晩鐘
고창환
호박엿 파는 젊은 부부
외진 길가에 손수레 세워놓고
열심히 호박엿 자른다
사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어쩌자고 자꾸 잘라내는 것일까
그을린 사내 얼굴
타다 만 저 들판 닮았다
한솥 가득 끓어올랐을 엿빛으로
어린 아내의 볼 달아오른다
잘려나간 엿처럼 지나간 세월
끈적거리며 달라붙는다
그들이 꿈꿔왔을
호박엿보다 단단한 삶의 조각들
삐걱이는 손수레 위 수북이 쌓인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데
그들이 잘라내는 적막한 꿈들
챙강대는 가위 소리
저녁 공기 틈새로 둥글게 퍼진다
ㅡ 시집『발자국이 남긴 길』(문학과지성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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