帝元上帝于老太子之子也 母曰助賁王女命元宮主也 命元初爲沾解帝權妻 生白海公主 味鄒帝卽位 下嫁于于老太子 夢見大鹿而生帝 在胎十五月 狀皃俊異 及長明仁 有膽畧 味鄒仙帝嘗抱于膝上 而朝諸侯 見其有不整冠者 則指之而正之 仙帝顧謂阿爾兮天后 曰 “此兒必興吾家也” 生才三歲 而于老太子殉國 仙帝憐之 育以其子 與基臨帝 同長於宮中 光明天后年長于帝五歲 基臨帝少一歲 帝以母行 皆敬事之 光明愛其知禮 寵幸之 外事多委之 與基臨帝爲左右輔臣 及光明后代阿爾兮 承眞骨正統 以摠執政事 帝入帷幄 參劃大政 光明以帝年長于基臨 欲先立之 而阿爾兮意在基臨 故難之 帝曰 “臣非龍才 無勞聖心” 光明賢之 乃以基臨爲副君 及阿爾兮崩 光明勸儒禮禪退 而立基臨 基臨知 后意在帝 引帝爲副君 而累欲禪退 帝固辭之 光明怒 曰 “朕欲與汝 謁廟久矣 汝何不忠之甚乎” 帝不得已受禪 乃白馬之車日也 命羘尺大母 行白馬大祭 于楊山
왕은 원상(元上)제 우로(于老)태자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조분(助賁)왕의 딸 명원(命元)궁주다. 명원궁주는 처음에 첨해(沾解)제의 권처가 되어 백해(白海)궁주를 낳았고, 미추(味鄒)제가 즉위하자 우로태자에게 하가(下嫁, 아랫사람에게 시집감)하였다. 꿈에 대록(大鹿, 큰 사슴)을 보고 왕을 낳았는데, 어머니의 뱃속에 15달을 있었다. 상모(狀皃, 얼굴의 생김새)가 준이(俊異, 재능이 뛰어나 보통사람과 다름)하며, 담략(膽畧, 담력과 지략, 대담하고 꾀가 많음)이 있었다. 미추선제가 일찍이 무릎위에 앉히고 제후(諸侯)들과 조회를 보았는데, 관모를 바로하지 않는 자를 보고 가리켜서 바로하게 하였다. 선제가 아이혜(阿爾兮) 천후(天后)를 돌아보며 일러 말하기를 “이 아이는 반드시 우리집안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하였다. 태어나서 겨우 3살 때 우로태자가 나라를 위하여 죽으니 선제가 가엽게 여겨 자신의 아들로 기르니, 기림(基臨)제와 같이 궁중에서 컸다. 광명(光明)천후는 왕보다 5살 연상이고, 기림제는 1살 연하였다. 왕은 어머니가 하는 일은 모두 공경하게 섬겼다. 광명이 예절을 앎을 사랑하여 총행(寵幸, 특별한 은총)하고 외사(外事, 외부에 관한 사건이나 일, 외국에 관계되는 사건이나 일)를 위임함이 많았다. 기림제와 더불어 좌우보신(左右輔臣)으로 삼았다. 광명후가 아이혜를 대신하여 진골정통(眞骨正統)을 승계하자 정사를 총괄하여 집정함으로써, 왕이 유악(帷幄, 참모, 謀臣)으로 들어와 대정(大政, 해마다 유월과 섣달에 벼슬아치의 성적에 따라, 벼슬을 떼거나 더 좋은 데로 올리던 일, 천하의 정치)에 참획(參劃, 계획에 참여함)하였다. 광명은 왕이 기림보다 나이가 많으므로, 먼저 왕으로 세우고자 하였다. 아이혜의 의중이 기림에게 있으므로 어려워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신은 용재(龍才, 왕의 재목)가 아닙니다. 성심(聖心, 임금의 마음)을 힘들어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광명이 현명하다 하여 이에 기림을 부군(副君)으로 삼았다. 아이혜후가 죽음에 이르자 광명이 유례(儒禮)에게 선위하여 물러나기를 권하여, 기림을 세웠다. 기림은 후(后)의 뜻이 왕에게 있음을 알고 왕을 끌어 부군으로 삼고, 누차로 선위하여 물러나고자 하였다. 왕이 고사(固辭)하자, 광명이 화를 내어 말하기를 “짐은 너와 함께 조상의 사당을 알현하기를 원한 지 오래인데, 너는 어찌 불충함이 심(甚)하느냐?”라고 하였다. 왕이 부득이 선양을 받아들였는데, 곧 백마의 수레가 내려온 날(白馬之車日, 5월5일)이다. 장척(羘尺)대모에게 명하여 양산(楊山)에서 백마대제(白馬大祭)를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