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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토요일 신심 강의

2026.6.6첫토,성시간, 쎌기도,묵주기도묵상,1.2강의이한탹주교님,강론이한수신부님

작성자annaM(서울)|작성시간26.06.13|조회수254 목록 댓글 1

2026.6.6. 첫토

강사: 이한택주교님 강의1.2,

1강의 주제: “성체성혈 대축일

2강의 주제: “예수성심과 성모성심

미사집전: 이한택주교님, 최재웅신부님, 이한수신부님

강론: 이한수신부님

파티마 평화의 성당

 


성시간

 


묵주기도, 미사지향:

⚫성모님의 성화와 성상에 직접적으로 불경을 저지르는 이들에 대한 배상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세계평화, 죄인들의 회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하여, 이한택 주교님의 영육건강을 위하여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위하여 기도하겠습니다.

쎌기도,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 남북 통일을 위한 기도

 

묵상: ‘환희의 신비’ 녹음

 

성체강복

 

하느님 찬미가

 

오전 강의:

1강의: 성체성혈 대축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여기 오시는 분들은 항상 저를 행복하게 해 주십니다. 오늘 여기 처음 오시는 분들이 계시면,

이 성당이 어떠한 성당인지 알고서 피정에 임하시면 좋겠어요. 이 성당은 다른 성당하고 언뜻 보기에는 다른 점이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 대한민국에서 유일무이한 특징을 가진 성당입니다그 특징이 뭐냐 하면, 우선 이 성당은 우리나라 지리상으로는 의정부 교구에 속하고, 경기도에 있지만, 이 성당은 본당이 아니에요. 여러 형제자매님들께서도 한 군데서 오시지 않고 여기저기서 오셨어요. 이 성당은 대한민국의 성당이에요. 어느 교구, 어느 본당의 성당이 아니고, 또 대한민국 어디든지 속하는 또 모든 교구에 속하는 이러한 성당이에요. 그래서 이 성당에는 본당 회장도 없어요. 이 성당에서는 교무금도 없어요. 그 대신에 여기 오시는 분들이 도와주시는 것에 의해서... 지금 현재는 이 성당에 본당 신부님도 안 계셔요. 상주하시는 신부님도 안 계시고, 수녀님들만 계세요. 수녀님들은 우리나라에서 큰 수도회가 아니고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 수녀회에 계시고, 수녀님들의 본부는 부산에 있어요. 분원이 서울에 있고, 여기 지금 평화성당이 분원이 있어요.
수녀님들 수도 많지가 않아요. 30명도 안 돼요. 전체 다 합쳐도...

이 성당에 내려오시기 전에 저 계단 위에 앉아서 오시는 모든 분들께 미소로 맞이하는 신부님 모습을 보고서 여기 들어오셨어요, 그 신부님이 한국 사람이 아니고, 머나먼 독일 신부님이 한국에 오셔서 평생을 남북통일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이 성당을 지으신 분이고, 이 성당을 이북에 가장 가까운 곳의 짓고 싶으셔서 여기다 성당을 지으신 것인데, 그 신부님이 당신이 모금을 해서 이 성당을 지셨어요.

이 성당은 어느 본당에서 돈을 받고 지은 것이 아니라, 남북통일, 우리나라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하안토니오 몬시뇰께서 당신의 두 발이 우리 한국 땅에 얹어 놓는 순간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돌아가실 때까지 남북통일을 위해서 기도하신 분이에요. 그래서 이 성당을 그렇게 지으신 거예요. 그런데 이 성당을 지으시면서 특별히 파티마 성모님께 기도를 바치고, 파티마 성모님의 메시지를 증거하고, 파티마 성모님께서 약속하신 하신 거, 이것을 지키면서 남북통일을 이루고, 세계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기원하면서,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는 이 성당을 짓기 위해서 이 성당을 지으셔서 돌아가신 분이에요.

 

여기 오신 분들은 보시고 기도하는 거 미사 드리는 거 다를게 없어요. 그런데 특징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파티마 성모님의 메시지를 명심하고 가능하면 우리들의 일상생활 안에서 파티마 성모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증거를 하고, 또 기회가 있는 대로 다른 형제자매님들한테 전파해서, 세계 평화와 남북통일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 이런 모습을 보여 주면서, 이 성당에서 기도를 했으면 좋겠다는 거, 이렇게 소개 말씀을 드리면서, 오늘 몇 시간을 이 성당에서 지내면서 우리나라의 사정, 세계의 사정, 그리고 우리 각자의 개인의 사정을 들여다 보면서 우리들이 움츠러들을 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또 우리 대한민국이 어제 그저께 우리가 아주 중요한 선거를 치렀지요. 선거를 치르는데, 어떤 분들한테는 아주 마음에 들지 않고, 어떤 분들한테는 보기 싫은 사람이 된 것도 있고, 이런 것이 있어요.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능하신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에요.

 

파티마 성모님께서는 세계 평화를 세 어린이들 중에서 성인이 되신 두 어린이를 이 성당에 모시고 있어요. 히야친타하고 프란치스코, 이 두 성인은 나이가 10살도 안 돼서 성인이 되셨어요. 어떻게 해서 성인이 되셨냐 하면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 성모님을 만나서 성모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성실하게 하셨고, 죽을 때까지 그 약속을 지키셨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 어린이들 성인들이 참 많아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참 많은데, 지금까지는 어린이들 성인은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다 순교자들이였었어요. 그런데 파티마에 두 성인 히야친타하고 프란치스코만 순교하지 않은 성인이에요. 여러 형제자매님들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 크리스마스 때 이틀 후에는 무죄한 영혼들 기념하지요. 그것을 위시해서 우리나라에도 소년 성인이 있어요. 순교하신 분이에요. 전 세계에서 어린이 성인들은 이 두 성인이 나오기 전까지는 다 순교한 아이들이었어요. 그런데 우리 시대에 와서 지금부터 100여 년 전에 이 두 성인이 나와서 순교자 아닌 어린이 성인이 탄생한 거예요. 그럼 우리 이 성당에서 기도를 할 때마다 우리들이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뭐예요? 이 어린이들이 성인이 될 수 있었다 하면, 나도 성인이 될 수 있는 거예요. 나도 성인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우리 중에는 성인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그런데 성인이 안 되는 것은 누구 때문에 안 되는 거예요? 이러지만 말고, 말로 해 봐요. 나 때문에. 자기 때문에 성인이 안 되는 것이지, 하느님은 나한테 성인이 될 자격을 주셨어요. 능력도 주셨어요. 우리가 이 성당에 모신 두 어린이들이 우리들한테 당신 나보다 나이 더 많이 먹었잖아, 당신들은 나보다 더 많이 배웠잖아, 이 두 어린이들이 성모님 만날 때 한 날은 그랬어요. 너희들 읽는 것 좀 배워 가지고 오라고, 왜냐하면 학교도 안 다녔고 문맹이었었어요. 그러니까 달력 숫자도 못 보고, 글도 읽지도 못하고, 이러니까 성모님이 숫자 배우고 읽는 것도 배워 가지고 그러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되셨어요. 그러니까 우리들은 어린이보다 더 많이 배운 사람들이에요. 그렇죠? .

더 많이 배우고, 두 어린이들보다 더 부자들이에요.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그리고 세상 경험도 두 어린이들보다 더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들 중에는 성인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은 우리 두 어린이들 앞에서는 자격 없다는 소리하면 절대로 안 돼요.
너희들이 성인이 되었으면, 나도 될 수 있어! 이래야 돼요. 이 성당에 오시는 분들 중에는 한 분도 빼놓지 않고 성인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셔야 돼요. 아멘. 이러면서 여기까지가 서론이고, 지금부터 제가 구체적인 거 몇 가지 여러 형제자매들과 나누겠어요.

매일미사 가지고 오셨지요. 오늘이 6월 첫 토요일이에요. 내일이 주일날 입니다. 내일 무슨 주일이죠? 성체 성혈 대축입니다. 성체성혈 대축일 이거, 파티마 성모님하고도 밀접한 관계가 있고,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린 두 성인하고도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쎌 기도서 책, 기도 시작할 때 몇가지 기도를 하는데, 쎌기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은 빼놓지 않고 매일 하시는 거예요. 쎌기도 책 19페이지를 펴 보세요. 중간쯤에 굵은 글씨로 무슨 기도가 있지요. 성체의 기도. 바로 밑에 파란 글씨 쓰여 있는 거, 첫째 문장만 같이 읽어 보겠어요. 1916, 가을 천사가 성체와 성혈을 모시고 와서 그 앞에 엎디어 파티마의 세 어린이들과 함께 드린 기도로서 성체 안에 살아 계시는 예수님께 대한 무관심을 기워 갚기 위해 드리는 기도이다.


그리고서 이 밑에 기도가 나와요. 쎌기도 하시는 분들은 이 기도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합니다. 내일이 성체 성혈 대축일인데, 지금 이 자리에서 오늘 피정을 하면서 우리들 생각해 봐야 돼요. 나는 성체성사에 대해서 어떠한 신심을 갖고 있는가? 나는 성체성사를 얼마만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성체성사가 내 하루하루 생활하고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달리 말해서 성체성사가 나한테 어떠한 도움을 주고 있는가? 또 달리 말해서 성체성사가 나한테 중요한 것인가? 나한테 지금 당장 필요한 100만원 보다 성체성사가 더 중요한가? 덜 중요한가? 이 질문 꼭 해야 돼요. 내가 미사 참례하는 거, 어떤 때는 우리들이 목숨이 포도청이라 미사 안 가지요. 이때 성체성사가 나한테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내가 주일날 이 포도청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내가 일을 하러 가는데 그날 가서 얼마를 버는가? 내가 하루에 일을 한다고 그래서 아마 삼성 같은 기업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은 일과 달리 우리들 대부분은 하루 죽어라 하고 일을 해도 100만원 버는 분들 별로 많지 않을 거예요. 그럼 내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이라고 할 때, 100만원 벌기 위해서 미사참례 빠지는 거, 이때 나한테 성체성사가 100만원짜리가 됩니까? 안 됩니까? 100만원짜리가 안 되는 거지요. 100만원짜리 100만원 벌기 위해서 미사참례 안가니까... 그런데 사실 제병, 그거 하나 제가 지금 들고 나오진 않았지만, 신자들이 이용하는 제병 그거 얼마짜리인지 아세요? 돈으로 따지면 100원도 안 돼요. 신부님이 영하는 거, 조금 더 크지요. 그거 100원짜리예요. 그럼 돈으로 따지면 제병이 하나가 100원이나 30원 정도밖에 안 되는데, 내가 영성체하는 거, 진짜 100원짜리인가? 정말로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거, 예수님 그리스도의 몸이 정말로 100원도 안 되는 건가? 오늘 우리 이거 생각해 봐야 돼요. 그런데 우리가 쎌기도 할 때마다 성체를 영성체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로 해야 되는지를 백여 년 전에 세 어린이들이 성모님을 만나기 전에 천사가 먼저 와서 이 기도를 가르쳐 주셨어요. 천사가 직접 가르쳐 주신 거예요. 신부님이 가르쳐 주신 거 아니고, 주교님이 가르쳐 주신 거 아니고, 교황님이 가르쳐 주신 거 아니에요. 천사가 가르쳐 줬어요.

