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산책
신덕룡
밤공기를 콧등으로 쐬고 와야 하루가 정리되는 느낌이다 천천히 걸으며 듣고 맡는 풀벌레 소리와 들꽃 향기로 속이 환해진다 운이 좋아 별빛에 샤워라도 하는 날이면 온몸에 덕지덕지 들러붙은 과거가 말끔하게 씻긴 느낌이다 어떤 과거는 참으로 끈덕지다 기억의 주름들 사이사이에 끼어 있다가 틈만 나면 비집고 나와 냄새를 피워 댄다 달갑잖은 불청객처럼 불쑥 찾아와 얼굴을 붉히게도 하고 괜스레 치미는 울화에 몸을 떨게도 한다 좀처럼 갚기 힘든 빚이다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휙, 날아가는 새처럼 도망치는 게 상책이지만 오늘 밤
별빛 쏟아진다
밖에 나가 샤워를 할 시간이다
ㅡ시집 『속이 뻔한 울증』(파란,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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