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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신라)

옥저, 말갈, 예맥, 낙랑

작성자정성일|작성시간09.10.28|조회수157 목록 댓글 0


옥저, 말갈, 예맥, 낙랑


① 옥저(沃沮)


옥저(沃沮)를 만주어로 해석하여 산림(山林)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옥저(沃沮)의 땅은 한문의 뜻대로 해석할 때 가장 근접하게 이해할 수 있다.

옥(沃)에는 ①물대다 ②기름지다 ③관개하다는 뜻이 있고, 저(沮)에는 ①막히다 ②저지하다 ③방해하다의 뜻이 있다.

옥저(沃沮)는 산령(山嶺)이나 강물의 방해를 받아 적이 나아가기 어려워 방어하기 쉽고, 땅은 비옥하여 농사(특히 논농사)를 짓기 좋은 땅이라는 지명(地名)을 나타내는 용어로 추정된다.


② 말갈(靺鞨)


말갈(靺鞨)의 한자를 해석해 보면 말(靺, 북방민족이름, 오랑캐이름, 버선)과 갈(鞨, 북방민족이름, 오랑캐이름, 가죽신)로 나뉘는데, 가죽으로 신발을 해서 입는 사람들이라는 뜻 이외에 다른 뜻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러나 신라사초에는 말갈(靺鞨)이라 적지 않고 말갈(末曷)이라 적고 있으므로 풀어보면, 말(末)은 ①끝 ②중요하지 않는 부분 ③신하 ④백성의 뜻이, 갈(曷) ①어찌하여 ②언제 ③누가의 뜻이므로 합하여 풀이해 보면 언제부터인가 어찌해서 살게 된 백성이라는 뜻이다.


말갈(靺鞨)에 공통적으로 혁(革, 가죽)이 붙는 것으로 보아 특히, 유목을 주업으로 하고 있는 백성들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말갈(靺鞨)이라는 종족은 항상 유목생활만 하였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토지가 없는 하위 계급이거나, 도망한 자들이 무리지어 떠돌아다닌 것이지, 그들이 강성할 때는 농사를 짓고 풍족한 생활을 누렸던 것으로 보인다.


≪비교≫ 고구려사초 신라가 말갈 정벌을 의논하는 기사 발췌

羅議遠征末曷 雄宣曰 “末曷本無定居 故以高句麗之大 猶置度外 况我小國 安可空國 遠征哉 濟倭之伺欠 一不可也 所謂末曷云者 多扶余楽浪 則與麗失和 二不可也”

(신)라는 말갈(末曷)을 원정(遠征)하는 일을 의논하였는데, 웅선(雄宣)이 말하기를 “말갈은 본래 한 곳에 머물러 살지 않아서, 고구려는 대국임에도 오히려 도외(度外, 마음에 두지 아니함)시 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작은 나라인데 어찌 나라를 비우고 (말갈을) 원정할 수 있겠습니까? (백)제와 왜가 틈을 노리고 있음이 불가한 첫 번째의 이유이고, 소위 말갈이라 불리는 자들은 부여(扶余)와 낙랑(楽浪)사람들이 많아서, 고구려와 화평이 깨질 수 있으니 불가한 두 번째 이유입니다.”라고 하였다.


③ 예맥(濊貊)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예맥(濊貊)은 말갈과 상반되는 생활방식에 의한 개념으로, 예는 예(濊, 물이 깊다, 더럽다) 또는 예(穢, 더럽다, 거칠다, 잡초)로 해석해서는 안 되고, 파자(破字)해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예(濊)를 파자하면 수(水, 물)와 세(歲, 해)로 나누어지므로 세세대로 물가에 의지해서 산다는 뜻이고, 예(穢)를 파자하면 화(禾, 벼)와 세(歲, 해)로 나누어지므로 (벼)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풀이된다. 부여와 백제에게 예(濊, 穢)라는 말이 따라 붙는 것은 이들이 주로 농사를 위주로 하여 생활하였음을 의미한다.


맥(貊, 북방종족의 이름, 맹수의 이름)이란 일반적으로 고구려를 지칭하는데 고구려의 주식이 보리(麥)과 기장(黍)이었는데 맥(麥, 보리)의 음(音)을 차용했는지도 모르겠다. 고구려사초(략)에는 양맥곡(梁貊谷)이라는 지명이 등장하는데 삼국유사에서 인용한 삼국사(三國史)의 기록과 다름이 있다.


고구려사초(략)의 양맥곡(梁貊谷)의 지명은 위만조선의 평양성과 가깝고, 삼국사(三國史)의 평양은 고구려의 평양성이다. 그러므로 공통점은 있는 것이다.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후 예맥의 이름이 사라지는 것은 나라의 멸망으로 농토를 상실하게 백성들이 화전을 일구거나 떠돌아다니는 난민 신세로 전락하게 되므로 말갈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은 아닐까?


≪비교≫ 삼국유사 마한(馬韓) 기사 발췌

三國史云 溟州 古穢國 野人耕田 得穢王印 獻之 又春州 古牛首州 古貊國 又或云今朔州 是貊國 或平壤城爲貊國

삼국사(三國史)에는 “명주(溟州)는 옛날의 예국(穢國)이었다. 야인(野人)이 밭을 갈다가 예왕(穢王)의 도장을 얻어서 바쳤다. 또 춘주(春州)는 옛날의 우수주(牛首州)인데 곧 옛날의 맥국(貊國)이다. 혹은 지금의 삭주(朔州)가 바로 맥국(貊國)이다. 혹은 평양성(平壤城)이 맥국이다.”라고 하였다.


④ 낙랑(樂浪)


낙랑(樂浪)에 대한 연원은 자세하지 않으며 회남자(淮南子)와 논어정의(論語正義)에는 중화(中華)와 구별하였으므로, 본래 우리민족을 부르던 이름의 하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漢)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위만)조선의 점령지역에 통치목적의 군(郡)의 이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의 군현의 이름으로도 사용되었다.


일본의 초도(初都)는 나라(奈良)인데, 낙랑(樂浪)과 음(音)이 비슷하다는 학자의 의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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