우리 이 기도문 천천히 한번 같이 읽어 보겠어요.

,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 성부 성자 성령님 마음 깊이 당신을 찬미 하나이다. 세상 모든 감실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보배로운 몸과 피와 영혼과 신성을 당신께 바치오니, 예수님의 마음을 상해 드린 불법과 모독과 무관심을 기워 갚기 위함이나이다. 예수 성심의 무한한 공로와 티 없으신 마리아의 공로로 삼가 청하오니, 불쌍한 죄인들이 회개하게 하소서. 언뜻 들으시면 기도문이 나하고 아무 상관없는 것같이 들릴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문제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 특히 가톨릭 신자일 것 같으면 성체성사 나한테 엄청난 행복의 바탕이 되어야 돼요. 내가 이 세상의 모든 것 갖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리고 지금 내가 어떠한 처지에 있고, 어떠한 고통을 받고 있고, 어떠한 고통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성체성사의 은혜를 내가 깨달았으면 행복해야 되는 거예요. 어떠한 처지 있든지 간에... 근데 그것을 내가 관심을 갖지 않고, 외면하고 이러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내가 우선 내가 행복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한테 큰일을 저지른 거예요.
이게 뭐 하고 똑같은 거냐 하면,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데, 우리 중에 엄마가 없고, 아버지가 없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엄마 없고 아버지 없는 사람 있어요? 한 사람도 없지요. 그러면 엄마 아버지한테 내가 어떠한 무엇을 받았던지 뭐 했다 하더라도 내가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는 그 자체가 엄마 아버지의 은혜예요. 있어요? 없어요? 정말로 이거 뻔할 뻔자 아니에요. 질문 하나마나 아니에요. 그런데 실제로 우리들이 엄마하고 싸우고, 아버지하고 싸우고, 조금 큰 다음에는 자기가 잘났다고 엄마한테서 떠나고, 아버지한테서 떠나고, 그리고 어떤 때는 큰소리치면서 뭐라 그래요? 누가 나를 낳아 달라고 그랬어?! 그러면서 큰 소리 치지요. 그 큰 소리 치는 자체가 그 심리가 어디서 나왔어요? 엄마 아버지한테서 나왔잖아요. 그리고 큰 것은 누구 덕이에요? 엄마 아버지 덕 아닙니까? 그런데 엄마 아버지한테 큰소리치는 거, 이거 제대로 된 거예요? 안 된 거예요? 지금 오늘 날 우리나라가 사회적으로 흐르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제일 큰 원인이 엄마 아버지 덕을 모르는 거예요. 우리 다른 말로 뭐라 그러죠? 배은망덕. 지금 우리 시대에 배은망덕 만연해요. 사회에 꽉 차 있어요. 대한민국의 근래 역사만 한 번 보세요. 저 같은 사람은 이 자리에서 여러 형제자매님들보다 나이가 많은 편이에요. 제가 어렸을 때 굶지 않는 집이 한 집도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제가 되돌아 볼 때, 저희 어머님 아버님은 저보다도 더 굶으셨어요. 제 어머니가 우리들 먹일 때 이 철없는 녀석이, 한택이가 엄마 먹는 누른 밥까지 뺏어 먹으려고 그랬어요. 이 자식들 위해서 밥을 다 주고, 엄마는 먹을 것이 없어서, 물 부어서 누른 밥을 잡수시는데, 그것마저도 뺏어 먹으려고 그랬어요. 이 철없는 녀석이... 그런데 커 가지고 철들은 다음에 되돌아 볼 때, 내가 엄마한테 얼마나 잘못했는가? 얼마나 무식했는가? 얼마나 불효했었는가? 이거 생각할 때 인간적으로 너무 늦었어요. 어머니 벌써 가셨으니까. 그런데 지금이라도 엄마한테 효도를 하려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 친 어머니는 아니어도, 여기 앉아 계신 엄마들한테 내가 잘 해야 돼요. 제가 여기계신 엄마들한테 잘하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어요? 사회가 평화로워지겠어요? 어두워지겠어요? 평화로워지는 거지요.

 

파티마 성모님께서는 우리한테 이거 말씀하시는 거고, 지금 우리 성체의 기도에 대해서 내가 오늘 생각해 보는 것이 이거예요. 내일이 성체성혈 대축일이에요. 성체성혈 이것이 뭡니까? 이따 오후에 우리 점심 먹은 다음에 묵상 1시간 더 하고, 우리는 미사를 할 거예요. 미사 하는데서 미사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뭐예요? 촛불 켜는 겁니까? 방울을 땡그랑 땡그랑 울리는 게 언제지요? 미사 드리는 사제가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의 잔이다.’ 이러고, 사제가 빵을 올리든지, 포도주 잔을 올릴 때, 이때 우리들 다 졸던 사람 깨라고 종 치는 거예요. 그 순간에 이 밀떡이 예수님의 살과 피로다 바꿔지는 순간이에요. 우리 천주교에서는 이것을 모두 믿어요. 한국에서만 믿는 것이 아니고, 미국에서도 믿고, 중국에서도 믿고, 아프리카에서도 믿고, 어느 나라에서든지 미사를 드리는 데에서는 우리 이것을 믿어요. 그런데 이 30원짜리 또는 100원짜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된다는 거, 우리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어요.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우리 아까 성체 강복하면서 강복하기 직전에 신부님이 우리들하고 같이 기도하신 것이 있어요. 이 기도가 무슨 기도냐 하면, 내일 미사 때 본기도예요.

 

 

다시 한번 우리 매일 미사 책을 펴 보세요. 53페이지. 내일 본기도인데, 신부님이 성체대전에서 무릎 꿇고 하신 기도예요. 아까 신부님은 그냥 읽는 것으로 하셨는데, 일반적으로 신부님들이 성체 강복할 때 노래로 하셔요. 장엄하게 하고, 오늘 우리가 여기서는 노래로 안 하셨지만, 이 기도문을 조금 읽어 보시면, 제가 여기에 대해서 조금 부연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본기도 같이 읽어 보겠어요. 주님, 이 놀라운 성찬의 성사로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게 하셨으니, 저희가 언제나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성체 성혈의 거룩한 신비를 공경하게 하소서. 제가 성체성사 이것이 우리한테 얼마만큼 중요하냐 말씀드리면서 이것을 제대로 알면, 우리 정말로 행복하다는 것을 제가 말씀드렸고, 이것을 소홀히 할 것 같으면, 우리가 행복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어요. 우리 교회가 이 기도를 성체 강복을 할 때마다 이 기도를 그리고 열심한 신자들은 혼자서 성체조배할 때도 이 기도를 바칩니다. 그러면 이 기도하고, 아까 쎌기도에서 바친 거 하고, 겸해서 볼 것 같으면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린 성체성사가 우리들의 행복에 가장 쉬운 가장 손쉽게 내가 모실 수 있는 행복의 열쇠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기도문에 보세요. 이 놀라운 성찬의 성사라고 그랬어요. 놀라운 성찬의 성사, 성체를 말씀드리는데, 놀라운이라고 그랬어요. 왜 놀라운이라고 그러냐 하면, 우리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거예요. 우리가 우리 능력 자체 로는 깨달을 수가 없어요. 성체성사 언제 이루어졌어요? 주님만찬 때. 예수님 돌아가시기 전날 저녁에 제자들하고 만찬 저녁 식사를 하실 때, 그때 식사 도중에 그러셨어요. 빵을 나누어 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너희들이 나를 생각할 때마다 이것을 행하라 이러셨어요.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늘 예수님의 그 부탁을 이어 가지고, 우리 가톨릭교회에서는 끊이지 않고, 그때서부터 오늘날까지 2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미사를 드리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미사예요. 그런데 이것을 우리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어요. 그래서 아까도 우리가 성체 성가를 할 때, 우리가 눈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지만, 볼 수 없지만, 믿음으로 믿음으로 볼 수 있다고, 우리가 이렇게 성가를 불렀어요. 믿음으로는 내가 받아들일 수 있어요. 성체성사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거,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거, 이거 뭐로다 받아들여요? 믿음으로 받아들이는데, 우리 생각해 보세요. 요새 우리 나라가 불안하고, 세상이 불안하고, 이런 것이 원인이 어디 있는가?

우리 대한민국만 예를 든다 할 것 같으면, 여러 형제자매님들 그냥 솔직하게 대답해 보세요. 우리가 그저께 또 선거 하는 중에 몇 군데서는 국회의원을 뽑았어요. 그렇죠? 그런데 도대체 국회가 뭡니까? 국회의원들이 뭘 하라고 우리가 뽑는 거예요? 나라를 위해서 뭐 하라고 뽑은 거지요? 의논을 잘하고 나라를 위해서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 무엇을 법으로 만들라는 심부름을 시키는 게 국회예요. 그렇죠?
그런데 여러 형제자매님들 솔직히 대답해 보세요. 우리나라 국회에서 여당과 야당 의원들이 정말로 우리 백성들을 위해서 요새 같으면 엄마들이 시장에 가서 콩나물을 들었다 놨다, 두부를 들었다 놨다, 이거에 대해서 국회의원들이 관심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아니요. 관심 없지요. 그런데 왜 돈은 가끔 가다 뿌려 줘요. 또 누가 돈 달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돈을 막 뿌려요. 또 그거 누구 돈이에요? 그거 국회의원들 돈입니까? 장관들 돈이에요? 대통령 돈이에요? 누구 돈이에요? 여러분들 그 돈 받아서 고기 사 먹고 이러지만, 세금 올라가는 것도 알아야 돼요. 그거 받아먹으면 세금 올라가요. 그러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뭐 하라고 뽑아 놓은 거예요? 나라를 위해서, 백성들을 위해서, 의논하라고 뽑은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말하는 것은 항상 뭐예요? 네가 옳으냐, 내가 옳으냐, 네가 틀렸느냐, 내가 틀렸느냐, 이것을 따져요. 보세요. 우리가 투표하면서도 투표용지가 모자라는 구역이 있었어요. 그거 누구 탓이냐 서로서로가 내 탓이라고 하는 사람, 한 사람도 못 봤어요. 지금까지 이거 참 이상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 집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엄마하고 아버지하고 말다툼할 때, 우리가 모든 거, 다 이해합니까? 꼬마가 아버지 모든 거 이해해요? 꼬마들이 엄마 아버지 다 이해합니까? 우리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이해 못 하는 거, 무지무지 많아요. 우리 하느님 성자와 성령만 믿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더 가깝게 뭐냐면, 엄마 믿어야 되고, 아버지 믿어야 되고, 아버지는 누구 믿어야 돼요? 제일 우선적으로 엄마 믿어야 돼요. 엄마 신뢰해야 돼요. 또 엄마가 아버지 신뢰해야 돼요. 그런데 어떤 때는 엄마가 전화 받았는데, 친구가 엄마 동창이 전화 걸어서 네 남편 어디 있는 줄 알아? 회사에 있어. 야 웃기지 마. 지금 내가 보는데, 어떤 이쁜 여자하고 어디 들어가는 거, 내가 봤어. 저녁에 남편이 퇴근 하면, 당신 왜 늦었어 하면, 회사에서 회의가 있었고, 어쩌고 저쩌고 해요. 그럼 그때 이 엄마가 이 아버지를 어떻게 쳐다봐요. 진짜야? 의심 가기 시작해요. 그런데 금슬이 좋으신 분은 정말로 부부간의 금술이 좋은 부부라 그러면 어떻게 해요? 신뢰해요. 신뢰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아까 전화한 동창 생각부터 해야 돼요. 그렇죠? 신뢰해야 돼요. 신뢰하고 나중에 맛있는 거, 식사하라고 그러고, 식사한 다음에 맥주까지 한잔 탁 준 다음에, 근데 오늘 바빴어? 오늘 왜 늦었어? 이렇게 물어보면, 사실은 하고 나올 수 있어요. 근데 아까 전화 받은 것 때문에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거짓말만 잘하네. 이렇게 할 것 같으면, 그때부터 의가 나기 시작하고, 금슬이 금이 가기 시작해요. 그러니까 우리 인생도 신뢰하는 거, 믿는 거, 여기에 우리들의 행복의 바탕이 여기에 있어요. 그러면 우리가 신앙생활하면 성당에도 나가고, 예배당에도 나가고, 절에도 나가고, 이러는데 어떤 곳을 가든지, 절에 가든지, 예배당에 가든지, 성당에 가든지, 우리 믿음에 바탕을 두어야 돼요.

