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나무들-46] 여름의 강건함을 알리는 아이리스 꽃의 화려함
[2009. 6. 11]
Iris 의 우리 말 이름은 붓꽃입니다. 붓꽃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지난 번에도 말씀 올렸듯이, 꽃봉오리가 마치 먹물을 머금은 붓을 닮았다는 까닭에서이지요. 위의 사진에서 붓을 닮은 Iris 의 꽃봉오리를 보실 수 있습니다. 돌담 넘어 양쪽으로는 짙은 보랏빛의 꽃이 활짝 피었는데, 가운데에는 아직 꽃망울을 열지 않은 꽃봉오리들이 보입니다. 이 꽃봉오리들은 보시는 것처럼 붓을 빼어닮았습니다.
대개의 붓꽃과 식물들은 땅바닥에 한껏 몸을 낮추어 자라나는 이른 봄의 풀꽃들과 달리 목이 긴 편입니다. 푸른 잎사귀 사이로 꽃대가 솟아오르고는 그 끝에 화려한 색깔의 꽃을 피웁니다. 꽃대가 높이 올라오다 보니, 다른 꽃들보다 훨씬 눈에 잘 띄는데, 색깔까지 화려해서 이 즈음에는 가장 눈에 띄는 꽃이라 해야 할 겁니다.
여기 보여드리는 첫째 둘째 사진은 우리 토종의 붓꽃을 닮기는 했지만, Iris tectrum 이라는 이름의 식물입니다. 거의 파란 색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푸른 빛이 강한 보라색의 꽃이 유난히 돋보입니다. 우리 수목원의 옛 사무실 앞, 초가집으로 이어지는 화단 입구의 돌담 위로 불쑥 솟아오른 열정적인 색깔의 꽃이 매우 화려합니다. 이 자리에는 같은 Iris tectrum 이 무리지어 자랍니다.
엊그제 제가 이 종류의 꽃들에 나타나는 꽃술의 모습에 대해 설명한 것을 바탕으로 하면, 위의 사진에서 푸른 빛의 꽃받침 위에 난 흰 색 무늬 위로 다시 갈래갈래 흐트러진 실밥같은 게 보이는데, 그게 바로 수술입니다. 수술의 생김새도 종류에 따라 모두 다릅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그 차이를 아실 수 있습니다. 노란 꽃받침 위의 줄무늬 위로 솔처럼 보이는 게 바로 수술입니다. 위의 꽃에서 보이는 수술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이 사진의 꽃은 아이리스 원예종 가운데 하나입니다. 화려한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보니, 전 세계 각지에서 이 꽃의 다양한 품종을 선발해 내놓았지요.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화려한 꽃을 좋아하는 유럽 사람들이 선발한 품종이 매우 많습니다. 아래 연한 푸른 빛을 가진 꽃 역시 아이리스 가운데 원예종으로 선발한 품종입니다. 모두가 이 꽃의 화려함을 강조하기 위해 선발한 것이라 보면 됩니다.
‘아이리스’라는 이름은 엊그제 말씀드렸듯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무지개의 여신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식물 ‘아이리스’는 무지개의 여신과 별다른 관계가 없고, 스파르타의 미소년 휘아킨토스와 관계가 있지요. 휘아킨토스가 ‘아이리스’ 꽃으로 변하게 된 이야기는 제우스의 아들 아폴론이 그 소년을 좋아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휘아킨토스는 용맹한 정신과 건강한 몸을 가진 까닭에 가는 곳마다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그 가운데 아폴론도 있었던 겁니다. 아폴론은 휘아킨토스와 원반던지기 놀이를 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한낮, 그들은 원반던지기를 하기로 하고, 먼저 아폴론이 온 힘을 다하여 원반을 던졌습니다. 구름을 가르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원반을 휘아킨토스가 쫓아갔지요.
정확히 낚아챈 뒤 곧바로 되던지려는 생각이었던 거죠. 그런데 얄궂게도 원반은 휘아킨토스가 다가오기 전에 먼저 너른 바위 위에 떨어지더니 공중으로 튀어올랐습니다. 원반을 향해 뛰어가던 휘아킨토스의 냅다 달려가는 힘과 바위에 부딪쳐 튀어오르는 힘이 보태져, 매우 강한 힘으로 원반은 휘아킨토스의 얼굴을 후려쳤습니다.
순간적으로 휘아킨토스는 안색이 창백해진 채로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멀리서 원반을 던진 아폴론도 사색이 되어 달려왔습니다. 그리고는 휘아킨토스의 온몸을 주물러 따뜻하게 하면서 소년의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애썼습니다. 또 약초를 구해와 휘아킨토스의 상처를 치료해주기도 했지요. 갖은 애를 다 썼지만, 한번 쓰러진 휘아킨토스의 몸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폴론은 휘아킨토스를 안고 서럽게 울부짖었어요. 휘아킨토스의 죽음을 불러온 게 바로 자신이 던진 원반이었음을 돌아보는 건 그에게 참을 수 없는 슬픔이었습니다. 휘아킨토스의 주검을 끌어안고 한참을 서럽게 통곡하던 아폴론은 그를 꽃으로 다시 태어나 영원히 살게 하리라고 주문을 외었고, 그 사이 휘아킨토스가 흘린 피는 땅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었지요. 얼마 뒤, 그 자리에서 짙은 보라색의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습니다. 그 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아이리스입니다.
휘아킨토스가 흘린 피에서부터 피어난 꽃을 그의 이름을 따라 ‘히야신스’로 생각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듯합니다만, 이는 꽃의 생김새와 무관하게 이름에 주목하면서 오게 되는 혼동입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이처럼 꽃으로 변신한 이야기가 무척 많이 나옵니다. 물론 식물 뿐 아니라, 동물이라든가 혹은 무생물까지 변신 이야기는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전하는 사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중요한 식물의 근원이 되는 변신 이야기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도 여러 판본이 있습니다만, 제가 가장 요긴하게 참고하는 판본은 로마 시대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펴낸 ‘변신 이야기’입니다. 신들의 이름 표기도 그 책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 노란 색의 꽃은 엊그제 아이리스 꽃의 구조를 이야기하면서 꽃잎이 다른 꽃들에 비해 작다며 보여드린 그 꽃입니다. Iris pseudoacorus 'Variegata' 라고 부르는 원예종 아이리스입니다. 꽃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자그마한 크기의 식물인데, 맑고 선명한 노란 색이 예쁩니다. 수목원의 암석원에 낸 작은 연못 가장자리에서 다른 종류의 아이리스들과 섞여 피어있습니다.
그밖에도 우리 수목원에는 다양한 종류의 붓꽃과 식물들이 곳곳에서 초여름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색깔과 모양은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그 화려함에 있어서는 모두가 하나입니다. 보다 더 화려하게 밝아올 여름을 알리는 조짐이라고 해야 하지 싶습니다.
봄은 무심히 흘러가고, 이제 유월, 여름입니다. 언제나 여름은 화려한 날씨만큼 뜨거운 일들이 쉼 없이 벌어지는 계절입니다. 이 여름, 다른 어느 때보다 더 화려하고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여름맞이의 꽃 아이리스 이야기, 이렇게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솔숲닷컴에서 받은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