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純王記
옥저(沃沮)와 예국(濊國)의 일은 중원의 사서에만 기록이 일부 있고 반도의 사서에는 보이지 않아 고찰(考察)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전해내려오는 전설이나 설화,풍습 혹은 민담중에서 믿을만한 것들을 채록(採錄)하여 기록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옥저가 본래 옛적 함길도의 대다수를 차지했다고는 하나 확실하지는 않아. 또한 중원의 사서에 임금이 없고 군장(君長)이 중심이 되어 통치했다고 하니 이로 미루어 짐작해 보고자 한다. 안변(安邊)땅에 혼자 농사를 짓고 나무를 캐며 나이 50이 되도록 혼자사는 노인이 있었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피곤해서 잠을 청하였는데 이상한 검은 빛을 한 큰 새가 저만치 뒷산을 한참을 울며 도는 것을 보았다. 놀라서 깨어보니 꿈이었다. 날이 밝아도 꿈의 형상이 쉬이 지워지지 않아 평상시 친분이 있는 복자(卜者)를 찾아가 물어보니 이와같이 말했다. ‘옛부터 꿈에 기이한 형상이나 짐승이 나타난다는 것은 반드시 귀한 자식이 태어날 조짐이나 징조였소. 공(公)이 지금껏 일생을 성실히 살아오면서도 불행히 혼사도 치르지 못하고 변변한 자식하나 없이 늙어가고 있으니 하늘이 뒤늦게나마 복을 내리시려나보오’ 하였다. 이에 노인이 손을 내저으며 ‘내가 이미 나이 50을 넘겨 늙었고 변변한 여인하나 지금껏 인연이 없었는데 무슨 자손을 이제와 본단말인가. 아무래도 헛된 꿈 같으니 공연히 나로 하여금 쓸데없는 기대를 하게하지 말라’ 하였다.
이후 하루는 나무를 하러 산에 오르는데 날씨가 이전과 같지않아 기이하였고 몹시도 추웠다. 행여 산에서 길을 일을까 두려워 더 어두워지기전에 내려가려 하였는데 어디선가 또 이상하고 기이한 소리를 들었다. 이에 노인이 거듭 두려워서 ‘일전에는 꿈에 기이한 형상이 내 마음을 어지럽히더니 지금은 꿈이 아닌 다만 현실이 미천한 중생의 마음을 어지럽히는구나. 공연히 신경쓰지말고 어서 내려가지 아니함만 못하더다’ 거듭 길을 재촉하였다. 헌데 이때 이상한 바람이 일진광풍으로 몰아치고 날도 어둑해졌는데 어디선가 기이한 소리가 계속 들리며 노인의 마음을 어지럽게 헀다. 하는수없이 산을 더 내려가지 못하고 왔던길을 돌아 올라가려는데 바위틈에서 이상한 섬광같은게 보였다. 기이하고 놀라 다가가보니 한 어린아이가 강보에 싸여 그곳에서 울고있었다. 대충봐도 태어난지 백일이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다. 이에 노인이 놀라 ‘아무래도 자식을 키울 도리가 없는 부모가 이와같이 내버린 것이 분명하니 이 아이를 지금 내가 거두지 않는다면 반드시 천신이 진노할 것이다’ 하고 아이를 거두어 집으로 데려왔다.
아이를 데리고 와서 정성껏 씻기고 새옷을 구해와 지어 입히니 아이에게서 바로 기이한 광채가 났다. 보아하니 사내는 아니고 계집아이라 이름을 연화(蓮華)라 짓코 키우기로 결심하였다.
연화가 어느덧 자라 십오세가 되었는데 이때부터 부친의 농사일을 도왔다. 이때 이미 연화의 부친은 나이 60을 넘겨 더 이상 농사일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집안 삼시세끼나 겨우 면할 간단한 곡식을 재배하고 가축을 키우며 살았는데 나무짐을 더 이상 할수 없게되어 생계를 이을만한 팔거리가 없었다. 이에 부녀(父女)가 함께 앞으로의 일을 근심하다 연화가 문득 지혜를 발휘하여 말하기를 ‘제가 종종 옥저의 곳곳을 돌아보니 대다수의 백성들이 소규모의 농사를 짓거나 나무짐을 해와 장에 내다파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종종 시전(市廛)을 돌아보매 들판에는 많은 야채와 나물이 나서 그것을 재배하면 충분한 수확과 소득을 보일수 있을것인데 어찌 아무도 이를 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소녀가 한번 나서보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노인이 당치도 않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보통의 사람손으로 자기네 식구 먹을 식량조차 농사지어 먹기가 쉽지 않은데 어디서 따로 논,밭을 일구어 야채농사를 짓는단말이냐. 그런 방편이 진작에 있다면 흉년에 굶어죽는이 아무도 없었을터이니 너는 어린나이에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면서 공연한일에 나서지말라‘ 하였다. 이에 연화가 부친의 근심하는뜻을 거듭 알아 일단 간곡한 말로 설득한뒤 이후 직접 종자를 구하러 나섰다.