 

제가 지금 주교 중에 한 사람이고, 살날이 지금 며칠 안 남았는데도, 아직도 제가 성호경 제 머리로는 깨닫지 못해요. 성부 성자 성령, 우리 꼬마들이 와서 주교님 성부 성자 성령 똑같으죠? 한 분이시니까? 이러면 주교님이 뭐라고 대답해요. 아니라고 그래요. 그럼 주교님, 하느님이 세 분이시네. 그러면 또 이 주교는 뭐라고 그래요? 아니라고 그래요. 그러면 조금만 녀석이 주교님 하나도 아니고, 셋도 아니고, 이게 뭐예요? 이때 제가 꼬마 설득시킬 수 없어요. 제가 정직하게 이때 대답하는 것은 뭐예요. 나도 모르는데, 믿어야 돼. 제가 어렸을 때 엄마한테 교육 받은 것이 그거예요. 제가 엄마 치맛자락 붙들고 엄마 좋아 그러는데 하도 귀찮아서 하루는 뭐라고 그러냐면, 요셉아! 요셉아! 너 엄마 좋아하지? 아 좋다고, 자지러지게 그랬더니, 엄마가 뭐라고 그러시냐면, 엄마보다 더 좋은 분이 계셔. 제가 깜짝 놀랐어요. 세상에 엄마보다 더 좋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엄마가 그러니까 받아들여야 돼요? 안 받아들여야 돼요? 받아들여야 되잖아요. 이거 꼬마 한택이한테는 이게 문제가 된 거예요. 제일 좋은 엄마가 얘기하니까 받아들여야 되는데, 그걸 받아들이면 어떻게 돼요? 제일 좋은 엄마보다 더 좋은 존재가 있어 어딘가, 그런데 저희 어머님이 그 하느님을 저한테 가르쳐 주셨어요. 그 엄마가 한택이를 그렇게 교육시켰기 때문에 주교까지 됐어요. 중요한 게 뭐냐면, 자꾸만 한택이가 엄마를 철석같이 믿었어요. 그러니까 세상에서 제일 믿어야 할 존재가 뭐냐면 엄마예요. 그 엄마를 믿었기 때문에 밥도 잘 먹었고, 그리고 나중에 신부도 되고, 주교도 된 거예요. 그런데 이 녀석이 똑똑한 척해 가지고, 엄마 성당에 왜 나가요? 엄마 왜 미사첨례 해야 돼요? 이렇게 따지기만 했어 봐요. 이 녀석이 신부 될 수 있었나. 그야말로 택도 없지요. 저희 어머님이 이름을 한택이라고 지었어요. 하나하는 한택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우리 가정교육이 이래서 중요한 거죠. 엄마 아버지를 믿는 거, 엄마 아버지를 신뢰하는 거, 이것이 인생의 바탕이에요. 우리 인생의 정말로 행복하려면 믿는 훈련부터 시켜야 돼요. 그러면 우리 교회에 와서도 믿는 거, 배워야 돼요. 믿지 않을 것 같으면, 우리 세상은 불행한 거예요. 믿어야지 세상이 좋은 것들 아름답고, 우리 제일 좋은 거, 제일 아름다운 거, 이런 거는 우리 이해 못 해요. 우리가 둘이 먹다가 한 사람이 죽어도 모르는 게 있지요. 이게 뭐예요? 제일 맛있는 거 먹을 때예요. 이거 이해하고 먹는 거 아니에요. 그냥 맛있으니까 먹는 거지요. 이렇게 믿음이 우리한테 중요한 거예요.

 

성체성혈 축일을 우리가 맞이하면서, 내가 의식적으로 내 인생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왜 성체성사를 세우셨는가? 이거 제가 이 성당에서도 종종 말씀 드리는 거예요. 요새 제가 이 성당에 목요일마다 와요. 목요일 날은 오늘만큼 많은 분들이 안 계세요. 그런데 목요일마다 오시는 분들하고는 제가 얼굴도 다 알고, 아주 친해요.
그래서 별의별 이야기도 다 하고 그러는데, 지금 세계 평화가 어지러운 것이 뭐예요? 지금 푸틴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통령이나 시진핑이나 이런 분들이 다 세계 평화를 이야기해요. 그런데 세계 평화를 이야기하는데 방법이 뭡니까? 이분들 다 공통점이 있어요. 시진핑도 그렇고, 트럼프도 그렇고, 푸틴도 그렇고, 평화의 도구가 똑같아요. 이 사람들한테는 그게 뭐죠? 무기예요. 무기가 뭡니까? 힘이에요.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은 힘을 갖고 평화를 유지하려고 그래요. 보세요. 골목에서 옛날 같으면 바쁜 생활하지 않으면 골목에서 놀잖아요. 골목대장이라는 것이 있었어요. 골목대장이 누구예요? 주먹 센 아이가 골목대장이에요. 이제 주먹 가지고 평화를 누린다고 그래요. 요새도 학교에서 가끔 가다가 학교 폭력이라는 거, 종종 듣게 되는데, 그게 다 뭡니까? 주먹의 힘이에요. 우리 사회에서는 뭡니까? 돈의 힘, 권력의 힘, 이런 거 가지고서 평화를 약속을 하기도 하고, 행복하다고 그러는데, 정말로 돈 가지고 행복을 만족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부자들이 나보다 더 행복하다고 그럴 수 있어요? 참 힘든 거예요. 여기에 반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한테 행복을 약속하시는데, 이 분은 말씀으로만 하시지 않고, 행동과 말씀과 당신의 삶과 죽음과 죽음 자체를 통해서 우리한테 말씀만 듣게만 해 주시지 않고, 보여 주셨어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 제일 위대한 게 뭐냐면, 다른 성현들은 말씀은 좋은 말씀 많이 하셨어요. 공자님도 그렇고, 부처님도 그렇고, 유명한 철학자들 이런 분들, 다 훌륭한 말씀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말씀을 행동으로 보여 주고, 생활로 보여 주신 분은 예수님만 한 분밖에 안 계셨어요.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또 어떤 때는 뭐라고 그러셨냐 하면, 벗으로 위해서 자기 생명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이러셨는데, 당신 스스로가 그것을 보여 주셨어요. 보세요. 여기 십자가의 길이 있지요. 우리 십자가의 길에서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갔을 때,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셨죠? 당신을 못 박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어요. 예수님 하느님 아버지한테 기도하시기를, 이 나쁜 놈들 내가 복수를 못하고 죽는데, 아버지 이 녀석들 왕창 죽여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셨어요? 아니요. 뭐라고 그러셨어요? 당신은 못 박는 사람들을 위해서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모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서 당신은 목숨을 바치셨어요. 이것이 예수님의 평화의 방법이에요. 오늘날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이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지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푸틴 대통령이나 시진핑 이런 분들은 주먹 가지고서, 힘 가지고서, 세계 평화를 유지하겠다고 그러고, 실제로 지금 그렇게 하고 있어요. 이란을 폭격을 하고, 우크라이나를 쳐들어가고 있고, 시진핑은 우리 한반도 남쪽 북쪽을 다 위협을 하고 있고, 중국의 배들은 우리 서해안까지 와서 우리나라 어족을 씨를 말려 버리고 이래요. 우리 대한민국의 법을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힘으로 하려고 그래요. 당하기만 하고 그러죠.

그런데 예수님 우리한테 뭐라고 그러셨어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내 목숨을 바치는 이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 가시기 전날 저녁에 제자들한테 다른 방법으로 보여 주신 게,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의 잔이다. 당신들이 이것을 먹고 마시면 영원히 살 거다. 이거 약속하셨어요. 우리들은 미사 때마다 우리 영성체해요. 우리 신자들이 줄 서서 나와서 그리스도의 몸 하면, 뭐라고 대답하세요? 아멘! 이 아멘이 뭡니까? 믿습니다, 한 거예요. 그럼 우리 미사가 끝난 다음에 옛날에 라틴 말로 미사할 때는, 이테 미사 에스트 (Ite missa est) 미사가 끝났으니, 돌아가셔서 복음을 전합시다, 이건데. 여기 포함된 말씀이 뭐예요?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먹었으니까, 이제는 가서 먹히십시오 하는 게, 미사의 파견말씀이에요. 미사가 끝났으니 가십시오 할 때, 우리가 감사하지 않고서 응답으로 돌아가는 것은 뭐냐면, 이제는 내가 먹힐 차례입니다, 하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떠나가는 거예요. 이것이 평화의 도구예요.

