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보동물
김한규
걸을 준비 없이 생각 없이 걷지 않는 걸음이다 말할 수 없는 걸음 사이를 묻지 않고 물을 수 없게 궁금하지 않는다 살지 않으면서 살면서 망각도 없이 망각을 모르며 잊은 채로 기억을 모른다 몰락하고 있는 사이를 이미 몰락한 기관으로 들어가 숨을 죽이고 버티는 곳을 찾지 않으며 안이 되었다 처음도 아닌 처음에서 끝을 잘라 낸 끝에서 시작하며 시작을 끊는다 머뭇거리지 않으며 줄곧 생각하지 않으며 기능과 작동의 세계를 세계로 삼지 않는다 되돌아 오는 법이 없이 닿는 곳을 멈추지 않는 고요한 습관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기이하게 보이려는 의도 따위는 아무런 기이함도 없이 어떤 수단도 되지 않았다 올려다보는 눈과 내려다보는 눈을 함께 닫고 창은 열지 않는다 할 말이 없는 이유를 말에서 찾지 않는 오랜 침묵이 저절로 부화한다 남지 않으려는 의지를 남기지 않고 뒤에서 자꾸만 뒤로 물러났다 생겨난 것에서 필요한 것을 구하지 않는 방법으로 구하게 되었다 밖은 밖이 아닌 곳으로 만들어 가두지 않고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고 버려두었다 되풀이하지 않고 거듭하지 않으며 자리를 바꾸지 않는 하나의 동기뿐이다 그것을 낳으려고 낳지 않았다 죽는 기분을 갖지 않은 채로 죽음을 싸고 있다 살면서 죽어 있다
(제5회 박상륭상 수상작,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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