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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시

[이 한 편의 시][고진하] 거룩한 낭비

작성자가우/박창기|작성시간12.10.05|조회수326 목록 댓글 1

 

 

 

거룩한 낭비

 

고진하

 

 

적설 30cm, 때 아닌

폭설에 갇혀 모처럼 쉬다

 

그렇게 맥 놓고 쉬는데,

또 난분분 난분분 뜨는

창밖의 잔눈송이들 보며

詩情에 드니 모처럼 시다

 

오늘 따라 낭비를 즐기시는 하느님이 맘에 든다

흰 눈썹을 낭비하고,

흰 섬광의 시를 낭비하는 하느님이 맘에 든다

내리는 족족 쌓이는 족족 공손히 받아 모시는

겨울나무들처럼

 

나 두 팔 벌려 하느님의 격정을 받아 모신다

받아 모시니,

 

시다!

 

 

 

-출처 : 시집『거룩한 낭비』(문학에디션 뿔, 2011)

-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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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의 상동적(相同的) 은유

-고진하의 시 「거룩한 낭비」를 읽고

 

고진하 시인의 신작 시집 『거룩한 낭비』는 오랜 자신의 시력(詩歷) 한마디를 충실하게 매듭지으면서, 이제 새롭게 펼쳐질 ‘시’에 대한 사유와 감각을 예비하고 있는 선연한 결실이라는 걸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의 묘미는 “모처럼 쉬다”와 “모처럼 시다” 사이의 유추에 있다. 폭설에 갇혀 ‘쉬고’있는 시인에게 “난분분 난분분 뜨는/창밖의 잔눈송이들”은 모처럼 ‘시’에 관한 성찰과 자각의 순간을 가져다 준다. 결국 마지막 ‘시(詩)다’라는 말은, 폭설 뒤의 흩날리는 잔눈송이들이 가져다준 셈이다. 이렇게 시인으로 하여금 오도 가도 못하고 ‘쉬게’하신 폭설과 잔설의 하느님은, “ 흰 눈썹을 낭비하고,/ 흰 섬광의 시를 낭비”함으로써 ‘쉼’과 ‘시’의 등가적 결속을 이루게 하신 ‘거룩한 낭비’의 존재이다. 조물주의 흰 눈썹이 되어 내리는 눈을 공손히 받아 모시는 시인의 모습은, 앞에서 보았던 ‘받아 적음’의 모습과 고스란히 겹친다.

 

결국 ‘받아 적음’과 ‘받아 모심’은 시 쓰기의 상동적(相同的) 은유가 되며, 느릿느릿한 ‘쉼’의 시간이 ‘시’를 발견케 하고 ‘시’를 사유케 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느릿하고 거룩한 사유가 구현된 곳에서 “빛과 그늘 섬기는 법 말없이 가르치던 소나무 두 그루”(「푸른 커브」)를 만나게 되고, “푸른 은거의 시간을 쪼아 내가 토해 낼 음악”(「딱따구리」 )를 듣게 된다.

 

-문학평론가 유성호 님이 쓰고 詩하늘이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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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수산 | 작성시간 12.10.05 고진하 시인의 시와 유성호 평론가의 시 읽기가 어울려 명품을 만들었네요. 이 글 올리신 가우/박창기님도 멋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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