영성체는 예수님이에요. 그래서 아까도 제가 제 어렸을 때, 제 어머님을 예를 들었어요. 그런데 저희 어머님만 아니라, 제가 어렸을 때는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엄마들이 다 그랬어요. 자식들을 위해서 모든 것 바치셨어요. 그리고 제가 서강대학교에서 교수도 하고, 총장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서강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날 때 지방 학생들이 더 많았어요. 서울 학생들보다도. 서강 대학에 지방 학생들 다 보면 부모님들이 고생을 많이 하신 분들이에요. 자식들을 위해서 자식들이 공부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모든 거 희생해서 자식들을 서울에 보내서 공부시킨 거예요. 그러니까 제 시대에 제가 어렸을 때, 제 부모님들이 그렇게 땀을 흘리고, 피를 흘리고, 이렇게 노력을 하셨기 때문에, 오늘날에 대한민국이 있는 거예요. 오늘날에 대한민국이 지금 세계적인 경제 대국이 됐어요.

 


우리가 조그만 나라라고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세상이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무시하지 못해요. 지금 선진국들도 대한민국을 무시 못 해요. 왜냐하면 삼성 아니면, 하이닉스가 하루라도 쉴 것 같으면, 미국도 돌아가지 않고, 일본도 돌어가지 못 하고, 더 구체적으로는 미국 전투기도 뜨지 못해요. 삼성이 하루 놀고, 하이닉스 하루 놀 것 같으면... 우리 대한민국! 근데 이게 다 뭐냐 하면, 우리 부모님들이 고생 진탕하고 이러면서 컸기 때문에 이래요. 그리고 제가 서강대학에서 살면서 학생들 맞이하고 이럴 때 서강대학 바로 옆에 버스 종점 있었어요. 옛날에는 버스에 차장들이 있었습니다. 대게는 다 시골 아가씨들이에요. 시골 아가씨들이 와 가지고, 낮에 하루 종일 버스에서 손님들 태우고 이러면서 저녁에 12시쯤 돼서 와서, 버스 다 닦아야 돼요. 이런 다음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또 하루를 시작해요. 근데 이 아가씨들이 다 누나들이고 딸들이었어요. 이 누나들 덕분에 동생들이 공부를 하고, 엄마 아버지들이 식사를 할 수 있고 이랬었어요. 그런데 그분들 덕분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는 거에요. 사실은... 이래서 우리가 은혜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만큼 소중한 것인가. 그래서 우리가 쎌기도에서는 여기에 배은망덕한 것에 대해서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않습니까? 소홀히 한 것, 그래서 여기 우리가 아까 우리가 읽은 것 중에 예수님의 마음을 상해 드린 불법과 모독과 무관심 이거 지금 오늘 날에도 우리가 많이 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가 미사 참례하는 것이라든지, 영성체에 대해서 소홀히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에요? 내가 일상생활에서도 내 형제나 내 자매들에게 관심 두지 않고, 내가 결국은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어떤 때는 귀를 기울이는 것마저도 인색해요. 얘기하려고 그러면 안 듣고, 우리들 보세요. 모여서 얘기할 때도 엄마들 요새 카페 모여서 수다 많이 들죠. 수다 떨 때 어떻게 해요? 다들 서로 내 얘기만 하려고 그러지, 들으려고는 안 그러잖아요. 그 다음에 그 중에 왕초만 큰소리쳐요. 다른 사람이 얘기하면, 얘 내 얘기 좀 들어 봐, 또 누가 뭐라 그러면, 그거 말고, 어떤 사람은 그냥 듣다가 듣다가 졸려서 꾸벅꾸벅 하고 말이죠. 그런데 우리 시대의 특징이 뭐예요? 내 얘기만 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들으려고 하지를 않아요. 다른 사람의 대해서 관심 가져 주지 않는 거예요. 우리 영성체 지금 여기서 기도하는 거, 우리가 무관심한 거, 이것을 우리 일상생활하고 연결해서 할 것 같으면 예수님을 본받는다는 거, 성체 생활이 무엇인가, 우리들이 하루하루를 성체처럼 사는 것 같으면 이 세상에 이 평화 그대로 와요. 내가 다른 수단을 안 써도 내 집 안에서부터 평화가 올 수 있고, 우리 동네에서부터 평화가 올 수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들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안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지나치게, 보세요. 우리 옛날 같으면 방 두 칸만 있어도 만족하고 감사했어요. 지금은 40평 가지고도 모자란다고 그래요. 그리고 옛날에는 우리 형제들이 여러 형제들이 한방 쓰는 거,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어요. 지금 와서는 다 독방을 쓰면서도, 또 서재 따로 있어야 되고, 뭐 따로 있어야 되고, 제가 이런 말씀드린다고 해서, 우리가 굳이 옛날로 돌아가야지만 된다 이런 뜻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뭐냐면, 우리가 성체적으로 산다 하는 것은 뭐냐면, 내가 받는 은혜에 대해서 감사를 드릴 줄 알고, 고마운 줄 알면서, 거기에 응분에 대한 노력을 내 쪽도 하고.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받은 것만큼 관대한 마음 가지고서, 내놓을 수가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제가 미사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미사를 통해 가지고, 예수님께서 나한테 오신 것처럼 내가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에게 가는 거. 보세요. 이따가 영성체 할 때 여러 형제자매님께서 줄 서서 나오시면 제가 미사를 드리면서 영성체를 해 드릴 때, 그리스도의 몸 하면, 아멘하고, 받아들이시는 거지, 제가 여러 형제자매님들한테 왜 우느냐? 왜 그렇게 입고 오느냐? 이런 거 따지지 않아요. 왜냐하면 예수님 가시는데 저는 예수님 심부름하는 거에 지나지 않아요. 그럼 보세요. 예수님은 여러 형제자매님들 줄 서서 나오시면 절대로 거절하지 않으세요.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양치질을 했건, 안 했건, 상관없이 예수님은 가셔요. 여러 형제자매님들 손바닥이 더럽건, 안 더럽건 손 내밀면 예수님은 가셔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당신을 원하는 사람한테 누구한테든지 가세요. 따지지 않아요. 왜 손이 이렇게 더럽냐? 가끔가다 우리 한국 본당에서는 실수할 때가 있어요. 어떤 사람은 멋모르고 오른손을 올리면, 영세 언제 했어? 안 했어? 야단치죠. 왼손잡이는 어떻게 해요? 오른손을 올리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런데 왼손 오른손 때문에 영성체 안주는 신부님이 있어요. 이거 잘못된 거예요. 예수님은 누구한테나 가셔요. 당신을 원하는 사람한테는 누구든지 가셔요. 우리들도 마찬가지예요. 집에서도 미운 사람 쳐다보지도 않으려고 그래요. 이거 안 되죠. 영성체한 사람이면 누구한테든지 내가 갈 수 있어야 되고, 누구한테든지 얘기할 수가 있어야 돼요.

이러니까 이따 오후에는 제가 성심에 대해서 예수님 성심 성모님 성심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지만, 영성체 하는데 있어서 예수님의 마음 참 중요해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내가 예수님을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나한테 오셔요. 어떠한 처지에든지... 그런데 나는 내 친구를 만나든지, 누구를 누구를 만나든지, 누구한테서 전화가 올 때, 따져요. 신호가 올 것 같으면 내가 보기 싫은 사람 같으면, 덮어 버려요. 예수님께서는 나를 원하는 사람한테 누구한테든지 가세요. 그러니까 성체조배 하러 올 때마다 예수님은 언제든지 우리를 환영하셔요. 예수님 나의 모든 일을 들어 주시는 분이에요. 그리고 죄가 아닐 것 같으면, 모든 기도 다 들어 주시는데, 예수님께서 들어 주시는 때하고, 내가 바라는 때 하고는, 같지 않아요. 내가 돈 100만원 달라고 그랬을 때, 지금 당장 100만원 주시지 않아요. 그런데 조금 시간 지난 다음에는 아마 200만원 주실 거예요, 어떤 때는 500만원도 주셔요. 그런데 지금이 아니에요. 하느님의 때 하고, 내 때하고는 똑같지 않아요. 내가 기도하면서 하느님이 내가 죄 아닌 것을 원할 때는 하느님께서는 꼭 이루어 주셔요. 우리 이거 믿어야 돼요. 우리들이 어렸을 때 엄마나 아빠한테 돈 달라고 하면, 엄마 아버지가 들어 주시는데, 꼭 내가 꼭 청할 때 들어 주시는 것은 아니에요. 엄마 아버지 입장에서 볼 때, 엄마 아버지가 봉급을 타실 때라든지, 돈이 들어올 때, 이때 주시는 거 하고, 지금 당장 주시는 거, 같지가 않죠. 마찬가지예요. 그러면 우리가 성체성혈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까지도 우리한테 내 주시면서 사랑을 표시하셨어요.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어떤 방법으로 사랑하라 하고 있는가? 이거 우리가 생각을 좀 해 봐야 되겠습니다. 그럼 여기까지만 하고 오후에 예수성심 대축일하고 성모성심 축일을 가지고서,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삼종기도 하십시다.

(1강의 전문정리)

 

삼종기도

 

점심 12:00: 비빔밥

 

오후 강의: 오후1:00

2강의: 예수성심과 성모성심

점심 맛있게 드셨죠? . 제가 오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성심에 대한 거, 이것을 생각하면서 우리들의 하루하루의 생활을 들여다보자고, 제가 말씀드렸어요. 사실 우리 신앙생활은 주일날만 한다거나, 무슨 축일만 이렇게 맞이해서, 또 영명 축일, 생일날, 이런 때만 마지못해서 강조하는 거, 이거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매일매일이 중요한 거고,

매 순간이 중요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시작을 해 가지고 여러 형제자매님들께서 오늘 이 성당에 오신 것이 정말로 행복한 건지, 안 한 건지, 여기서부터 시작하세요. 여기 와서 행복하게 앉아 있으면, 아주 중요한 시작이 된 것이고, 오늘 하루 종일 축복 받으실 거예요.

