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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수상 창고

과밀 학급 속의 아이들

작성자최창의|작성시간03.01.06|조회수24 목록 댓글 0
과밀 학급 속의 아이들
최창의(고양 성신초등학교 교사)

올해 나는 체육 전담 교사를 맡았다. 5,6학년 모두 11개반을 가르치고 있는데 일주일 수업 시간이 모두 22시간이다. 하루 보통 네 시간 가량을 운동장에 서서 움직이고 뛰어야 하니 몸이야 훨씬 힘이 든다. 하루 수업을 마치고 나면 허리도 뻐근하고 뒷다리가 땡길 때가 많다. 하지만 나는 요즈음 참 즐겁다. 계절만 봄이 아니라 내 마음도 따사로운 봄날이다.
체육 시간이 되면 너른 운동장에서 흙을 밟으며 아이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 아이들이 큰 소리로 외치고 소리를 질러도 막을 사람이 없다. 망아지처럼 뛰고 달려도 땅 꺼질 일 없다. 따스한 햇살 아래 뛰고 달리는 아이들의 싱싱한 팔다리를 보노라면 뭉클한 감동이 밀려온다. 저 빛나는 아이들이, 자기네끼리 뜀박질만 해도 깨알처럼 웃음이 쏟아지는 아이들이 네모난 교실에 갇혀 얼마나 숨통이 막힐까?
날마다 교실에서 "조용히 해."를 죽어라 외쳐대는 선생들도 한 자리에 많은 수가 모이면 아이들 못지 않게 소란스럽다. 한참 몸과 마음이 자라나는 아이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얼마나 할 말도 많고 움직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하겠는가? 우리는 이런 아이들 50여명을 20평 남짓한 교실에 잡아두고 있다. 그런데 교실 크기나 학급당 학생 수는 예전이나 다를 것 없지만 아이들은 예전 아이들이 아니다. 집안에서 기껏해야 한두 명씩 자유롭게 자라난 비디오 세대의 아이들에게 교실은 비좁고 답답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다.
교실에 들어가 보면 요즘 아이들이 떠들고 장난치는 게 보통이 아니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왁왁대기 시작하면 교실이 터질 것 같을 때도 있다. 공부 시간이라 하여도 자기네들이 재미없다 싶으면 가만히 앉아 있질 않는다. 슬그머니 짝이나 앞뒤 아이들하고 쫑알쫑알대거나 물건을 끄집어내 조몰락조몰락거리고, 끄적끄적 그림이라도 그린다. 쉬는 시간에는 와르르 막았던 봇물이 터지듯 떠들고 뛰고 장난치고 끼리끼리 몰려다닌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떠들기 시작하면 진정시키기가 무척 힘들다. '그만 조용히 해' 같은 되풀이되는 말들은 아예 못 들은 체 해 버리는 때가 많다. 속이 터지다 못해 소리를 버럭 지르게 되고 몇 번씩 머리에 손을 오르내리게 하다 보면 공부할 마음이 싹 가신다. 이제 아이들은 지금의 과밀 학급 구조에서 교사의 일률적인 통제를 몸으로 못 받아들이고 있다. 그만큼 아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이 많이 가야 하고 사랑과 설득이 필요한 셈이다.
교육당국은 과밀 학급 문제가 나오면 늘 예산 타령만 한다. 그러면서도 영어로 가르쳐라, 컴퓨터를 가르쳐라, 열린 교육을 해라, 수준별 교육을 해라 시키는 건 왜 이리 많은지. 투자도 하지 않고 환경도 만들어 놓지 않고서 밀어부치기만 해서 교육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다.
오늘도 교실에서 교사들은 아이들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야, 조용히 해. 앉아. 머리 손." 내 귀에는 지금같은 과밀 학급 속에서 21세기 미래 교육은커녕 사람 교육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교사들의 외마디 비명소리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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