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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수상 창고

슈타이너 학교를 다녀와서

작성자최창의|작성시간03.01.06|조회수46 목록 댓글 0
슈타이너 학교를 다녀와서

10년 만에 학교에 복직하고 나니 참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아니 무엇부터 어찌 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그 동안 학교 밖에서 벌여 놓았던 일도 머리 속이 말끔하게 정리가 안 된다데가 막상 학교라는 곳에 다시 들어와 보니 돌아가는 모습은 예전 그대로가 많다. 50여명 가까운 아이들이 빼곡이 들어 찬 교실, 여전히 겨울이면 난로 하나 제대로 피우지 않아 썰렁한 기운, 일방 통행적인 교직원 지시 회의, 쉴 사이 없이 빼야 하는 교과 진도.......
그런데도 나는 부족한 것이 많은 듯 싶었다. 예전 같지 않게 아이들과 재미난 율동조차 제대로 할 수 없고 우리 교육이 어디서 무엇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게 교육뷰에서 일방으로 몰아부치는 교육 개혁조치에 끌려 다녀야 하고, 교사들도 넋나간 듯 바쁘게는 돌아가는데 정작 아이들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지
무엇인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교육을 제대로 몰라서 못하나 열정과 사랑이 부족해서 탈이지 하는 생각도 들고 우리 나라에서는 좀 좋은 교육 실천 방법이 많나. 당장 이호철선생이나 주변의 몇몇 훌륭한 선생님들의 교육 실천 사례를 익히 알고 들으면서도 제대로 교실에서 끌여들여 실천도 못하는 주제에 허황되게 외국이라니, 돈도 많은 모양이지 하는 비양거림이 들리는 듯 싶었다.
교장선생님이 아이엠에프 시대를 맞아 해외 여행을 억제한다며 몇 차례의 직원 회의에서 강조한 일도 있고 우리 학교의 여선생 두 분은 교장의 불허로 해외로 나갈 계획이 취소되는 바람에 많은 고나심과 기안까지 올려가며 스위스 슈타이너 하교 연수를 가기에 이르렀다. 떠난는 일정을 며칠 앞두고 아내가 자신과 동행하지 않는 것을 꽤 삐딱하게 생각하고 자기도 내년에는 혼자 유럽으로 떠나겠다는 둥 약발을 올리기도 했지만 당일 떠나는 날 마중까지 나온다는 바람에 좀 코가 시큰했다. 조용히 소리없이 다녀오려고 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리저리 알려지게 되고
1월 9일 옷보따리, 쌀,반찬 보따리가 참 부담스러웠다. 신혼 가방 비슷한 곳에 가득 하나를 끌로 아내는 반찬 가방을 들고 공항으로 나갔다. 태어나 처음 나가는 해외 여행인지라 좀 들뜰 법도 한데 두고 떠나는 마음자리가 무거워서인지 담담하고 그랬다.
돈도 4십만원 정도 스위스 프랑으로 바꾸고 출국 수속을 밟은 뒤 에어프랑스 항공기에 올랐다. 이제부터 부담 시작이었다. 비행기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서서히 김포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 속에는 우리 일헹 15명과 우리 교육의 유럽 여행을 떠나는 교사들이 함께 있어 그리 어색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내가 아는 상식과 대한항공 승무원들을 텔리비전으로 보았을 때 아리땁고 늘씬한 여승무원들로만 굳어있던 생각이 깨졌다. 에어프랑스 승무원의 반수 정도가 넘는 수가 남자 승무원들이었다. 그것도 흑인이 두명 끼어 있었다. 그 흑인 승무원 가운데 한 사람은 늘 입 양 옆을 쭉 올려 엷은 웃음을 짓고 다니는데 좋아 보였다. 승무원하면 몸매 늘씬한 여자, 그것도 금발에 뽀얀 얼굴로 생각하는 고정 관념을 사라지게 하고 흑백인이 섞여 운영되는 모습에 프랑스인이들이 좋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
비행기 안의 항공기 항로 진행 과정을 모니터로 보다가 창 밖으로 구름을 보다가 하고 있으려니 이제 승무원들이 수레를 끌고 음료를 승객들에게 따라 주고 다닌다. 내 가까이 오기 전에 무엇을 어찌 달라고 해야 할지, 그것도 영어로 해야 하니 걱정도 되고 다른 사람들이 어찌 하나 눈치를 보았다. 가까스로 눈치를 보아가며 점심을 불고기로 먹고 애플쥬스에 와인까지 한 병 받아 마셨다. 다행이 옆에 함께 가는 또 하나의 남자인 양원모선생이 있어 도움이 되었다. 저녁을 닭고기로 먹을 때까지 승무원이 서너번 오갔지만 내가 오직 한마디 뱉은 건 애플쥬스 한 단어였고 나머지는 양선생님이 도맡아 했다.