 


그런데 이 성당에 아이고 내가 쟤 때문에 여기 왔어, 제가 하도 가자고 졸라서, 또 여기 아니면 내가 성모님한테 야단맞을 것 같고, 또 심한 사람은 내가 여기 안 가면 지옥 가는 거 아닐까, 이렇게 해서 여기 와 앉아 있으면, 그것은 행복한 거보다 두려운 거예요. 그런데 하느님이 우리를 초대하실 때는 우리 창세기 다 읽었잖아요? 하느님이 사람을 만들어 내시고, 보시니 참 좋았다. 그렇죠? 그럼 각자가 자기 이름 넣고 한번 그대로 해 보세요. 예를 들어서 한택이 만들어 내시고, 보시니 좋더라. 이러죠? 여러분들 각자가 자기 이름 넣고 한번 해 보세요. 시작! 안나를 만들어 내시고, 보시니 참 좋더라. 기분이 어떠세요? 좋아요. 좋지요? 이런 거 거짓말 아니에요. 하느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초대해 주신 거, 행복하라고 초대하셨지, 이 세상에 와서 고생만 하라고 초대하신 거, 절대로 아니에요. 그리고 이제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여러 형제자매님들 중에서 분명히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자매님들은 아마 세상에 나올 때 환영받지 못한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요새 아이들은 달라요. 요새 젊은이들 아들 딸 상관없이 좋아요. 근데 지금 여기 앉아 계신 분들 중에 제 생각에는 어떤 분들은 환영받지 못했어요. 아마 이 중에는 삼남이도 있을 거예요. 아마 엄마 아버지가 이 녀석은 꼭 남자다 하고, 삼남이라고 지었는데, 낳고 보니까 또 여자야, 그래서 엄마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기만 하고, 매일 시아버지 시어머니한테 미안하다고 그러고, 딸만 나오면 미안한 거예요. 그런데도 그 시대에는 그랬었어요. 아들을 선호하는 시대에 태어나신 분들은 지금 감사하셔야 돼요. 그때 못 날 수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태어나신 거는 하느님이 은총이에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그리고 우리가 또 사도신경 염할 때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이러죠? 전능하신 하느님이에요. 그런데 옛날 교리 배울 때에는 전능하신 것만 배우지 않고, 전선全善하신 것도 이야기해요. 요리문답 배울 때 하느님은 선하시냐? 이럴 때, 우리 대답이 전선하시다고 그래야 돼요. 선하신 분이에요. 전선하시다는 것이 무슨 뜻이에요? 나쁜 거 생각도 안 하시고, 우리들한테 나쁜 거, 절대로 주시지 않아요. 하느님께서 나한테 주시는 거,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선한 것들이에요.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하느님께서 나한테 주시는 거, 나쁜 거 하나도 안 주셔요. 선한 거예요. 다 좋은 것들이에요. 그럼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받는 거중에 버릴 것 하나도 없어요. 그럼 어떤 분이 지금 속으로 그럴 거예요. 주교님, 내가 지고 가는 십자가가 얼마나 큰지 아세요? 주교님 괜히 몰라서 그러죠. 맞아요. 십자가 지는 거 힘들어요. 그리고 고통스러워요. 그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십자가의 길을 가신 거예요. 우리가 이 십자가의 길을 보면은 끝에 가서 우리가 절망을 합니까? 희망을 갖습니까? 희망이요. 절망? 희망? 희망이에요. 우리 크리스천들한테는 죽음 자체가 끝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가 장례미사 드릴 때라든지 기일미사 드릴 때라는지, 감사송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감사송하는 신부님 뭐라고 그러냐면, 믿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라고 그래요, 이동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크리스천들한테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문 하나 열고서 들어가는 거예요. 다른 방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얼마 전에는 제가 저한테 한 달에 한 번씩 와서 영적 대화를 나누고 가시는 분들이 계셔요. 그런데 제가 그분들하고 금년 초에 만났을 때, 이상한 이야기를 했어요. 그 친구들한테 뭐라고 그랬냐면, 내가 언제 갈지 모르지만, 나 갔을 때는 장례 미사 없었으면 좋겠다. 제가 그러니깐 깜짝 놀랬어요. 왜 그러냐고. 오늘이 나한테 장례미사하는 날이라고 생각해 달라고. 그런데 이거 제가 농담으로 한 거 아니에요. 왜냐하면 제가 장례미사를 하든지, 신자 아닌 사람들이 장례 집에 가고, 이러면 항상 공통점이 뭐냐면, 다 슬픈 거 아니에요? 슬픈 거고, 우는 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엉엉 대고 우는 이거, 많잖아요? 소리 내서 우는 거, 그런데 우리 크리스찬들한테는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에요. 그런데 새로운 삶이 어떠한 삶이죠? 우리가 죽었다 부활하면 그 삶은 또 죽는 날이 있어요? 없어요? 아픈 날이 있습니까? 없어요? 약이 필요해요? 필요 없어요? 우리 죽었다가 부활하면, 예수님 부활하신 거하고 똑같아요. 그러니까 아픈 것도 없고, 약 먹을 필요도 없고, 병원에 갈 필요도 없고, 마냥 행복한 거예요. 어떻게 행복한 거예요? 죽어도 몰라요. 그렇게 행복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들 중에는 경험한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까 뭐예요? 희망이에요. 희망 사항이에요. 그런데 희망을 내가 붙들고 있는 거, 이거 믿지 않는 사람들한테는 바보 같을 수가 있어요. 죽은 다음에 어떻게 알아? 뭐 영혼이 있어? 하느님이 있어? 이 질문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뭐라고 대답하는지 아세요? 밑져야 본전이에요. 그렇잖아요? 지금 우리가 하는 일 믿고서 죽으면 우리 천당 갈 거 아니에요? 그런데 하느님이 없으면 다 허망한 거죠. 그런데 하느님이 계신데 믿지 않고서 죽으면 어떻게 돼요? 천당 간다는 보장을 못 받아요. 그러니까 밑져야 본전이라는 거, 지금 믿으면 죽은 다음에 절대로 손해 보지 않아요. 아무리 손해를 봐도 본전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들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게 농담 같지만, 우리 진심으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다 행복하기 위해서 지금 살잖아요? 그런데 하느님은 진짜 나한테 행복을 약속하시는 분이에요. 그러고서 파티마 성모님이 세 어린이들한테도 묵주기도 열심히 하라고 그러셨어요. 매일매일 열심히 하라고 그러셨어요. 그러면서 5월 달부터 10월 달까지 나타나셨는데, 마지막 달 10월 달에 유명한 태양의 기적도 있고, 장엄하게 성모님이 발현하셨잖아요. 그때 뭐라고 그랬어요? 나는 묵주기도의 모후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묵주 기도의 모후를 통하지 않고는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오전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믿어야 돼요. 그럼 믿어야 되는 것이 참 많은데, 우리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거, 하나 또 빼놓지 않고 믿어서 나한테 손해되는 거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나한테 도움이 되고, 나한테 더 큰 기쁨을 주고, 더 큰 행복을 주는 것이지, 물론 성모님 발현 하는 거는 사도신경처럼 꼭 믿어야 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성모님 발현하셨는데 믿어 가지고 손해 나는 거, 하나도 없어요. 나한테 더 보탬이 되고, 이러지. 손해나는 것은 없어요.

이렇다면 우리 오후에는 제가 성심에 대해서 두 가지 성심, 예수 성심하고 성모 성심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말씀 나누는 것인데, 이거 오전에 제가 예수님의 성체 성혈에 대해서 말씀 나눈 거에 이어 가는 거라고 이렇게 생각하면 좋아요. 오전에 제가 미사하고 연결하면서 예수님께서 왜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한테 주셨는가? 한마디로 얘기해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끔찍하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느님이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신 것을 예수님이라고 그래요. 우리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이름으로 그러잖아요?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이야기할 때는 이미 신학적으로 얘기하는 거예요. 성부나 성자나 성령이 세위가 다 영원하신 분들이에요. 성부 영원하신 것처럼 성자도 영원하시고, 성령도 영원하셔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성자이신데, 인간이 되시기 전에는 영원히 성부와 똑같이 영원히 계신 분이었었어요. 그런데 제2의 성자께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을 예수라고 그래요. 우리 예수님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아까 우리가 성체 강복 한 후에도 신부님이 찬미 할 때, 우리 같이 했어요. 이 성가책 맨 앞장이 있는 거 있죠. 하느님 찬미가. 지금도 한번 펴 보세요. 셋째 넷째 줄 보시면 같이 읽어 봐요.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찬미 받으소서, 이랬어요. 이거 참 중요한 거예요. 예수님이 한편으로는 참 하느님이셔요. 참 하느십니까 예수님은 우리는 4 복음을 다 읽어도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뭐냐 하면, 나 하느님 아버지와 같다. 나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왔다. 내가 말하는 거, 모든 거,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대로 말한다. 또 어디에서는 하느님이 나한테 원하시는 그대로 하고 있다. 이거 반복해서 말씀 하셔요. 그러면서 돌아가실 때쯤에서는 가장 두드러진 것이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까지가 뭐냐면, 예수님의 유언이나 마찬가지예요. 예수님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하고 저녁 식사를 하시면서 길게 말씀하신 것이 요한복음 13장에서 시작해서 17장까지 가는 거예요. 17장에서는 기도를 하셔요. 제자들 앞에서 하느님 아버지한테...

그러면 이 유언과 같은 말씀에서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수님 거듭거듭 우리한테 말씀하시는 것이 뭐냐 하면, 내가 간 다음에는 누구를 보내 주신다고 그래요?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과연 예수님 부활하신 다음에 승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에는 옛날처럼 예수님의 육체적으로 우리와 같이 계시지 않아요. 그런데 성령을 통해서 함께 계셔요. 지금 이 성당에서도 그렇고,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이따가 버스를 타고 가시든지, 자동차를 운전해 가시든지, 전철을 타고 가셔도, 거기 함께 가시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 육체로 오신 거보다는 성령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계셔요. 그러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상관없이 성령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셔요. 이거 우리들이 죽었다 살아나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을 통해서 존재하신다는 거, 우리가 경험적으로 우리가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워요.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아직 죽었다 살아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영혼의 체험은 지금 있어요. 보세요. 우리들 요새 우리 한국 사람들도 풍요로워져서 웬만한 집안은 다 외국 여행도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하고, 지금도 어떤 친구들은 외국에 계신 분들이 많을 거예요. 그런 때는 외국에 있는 친구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외국에 내 아들이 있는지 내 딸이 있는지 그러지 않으면 배우자 중에 내 남편 아니면 내 아내가 외국에 계실 때, 생일날이 올 것 같으면 어떻게 해요? 맛있는 거 먹으면서 생각나지 않아요? 아이고, 여보 당신 나하고 같이 있으면 이거 참 맛있게 먹었을 텐데, 이러면서 금슬이 좋으신 분들은 남편이나 아내가 좋아하는 거 먹으면서 생각을 하실 때, 어때요? 같이 계셔요? 안 계셔요? 대답해 봐요. 같이 계셔요? 안 계셔요? 같이 계시죠. 그거 영적으로 같이 있는 거예요. 내 육체는 지금 여기 한국에 있어도 그러니까 어떤 때 아주 갔다 오신 분들은 전화를 하면은 내가 같이 있었어, 이렇게 얘기도 해요. 그때 우리가 같이 있는 거, 체험을 해요. 가까우신 분들은 그 체험하는 거, 거짓말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게 꿈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영적인 거, 생각하는 거 많아요. 그리고 어떤 분은 교통사고 접촉 사고가 나 가지고 응급실에 들어갔어요. 응급실에 들어오면서 지금 우리 식구들이 어디 있는가 다 알아요. 전화 걸면서 내가 여기 있다고 이럴 때, 응급실에 뛰어 오시는 분은 어때요? 벌써 다 마음은 다 와 있어요. 그렇죠? 근데 자동차가 빨리 안가, 신호등이 자꾸 막혀요, 이럴 때 어때요? 내 마음은 병원에 가 있어요. 자동차는 더디고... 이래도 이게 뭐냐면 우리들이 영적으로는 같이 하는 거예요. 체험이에요. 실제로도 이것이 뭐냐면, 우리 천주교에서는 사람이 무엇이뇨? 질문할 때, 대답이 뭐예요? 사람은 영혼과 육신이 결합한 자니라, 이렇게 대답을 해요. 이거 상당히 중요한 말이에요.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아주 중요한 얘기예요. 우리 천주교에서는 사람이 무엇이냐, 이럴 때 영혼과 육신이 결합한 자요..