이후 배추,무,미나리,부추,오이,호박,당근,감자,죽순등 구할수 있는 나물과 야채종자 십여종을 구해와 그것을 간단한 텃밭을 만들어 일구니 이내 곧 수확을 볼수 있었다. 하지만 노인은 더더욱 당치 않다는 듯 ’그렇게 많은 야채를 작은밭에 심어 대체 무엇을 할수 있을것이며 더 많은 수확을 보자면 당연히 밭의 넓이도 커야할터인데 나는 이미 늙었고 너는 어린아이라 그 넓은 논밭을 돌볼 여력조차 되지 못할 것이다. 더 이상 역부족인 일을 벌이지 말라.‘ 하였다.
이때 종종 먼곳에시 피난온 여인들이 있었는데 개중에는 옥저(沃沮)의 남부에서 난(亂)을 피해 온 이들이나 이중 상당수가 예국(濊國)에서 피난온 이들이었다. 연화가 직접 그중 한 무리를 만나보니 이름이 대충 숙희(淑喜),지연(知演),애옥(哀玉),정화(精華),승진(承眞),경민(敬敏)이란 여인들이었다. 연화가 처음 이들을 만나본뒤 이해할수 없다는 듯 묻기를 ’내가 듣기로 예국은 남부에 위치해 있어 옥저보다 땅이 비옥하고 진작에 사람의 법도가 잡혀져있으 뭇 백성들이 사는데 근심할마가 그리 많지 않다고 들었소. 헌데 근래에는 오히려 동예(東濊)에서 피난오는 젊은 여인들이 적지 않으니 대체 어떤 곡절이 있는것이오 ?‘ 하였다.
이에 이중 우두머리격인 숙희는 나이 스물 여섯으로 무리중 나이가 가장 많았는데 연화의 말을 듣고 슬피울며 이와같이 말했다. ’동예가 원래 예부터 옛 조선(朝鮮)의 법도를 사모하여 부모형제간 화목하고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으며 힘약하고 부모잃은 여인은 먼저 나서서 도와주는등 그 법도가 평안하였나이다. 일국(一國)을 이루지 않고도 작은 부락의 군장(君長)이나 장수(將帥)로 하여금 법도를 다스리게 하면 함부로 사람을 해치는 이가 없어 한 마을이 평온하여 작게는 수백에서 크게는 일천인의 무리도 크나큰 분란없이 화목하게 잘 살수 있었습니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사로(斯盧)의 흉악한 무리들이 남쪽에서 들고 일어나 그 세력을 확장하며 마침내 예국(濊國)의 영토를 핍박하고 나이어린 여인과 부모잃은 고아들을 함부로 잡아가고 해치니 더 이상 예족(濊族)이 살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하였나이다. 이에 저희 예인(濊人)들은 다만 옛 조선의 법도를 보전하면서 예족의 순혈을 살리고자 이리 달아날 수밖에 없었으니 혹 낭자께서 살 방도를 아신다면 방편을 일러주소서.‘ 하였다. 이에 연화가 이야기를 듣고 기가막혀 탄식하며 말하기를 ’머나먼 남쪽에 흉포한 무리들이 살아 그 법도와 기강이 짐승만도 못하다는 이야긴 나도 귀동냥으로 들었소만 이제 이 지경이 될줄은 몰랐구려. 이제 흉악한 사로의 무리들이 예국의 온전한 법도를 해치며 함부로 겁박해오니 앞으로 천하의 일이 어찌 돌아갈지 실로 근심되오이다. 네가 비록 힘이 없사오나 멀리서 피난온 귀하고도 딱하신 손님들을 외면할 수는 없사오나 내 힘닿는데까지 도와드리리다.‘ 하였다.
