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국(召文國)의 부활
① 북사(北史) 열전(列傳) 신라 기사 발췌
或稱魏將毋丘儉討高麗破之 奔沃沮 其後復歸故國 有留者 遂爲新羅 亦曰斯盧 其人雜有華夏高麗百濟之屬 〈其人雜有華夏高麗百濟之屬 諸本 雜訛作辯 據隋書卷八一新羅傳改〉 兼有沃沮不耐韓濊之地 其王本百濟人 自海逃入新羅 遂王其國
일설에 의하면 위(魏)나라 장수 관구검(毋丘儉)이 고(구)려를 토벌하여 격파하니, (고구려인들은) 옥저(沃沮)로 도망갔다가 그 뒤 다시 고국(故國)으로 돌아갔는데, (이 때에 따라가지 않고) 남아 있던 자들이 마침내 신라(新羅)를 세웠다고 한다. 또한 사로(斯盧)라고도 한다. 그 나라사람들은 화하(華夏, 중국), 고(구)려, 백제인들이 뒤섞여 있으며〈其人雜有華夏高麗百濟之屬 제본(諸本, 여러 책)에는 잡(雜, 섞이다)이 변(辯, 변별되다)으로 그릇되게 기록되어 있다. 수서 권81 신라전(隋書卷八一新羅傳)에 의하여 고쳤다.〉, 옥저(沃沮), 불내(不耐), 한(韓), 예(濊)의 땅에 함께 살고 있다. 그 나라(신라)의 왕은 본래 백제(百濟)사람으로 바다로부터 도망하여 신라로 들어가 마침내 그 나라의 왕이 되었다.
② 고구려사초 신라가 말갈 정벌을 의논하는 기사 발췌
羅議遠征末曷 雄宣曰 “末曷本無定居 故以高句麗之大 猶置度外 况我小國 安可空國 遠征哉 濟倭之伺欠 一不可也 所謂末曷云者 多扶余楽浪 則與麗失和 二不可也”
(신)라는 말갈(末曷)을 원정(遠征)하는 일을 의논하였는데, 웅선(雄宣)이 말하기를 “말갈은 본래 한 곳에 머물러 살지 않아서, 고구려는 대국임에도 오히려 도외(度外, 마음에 두지 아니함)시 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작은 나라인데 어찌 나라를 비우고 (말갈을) 원정할 수 있겠습니까? (백)제와 왜가 틈을 노리고 있음이 불가한 첫 번째의 이유이고, 소위 말갈이라 불리는 자들은 부여(扶余)와 낙랑(楽浪)사람들이 많아서, 고구려와 화평이 깨질 수 있으니 불가한 두 번째 이유입니다.”라고 하였다.
③ 세기(世己)의 신법(新法) 십이장(十二章)
我國眞骨之法 眞骨帝后 生子女曰眞骨 今以玉帽仇道系 爲眞骨二流 是用天神召文之說 而非古眞骨之義也 自今唯以神后子女 不問父品 而定爲眞骨 而無使煩論諸系 而相惑生弊 四也
우리나라의 진골(眞骨)의 법은 진골인 왕과 후가 낳은 아들과 딸을 진골이라 하였는데, 오늘날 옥모(玉帽)와 구도(仇道) 계통을 진골의 두 가지 흐름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는 천신(天神) 소문(召文)의 설(說)을 쓰는 것이지 옛날 진골의 의미가 아닙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오직 신후(神后, 광명)의 자녀만이 그 아비의 골품을 묻지 아니하고 진골로 정하여, 번거로이 모든 계통으로 하여금 번거로운 논의를 함이 없음으로 서로 의심함이 생겨나는 폐단이 생겼는데 이것이 넷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