이럴 때 내가 만약 너한테 주교가 육신만 있고, 영혼이 없으면, 뭐가 돼요? 여러 형제자매님들 다 도망갈 거예요. 왜냐하면 송장이 앉아 있으니까. 또 거꾸로도 마찬가지예요. 이한택 주교가 육신은 없고, 영혼만 앉아 있다면, 이것도 무섭죠. 왜냐하면 귀신이니까. 그런데 늙은이라도 지금 영혼과 육신이 결합되어 있으니까, 여러 형제자매님들 저한테 주의집중하고, 지금 말씀드리는 거, 다 듣고 있어요. 근데 제가 영혼이 없다든지, 육신이 없으면, 무섭다고 그러고, 다 도망갈 거예요. 영혼과 육신이 결합한 거...

묵주기도 할 때도 봐요. 기쁨의 신비가 있고, 요새는 빛의 신비가 있고, 고통의 신비가 있고, 그 다음에 무슨 신비예요? 영광이 신비인데, 영광의 신비는 우리들이 경험하지 않은 거예요. 예수님 부활하신 거, 예수님 승천하신 거, 성령 강림하시는 거, 성모님이 하늘에 올림 받으신 거, 성모님께서 면류관 쓰시는 거, 이거다 우리들이 경험하는 거 아니에요. 경험 한 거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들이 다 받아들이는 거예요. 이러고 볼 거 같으면, 오전에 제가 말씀드린 거, 영성체가 성체가 우리한테 왜 중요하냐고 믿음을 바탕으로 해서 우리가 받아들인 거죠.

그러면 이제 지금 이 시간에 예수님의 성심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또 성모님의 성심에 대해서 언급을 하는 것도, 우리 일상생활하고 특별히 내가 신앙생활 하는 거,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고, 내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절대로 필요한 거를 제가 또 언급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다른 종교들도 다 마찬가지지만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교 천주교는 더 우리 신앙생활은 내 일상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제가 이제 예수님의 마음, 성모님의 마음을 언급해서 시작하고 싶은 게 뭐냐면, 예수님의 부활이에요. 우리 사도행전을 볼 것 같으면, 사도행전은 전체가 뭐냐 하면, 예수님 부활하신 다음에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셨는지, 그렇지 않으면 초대 기회가 어떻게 발전됐는지, 그것을 기록해 놓은 것이 사도행전이에요. 그래서 예수님 하늘로 올라 가시면서부터 시작해요. 예수님 승천하신 다음에는 제가 언급한 것처럼 육체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아요.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우리 함께 어떻게 계시는가? 성령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계셔요. 그럼 보세요. 우선 12사도 중에 유다스는 갔고, 11제자가 성모님하고 모여서 기도 하실 때, 성령께서 강림하셔요. 우리 사도행전을 보면, 불꽃 모양으로 내려왔다고도 그러고, 또 바람이 세게 부는 것처럼 오셨다고도 이러죠. 그런데 형태도 형태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령을 받으신 다음에 제자들 생활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그것만 읽을 때, 예수님 올리브 동산에서 기도를 하시고, 잠시 제자들 어떻게 다 흐트러져요. 예수님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 다들 도망가 버렸어요. 그렇죠? 이랬는데 베드로가 복음에 보면, 예수님 재판 받으시는데도 슬금슬금 들어가 보려고 그러다가, 주변 사람들이 당신도 저 사람하고 같이 있었어, 이러니까 베드로가 어떻게 했어요? 무서워서 아니라고 나 저 사람 모른다고 잡아뗐잖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내가 봤는데 당신 저 사람하고 같이 있었어, 그러니까 아니 난 죽어도 같이 안 있었어, 이럴 때 꼬끼오하고 닭이 울고 그러니까, 그때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아까 예수님하고 식사할 때, 예수님이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배반할 것이라는 것을, 예수님의 말씀하신 것이 생각이 나서 그때 정신이 번쩍 났죠. 그래서 울면서 예수님 바라보니까, 예수님 말씀은 안 하셨어도, 이 바보야, 여기 왜 따라왔어, 그러니까 베드로는 더 터졌어요. 그래서 울었어요. 예수님이 무서워서 베드로는 이랬었어요.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가 버렸었고, 그런데 성령을 받으신 다음에는 어떻게 됐어요? 베드로가 당당했었어요. 그리고 오히려 지도자들 앞에서 당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그 사람, 하느님 아버지가 살리셨어요. 살아났어요. 그리고 그분하고 우리들이 밥도 먹고, 마시기도 하고, 40일 동안 우리들이 같이 지냈어요. 우리들이 증인입니다. 그러니까 지도자들이 깜짝 놀래요. 아니 어부들이 어디서 저렇게 배웠지? 어부들이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지? 며칠 전만 해도 무서워서 문을 걸어 잠그고 도망가고, 숨어 다니고, 막 이랬는데, 어떻게 지금 저렇게 당당한가? 한 날은 여자들이 모여서 기도하는데 같이 들어가다가, 날 때부터 앉은뱅이를 고쳐 주잖아요. 베드로 하고 요한이 나는 당신에게 줄 돈도 없지만, 그러나 우리들이 가진 건 나누어 주겠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야기하니까, 당신이 일어나십시오. 일어나서 들것을 들고 가요. 이러니까 벌떡 일어나서 자기가 깔고 앉았던 냄새나는 돗자리 들고서 갔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놀랬어요. 그러면서 회당 안에서 저 사람이 진짜 거지 노릇하는 그 사람 아니야, 어떤 사람은 아니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본인이 나서서 맞다 내가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던 그 사람 맞다. 그런데 베드로가 들어와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를 고쳐 주었다. 그러니까 지도자들이 예수님 제자들 붙들어 놓고 그런 짓 하지 마라, 예수님의 이름 쓰지 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마라, 이러니까 그 전에는 무서워서 도망가고 이랬던 베드로 하고 요한이 그 지도자들 앞에서 뭐라 그랬어요? 우리들이 당신들의 말을 따르는 것이 옳은 건가?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이 본 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옳은 건가? 어떤 것이 진짜입니까? 그러니까 지도자들이 또 놀랐어요. 아니 저것들이 어디서 저런 용기가 있지? 그런데 용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지도자들도 겁이 날 정도예요. 너무나 자신만만 하니까. 너무나 당당하니까. 이게 뭐냐면, 부활하신 예수님 만난 제자들의 변화에요. 제자들이 이렇게 변화되었어요. 제가 지금 여기서 말씀드리는 우리들 신앙생활도 내가 신앙생활을 얼마만큼 소신을 갖고 하는가? 내가 예수님 믿는 거, 내가 성모님께 기도를 청하는 거, 오늘 아침에 우리 입으로 내가 그리스도의 몸, 아멘. 하고서 내가 받아들이는 거, 이거 어디까지나 내 소신이 있다. 내가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가? 내가 말하는 것처럼 내 생활에서도 그것을 믿는가?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많아요. 어려움들이 많은데, 우리 크리스찬들만이라도 복음적으로 살 것 같으면, 대한민국의 평화가 저절로 옵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에 많은 신자들이 우리 천주교 신자 개신교 신자 다 그리스도 믿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우리들이 복음을 고백을 해요. 신앙 고백을 하는데도 그래도 믿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세속적인 가치관에 흔들리고 있어요. 가치관이 많이 흔들리고 있어요. 제가 오늘 아침에도 국회를 언급했는데, 우리 대한민국 국회 300명 되는 분들 중에 크리스천들이 70%는 돼요. 천주교 신자하고 개신교 신자를 다 합쳐 보면 거기에다 불자들까지 합치면 80%가 넘어요. 근데 우리나라 법이 만들어지고 법이 바꿔지고 이러는 것을 볼 것 같으면, 궁극적으로 바꿔지는 거 불경처럼 부처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바꿔지는 것은 거의 보이지 않아요. 구체적인 예 한 가지만 들을 게요. 요새 와서 낙태법에 대해서 논란이 많아요. 사실 국회에서 우린 대한민국의 낙타법이 지금 현재 있고 아직 바꿔지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이것이 한 7년 전쯤에서 헌법재판소에 누군가가 이거를 검토해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우리나라 낙태법이 헌법에 맞는 거냐? 안 맞는 거냐? 그런데 헌법재판소에서 불일치 판정을 내렸어요. 그러니까 현재 대한민국의 낙태법이 대한민국 헌법 정신의 맞지 않는다. 그래서 국회에 헌법재판소가 3년을 주었어요. 3년 내로 대한민국의 낙태법을 바꿔라. 그러니까 헌법에 방침대로 바꿔라 이랬어요. 그런데 3년 동안 국회의원들이 저희들끼리 싸우느라고 주머니 때문에 싸우느라고 낙태법 건들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그 기간이 다 닥쳐 오니까, 사실 닥쳐 온 것이 아니라 지나갔어요. 3년이... 그러니까 헌법 불일치 판정이 나왔으니까 문제가 되는 게 뭐냐면, 의사 선생님들이나, 약을 파는 사람들이라든가, 그리고 어떤 때는 실제로다 낙태를 하고 싶은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나라 헌법 있으니까 무서워서 못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쩔쩔매고 몰래몰래 이 의사한테 가고 저 의사한테 가고 이러니까 의사는 수술을 해 주면서도 불안하고, 또 수술을 받는 사람도 불안하고, 이런 것이 문제가 되니까 3년 이상 훨씬 지나갔으니까, 야사하는 쪽에서 이거 바꾸자 이래서 헌법 불일치한 것을 일치한다고 그러면서 국회에서 지금 시안이 남았어요. 시안이 남았는데, 아직 의논도 제대로 못 헸고, 통과는 더더군다나 안 됐지요, 그러니까 요새 우리 천주교에서 주교님들이 조금 낙태법에 대해서 뽀글뽀글 말씀하시기 시작해요, 예를 들면 시안 나온 거중에 한 가지가 뭐냐 하면, 만삭의 여인도 낙태를 해도 된다 하는 것이 시안에 나와 있어요. 만삭이면 뭡니까? 내일모레면 이 녀석이 태중에서 나올 때가 됐어요. 그런데도 그 엄마가 원하면 낙태를 시켜 줄 수 있는 법이 지금 통과되려고 그래요. 우리 주교님들 입장에서 난리가 아니에요. 그렇죠? 만삭이면 뭐예요? 벌써 뱃속에만 있을 뿐이지, 완전한 인간이에요. 그런데 그 인간을 뱃속에 있다고 죽여 버려요. 뱃속에 있기 때문에 죽여도 괜찮다 이거예요. 말이 안 되니까, 이거 주교님들이 보글보글 말하기 시작했어요. 이거 절대로 우리 천주교에서는 못 한다. 개신교에서도 여기저기 교파 중의 몇 군데서는 우리 천주교하고 똑같게 절대로 안 된다. 이런 데가 있어요. 요런 거 얘기하는 거는 한 가지 예예요. 지금... 이거 말고도 우리 교회 정신에 어긋나는 거 참 많아요. 이거 자꾸 만들어 내고 있어요. 이런 것에 대해서 우리들이 얼마만큼 의식을 하고 있는가? 우리 천주교 신자들도 청와대까지 가서 미사 드려요. 국회에서도 미사 드리고 이러는데도, 우리나라 우리 교회 정신에 반대로 가는 것들이 지금 막 만들어지고 있어요. 지금 현재. 근데 우리 천주교 신자 국회의원들이 제가 예를 든 건 낙태법 한 가지인데, 이거 말고 국회가 아니고, 지금 어린이들이 가는 어린이집, 유치원에도 아주 무서운 것이 지금 막 전달되고 있어요. 이번에 투표할 때 교육감들 많이 뽑았죠? 이 교육감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이거 아셔야 돼요. 지금 이것은 국회에서 만드는 법이 아니고 실제로다 지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는 공문 중에 뭐가 있느냐 하면, 꼬마들한테 남자 여자 얘기하지 말라 그래요. 그리고서 영어로 다 젠더gender라는 것을 이야기해요.
젠더가 뭔지 아세요? 우리 휴대폰 충전할 때 꽂는 거 있지요. 우리 그거 보통 말로 뭐라 그래요? 암놈 숫놈이라고 그러죠. 그것을 암놈 숫놈이라고 귀에 거슬리는가 봐요. 그러니까 영어로 다 젠더 그래요. 유식하지요. 젠더라고 그러는데, 이 꼬마들한테 남자 여자를 가르치지 말고, 젠더를 가르치라고 그래요. 그거 바탕이 뭔지 아세요? 네가 남자 될 수도 있고, 여자 될 수도 있다, 이거예요. 지금까지는 뭡니까? 남자 여자는 누가 결정하는 거예요? 하느님이 결정하시는 거지요. 지금 꼬마들한테, 그 어린 꼬마들한테, 남자 여자는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거다, 이거예요. 참 무섭지 않아요? 근데 이게 얼마 전에 우리 국군에서도 있었어요. 어떤 장병 하나가 성형 수술을 했어요. 남자 군인인데 여자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부대에서는 불명예 제대로 시켰어요. 이거 말도 안 된다. 너 어떻게 휴가 중에 수술을 해 가지고 남잔데 여자가 됐느냐고, 불명예 제대를 시켰어요. 그랬더니 이 사람이 재판을 걸었어요 나는 불명예 제대한 것이 억울하다. 명예 제대해야 되겠다. 그런데 재판에서 어떻게 됐냐 하면 이겼어요. 그러니까 이거 우리 천주교회 입장에선 그리스도교 입장에서 볼 때는 이거 말도 안 되는 거지요. 우리나라 판사님들은 이 사람이 옳다고 그러고, 나라에서 벌금 물었어요. 그리고 명예 제대시켜 주었고, 이게 대한민국이 변화되는 거예요. 변화되는 거 중에 하나 보세요. 그저께 우리 투표가 끝났지요. 경기도지사가 누굽니까? 추미애. 이 분이 경기도지사가 됐어요. 이분이 국회의원 하면서 뭐를 부르짖었는지 아세요? 여러 형제자매님들 중에 모르는 분들 참 많을 거예요. 이거 말도 안 된다, 이러면서 막 주장하신 분이에요. 뭐냐면, 우리나라 집값이 또 막 올라가고 이러니까, 그 해결하는 방법이 뭐냐면, 부동산 나라에서 가져야 된다. 그러니까 땅이고 집이고 나라 꺼다. 우리 이렇게 바꾸자. 이거 주장하시는 분이에요. 그분이 지금 경기도지사가 됐어요. 경기도에 많은 신자분들이 그분을 찍었어요. 그분이 이쁘다고 찍었어요.