이후 자신이 지금까지 야채와 나물을 심어오던 경작한 논과 밭의 넓이를 넓혀 스스로 ’채소전‘을 짓고 동예에서 피난온 여인 십여인을 고용하며 함께 농사를 지어 살고자 했다. 그 아비가 연화의 이런일을 벌임을 보고 기막혀 꾸짖기를 ’네 어찌 이렇게 갈수록 일을 크게 벌려 늙은 아비를 근심케 하느냐. 그저 우리 삼시세끼 먹고살 방편만 세우면 다른 것은 더 근심할일이 없는데, 오히려 멀리 남쪽에서 귀순해온 여인들을 거두며 장사와 농사의 일을 더 크게 벌리고 있으니 장차 어찌하려 이러느냐.‘ 하였다. 이에 연화가 답하기를 ’사람이 살아가는데 어찌 나 혼자 잘먹고 잘살고자 하면 법도가 바로설수 있겠소이까. 예부터 사람이 사는데 혼자서 살아가는 방도는 없고 결국 여럿이 부대끼며 서로의 장사와 재주와 물산을 나눌 때 더 큰 공동체가 만들어 바로설수 있다 하였으니 아버님께선 너무 근심마소서.‘ 하였다. 이에 부친이 거듭 탄식하며 ’내 처음 이 아이를 거둘 때 비록 기이한일으 몇 번 있어 반드시 범상치 않은 아이로 자라날것이라 근심하였으나 일이 이토록 크게 벌어질줄은 몰랐구나. 항차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ㅇ니가.‘ 그저 탄식할뿐이었다. 연화의 채소전에서 심는 물산이 어느덧 십여종에 달하며 그 분량이 어느덧 백근도 넘으니 옥저의 곳곳은 물론 남부의 사로나 구려(句麗) 낙랑과 현토는 물론 마한에서도 사람이 와서 사가기에 이르니 다들 실로 ’기이한 인재가 태어났도다‘ 탄복하였다.
연화의 부친은 나이 60을 훨씬 넘겨 칠순이 다 되기전에 세상을 떠났다. 안타까이 그 성과 이름이 세상에 전해지지 않으나 나이 70을 넘기기전에 세상을 떠난 것이 분명하고 이때 연화의 나이 스무살이었다. 지금껏 연화가 야채농사를 짓고 그것을 팔아 생계와 장사를 해온것만은 분명한데 막상 부친이 떠나고 세상에 혼자 남으니 지금까지 하던 농사와 장사를 정리할 생각을 하였다. 동예에서 피난온 여인 20여인이 지금껏 장사와 채소일을 도와주었는데 이제와 모든 것을 접고자하니 여인들이 이해할수 없다며 물었다.
먼저 가장 나이가 많고 제일먼저 연화에게 합류한 숙희와 지연등이 이해할수 없다며 말했다. ’저희가 지금까지 낭자를 도와 십여종도 넘는 야채를 심고 그 수익과 소득이 지금껏 만만찮았는데 이제와 장사를 접는다니 실로 이해할수 없습니다. 낭자께서 어린 나이에 연로하신 부친을 잃어 여러 가지로 실의에 빠지심은 이해할수 잇으나 낭자 스스로 지금까지 3-4년을 일구어온 기업을 이제야 정리하심이 아깝지 않으십니까 ?‘ 하니 오히려 연화가 반박하여 말하기를 ’내 애초에 부친의 만류함을 듣지않고 능력외에 지나치게 일을 크게 벌인일을 후회할 따름입니다. 지금껏 낭자들이 내 일을 도와 사업이 여기에 이르렀으나 이제 더 이상 버틸힘이 없습니다. 다만 그동안 배워온 기술들이 있으니 각자 야채심어 재배하고 장사하는 기술을 가져가 익히시면 낭자들은 충분히 자신들의 먹고살거리는 마련할수 있을터이니 너무 근심 마소서.‘ 하였다.
다시 애옥과 정화등이 여전히 이해할수 없다는 듯 말하기를 ’지금껏 낭자께서 이 기업을 일구신바가 적지 않아 이제 먼나라에까지 이곳에서 재배한 작물을 수출하기에 이르렀고 동예의 여인들이 잇달아 투항하여 이곳에서 새로이 살길을 찾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동예는 남방의 흉악한 도적떼에게 짖밟혀 이전의 평화와 번영을 찾기 어려움에 이르렀고 다만 동예의 불쌍한 여인들이 모두 이곳에 몰려들어 새로운 살 터전을 찾고자 하는데, 이제 낭자께서 모든 것을 접으시면 이제 대체 어쩌자는것입니까.‘ 하였다. 연화가 거듭 손을 내저으며 탄식하며 말하기를 ’다만 내 이상의 능력을 감당하기 쉽지 않아 이리나오는 것이 나를 다만 더 이상 힘겹게 하지 말아주길 바랄 따름입니다. 정히 낭자들께서 동예의 여인들이 찾아와 정착할 방도를 찾기 원하신다면 여러분이 중심이 되어 그들에게 새 터전을 마련해주면 될터이니 더 이상 근심하며 저를 괴롭히지 말아주소서.‘ 하였다. 이후 지금껏 배워온 야채 십여종 키우는 기술과 장사하는 방식을 십여명의 여인들에게 각기 두어종씩 나누어 가르쳐주니 비로소 낭자들이 순응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이곳에 투항해온 여인들이 모두 예국(濊國)출신인데 모두 옥저에서 새 터전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하루는 연화가 예국 여인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한뒤 말했다. ’듣기로 예국에는 여인들을 남달라 귀히 대접하는 법도가 있다 들었는데 대체 어떤 법도입니까 ?‘ 하니 승진이 대답하기를 ’예나라 땅인 옛적 조선의 법도를 사모하여 그때의 ‘팔조법도(八條法度)’가 지금껏 내려오고 있으며 만약 허락없이 함부로 젊은 여인을 범하는 이가 있으면 엄벌에 처해집니다. 때론 마소로써 대신 변상하며 사죄하는 법도가 있긴하나 이와같은 법도가 있기 때문에 어린 여인이나 오갈곳 없고 보살필 곳이 없는 여인들이 마음편히 살아갈수 있나이다. 지금 동예는 사로의 무뢰한 무리들에게 짖밟혀 옛적 현묘한 법도가 모두 사라지고 없으니 다만 옥저에서라도 예국(濊國)의 법도를 되살리길 바랄뿐입니다‘ 하였다.
