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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님이 주장하는 재사, 그리고 재사의 아들이 왕위를 이엇다는 것은 절대적 어불성설

작성자훈군(訓君)|작성시간14.03.28|조회수115 목록 댓글 15

 

고구려사초/략에 근거하든, 삼국사기에 근거하든 문제가 되는 것은 모본왕과 궁의 사이에 계보입니다.

 

1대 추모왕 : 해씨

 

2대 유리왕 : 해씨

 

3대 대무신왕 : 해씨

 

4대 민중왕 : 해씨

 

5대 모본왕 : 해씨

 

 

6대 태조왕 : 고씨

 

 

즉, 5대와 6대의 왕통은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1대 추모왕의 성이 해씨였으나 그 아들들에게는 다른 성씨를 준 것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 중에 고씨는 계루부인과 그 동생 계황후 두 명의 아들들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태조왕은 즉, 고씨계통인 계루부인의 후예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서를 쭉 읽어보면 고루태자의 후예가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서 왕과 같은 후예라고 하니

 

즉, 태조왕은 고루태자의 후예인 것입니다.

 

 

 

여기서 도출될 수 있는 결론은

 

(1) 고씨의 선조는 계루부인과 그 동생 계황후의 후손들이고, 대표적인 후예는 고루태자이다.

 

(2) 고구려의 고씨왕가는 고루태자의 후예이다.

 

(3) 태조대왕은 고루태자의 후예이다.

 

 

이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사태자가 문제가 됩니다.

 

재사라는 인물이 3명이 등장하는데, 한 명은 유리왕의 아들 재사, 한 명은 대무신왕의 아들 재사, 그리고 추모왕의 망명동지 재사

 

그런데 이중에 추모왕의 망명동지 재사를 제외하면 두 명이 남습니다.

 

유리왕의 아들 재사, 대무신왕의 아들 재사.

 

 

그런데 여기에서 다시 문제가 생깁니다.

 

후한서 121년에 왕이 죽었다는 기록이지요. 그런데, 재사대왕이 신유년 121년에 죽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왕은 누구냐입니다.

 

그리고 태조왕 궁의 아버지 또한 재사입니다. 그런데 재사는 고루태자의 후예가 되어야합니다.

 

그런데 고루태자의 후예인 재사가 없습니다.

 

그럼 과연 어떤 재사가 고루태자의 아들인지, 그리고 죽은 왕은 누구인지 밝혀져야 합니다.

 

 

가장 타당성있는 추론을 보여드리자면

 

 

(5) 모본왕 -> (6) 재사대왕, 유리왕의 아들, 대무신왕의 서자, AD.121년 사망 -> (7) 신명선왕, 고루태자의 아들.

 

-> (8) 태조대왕

 

이 계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 그 사이에 수많은 계보가 생겨날 수 있는지라

 

어떤 것을 생각하시든 자유이실 수 있지만

 

고씨계인 이상, 고루 -> 재사 -> 태조의 계보만큼은 변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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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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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라디오 | 작성시간 14.03.28 번역은 님이 정확하네요..
  • 작성자훈군(訓君)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3.28 호화부인이 또 고씨? 도대체 뭔소리를 자꾸 하는건지... 고구려사초/략이나 추모경을 보신건지.. 금와는 김씨, 대소도 김씨 혹은 분립된 성씨라면 대씨(帶氏)가 되고, 고야는 대소의 딸이기 때문에 김씨 혹은 대씨일 수밖에 없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라디오 | 작성시간 14.03.28 대소가 대씨라는 근거는 없어요..

    대소가 이름일텐데.. 대씨가 성이 되나요?
  • 답댓글 작성자훈군(訓君)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3.29 고구려사초/략에 대소에 관한 부분에서 대불이 대소의 형제거나 혹은 대소의 형 대백의 아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씨(帶氏), 즉 부여에서도 분봉 성씨 제도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작성자라디오 | 작성시간 14.03.30 고루 - (.....) - 고주리.

    고주리가 고루의 손자가 된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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