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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하늘 좋은 시

[정일근] 고추는 힘이 세다

작성자海率/이도화|작성시간26.06.18|조회수40 목록 댓글 0

고추는 힘이 세다 

 

정일근

 

 

봄에 고추 모종 몇 그루 심어 놓고

여름부터 가을까지 풋고추 따 먹는다

고추나무는 고추를 몇 개나 다는지

고추 딸 때마다 세어 놓았는데

아이쿠! 일흔세 개의 고추 낳았으니

고추나무의 자식 농사 풍년, 대풍년이다

어디 고추의 힘이 그뿐인가

고추마다 일백마흔다섯 개씩

맵고 당찬 씨앗 제 품에 품었으니

고추나무 한 그루에 자식은 일흔셋이요

손자는 일만여 톨이라, 고추나무는

고추라는 이름값 다하고 산다

자식은 제 먹을 것 다 가지고 태어난다고

산 입에 거미줄 치는 일 없다고

어머니 그렇게 말리셨는데

젊어서 끝내버린 내 고추 농사

아들 하나 딸 하나 둔, 부선망(父先亡)

이대 독자인 내 고추 농사

잎 마르고 세월 깊을수록 창망하다

첫 이슬 내려 뿌리 뽑힐 때까지

쉬지 않고 꽃 피우고 빳빳한 고추 다는

서창 장날 천 원에 세 포기 사 온

저 고추, 힘 좋은 고추 앞에서

 

정일근 시집《꽃장》, (토다 시인선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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