또 한번은 동예인들과 술을 권하며 이야기 나누는데 승진과 경민이 궁금하여 묻기를 ’듣기로 옥저 바다건너 여인들끼리 사는 신비한 섬이 있다 들었는데 그 곡절을 낭자는 아시고 계십니까 ?‘ 하나 연화는 당황한 가운데 손을 내저으며 말하기를 ’이전에 그런일이 있었다고 얼핏 들었으나 모두 근거없는 허황된 이야기입니다. 나 또한 일전에 일로 배를타고 백여리 밖을 항해한일이 있었는데 보이는 것은 모두 사람이 살지않는 작은 섬뿐이었고 그만한 육지나 섬 자체가 없는데 어찌 여인들만 사는 신비한 섬이 따로 있을수 있곘습니까. 다만 듣기로 머나먼 왜국의 일이나 또다른 세상의 꿈같은 일이 잘못 전해진 것이 아닐까 하니 나 또한 그렇게만 알고 있을 따름입니다.‘ 하였다.
연화가 마침내 지금까지의 일을 처분하고 혼자 먼길을 떠났다. 예국(濊國)의 동료들이 챙겨준 약간의 금전과 음식을 갖고 정처없이 떠났는데 사흘을 걸려 한 곳에 이르렀다. 이곳에 대장장이가 하나 살았는데 인근 야산에서 채취한 주옥(珠玉)과 보석을 바탕으로 팔찌를 만드는이였다. 처음 연화가 단지 허기가 져서 약간의 음식을 청했는데 장인이 잠시 연화의 관상을 보더니 선뜻 은팔찌를 내어주었다. ‘그대의 관상이 범상치가 않아서 일부러 내어주는 것이다. 또한 내 이곳에서 평생을 대장장이로 일하며 작은 바램이 있다면 옥저의 모든 여인이 내가 만든 팔찌를 차고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대가 보아하니 옥저인이 분명하여 내주는 것이나 외지(外地)의 다른 여인이었다면 아무리 많은 금은보화를 내준다한들 패대기를 쳐서 내쫏았을 것이다. 그대는 이러한 내 뜻을 잘 알고 일신(一身)을 보전토록 할가’ 하였다. 연화가 대충 장인의 뜻을 알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였다. 또한 이어서 말하기를 ‘어려서 절 거둬주신 부모님이 있는데 이제 양부(養父)마저 연로하셔 세상을 떠나 이제 혼자 스스로 정착할만한 곳을 찾기를 원합니다. 청컨대 어디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 하였다. 이에 다시 장인이 연화의 관상을 보며 말하기를 ‘양쪽에 두갈래 길과 산이 있는데 하나는 옥청산(沃靑山)이라 불리는데 길은 험하지 않으나 이미 오래전부터 함달파(咸達波)란 도적이 300의 무리를 이끌고 들어가 터전을 잡고 있으니 함부로 갔다간 함달의 도적떼에게 봉변을 당할 것이다. 허나 오른쪽에 보이는 묘진산(妙進山)은 길은 험하나 도적떼가 없고 또한 산짐승도 그리 거칠지 않으니 묘진산을 지나 다른 고장으로 가면 충분히 그대가 새로 농사지으며 살아갈 땅을 찾을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헌데 연화가 슬몃 속임수가 있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들어 말을 듣지 않고 묘진산을 거부하고 옥청산으로 들어갔다.
옥청산은 이미 수년전부터 함달파의 무리가 이미 따르는 자들을 이끌고 소굴을 짓고 살고 있었다. 험한 산길을 건너며 혹시 함정이 있을까 조심하였는데 이윽고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속수무책으로 도적의 무리에 붙잡혀 소굴로 끌려오니 함달파가 직접 여인을 끌고오게 하고는 말하였다. 함달파가 보니 미색이 제법인지라 연화를 사뭇 음흉하게 바라보며 꾸짖었다.
