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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수상 창고

Re:한 그루 나무를 심으며

작성자최창의|작성시간03.01.06|조회수17 목록 댓글 0
학교에 한 그루 나무를 심고
최창의(고양 성신초등학교 교사)

아침에 학교에 오면 교실로 가기 전에 학교 뒤뜰에 섰는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본다. 얼마 전 내가 심은 감나무이다. 갓 심겨진 나무지만 잎사귀가 제법 파릇파릇 피어나고 있다. 마치 아기를 키우는 것처럼 하루하루 보는 기분이 다르다. 아, 저 나무가 잎이 나고 가지가 팔뚝처럼 굵어져 아기 뺨처럼 붉은 감이 열릴 것을 떠올리면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나는 오래 전부터 학교에 나무를 심고 싶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어처구니없게도 학교에서 나와있던 해직 기간에 찾아 들었다. 내가 떠나 온 학교들을 떠올릴 때마다 몸만 쏙 빠져 나왔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내 몸은 비록 학교를 떠났어도 한 그루 나무라도 심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나무가 아이들에게 그림이 되고 시가 되고, 여름날 땀을 식히는 그늘로 남아 있을 텐데...... 그래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꼭 나무를 심어야지 별렀는데 지난해에는 어쩌다 시간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올해는 다행스럽게 학부모단체에서 학교에 나무를 몇 그루 기증하는 틈을 타 나도 나무 한 그루를 사게 되었다.
나무 심는 날은 마음이 들뜨기도 했지만 조심스러움이 더 컸다. 우리 아이가 2학년 때 아이 학교 운동장 끝에 벚나무를 한 그루 심고 4년만에 처음 심는 나무다. 나무를 세워 놓고 고운 흙을 덮어 줄 때는 기도하는 기분이었다. 잘 자라라, 나무야! 나무를 다 심고 하늘을 보니 참 푸르다. 다시 돌이켜 보니 내가 나무를 심은 게 아니고 나를 학교에 심은 것 같다. 아이들 속에 뿌리를 내리려고 하는 교사의 마음을 심은 것이다.
돌아보면 새로 생긴 우리와 같은 학교에는 참 자연이 없다. 나무라면 아파트 단지만도 못하다. 아파트 단지에는 그래도 제법 가지가 쩍쩍 벌어진 나무들이 가득 차 있고 철따라 꽃도 피워낸다. 그런데 사람을 기르는 학교가 어찌 차들이 줄달음치는 길거리만큼도 나무가 없다. 또 터무니없이 적은 조경 예산 탓에 마치 나무가 아니라 대꼬창이를 세워 놓은 것처럼 앙상하다.
어릴 적 내가 다닌 시골 학교에는 나무가 참 많았다. 봄이면 온통 하얗게 눈꽃처럼 뒤덮인 벚나무 아래서 여자 애들은 고무줄 뛰기, 사내아이들은 오징어 놀이를 했다. 그러다 봄바람이 불어대면 운동장은 벚꽃으로 꽃마당이 되었지. 운동장가의 큰 느티나무나 미루나무 꼭대기에는 많은 새들이 찾아들어 고운 소리로 올었다. 5학년 때는 학교 나무 위에 지은 때까치 집에서 알을 꺼내려고 동네형과 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떨어질 뻔했던 기억도 있다. 운동장에서 체육을 하거나 운동회를 할 때면 그 큰 나무가 더없이 좋은 그늘을 드리워 주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학교의 그 나무들이 우리를 푸르게, 넉넉하게 길러 준 또다른 스승이 아니었나 싶다. 한 시인은 하느님이 지은 자연 가운데 우리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것이 나무라고 했던가? 참나무는 튼튼한 어른들과 같고 앵두나무의 키와 그 빨간 뺨은 소년들과 같다. 우리가 위로 위로 머리를 두르는 것도 나무처럼 푸른 하늘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했지.
아이들은 나무를 보고 이렇게 시를 쓴다.
밤 9시쯤/벚꽃이 피어 있다./벚꽃이 밤을 비춰 주었다./달밤에 분홍색으로 빛난다./나는 화장실 갈 때도/하나도 무섭지 않겠다.(4학년,여)
내가 심은 감나무가 아이들에게 이런 시 한 편으로 살아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내년에도 또 한 그루 나무를 심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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