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기행을 마치고 세상사는 이야기
2002년 초 여름
여름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남산의 자태는 아름다웠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산을 걸으면서 느끼는 기분은 천년의 역사를
아우르는듯했다.
아침 8시 새로 생긴 길을 차를 달려 까루프에 도착했다. 정문앞에는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고, 차를 대자마자 생명의 숲 윤 석 국장이
막 차에서 내렸다. 잠시 후 멀리 아진 아파트쪽에서 걸어오는 손장섭
기자의 모습이 보였다.
여느때와 달리 가족없이 혼자서 걸어오고 있었다. 봄이 엄마가 허리가
아파 혼자서 왔단다. 이어서 정훈씨랑 정숙씨가 합류하고 각자 두대의
차에 나눠타고 오늘 기행을 이끌어 주실 이재호 선생님 댁을 향해갔다.
아침햇살이 맑은 일요일 아침 가족들과 떠나는 역사 기행은 아주 매력
적이고 다가오는 아침 풍경은 새색시의 볼마냥 부드러웠다.
불국사역을 지나 화랑 교육원앞을 지나자 앞서가던 선두차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을안의 좁은 길을 들어서자 잠시 후 단아한 옛 한옥
한채가 눈앞에 나타났다. 집주인은 다소 마른듯한 체형에 편안한 인상
으로 우리를 맞았다. 눈이 선한 이재호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의 집
은 왜관에서 가지고온 한옥한채가 가지런히 자리잡고 있는 시골집이었다.
애들은 마당 넓은 집에서 즐겁게 뛰고 우린 대청마루에 앉아 뒷편으로 난
문을 통해 대숲의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설래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날 차
비를 차렸다.
일행은 먼저 경애왕릉을 향했다. 가는 길에 선생님이 큰길과 작은 길중
어느 길을 택하겠냐고 하셔서 작은 길이 좋다고 말씀드렸더니 작은 골목
길로 길을 인도해주셨다.
경애왕. 견훤의 칼날에 스러지던 그 신라의 마지막왕, 천년을 마치고
스러져가던 왕의 모습이 주변의 소나무 숲에 가려 슬프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냉골이 시작되는 곳에 자리한 왕릉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일요일인데도 바로 옆의 삼릉으로는 많은 이들이 등산복차림으로 산을
오르는데 슬픈 역사를 지닌 경애왕릉옆으로는 아무도 뵈질 않았다.
왕릉에서 이재호 선생님의 역사관을 들을 수 있었다. 경애왕릉을 돌아
삼릉으로 향했다. 삼릉은 세개의 능이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보는 각도
에 따라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멀리 바라다 보이는 망산과 함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삼릉을 돌아 내려와 돌아나와 삼층석탑을 향해 갔다. 초기 신라의 왕궁터
에서 김생이 쓴 비석이 있던 거북상을 돌아서 삼층석탑에 다았다. 석탑
은 비록 완전히 온전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아직도 신라 토공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한 자세로 균형미를 갖고 있었다. 탑은 왜 홀수로 되어있을까
4층탑은 왜 없는 것일까. 몇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탑을 돌아서 내려와
점심을 먹고 우리는 불골로 향했다. 남산의 동사면인 불골에는 부처같지
않은 부처가 있다고 한다. 어떤 학자들은 선덕여왕이라고들 하는
신라여인의 자태를 닮은 부처의 모습....
거기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향토사학자인 분을 만났다. 열심히
부처의 방향을 재고 있고, 조사하던 그분은 이곳에서만 6개월째라고 한다.
논문을 쓰고 계신데 이 불상이 부처도 선덕여왕도 아닌 새로운 학설이란다
토속신앙의 일종이고 중국에서 내려온 신앙이라고 말한다. 자세한 말은
꺼리지만 몇가지 증거를 대면서 설명했다. 제법 논쟁의 시간이 흘렀다.
다음에 긴 이야기를 나누기로하고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 다음 만날날을
기약하면서 불골을 떠나 탑골로 향했다. 탑골에서 우리는 사면 불을 보고
신라 역사의 진정 오랜 역사의 흐름을 느끼면서 기행을 마쳤다.
뒷 부분이 빈약한 것은 지금 수술준비가 다됐다는 간호사의 말이 있어서
다음번에 좀더 자세히 적기로 한다.
빨리 수술실로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