‘이곳은 예부터 옥저도 동예에도 속하지 않고 우리만의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이들이 모여 만든 소굴이다. 사내일 경우 그 가죽을 벗기고 고기로 잡아 먹지만 나이어린 계집은 그리하지 않고 원할 경우 살려두어 무리의 첩실로 삼는다. 너는 어찌하겠느냐 ?’ 하였다. 연화가 듣고보니 기가막혀서 ‘고작 이런곳에 소굴을 짓고 사는이들에게 무슨 큰뜻이 있겠는가 별 기대는 하지 않았으나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 어이없도다. 예부터 옥저나 동예에도 예부터 힘없고 어린 여자는 함부로 취하지 않는다는 법도가 있었는데, 너희는 옥저도 동예도 아니라면서 오히려 더 흉악한 법도로 아녀자를 핍박하니 이게 무슨 망령된 법도인가. 정녕 하늘이 두렵지 않는것이냐 ?’ 하였다. 연화의 당당함에 몇몇 부장들이 노하여 바로 칼을 뽑으려 들었으나 함달파가 만류한뒤 이와같이 말했다.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이곳을 지나갔으나 사내들은 하나같이 겁쟁이라 모두 우리에게 죽임을 당한뒤 인육이 되고 말았고, 계집은 대개 죽거나 천한 노예로 삼았다. 허나 너는 보아하니 지금까지 보지못한 당돌한 계집이로다. 함께 술이나 나누자꾸나.’ 하고 독주와 좋은 음식으로 잠시 대접하게 했다.
함달파가 자신의 방으로 연화를 불러들이게 한뒤 술을 권하며 물었다. ‘내게 원래 부인이 있었으나 결혼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을 때 그만 알을 낳고 말았다. 사람이 알을 낳는 해괴한 변고를 직접 겪으니 놀라고 기괴하여 무섭고 두렵지 않을수 없었다. 계집은 내쫒고 알은 불길한 징조라 내버리게 하였는데, 너는 이 이치를 어찌 생각하는가 ?’ 하였다. 이에 연화가 답하기를 ‘옛부터 그런 해괴한 이야기가 전해내려오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나 자고로 사람이 알을 낳는 것은 애초부터 있을수 없는 일이요. 혹여 대왕께서 다른 이유와 곡절이 있어 여인을 내쫏고 그런 이야기를 지어낸 것은 아닌가 의심되옵니다.’ 하였다. 이에 함달파가 껄껄 웃었다.
다시 함달파가 묻기를 ‘듣기로 옥저의 남쪽엔 예국(濊國)이란 나라가 있어 옛 조선의 법도를 사모하여왔거 나이어린 여자는 함부로 핍박하지 않으며 사람을 죽이거나 남의 재물을 함부로 훔친자는 참형에 처한다 하였으니 이로인해 예부터 백성들이 서로를 해치거나 훔치지 않고 여인의 물건을 존중하며 산다 들었다.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 하였다. 이에 연화가 답하기를 ‘예국이 예부터 조선의 법도를 사모하고 죄없는 여인을 해치지 않는 법도가 있으니 성국(聖國)이라 할만하나 지금은 이미 남쪽의 사로로부터 핍박을 받아 법도가 흩어지고 여인들이 달아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동예의 운에 다해 오래가지 못할듯하니 한 여인으로서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하였다. 이에 다시 함달이 껄껄 웃었다.
다시 함달이 연화에게 술을 권하며 묻기를 ‘바다건너 여인들만이 스스로 법도를 짓고 아이를 만들어 키우는 곳이 있다고 들었는데 들어본적이 있느냐 ?’ 하니 연화가 다시 답하기를 ‘소싯적에 부친을 따라 먼 바다로 나가보기도 했고 몇 번 스스로도 나가보았으나 그저 사람이 얼마살지 않는 작은 섬들이 곳곳에 흩어져있을뿐 그만한곳은 찾아보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여인들끼리만 사는 섬이나 성(城) 혹은 소국(小國)이 있다 하더라도 여인들끼리만 스스로 아이를 만든다는 것은 천지 사방에 있을수도 없습니다. 사람이나 축생이나 자손을 보는 이치는 크게 다르지 않아 오직 암수의 교접만으로 이루어줄시 있으니 어찌 여인들만으로 자손을 만들며 그 생령을 보존할수 있겠습니까. 모두 허황되고 망령된 말을 뿐입니다.’ 하였다. 함달이 다시 껄껄웃으며 말하기를 ‘나는 스스로 여인국을 정벌해보고 싶은데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 하니 거듭 연화가 말하기를 ‘거듭 말씀드리지면 여인들끼리의 나라나 성이나 섬은 세상에 존재할수 없는 다만 허황된말이며 그와같은곳은 단연코 존재하지 않을것이니 감히 말씀드립니다. 대왕께서 굳이 새로운 세력을 개척하시고 세상을 꿈꾸신다면 다만 어찌하면 백성들을 널리 평안케하고 배불리 먹일것인지에만 고민하시고 공연한 요설은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옵소서.’ 하였다.