중간 중간에 비행기 속에서 양선생님과 대안학교며 민족의 문제, 사상, 교육 , 종교 이야기로 세상 이야기를 두루 훑다 보니 짧은 내 지식이 금방 드러나 허탈해졌다. 중간에 지루함을 달래 보느라 기내 끝에 있는 흡연지역에서 담배로 몇 대 피었다. 그러다 여승무원 한 사람이 승객들 틈바구니에서 품어대는 담배 연기를 보면서 여기가 외국 땅임이 새삼 느껴졌다. 음식 수레를 끄는 한 40대쯤 되어 보이는 머리가 약간 위로 벗겨진 남자 승무원은 아까부터 우리 한국 아기에게 눈을 밪추며 몇 번이고 웃음을 지어 보이곤 했다.
비행기가 열다섯 시간 정도를 달려 스위스의 바젤 공항에는 밤이 되어서야 내렸다. 바젤 공항은 겨울 바람이 쌀쌀했다. 한국을 떠나와서인지 바람이 을씨년스럽고 몸이 낯선 곳에 내던져진 느낌도 들었다. 스위스 입국 수속을 밟고 막 짐을 찾아 나오려는데 익숙한 한국말을 쓰는 자그만 체구의 남자가 마중을 나온다. 우리를 14박 15일 동안 안내해 줄 변종인선생님이다. 멎저 인사를 드리니 이름을 알고 있다는 듯 반갑게 손을 잡아 맞는다. 변선생님이 대절해 온 버스를 타고 우리 일행은 이제 스위스의 밤을 뚫고 나라 안으로 깊숙히 들어와 목적지인 도르낙에 닿아 첫날 밤을 침대 속에 묻었다. 스위스에서 맞는 첫날 밤이다.
일요일 아침! 낯선 땅이라서 그런지 한국에서보다 일찍 5시경에 눈이 띄었다. 오늘은 슈타이너 학교를 방문하는 날이다. 아침을 빵으로 간단히 먹고 도르낙에서 전차를 탔다. 이 곳은 길 위로 철로가 놓여 우리 옛 서울에서나 볼 법한 전차가 매우 중요한 교통 수단이었다. 시민들이 지하철 건설을 반대해서 그대로 전차가 다닌다고 하는데 그리 큰 문제가 없는 듯 하고 워낙 자연이 풍부하고 거리가 복잡하지 않아서 첫 눈에도 그다지 부조화스럽지 않았다.
창 밖으로 띄엄띄엄 아름답게 지어진 집들이 지나고 숲과 나무들이 늘 건물들을 감싸고 있었다. 드라이슈비층에 내려 걸어가고 있는데 일요일이라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혀 있고 길거리도 매우 한산하여 부모와 손잡고 걷는 아이들 몇몇이 고작이었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도 건물 벽이나 곳곳에 큰 낙서들이 그려져 있었다. 대부분 숫자를 페인트같은 물감으로 큼직하게 연이어 그려 놓았는데 어떤 것은 작품 같기도 했지만 좀 눈에 거슬리고 어지러운 느낌도 들었다. 변선생님 말로는 이 곳 청소년들도 어른들의 권위에 저항하는 일종의 한 표현 행위라고 한다. 가다가 중간에 횡단 보도를 몇 번 건너는데 인상적인 모습이 있었다. 그리 많지 않은 차들이 도심을 오갔는데 횡단보도 앞에서 우리 일행이 보이면 절대로 그냥 길을 질러가지 않고 횡단보도 앞에서 정중하게 멈춰 주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횡단보도에서 사람이 멈칫거리면서 차를 먼저 보내고 그때서야 마음놓고 길을 건너는 모습과 대조적인 것 같아 기분이 좋으면서도 씁쓰레졌다. 또 일부 횡단보도 구간에서는 신호 등을 빨리 건너고 싶으면 건너는 길목에 섰는 기둥의 버튼을 세게 두어번 누르면 조금 빨리 녹색들이 커지는 걸 보고 신기하였다. 결국 이 나라는 걷는 사람 중심으로 교통이 운영됨을 알 수 있었다.