 

이런 것이 그러니까 뭐냐 하면, 우리 교회의 정신하고, 내가 영성체를 하면서 예수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하느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이거 우리 헤아려야 돼요. 일상생활에서... 그러니까 내가 하느님 입으로만 믿나이다 하고, 고백하는 거 하고, 내가 우리가 미사 시작할 때마다 무슨 기도로 시작해요? 고백의 기도로 시작해요. 고백의 기도에서는 뭐라 그러냐면,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뭐라 그랬어요? 죄를 많이 지었으며, 이러죠? 저는 이것을 저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전체를, 오늘도 제가 이 자리에서 여러 형제자매님들께 여기서 강론을 하고 있어요. 이따 제가 주교관에, 제 집에 돌아간 다음에는, 이따 저녁에 제가 한번 주님 앞에서 되짚어 봐요. 되짚어 봐야 돼요. 뭘 짚어 봐야 돼요? 아까 내가 신자들 앞에서 내가 내 생각을 어떻게 전달했는지, 내가 신자들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내가 행동은 무슨 행동을 했는지, 이거 한번 살펴봐야지, 제가 잠을 잘 잘 수 있어요. 제 생각이 하느님 생각하고 비슷했는지, 내가 말하는 것이 예수님 말씀하시는 거 하고 비슷했는지,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처럼 말하려고 노력했는지, 내가 행동하는 것이 예수님하고 비슷하려고 노력했는지, 이거 반성해 봐야 돼요. 그래야지 제가 발 뻗고 잘 수가 있어요. 그래야지 제가 코 드렁드렁 골면서 잘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말씀을 하면서도 제가 생각하는 거, 신자 아닌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거, 신자 아닌 사람처럼 하고 행동하는 것인지, 신자 아닌 사람처럼 했으면, 제가 이따 저녁에 잠들기 전에 주님께서 저한테 뭐라고 그러셨겠어요? 한택아 참 말 잘 하더라.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거짓말을 잘하니? 내가 네 마음을 다 들여다보고 있는데, 어떻게 너 그런 거짓말을 뻔뻔스럽게 그렇게 해! 주님께서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실 거예요. 그럼 제가 발 뻗고 잘 수가 있어요? 어림도 없어요.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저하고 똑같은 것이 뭐냐면, 제가 주교 되기 전에 저는 뭐예요? 여러 형제자매님들하고 똑같게 크리스천이에요. 여러 형제자매님들하고 똑같게 제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거, 이게 제가 주교 된 거보다 더 중요한 거예요. 더 근본적인 거예요. 그리고 이 점은 여러 형제자매님들하고 저하고 똑같아요. 주교이기 때문에 거짓말해도 된다? 주교이니까 엉터리 생각을 해도 괜찮다? 이런 거 없어요. 제가 주교라도 하느님 앞에서는 여러 형제자매님들하고 똑같은게 뭐예요? 하느님의 자녀예요. 하느님의 자녀에 지나지 않아요. 제가 주교 되는 것은 제가 신자들 안에서 봉사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 봉사를 하기 위해서 주교가 된 거지, 신자 입장에서는 제가 주교 되기 우선적으로 더 생각해야 되는 것은 나도 크리스천이에요. 크리스천이라는 것이 아주 중요한 거예요. 제가 여러 형제자매님들만큼 크리스천 생활을 안 하면, 주교 되는 거 껍데기예요. 이러니까 여러 형제자매님들하고 저하고 똑같게 생각해 봐야 되는 것이 뭐냐면, 내가 크리스천으로서 생각하는 것이 뭔가, 그리고 예수 성심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봐야 돼요. 예수 성심...

 

그러면 여러 형제자매님들께서 다시 한번 매일 미사 예수성심 대축일 들여다봅시다. 77페이지 입당송 한번 같이 읽어 보겠어요.
주님의 마음속 계획은 대대로 이어지네. 죽음에서 목숨을 건지시고, 굶주릴 때 먹여 살리시네.
보세요. 아까 성체성사를 말씀드렸어요. 아까 제가 복음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 했는데, 성체성혈 대축일의 복음을 보면, 요한복음 6장에 나와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다. 나를 먹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면서 6장 다른 면을 볼 것 같으면, 여러분들의 조상이 먹은 만나는 먹고서도 다시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이 빵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를 주시면서 우리를 살려 주셨어요. 그것이 우리가 지금 읽은 입당송하고 연결이 되는 거예요. 죽음에서 목숨을 건지시고 굶주릴 때에 먹여 살리시네. 그러면 우리가 밥을 굶을 것 같으면, 육체는 죽을지 몰라요. 그런데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마실 것 같으면 육체적으로 내가 고생할 줄 몰라도, 영적으로는 내가 사는 것, 영원히 죽지 않는 거, 이것을 말씀하시는데, 이 세상에 살면서 예수님은 당신이 육신을 완전히 내놓으시면서 까지도 우리를 살리신다고 그랬어요. 예수님의 마음이에요.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에요.

또 그 다음에 연결해 가지고, 우리가 또 한 가지 읽어 봐야 될 것은 복음 환호송 80페이지에 있는 거, 같이 한번 읽어 보겠어요.
주님의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뭐냐면, 나에게 배워라 예요.
오전에 제가 말씀했어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근데 지금 여기서는 나에게 배워라, 이렇게 말씀하셔요.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말씀하신 거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아까 제가 강론 시작하면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님은 누구냐 하면, 영원하신 하느님하고 똑같은 분이신데, 이 분이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성가책 앞부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셔요. 참 인간이라는 것이 뭐예요? 예수님이 고통을 우리와 똑같게 받으셨어요. 완전한 인간이세요. 보세요. 예수님 공생활하신 거, 가르치시고, 강론하시고, 기적도 일으키시고, 이런 것이 몇 년 동안 하셨어요? 3년인데, 햇수로 3년이에요. 그러니까 달수로 따지면 훨씬 짧아요. 이 짧은 동안을 그렇게 사시기 위해서 몇 년 동안을 나자렛에서 사셨죠? 30! 30년을 하느님이신데, 30년 동안을 마리아하고 요셉 성인하고, 나자렛 동네 사람들한테서 인간 교육을 받으셨어요.
우리 현대 말로 하면 이게 뭐예요? 삼성이라든가, 하이닉스라든가, 이런데 취직하면 먼저 새 사원들이 무슨 교육을 받아요? 연수를 가지요. 연수를 가면, 어떤 때는 길게는 몇 달 동안, 짧게는 몇 주 동안, 훈련을 받아야 돼요. 그런데 이런 큰 회사에서도 1년 이상 연수 안 시켜요. 대개 6개월이에요. 길어야 6개월. 그런데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면서도 불구하고 인간 교육을 몇 년 동안 받으셨어요? 30! 그런데 우리들은 무슨 계획이든지 짧게 짧게 받으려고, 속성으로 받으려고 그래요. 근데 예수님은 하느님이신데도 인간 교육을 30년을 받으셨어요.

