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정물화
- 보어의 세계
김병호
모두가 잊은 생일
초경을 시작한 아이는 며칠째 방에서 나오지 않고 겨울에 말라죽은 인도고무나무는 아직 현관에 놓여 있다 감히 건너다 보는 일도 없이 나는, 언제쯤 완전히 늙을 수 있을까 우두커니 저를 잊을 수 있다면 이마에 뿔 하나 나는 일쯤은 대수롭지 않겠다
센서등이 꺼지길 기다린다 암각화처럼 수만 년 전 사내가 다시 얼굴을 그려 넣는다 집을 잘못 찾은 것처럼 허기만 남은 얼굴, 나는 너무 멀리에 살고 있다
아직 더 가난해질 게 남아 있나,
문밖에서 서성이는 발소리
마른 잎처럼 오래 견뎌온 얼굴을 다시 더듬어 본다
- 시집『슈게이징』(시인의 일요일,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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