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따라갔다 돌아왔다
문태준
혼(魂)이 오늘은 유빙(遊氷)처럼 떠가네
살차게 뒤척이는 기다란 강을 따라갔다 돌아왔다
이곳에서의 일생(一生)은 강을 따라갔다 돌아오는 일
꿈속 마당에 큰 꽃나무가 붉더니 꽃나무는 사라지고 꿈은 벗어 놓은 흐물흐물한 식은 허물이 되었다
초생(草生)을 보여주더니 마른 풀과 살얼음이 주저앉은 둥근 자리를 보여 주었다
가볍고 상쾌한 유모차가 앞서 가더니 절룩이고 초라한 거지가 뒤따라왔다
새의 햇곡식 같은 아침 노래가 가슴 속에 있더니 텅 빈 곡식 창고 같은 둥지를 내 머리 위에 이게 되었다
여동생을 잃고 차례로 아이를 잃고
그 구체적인 나의 세계의, 슬프고 외롭고 도 애처로운 맨몸에 상복(喪服)을 입혀 주었다
누가 있을까, 강을 따라갔다 돌아서지 않은 이
강을 따라갔다 돌아오지 않은 이
누가 있을까, 눈시울이 벌겋게 익도록 울고만 있는 여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이
누가 있을까, 삶의 흐름이 구부러지고 갈라지는 것을 보지 않은 이
강을 따라갔다 돌아왔다
강을 따라갔다 돌아와 강과 헤어지는 나를 바라보았다
돌담을 둘렀으나 유량과 흐름을 지닌 집으로 돌아왔다
돌담을 둘렀으나 유량과 흐름을 지닌 무덤으로 돌아왔다
-출처 : 시집『먼 곳』(창비, 2012)
-사진 : 다음 이미지
-------------------------------------------------------------------------------------------
변화하는 유체와 인간
-문태준의 시 「강을 따라갔다 돌아왔다」를 읽고
문태준은 시에서 형식의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시인이다. 의미와 음악이 조심스럽게 서로 상대방을 존중하며 공존하는 그의 시에는 불협화음이 거의 없고 과격한 비유가 보이지 않는다. 평범한 한국어도 그의 손이 닿으면 신선한 모국어가 된다. 어떤 시를 고르더라도 모두 교과서에 실어도 좋을 만큼 다듬어져 있다는 것이 문태준 시의 특징이다. 그럼에도 문태준도 의미의 고유성을 찾아 우리가 아직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모험을 할지도 모르겠다. 시집『먼 곳』에서 거둔 시들도 표면의 질서 밑에서 움직이는 심층의 혼돈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감지하게 된다. 혹시 고통의 감각 또는 시련의 인식이라고 할 수 있는 의미의 이러한 혼돈이 증대되는 방향으로 문태준 시의 다음 단계가 전개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을 하게 된다. 우리 시에 심층시학의 방향이 요구되기도 하고 더 바람직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방법만이 좋은 시로 표출되는 것이 아니다.
문태준의 시에는 비극적 세계관이 깔려 있다. 재산이건 권력이건, 지식이건 명성이건, 건강이건 애정이건 무엇을 따라가더라도 우리는 끝내 다 놓친 채 세상에 내던져지고 만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동생을 잃고 아이를 잃고 “눈시울이 벌겋게 익도록 울고만 있는 여인”과 같다.
「강을 따라갔다 돌아왔다」를 읽으면 인간의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붉은 꽃나무와 벗겨진 허물, 갓 돋은 풀과 살얼음에 시든 풀, 가벼운 유모차와 절룩이는 거지, 햇곡식 같은 노래와 텅 빈 곡식 창고 같은 둥지를 겹쳐놓은 이 시는 어떤 의미를 직접 말하지 않고 다른 사물에 빗대어 넌지시 비추는 일종의 알레고리이다. 시의 말미에 반복되는 ‘누가 있을까’와 끝에 나오는 ‘이’를 한 음보로 읽어 보면 좋을 것이다. 인용한 부분은 각각 4음보, 3음보, 4+3음보, 3+4음보로 읽혀지는 것들이다. 구체적으로 읽어보자. “누가 있을까,/눈시울이/벌겋게 익도록/울고만 있는//여인으로/태어나지 않은/이”로 읽고 그 다음 행을 “누가 있을까,/삶의/흐름이//구부러지고/갈라지는 것을/보지 않은/이”라고 읽으면 율격 구성의 질서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시행을 마무리하는 한 음절 한 음보는 이 시가 인간의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울고 있는 여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강을 따라갔다 강과 헤어져 홀로 남은 자신의 모습으로 보는 것이다. 그는 강을 따라 가려고 떠난 집으로 돌아온다. 그의 집은 그의 무덤이 된다. 시인의 눈에는 집과 무덤이 유체로 보인다. 집은 집대로 있지 못하고 무덤도 무덤대로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집과 무덤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만 불변의 고체가 아니라 변화하는 유체이다. 인간은 변화하는 유체와 공존하면서 시공을 뛰어넘는다.
-문학평론가 김인환 님이 쓰고 詩하늘이 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