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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수상 창고

한 그루 나무를 심으며

작성자최창의|작성시간03.01.06|조회수12 목록 댓글 0
한 그루 나무를 심으며
최창의

오늘도 학교 가는 길의 봄은 상큼하기 그지없다. 산 속에 서로 살 부비며 자라는 나무들이 연초록으로 눈부시다. 화정동의 아파트 숲 끝의 배 밭에는 배꽃이 하얗게 무리지어 피어 햇살에 빛난다.
어느 새 학교에 도착했다. 교실로 가기 전에 숨을 크게 한 번 들이키면서 학교 뒷뜰에 섰는 나무를 한 번 바라보았다. 며칠 전 내가 심은 감나무이다. 내 손으로 구덩이를 파고 내 돈으로 사서 심은 나무이다. 아직은 갓 심겨져 잎사귀도 없고 나무 토막 같다. 그래도 참 사랑스럽기 그지 없어 가까이 가서 손으로 한 번 어루만지고 눈을 맞춰 본다. 마치 아기를 키우는 것처럼 하루 하루 보는 기분이 다르다. 아, 저 나무가 잎이 나고 가지가 팔뚝처럼 굵어져 내년이면 아기뺨처럼 붉은 감이 열릴 것을 떠올리면 그저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나는 오래 전부터 학교에 나무를 심고 싶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어처구니없게도 학교를 떠나있던 해직 기간 동안에 찾아 들었다. 내가 떠나 온 학교들을 떠올릴 때마다 몸만 쏙 빠져 나왔구나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말이다.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 들렀을 때도 가르치던 아이들 대신 나를 맞아 줄 한 그루 나무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복직을 한 뒤에는 꼭 나무를 심어야지 별렀는데 지난해에는 어쩌다 시간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올해는 다행스럽게 학부모단체에서 학교에 나무를 몇 그루 기증하는 틈을 타서 나도 나무 한 그루를 사게 되었다.
나무 심는 날은 참 마음이 방방 떴다. 우리 아이가 2학년 때 아이 학교 운동장 끝에 벚나무를 한 그루 심고 나서 4년만에 파 보는 나무 구덩이였다. 삽으로 땅을 파면서 연신 땀이 흐르는데도 다리에는 힘이 돋았다. 나무 잔뿌리가 상할 새라 하나 하나 펴서 고운 흙을 잘게 부숴 덮어 줄 때는 기도하는 기분이었다. 잘 자라라 나무야! 나무를 다 심고 하늘을 보니 참 푸르다.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생각하니 내가 나무를 심은 게 아니고 나를 학교에 심은 것 같다.
돌아보면 학교는 참 자연이 없다. 나무라면 아파트 단지만도 못하다. 아파트 단지에는 그래도 여러 나무들이 제법 가득 차 있고 철따라 꽃도 피워낸다. 그런데 사람을 기르는 학교가 어찌 차들 다니는 길거리만큼도 나무가 없는가? 어릴적 내가 다닌 시골 학교에는 나무가 참 많았다. 봄이면 온통 하얗게 눈꽃처럼 뒤덮힌 벚나무 아래서 여자 애들은 고무줄 뛰기, 사내 아이들은 오징어 놀이를 했다. 그러다 봄바람이 불어대면 운동장은 벚꽃으로 꽃마당이 되었지. 운동장가의 큰 느티나무나 미루나무 꼭대기에는 많은 새들이 찾아들어 우리와 함께 놀았다. 5학년 때는 학교 나무 위에 지은 때까치 집에서 알을 꺼내려고 동네 형과 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떨어질 뻔했던 기억도 있다. 운동장에서 체육을 하거나 운동회를 할 때면 그 큰나무가 더없이 좋은 그늘을 드리워 주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학교의 그 나무들이 우리를 푸르게, 넉넉하게 길러 준 또다른 스승이 아니었나 싶다.
나무는 사람을 닮았다고 했던가? 나무처럼 하늘을 지고 커 나가려는 마음이! 그래서 사람이 지은 자연 가운데 우리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것이 나무라고 했던가. 나도 내가 심은 나무처럼 한 그루 나무가 되고 싶다. 한 곳에 그대로 뿌리를 내리고 서서 한 곳을 지키는 나무, 세상 이곳저곳 둘러 보지 않고 곁에 오는 사람 받아 주고 지켜보는 나무, 저 시골 마을에 커다란 느티나무면 더 좋겠다. 땀흘려 일하는 농사꾼의 땀도 식혀 주고 새들이 집을 짓게 가지도 벌려 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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