이때 함달에겐 좌우 두 측근이 있었는데 그 하나는 두원(斗原)이라고 했고 또 하나는 진태(陳泰)라고 했다. 이중 두원은 처음부터 함달파를 따르며 아첨해온 이지만 진태는 본래 예국(濊國)에서 투항해온 자였다. 이때 함달이 거듭 여인국을 칠 뜻을 밝히자 연화는 마지못해 함달에게 몸을 맡긴 처지로도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이때 진태가 찾아와 사연을 말하기를 ‘나는 본래 예국에서 농사를 짓던자로, 부친은 2대독자로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으나 어머니가 사자매중 맞이였다. 이모님들 성품이 후덕하시어 밑으로 여섯명의 사촌동생이 있었는데 이모님 세분이 각기 딸을 둘씩 낳으시어 생긴 사촌들이다. 어릴때부터 친동기나 다름없이 각별히 살아왔는데 사로의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우리의 농사지을 터전을 짖밟고 어머니와 이모님들은 모두 난군중에 돌아가시고 여섯명의 사촌들은 모두 사로의 흉포한 도적뗴에게 짖밟혀 소식조차 알수 없게 되었다. 이후 사로에 복수할 뜻을 품고 옥저로 투항헀으나 딱히 뜻을 같이할만한 자를 찾지못해 방황하다 함달의 휘하로 숨어들었다. 허나 함달은 몸은 장사일지 모르나 지혜가 없고 또한 한낱 도적떼의 일에만 만족할뿐 그 이상 어떤 큰일을 함께 도모할만한 기량이 못되는이다. 지금도 알다시피 오직 ‘여인국을 치겠다’는 허황된 뜻만을 거듭할뿐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하였다. 이에 연화가 진태의 고민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인후 말하기를 ’만약 공께서 이곳에 옥저도 동예도 아닌 새로운 뜻을 원한다면 충분히 응할 마음이 있소이다‘ 하였다. 이에 둘이 같이 도모할뜻을 밝히고 함께 하기로 하였다.
하루는 연화가 세병의 술을 가져와서 말하기를 ’특별히 구한 두 개의 명주가 있어 다른 한병의 술과 대인께 보이오이다. 이중 하나는 동예의 곡식으로 빚은 세상없는 명주요 또 하나는 역시 옥저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천하 명주이외다. 하지만 다른 하나는 왜국에서 비밀리에 들인 비밀스런 장독으로 만든 술이니 만약 옥저나 동예의 명주를 들면 천년을 온전히 보존할것이나 독주를 들면 두 번다시 깨어나지 못할것이외다. 만약 옥저나 동예의 명주를 들면 우리가 공과 함께 여인국을 칠것이나 만약 독주를 들면 우린 두령곁을 떠날것이오.‘ 하였다. 이에 함달이 흥미가 돋았는지 ’어린 계집에 답지않게 재미있는 놀이를 제안하는구나. 세병중 두 개가 이미 명주면 설사 그중 하나가 독주라 한들 들지못할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하며 마침내 연화가 주는 술을 받았다. 허나 이는 속임수였고 세병에는 모두 옥저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짐독으로 빚은 술이 들어있었다. 마침내 함달이 쓰러지니 이제 진태가 칼을 들고 나와서 무리를 불러모은뒤 ’함달이 처음엔 혼탁한 세상이 싫어 무리를 이끌고 산채에 들었으나 시절이 갈수록 흉포해지고 죄없는 백성을 함부로 핍박하고 재물을 갈취하여 그 죄가 하늘에 닿았도다. 이제 내가 천명을 받들러온 여인과 함께 손잡고 그대들과 새로운 대안의 세상을 열기를 원하니 다들 나를 따르는 것이 어떻겠는가 ?‘ 하였다. 본래 함달의 따르던 무리들이 그저 일시적인 배고픔과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들어온이라 별다른 근기가 없었다. 진태가 칼을 휘두르며 위협하니 모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두원만이 처음부터 함달을 따르던이라 처음 주인의 복수를 하곘다며 나섰으니 이미 진태를 따르기로 한 무리에 붙잡혀 처단되었다.