15분 남짓 길을 건너 바젤 슈타이너 학교에 도착하였다. 학교 입구 계단에서 그 곳에 근무하는 남자 선생님 한 분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은색머리에 배가 약간 둥실하게 나온 40대 중반(나중에 알아보니 60대초반)으로 보이는 선생이었는데 부드러운 웃음이 곧 친근감을 주었다. 헤어카이젛라는 선생님인데 우리를 학교에 안내하는 동안 줄곧 부드러운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너무 열심히 자신감있게 학교 곳곳을 내 보이셨다.
우리는 먼저 학교 강당으로 안내되어 그 곳에 앉아 슈타이너 학교에 대한 기본적인 안내를 들었다. 슈타이너 하교는 8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데 이 곳 바젤학교는 1926년 설립되어 약 73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세계 여러 나라에 걸쳐 유치원, 학교가 1000개 운영되고 있다.
[슈타이너 학교의 기본 이념은 머리만 발달시키지 말자]는 것이라고 한다.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교육으로 자신의 의지를 갖게 하고 몸과 영혼을 조화롭게 발달시켜 정신을 높은 경지로 이끄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슈타이너 학교에서 교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막중하다.] 보통 1학년부터 8학년까지 8년 동안 한 교사가 줄곧 아이들을 맡아 가르치기 때문에 아이들과 만남을 단순한 가르침의 대상이나 우연한 만남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운명의 사슬에 얽힌 공동운명체로 여긴다는 말에 숭고한 느낌까지 들었다.
따라서 교사들의 자율성이 - 교과서 없음, 관리자 없음, 활발한 토의를 음악실에서 매주 한 차례 5시간 정도
교사 선발 과정도 매우 신중하다. 교사 채용 신문 광고가 나가 접수를 하게 되면 교사 대표가 만나 이야기를 먼저 나눈 뒤 전체 교직원 회의에서 청문 절차를 거친 뒤 다시 일주일간의 시간을 가지고 토론한 뒤 만장일치의 의견으로 채용을 결정한다. 교사공동체가 곧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이다. 학교의 재정은 학부모들의 출연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선생님의 표현으로는 공립학교 교사의 반 정도의 급여, 먹고 죽지 않을만큼 급여를 받는다고 한다. 학부모들도 아이들을 맡겨놓고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소풍을 갈 때나 수공예 시간에 교사들을 보조하거나 크리스마스기념 바자회나 여름 축제 따위를 열어 음식 따위를 판 이익금을 학교에 내놓는다.
선생님은 여러 몸짓을 섞어가며 학교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행동을 보기를 들어 말할 때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설명을 하고 잇는 강당은 꽤 널찍하였는데 둥그스런 모습이 부드러운 느낌을 주었으며 사방으로 시원한 유리가 하늘과 나무들의 가지를 안으로 쏙 안아들였다. 강당에서는 해마다 신입생 입학식과 졸업식이 진행되는데 신입생들은 하나하나 악수를 하며 꽃 한 송이를 받아들며 입장하는데 겁이 나서 우는 아이도 있다며 웃었다. 학교를 떠나는 날에는 학교가 떠나가게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 많은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리게 된다고 한다. 또 한 달에 한 번 정도씩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학습 발표회를 갖고 한 학기에 한뻔씩은 전 학부모들에게 공부한 내용을 추려 발표하게 하여 학교 교육을 바로 이해하도록 한다고 한다.
