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천국
김길나
이곳, 시계포의 시간들을 아나키즘이 장악 중이다
시간의 질서가 어긋난 공간에서 시간은 따로따로 혼자씩 제멋대로 돌아간다
현재가 부재중인 이 시계포에는 고장 난 오늘이 걸려 있다
수많은 시계들이 한결같이 현 시간을 지워버렸다
시간의 굴레에서 풀려나기 좋은 이 시계포에는 이미 시간의천국이란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시간의천국에서는 어제와 내일이 나란히 붙어 있다
과거에서 온 정오 곁에서 미래에서 온 밤이 열한시를 알린다
정오와 열한시 사이에서 북적대는 혼돈, 계절들은 한자리에 혼재한다
아직도 과거를 운행 중인 시계가 지나간 계절들을 펼쳐놓을 때
자전 속도가 빨라진 시간에 앞당겨온 내일의 내가 어제의 나를 언뜻 건너다본다
이곳 시계들은 여전히 서로 다른 시간을 보여주고 있다
서로 다른 시간으로 가는 생체시계를 각자 펄떡이는 심장에 달고
이 시계포의 고객들이 시계와 시계 사이 자유 만발한 꽃길을 오가는 동안 시계포의 출입문이 닫혀졌다
현재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시간을
시간의천국이 장악 중이다
ㅡ 시집『시간의 천국』(천년의시작,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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