그리고 보세요. 예수님 임신 하신 거, 성모님이 예수님 임신하신 것이 임신한 축일이 무슨 축일이죠? 325일 축일이에요. 성모님 가브리엘 천사 만나셔서 인사 받으신 게, 325일이에요. 예수님을 탄생하신 것이 1225일이죠. 그러면 3월부터 12월까지 하면 몇 달이에요? 9개월이죠. 이거 뭘 얘기하는 거예요? 예수님 성모님 태중의 계신 게 몇 개월이에요? 9개월이에요. 천사가 예수님 하느님이니까 쑥 빠질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예수님, 성모님 태중에 9개월 동안 계셨어요. 우리 교회에서도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325일이 수태고지 축일이에요.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1225일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참 인간이라는 것을 강조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러면 우리한테 왜 인간으로 오셨는가? 우리 인간들이 어떤 때는 둔한 것 같지만, 어떤 때는 잘난 치를 잘해요. 그래서 구약 성경만 가지고서는 너무 잘난 척하고, 어떤 때는 겸손한 사람한테는 어쩔 줄을 몰라요. 어떻게 사는 것이 인생길인지, 이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하느님이 참 인간이 되셔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셔서 당신이 인간의 길을 가시는데, 모범적으로 보여 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가신 길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겠는가? 이 질문을 할 때, 우리 한국사람들은  대게 엄마들이 뭐라 그래요? 고생 고생하다가 막걸리 한잔하면서 이놈의 팔자야, 신세 한탄을 할 때가 있지요. 이럴 때 예수님께서는 나를 봐라, 이러시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묵주 기도를 할 때는 성모님을 봐라, 이래요.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서의 이 길을 가셨는데,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는 참 어머니신 동시에 또 신학자들이 뭐라 그러냐 하면은 예수님의 가장 위대한 제자였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 중에 가장 훌륭한 제자가 성모 마리아예요. 그래서 개신교에서는 복음에서 얘기가 있었지요. 어떤 때 성모님하고 친척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왔어요. 예수님께서 열심히 강론을 하고 있으니까 문간에 서 계셨었어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고 예수님 강론을 듣던 사람들을 자꾸 쳐다보고, 선생님! 여기 어머니께서 오셨어요. 자꾸 방해를 노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그러셨어요?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이때 아무 소리도 못 하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 마태오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이러니까 개신교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봐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참 어머니가 아니다. 이러고서 이야기를 해요. 우리 천주교에서는 뭐라 그래요? 거꾸로 마리아만큼 하느님의 뜻을 따른 사람은, 마리아만큼 하느님의 말씀을 지킨 사람은, 누가 있는가? 나와 보라고 그래라. 마리아가 최고예요. 이걸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성모님하고 예수님하고는 말은 하지 않아도 눈만 껌뻑해도 금방 알아들으시고, 손가락질 하나만 해도 금방 알아듣고 이러시는 분들예요. 그러니까 성모님은 예수님이 지금 강론하고 계시는데, 방해 놓는 거 아녜요. 그냥 기다리세요. 기다리시는 거예요.

 

그리고 보세요. 묵주기도 빛의 신비 2단이 뭐죠?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술의 기적이죠?! 물을 술로 바꾸신 거, 그때 요한복음에서 우리들이 들을 때는 어머니 같아요. 성모님 예수님한테 가서 뭐라고 그러셨어요? 이 집에 술이 떨어졌는데, 그러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그러셨어요? 그거 나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그래도 성모님은 일꾼들한테 뭐라 그랬어요?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그러셨어요. 우리 복음만 읽으면 이거 말발이 안서는 거예요. 예수님은 내 일이 아니라고 그러셨는데, 성모님은 저분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그러니까, 저도 이거 연결이 안 되는 거 같지만, 그런데 이한택 주교가 뭐라고 그러는 줄 알아요? 성모님하고 예수님하고 이렇게 윙크를 했어요. 복음에는 윙크한 거 안 나왔어요. 탁 눈짓하면 알았지! 그러니까 예수님도 알았어요! 그러니까 예수님하고 성모님하고는 이거 다 통하는 거예요. 이만큼 예수님은 참 인간이셨어요. 참 하느님이신 것만 아니고, 참 인간이시고, 기적을 행하신 것은 하느님의 역할을 하셨어요. 기적을 행하신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뭐냐면, 마귀 들린 천사, 마귀 들린 사람들을 내쫓는 거, 마귀들도 예수님 말씀 들으면 나가죠. 다른 데서는 뭐예요? 풍파가 일어날 때, 예수님이 가라앉으라고 하니까 풍파가 가라앉지 않아요?! 이거 다 하느님의 능력을 가지고 보여 주신 거예요. 반면에 또 참 사람의 모습도보여 주셨어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면서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 인간적으로 우리한테 오셔서 인생길을 가르쳐 주실 뿐만 아니라 보여 주셨어요. 당신 스스로의 인생을 보여 주시면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또 고통을 어떻게 만나야 되는지, 우리 인생에 있어서 고통 없이는 행복이 있을 수 없다는 것도 가르쳐 주신 거예요. 그런데 이 십자가의 길이 얼마나 힘든 겁니까? 우리들이 그러죠저 예수님이니까 당했지, 우리들은 나는 못해. 이러죠? 예수님이 뭐라 그래요? 누구든지 이 길을 마음만 먹으면 따라올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거는 이 십자가의 길은 끝이 있어요. 이거 잊지 말아야 돼요. 그런데 십자가의 길을 가야지만, 영원한 행복의 문을 들어갈 수가 있는 거예요.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님께서 우리한테 이 길을 가르쳐 주셨고,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에요. 우리들이 이 마음을 갖고서 살아간다고 할 것 같으면, 지금 우리들이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살아날 수 있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극복할 수가 있어요. 힘은 들어도 가능한 거예요.

제가 끝으로 아까 말씀드린 거, 두 가지 인용을 한 거예요. 하나는 창세기에서, 하나는 미카서에서. 창세기 5장을 볼 것 같으면, 에녹이라는 성인 이야기가 나와요. 그렇죠? 에녹이 천당을 갔어요. 죽지 않고... 그런데 에녹이 무슨 영웅적인 일을 해서 천당 갔나요?
복음에서는 뭐라 그러냐면, 하느님과 함께 걸어갔다고 그래요. 이주교가 자리에 앉아 계신 여러 형제자매님들 다 제가 볼 때, 에녹 같으신 분들이에요. 영웅적인 일을 하신 분은 한 분도 안 계신 거 같아요. 그런데 제가 볼 때는 다들 에녹 같으신 분들, 그러니까 이 파주 구석까지도 오셨어요. 이 성당에... 그러니까 여러 형제자매님들 다 에녹처럼 천당에 가실 수 있는 분들이에요. 아멘! 하느님과 함께 걸으셨으니까 여기까지 오셨잖아요. 이 성당까지... 그러니까 여러 형제자매님들 천당 갈 수 있어요. 또 저 뒤에 있는 프란치스코하고 히아친타하고 이 두 어린이 성인들이, 당신 나보다 더 많이 배웠잖아, 당신 나보다 더 예쁘게 입었잖아, 당신 나보다 더 공부 많이 하셨는데, 천당 가야지, 이거 말씀하셔요.

 

두 번째는 뭐냐 하면, 미카 예언서에서 뭐라고 그래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게 뭐냐면, 하느님께서 에녹하고 똑같아요. 겸손하게 하느님 같이 따르라고, 하느님과 같이 걸어가라고, 그러면 여러 형제자매님들 요새 살림하시기 참 힘들죠? 물가도 자꾸 올라가고, 어려운 분들이 참 많아요. 그런데 이 가운데서도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양심껏 성실하게 지금 살아오시잖아요. 오늘 이 성당에 오신 것도 여기 오실 의미가 없는데도 다 들 오셨잖아요. 이게 뭐예요? 나름대로 잘 살아 보겠다고, 성실하게 살아 보겠다고, 여기 오신 거 아니에요?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거예요. 여러 형제자매님들 오늘 스스로 이 미사 끝나고 가실 때, 어깨 탁탁 두드리면서 오늘 수고 많이 했다, 잘했다, 이러시면서 돌아가시면 좋겠어요. 아멘! 하느님께서 아주 어여삐 보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 형제자매님들 절대로 실망하시면 안 되고, 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더라 하는 존재예요. 다른 형제들이나 미워하고, 다른 사람들이나 볼품없다고 그래도, 하느님께서는 나를 보시니 좋더라 한다. 얼마나 멋져요. 우리들이 꼬마 어렸을 때 뒤땅뒤땅 걷던 꼬마가 아이고 예뻐라 한택이가 걸어, 이러죠. 하느님이 우리들 보시고, 우리 다 기특하게 보시고, 대단하게 보시고, 사랑하셔요. 그런데 우리들 스스로가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못 해, 그런데 하느님의 사진보고 침 뱉으면 이거 잘하는 거예요? 우리들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누구 모상대로 만들어졌어요? 하느님의 모상대로 만들어졌어요. 내가 하느님의 사진예요. 근데 나를 보고, 이 사진을 보고, 못난이라고 그러면, 누구 욕하는 거예요? 하느님 욕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들 행복해야 돼요. 그리고 좀 고생스러울 때 기도할 때 그러세요 주님, 좀 힘들어요. 그래도 나 끝까지 가겠어요. 도와주세요. 함께 해 주세요. 이러면 주님께서 반드시 여러 형제자매님들 손잡아 주세요. 여기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예수님 마음인데, 성모님 마음은 이제 시간상 못 하겠고, 아까 우리가 성가 부른 데에서 후렴만 같이 읽으면, 에녹 성인과 같고, 미카서 예수님과 비슷해요. 아까 우리가 반복해서 노래 부른 것이 뭐냐 하면, 한 생을 주님 위해 바치신 어머니, 아드님이 가신 길 함께 걸으셨네. 그러니까 우리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도 걷고, 나자렛 생활도 함께 하고, 이러면 우리들도 성모님처럼 축복받고,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올림을 받을 것입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강의 전문정리)

 

 

202666일 첫토요일 성모신심미사

입당성가

 

독서창세12,1-7

 

복음: 마태2,13-15.19-23

강론: 이한수 안토니오 신부님

찬미예수님,

(강론 전문을 들어보세요.)

강론전문 녹음

 

성찬전례

 

티없으신 마리아성심께 바치는 봉헌기도

 

성 미카엘 대천사께 드리는 기도

 

미사후 이한택 요셉주교님 안수

 

 

 

an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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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장정윤maria | 작성시간 26.06.13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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