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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은행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갑자기‘아! 순형이 통장 이 은행에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순형이 통장확인을 해보았습니다. 주민등록 번호를 묻더군요. 아이들 주민등록 번호는 늘 머릿속에 외우고 있습니다.
“낙성대 지점에 3천 5백원이 남아있네요” 낙성대! ? 순형이 서울대 입학 시켜놓고 자주 듣던 이름, 이젠 너무 멀리 느껴지고 안타까운 슬픔만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하숙을 구할 때 낙성대 근처는 보증금 얼마에 월세 얼마라는 말을 듣고 “아빠 낙성대나 서울대역 근처는 처음에 보증금으로 몇천만원을 내야 된다고 하네요”하며 감히 그쪽에서 하숙을 구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던 순형이. 물론 일찍부터 선배가 쓰던 방을 물려 받기로 하기도 했지만 지하철역과 가깝고 환경이 조금 더 좋은 낙성대나 서울대입구역 근처에 방을 구하고 싶은 욕심이 왜 없었겠습니까? (아직 글로 다 쓰진 못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고요) 친구 어머니가 순형이가 구했다는 동네의 하숙비가 저렴하다고 서울에 다니러 가셨다가 여러가지 면에서 불편하다고 다른 곳에 하숙을 구하고 오셨었습니다.
그래도 순형이는 좋아하기만 했습니다. 2월초 서울에 가서 그 댁 주인 아주머니를 만나고 온 날도 “주인 아주머니가 너무 좋은 분이세요. 저 말고 하숙생이 한명 더 있는 데 그 사람은 고시생인데 선배 형도 거의 같이 식사를 못했데요. 그리고 빈 방이 두 개(?) 더 있는데 그 방은 자취생용이라네요” 라고 이야기하던 기억이 납니다.
본과에 가면 최근 수년간 의대생 정원이 계속 줄었기 때문에 기숙사 방 걱정이 없으므로 예과 2 학년 때 하숙문화를 한번 체험해 보는 것도 좋겠다면서 새롭게 시작될 하숙생활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선배의 몇 가지 집기도 거의 얻다시피 했다고 참 좋아했었는 데… 만약 지금 순형이가 살아 있다면 엄마는 그 집이 궁금하고 밥은 잘 주는지? 주인 아주머니는 친절하신지? 매일 안 해도 되는 고민을 만들어 하면서 순형이를 그리며 살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 서울에 한 번 가보려고 저를 졸랐을 겁니다.
기숙사비에 비해서는 그래도 비싼 하숙비를 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엄마아빠에게 미안해 하다가 방학 때 아르바이트 해서 장만해두고 흐뭇해하던 제 아이가 하늘나라 좋은 곳에 있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참 그립습니다
낙성대 은행 지점에 3천 5백원이 남아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 남은 돈이 너무 작아 보이고 그 작은 돈도 귀하게 쓰던 순형이가 안쓰러워 가슴속이 제 의지와 다르게 저리더군요. 이가 떨리는 걸 보고 창구의 은행직원이 저를 안쓰러워하더군요. 정말 이제는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슬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는데… 순형이 일을 당하고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오늘 점심 먹으러 포항 시내쪽으로 나가려는데 시내에 여기저기 새로운 아파트 분양 광고와 모델 하우스가 보이더군요. 작년부터 서서히 우리도 조금 넓은 집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여 아내와 언제 기회가 되면 조금 넓은 집으로 옮겨보는 것도 생각해 보자고 얘기했었습니다.