처음 함달을 해치우고 무리를 제압하니 진태가 스스로 두령이자 왕이 되길 청하였으나 연화가 이에 반대했다. 진태가 기이하게 여겨 뜻을 물으니 ’정녕 이곳에 옥저도 동예도 아닌 새로운 대안을 세우고자 한다면 이전의 단순한 도적떼와 달라야 할것이오. 나는 이미 이전에 고향에서 예국에서 투항해온 여인들을 받아들여 함께 십여종의 채소를 재배하며 번 많은 재물이 있소이다. 이 기술과 재물이면 충분히 이곳에 새로운 꿈을 심을수 있을것이니, 예국의 여인들을 다시 불러들여 야채전과 채소전을 지어 농사를 짓고 이를 바탕으로 장사를 하면 충분히 많은 돈을 벌어들일수 있을것이오. 또한 이를 기반으로 옛 조선의 법도를 사모하는 새로운 법도를 세우면 충분히 따르는이가 있을것이니 나를 중심으로 뭉치면 더 큰 일을 도모할수 있을것이오‘ 하였다.
연화가 이때부터 이름을 스스로 백순(白純)으로 고친뒤 자신을 ’백순왕‘이라 부르라 명하였다. 진태와 일부가 의아하게 여겨 백순이 여인이니 ’백순여왕‘이라 해야하는 것 아니냐 ? 하니 오히려 백순이 반박하여 말하기를 ’세상에 천지법도가 세워진뒤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따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닌데 어찌 여인이 왕이 되었다하여 따로 이름지어 ‘여왕’이라 할것인가. 굳이 그럴필요가 없으며 보다 많은 세력을 복속시키기 위해서도 여왕보다는 ‘백순왕’이라 부르는게 더 용이할 것이다‘ 하였다. 백순이 이와같이 말하니 다른 무리들이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였다.
이후 예국의 여인들이 소식을 듣고 투항해오니 다시 이곳에서 야채전과 채소전을 차리고 농사를 짓고 장사를 시작했다. 백순의 무리가 재배하는 야채와 채소가 맛좋은 명물로 소문이나니 백리가 넘는 먼 고장에서도 수입을 하러올 지경이었다. 이때 옥저땅에 일곱 개의 도적의 무리가 있었는데 함달의 무리 외이데 ’흥성적(興成賊)‘,’진무적(眞武賊)‘,’오성적(五成賊)‘,’여구적(旅構賊),‘진홍적(進紅賊)’,‘의성적(義誠賊)’,‘덕두적(德頭賊)’이라 하여 각기 옥저의 옛땅이나 산채에 터전을 잡고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대개는 난세에 전란을 피하고자 하거나 흉년과 굶주림,가난과 질병을 피해 달아난 이들이었다. 작은 세력은 백에서 이백 중간치는 300에서 500, 큰 세력은 700에 이르기도 하였으나 백순이 직접 서한을 보내 함께 힘을 합해 새나라를 세울뜻을 밝히니 일곱 도적의 무리가 모두 투항하여 마침내 그 세력이 커졌다.
백순이 새 나라를 세울 것을 천명한뒤 우선 예국(濊國)의 도리를 따라 옛 조선(朝鮮) 팔조금법(八條禁法)을 되살리고자 했다. 또한 별도로 여인으로서의 지켜야할 ‘졍결(貞潔) 칠조항(七條項)’을 만드니 그 내용이 이와 같다. ‘① 허락없이 함부로 여인을 건드리거나 만져서는 안된다 ② 남편이나 부모 또는 오라비가 있는 여인은 함부로 건드리거나 납치하지 않는다 ③ 여인 혼자 사는 집이나 방에 남정네는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다 ④ 남정네들의 술자리나 놀음에는 여인을 동석시키지 않는다 ⑤ 여인은 반드시 한명의 남자와만 혼인해야 한다 ⑥ 여인은 혼전에는 그 어떤 남자와도 잠자리를 할수 없다 ⑦ 혼전(婚前) 순결을 부득이하게 잃은 경우엔 용서한, 혼후(婚後) 부정은 용서되지 않는다’ 이와같은 7개 조항을 만든뒤 조선의 ‘팔조금법’과 함께 엄중히 지키게 했다.
백순이 나라를 세운뒤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꿈에 한 기이한 옷차림을 한 여인이 나타나 이와같이 말했다. ‘나는 요나라의 천운과 천기를 오천년간 지키도록 되어있는 천녀(天女)다. 헌데 네가 망령되이 천지법도를 그르치고 음양의 이치를 왜곡시키고 있기에 징계의 벌을 내리고자 찾아왔도다. 어리석은 계집아. 너는 어찌 여인에게 정결의 이치보다 더 소중한게 있음을 모르느냐. 그 이치도 깨닫지 못하고 어찌 일국(一國)의 군주(君主)가 되려 하는고 ?’ 기이한 말을 하고 사라졌다.