8학년 때는 1년 동안 연극을 준비해 발표하고 12학년의 졸업 과제도 보통 학교처럼 순위를 매기는 졸업 시험 대신 목공예나 금속 공예, 춤이나 연극을 연구한다든가 따위를 스스로 과제를 선택하여 여유있는 시간에 1년 동안 과제를 해결하여 외부 인사와 학부모 앞에서 발표를 하게 한다.
강당에서 줄곧 웃음기 가득 머금은 얼굴로 자신감있으면서도 친절하게 이야기를 들려 주던 선생님은 이제 학교를 돌아보자고 한다. 그러면서 잠깐 둘러보는 교실이야말로 마치 눈 위를 걸어간 발자국에 지나지 않을 거라며 아주 피상적인 모습만 보게 될 것임을 암시했다.
교실을 둘러 보면서 크게 눈에 들어온 건 무엇보다 화장실 바닥처럼 꼭 필요한 곳이 아니면 콘크리트나 쇠를 사용하지 않고 모든 건축물이 나무로 되어 부드럽고 자연미가 살아있다는 점이었고 복도에는 별다른 치장이나 게시물이 없이 그저 나뭇결이 드러난 나무 벽면이 전부였다.
먼저 논라운 곳은 목공예실이었다. 교실 한 칸에 목재를 다루는 톱, 끌, 망치 따위의 연모들이 칸칸이 들어 차 있고 곳곳에는 이 곳 학생들이 만들어 놓은 나무 물건들이 선반 위에 놓여 있거나 걸려 있었다. 함께 다니던 선생님 한 분이 그 곳에 놓인 풍차를 돌리며 아이처럼 웃는 모습이 천진해 보였다. 목공예실에서 이 학교의 목공예는 의자 하나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 과정이 중요하다며 쿠엇을 깎고 파다가 칼질을 잘못 하면 물건이 망가지듯 우리 인생도 그렇다며 웃는다. 그 밖에도 금속공예실, 조소실을 지나 1,2학년 교실로 옮겨 가면서 아이들이 언제든지 무엇을 만들고 실습할 수 있는 이런 특별실을 가진 아이들이 부럽기 그지 없었다.
교실을 둘러 보면서 인상깊었던 것은 교사들의 소박한 책상이었다. 초라하고 소박한 자그마한 책상에 책상포 하나만 덜렁 씌어져 있어 초록 부직포에 유리판이 깔린 책상에 교과서가 가득 꽃힌 우리 나라 교실과는 색다른 모습이었다. 교실마다 산이나 길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나무나 풀들이 자란 그대로 자라고 있었는데 쓰다버린 빈 통으로 만든 화분에 몇 그루씩 푸른 빛을 띄고 있고 창밖으로 가득한 나무들과 자연스레 어울리었다. 교실에는 모두 수도 시설이 되어 있어 미술 시간 같은 물을 쓰고 그림 도구를 씻는데 편리할 듯 싶었다. 교실 뒷 판에 아이들 그림들이 나란히 붙어있고 몇 가지 시사물이나 예절 교육 자료를 붙힌 우리의 획일적인 교실 환경물과는 달리 교실마다 그 달에 진행되는 에포그 수업에 따라 특색있는 그림이나 환경물이 걸려 있었는데 어느 교실에는 공사장 이야기를 담은 내용, 이를테면 공사장에서 볼 수 있는 직업 미장이, 목수 이야기, 그 곳에서 필요한 물건이 끌, 톱, 망치, 돌과 못, 석회 따위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4학년 교실에는 그 달에 이루어지는 고대 게르만족에 관한 에포그 수업에 따라 나무를 천장에 매달아 두었는데 나무에 새겨있는 시를 읖ㄹ으며 나무를 쥐고 흔든다고 하는데 카이저 선생이 약간 붉으레한 얼굴 빛을 띄며 발을 구르면서 시범을 보여 주기도 했다.
음악실에 들어서자 하늘을 향해 뚫린 시원스런 창문과 부드러운 건축 양식이 어우러져 참 아름답고 우아해 보였다. 체육관에느  링 체조를 할 수 있는 시설과 농구대 4개가 마주보고 서 있엇다. 직조실에는 물레가 크고 작은 물레가 7대 놓여 있고 화학실, 물리실, 오이리트미실, 책 제본실, 미술실이 군데 군데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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