때가 86년쯤인데 전두환 독재정권이 기승을 부리고 민주를 외치는 국민들의 목을 조르던 숨막히는 시기였다. 전두환 정권은 국민들의 저항을 잠재우고 정권 안정을 위해 북한의 금강산댐 수몰 위협을 들이대면서, 초등학생들까지 머리띠를 두르고 운동장에 모여 남침 위협을 규탄하는 50년대식 반공 궐기 대회를 가지도록 했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도 그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숨쉬기도 편치 않았을 때인데 교육 운동을 시작하면서 우리 교육의 모순을 알아 가고 참된 교육자의 길을 갈망하던 때라 교육을 정치 권력의 안정을 위해 이용하는 이런 행태들이 못마땅하기 그지없어 분통이 터졌다. 이런 판이라 학교에서는 그전까지 희미해졌던 6·25 기념 반공 웅변 대회도 다시 생겨나고 각 교실에서 북한을 규탄하는 웅변 목소리도 한껏 높고 잔인했다. 그 웅변 대회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생각이나 정부 시책을 앵무새처럼 내뱉게 하는 것이라 내내 웅변 원고를 내놓지 않고 있었는데 반별로 의무로 하는 행사라 마음이 편치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초리도 꽤 따가웠다.

어찌할까 오래 망설이다 그래도 이왕 하려면 케케묵은 반공 논리만 내세울 게 아니라 미래의 아이들이 지향해야 할 통일 이야기로 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권정생 선생님 동화인 <다람쥐 나라>를 이용하기로 했다. <다람쥐 나라>라면 우리 반 아이들이나 다른 아이들이 남북을 한겨레로 받아들이기에 좋고 통일 문제를 생각해 보기에도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동화의 내용을 이야기처럼 자연스레 들려 주고 뒷부분에 아이의 생각과 의견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원고를 구성했다. 웅변 대회가 열리던 날 동료 교사들도 아이들도 생전 처음 웅변 아닌 이야기를 듣는지라 조금은 낯선 눈치였다.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눈을 반짝이며 들으려고 애쓰고 좋아했지만 교장 선생님은 씁쓰레한 인상을 지었고, 그 뒤 직원회의 시간에 무너지는 반공 정신을 힘주어 말하면서 낭만적인 통일 운동을 비꼬았다. 지금 생각하면 별일 아닌 듯 싶지만 그 때는 참 용기가 필요했던 일 같다.

권정생 선생님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찌 살아가는가를 잘 들려 준 책이 수상집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이다. 책 제목처럼 권 선생님이 우리 겨레의 삶과 개인의 불행이 뒤엉켜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여러 병에 시달리면서도 눈물겹게 살아오신 것이 마음 아팠다. 하지만 이런 분이 계속 우리 곁에서 혼을 흔들고 마음을 따스하게 해 주니 무엇보다 위안이 되기도 했다.

선생님이 이처럼 가난하고 슬픈 일이 뒤엉키고 병이 평생을 따라다녀도 삶을 끈질기게 이어 오신 것은 그것들을 미워하고 악착같이 떼어 놓으려고 하지 않는 삶의 태도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가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랑하기에 방 안으로 개구리가 뛰어들어오고 새앙쥐가 겨드랑이 밑에 들어와 꿈틀거려도 함께 사는 동무려니 하는 모양이다. 선생님은 여름밤에 우는 풀벌레도 동무로 삼지만 방구석의 바퀴벌레나 몸에 자라는 결핵균까지 보듬어 살고 있다. 그런 삶의 자세가 그대로 동화에 엮어지고 시로 수놓아져 우리의 거짓되고 욕심 많은 삶을 되돌아보게 해 준다. 그래서 권 선생님 동화에 나오는 길가에 버려진 돌멩이가, 흙덩이가, 냄새 나는 개똥이 새로 생명을 얻고 쓸모 있게 싹터 삭막해지는 우리 아이들과 어른들의 마음에 활짝 피어나는 것이다.

권 선생님이 살아온 이야기 가운데 교회당 옆에 대추나무가 새마을 사업으로 잘려 나갈 때 그 나무를 붙들고 밤새 울었다는 대목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저 마을길 포장을 하는 데 거추장스런 장애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선생님은 그 대추나무를 시골 한 구석에서 모질게 살아온 목숨으로 보았고 그래서 자기 자신의 목숨이라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는 선생님의 종교관과 우리 주변에 어렵게 살아가는 민중들의 애환을 한눈에 보여 주는 동화다.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이나 예수는 천국 한가운데나 교회당 십자가 위에 앉아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심판하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 그저 우리가 목놓아 하는 기도나 들으면서 은혜나 내려 주는 존재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느님은 진작 우리 곁으로 내려왔어야 하고 누군가 하느님을 땅 위로 내려오게 해야 했다. 그 일을 선생님은 이 책에서 해냈다. 아이들에게 하느님을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 아저씨로, 예수를 떠꺼머리 총각으로 데려왔다.

권 선생님은 늘 하느님과 예수님이 우리 곁에 함께 있으면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땅의 많은 사람들과 아이들이 하느님을 멀리 떨어뜨려 놓고 오직 죽어서만 만나는 신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하느님을 80년대 이 땅에 그것도 우리 한반도에 내려오게 한 것은 큰 축복이고 가슴 떨리는 기쁨이다. 그 하느님이 노동자 농민 철거민을 만나고, 산동네 달동네를 찾아다니면서 사람들과 똑같이 슬퍼하고 실수도 저지르고 때로는 불의와 맞서 싸우면서 자칫 종교 이야기로 떨어지기 쉬운 이야기를 살아 있는 현실 이야기로 붙잡아 주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요즈음 읽고 있는 ≪우리들의 하느님≫을 떠올린다. 이 책은 재생 종이로 만들어서 그런지 더 정이 가고 편한 느낌이 든다. 이 책은 무더운 여름날 밤이나 일요일 한낮에 짬을 내어 조금씩 아껴 가면서 읽는다. 지금까지 읽은 것은 교회 집사이기도 한 선생님이 바라보는 요즘 우리 나라 기독교의 모습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적은 대목이다. 참으로 이 땅의 교회가 하느님의 사명을 다 하고 세상을 구하려면 겉모습만 커나가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웃과 함께 살면서 함께 가난을 나누는 기독교가 되지 않고서는 그 교회 건물이 사람들의 집터를 뺏고 헌금이 가난한 사람의 밥을 빼앗는 꼴이 아닌가 싶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교회에 오가면서 마음에 되새긴다. 나머지 이야기도 천천히 읽으려고 한다. 내용이 좋다고 후다닥 읽기만 하면 삶에서 실천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아껴 먹던 영양제처럼 조금씩 읽으면서 내 삶을 기름지게 가꾸고 싶다.

권정생 선생님은 내가 살아가는 길에서 가난하게 살라고, 살아 있는 목숨을 함부로 여기지 말라고, 통일을 위해 나서라고 늘 말해 준다. 그렇게 살아가는 길에서 권정생 선생님이 자신의 동화에 나오는 개똥 속에 피어난 민들레처럼 살고 계시기에 힘을 내고 거듭거듭 진실을 배운다.

(최창의 선생님은 한국 글쓰기연구회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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