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 of sorrows∘
조성래
스물여덟에 대학가 피시방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시를 쓰던 내가 세상에 숨은 보석 같다던 동갑내기 실장님 두 아이를 낳고 도배사가 되셨다
방 창문을 열면 성막교회가 오랫동안 파란 붕대를 감고 서 있다 꼬질꼬질한 은행나무들도 단독 사진을 찍어 줄 땐 나뭇잎 한 장 흘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맑음이란, 구름이 누락한 비를 다시 가지러 간 사이에 지나지 않지만
오늘은 정말로 대단히 맑음, 팔 부러져 몸져누운 어머니 나 없인 살지 못하시며 서른 살의 나 어디로도 도망치지 못하는 신세나
나 빼고 온 세상이 이런 휴전 상태가 흡족해 웃는 모양이다 비탈길 철조망처럼 웃는 입꼬리를 달고 다닌다고 해서 피를 나눈 가족이 적이 될 수 없는 노릇이니
웃어라, 샛노란 섬광의 늦가을 태양이 자꾸 사진기를 들이대며 낄낄 좋아 죽는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갇힌 방에 걸려 있던 그림.
- 시집『천국어 사전』(타이피스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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