이때 백순은 예국 출신 지연과 애옥등을 좌우 측근으로 거느리고 있었는데, 간밤의 꿈이 하도 기이하고 근심되어 두 여인을 불러 곡적을 물었다. 이에 먼저 지연이 대답하기를 ‘옛부터 요나라라는 나라는 고금동서에 들어본적이 없나이다. 아무래도 간밤의 꿈은 한낱 망령된 요물이나 요괴의 장난인듯하니 너무 심려치 마소서.’ 하였다. 애옥 또한 백순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하기를 ‘군왕께서 작금에 나라의 일을 너무 근심하고 애쓰시다 심려하시는바가 커서 심신이 허약해져 기이한 꿈을 꾸신 듯 합니다. 용한 의원을 불러 보약을 지어드시면 쾌차하실터이니 너무 심려 마시오소서.’ 하였다. 이후 백순이 의원을 불렀으나 석달이 넘도록 알 수 없는 발열과 오한에 시달려 쉬이 낫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치를 알 수 없어 불안해하였다.
백순이 옥저(沃沮) 칠웅(七雄)을 하나로 규합하고 신국(新國)을 세울 것을 천명했을 때 나이가 서른이었다. 이후 20년을 더 살다 세상을 떠났다고 하나 옥저가 결국 구려(句麗)에 복속되어 이때의 일들이 모두 마모(磨耗)되고 사라져 고찰할수 없게 되었다. 다만 후대(後代)에 전하기를 백순을 기리는 사당이 영동(嶺東) 해안가와 영남권 일부 – 대충 김천,구미,상주,안동지역 - 에서 십여곳 넘게 발견되었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곳의 사람들은 이전에 ‘백순대불(白純大佛)’이란 기선명호(氣禪名號)를 불렀다고 하지만 역시 확실치 않다. 어띤이들인 진도땅에도 백순을 기리는 사당이 있었다고 하나 확실치 않다. 진도애선 백순을 태불(太佛)이라 불렀다고도 하는데 역시 확실치는 않다.
구려에 맥적(貊炙)이란 음식이 있는데 소나 돼지 혹은 양따위를 마늘,양파등 각종 양념에 재워 불에 구워 먹는것이라 하는데 이 유래 또한 백순과 관련이 깊다고 한다. 백순이 원래 야채전을 운영했는데 이때 상추나 부추 배추따위를 불에 구운 고기에 곁들여 함께 먹었다 하나 정확한 이치는 역시 고찰하기 어렵다.
또 전해지는 이야기로 머나먼 서역(西域)땅에 조왕(趙王)이란 자가 살아 척박한 토양에서 스무살 어린 여인을 구해 혼사를 치루었는데 그 이름을 백순(白純)이라고 하였다. 조왕이 백순을 왕후로 삼은뒤 이후 아들 열둘을 낳고 삼백년을 나라를 통치하다 갔다고 하나 이 또한 정확한 역사나 유래를 거찰하긴 쉽지 않따.
또한 머나먼 동남방 왜국땅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루는 인근 사찰에 불공을 드리고 오는 이들이 어디선가 기이한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사람의 키의 백배도 넘고 윈멘한 집채 수십배 크기인 커다란 부처의 형상이 귀신처럼 돌아다녔다고 한다. 빛깔이 유난히 희어 왜인(倭人)들이 이를 백순대불(白純大佛)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기록을 고찰하면 에도시대에도 전국시대에도 백순대불의 출현과 목격담이 간간이 보이나 역시 확실하게 고찰할길은 없다. 또한 왜국땅 서남부 어느 작은 도시에 엄청나게 크고 하얀 부처의 형상이 길을 가로막고 있어 사람들이 이를 ‘백순의 환생’이라 부르고 그곳에 공물을 바치고 치성을 드리며 내세의 환생길을 기원한다고도 한다. 이 또한 확실한 이야기는 아니다.
또한 전해지는 이야기로 이런 것이 있다. 중원의 진(陳),한(漢),노(盧)가 모두 쇠망한뒤에 하북땅 어떤곳에 유래를 알 수 없는 한 기이한 사내가 나타나 오백의 무리를 거느리고 산채를 짓고 살았는데 스스로룰 백순대왕(白純大王)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원숭이와 돼지와 요물의 형상을 한 삼인이 백순대왕을 해치우고자 스스로 나섰으나 안타깝게도 모두 소식을 알수 없게 되었다고도 한다. 백순에 대한 또다른 전설이나 민담이 전해지는 것이 있으면 후일 다시 세세하게 채록토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