이젠 의미없는 일이 되엇다는 생각과 함께 널은 집에 살아보고 싶은 욕심이 다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순형이의 자취가 남아있는 이 집에서 오래오래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번은 겪어야 할 슬픔 순형이가 가장 아끼던 휴대폰을 해지하면 순형이와 조금 더 멀어진 듯한 기분이 들 것 같아 차일피일 마루다 오늘 유예기간인 3개월을 꽉 채우고 순형이 휴대폰을 해지했습니다. 종일 가슴속에 슬픔이 꽉 차서 뻐근한 느낌으로 지냈습니다 휴대폰을 해지하러 가는 길에 비가 부슬부슬 오더군요.밝은 분위기의 SK 지점도 제겐 우중충하게 느껴졌습니다. 010-7143-1063 이젠 눌러보아야 “일시 정지된 번호입니다”라는 메시지 조차 나오지 않을 번호. 아직도 순형이 생각이 나면 문자를 보낸다는 친구들도 이제는 보내도 순형이 폰이라는 자취조차 없어진 번호, 제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 중 4번째에 있는 번호. 이젠 정말로 저희 곁을 떠난 번호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순형이 주민등록번호를 두 번 불러주어야 했습니다 아침에 은행에서 오후에 SK 지점에서.. 불과 몇 달전만해도 너무나 자랑스럽게 외우고 불러주던 번호였었는데… 부모가 휴대폰을 해지하려면 호적등본을 가져가야 하더군요 순형이 이름에 “제적”이라는 도장이 찍힌 호적등본만 보면 가슴이 찢기는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엄마는 엄청나게 많은 규칙을 정했습니다. 공부하는 시간에 쓰면 안되고,학교에 가져가서도 안되고,… 결국 주말에 잠시쓸 수 있는 정도의 사용허가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 핸드폰으로 문자 메세지를 하는 모습을 본 엄마는 바로 사용정지를 시켰습니다. 아무래도 공부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될 것 같더군요 제 생각에도.다른 아이들 같으면 따지기도 하고 대들기도 했을 것 같은데 정말 순형이는 엄마의 조치에 아무 말도 못하고 따랐습니다 오히려 엄마가 스트레스 받게 한 것 때문에 주눅이 들어 그냥 사용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수능 본 후에 사용하자는 부모의 의견에 두 말 않고 따라주었습니다 결국 수능 시험이 끝나고 나서야 SK 대리점에 가서 다시 개통해 주었고 수능 끝난 후 새로 휴대폰을 산 친구들의 기계보다 훨씬 기능이 떨어지는(문자치기가 굉장히 불편했다고 하더군요) 핸드폰을 대학 입학식 날까지 사용했었습니다. 입학식날 테크노마트에 가서 제일 비싸고 좋은 기종의 폰을 사주었습니다 저는 입학식 몇 일 전부터 순형이에게 가장 적합한 폰을 사주고 싶어 이것저것 알아보았고 결국 스포츠를 좋아하는 순형이에게 DMB폰 을 사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판단이 옳아 작년 WBC 야구를 그 핸드폰으로 무척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작년 여름 마을버스에서 흘리고 내려 밤새 마음 고생하다가 다음날 친절한 버스 기사님 덕분에 찾은 적이 있다고 일기에 적었었습니다.. 입학 후 얼마 안되어 화장실에 지갑을 두고 나오는 바람에 엄마가 속상해 했던 기억 때문에 핸드폰 잃어버린 걸 엄마에게 알리지 않고 싶었겠지만 하루에도 한 두 번씩은 꼭 전화를 하는 엄마 아빠가 전화가 안되면 그것 때문에 걱정할 것이기에 풀이 죽은 목소리로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를 하던 순형이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시립니다. 그 밤 순형이는 마을버스 마지막 차가 올 때까지 정류장에서 모든 버스 기사님들께 종점 가시거든 핸드폰 좀 찾아봐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잠을 잤습니다. 어제 점심식사를 외부에서 오신 분들과 같이 했습니다. 저에 대한 일을 전혀 모르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식사 중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고 그 중 한 분의 아이가 올해 대학입학한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그리고 대학가기까지 그리고 대학입한 후에도 엄마에게 때를 쓰기도 하고 대들기도 하여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며 자식이 부모의 선생이라고 하더군요, 자식을 통해 참을성을 배운다고 ..
정말 왜 주님은 단 한번도 그런 문제로 속을 썩히지 않은 아이를 주셔서 그런 말을 들으며 다시 한번 슬퍼해야만 하는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순형이는 참 특이 했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그토록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알면 한번쯤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면 대들만도 했을텐데 다른 애들도 엄마에겐 대들기도 한다던데 …왜 그렇게 무조건 복종만 했었는지? 엄하게 키우지도 않았었는데… 순형이가 가고 없는 지금 너무나 그게 미안하고 안쓰럽기만 합니다. 아직은 순형이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나는 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에서 멀어질까봐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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