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呂相 傳

작성자훼드라|작성시간26.06.22|조회수38 목록 댓글 0

                                      呂相 傳 

 

 여상(呂相)은 본래 연주(兗州) 사람이다. 부친 여동환(呂東煥)은 지역의 병마창고를 담당하는 관리였는데 따라서 먹고사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위로 세 살 연상의 진아(眞阿)라는 누이가 있었는데 평소 상이를 무척이나 아꼈다. 동네 어른들이 진아를 예뻐하여 맛있는 간식거리를 주면 항상 집에 갖고와 동생을 먼저 먹였고, 어미가 포목점에서 좋은 옷감을 구해오면 항상 동생에게 먼저 지어 입혀주라 하였다. 한번은 동네아이들이 상이를 희롱하며 놀리자 손수 돌과 나뭇가지를 가져와서 아우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때리고 혼내주어 다시는 동생을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진아와 상이가 소꿉놀이를 하면 항상 진아는 상이를 일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남편역을 맡겼고 진아는 가끔씩 남편을 위해 불공을 드리러 가다 더 늦게되는 역할을 맡앗다. 한 노파가 오누이가 노니는 모습을 보고 묘하게 웃으며 말하기를 ‘아이들 소꿉놀이를 살펴보면 그 집안 사정을 대충 알만하다더니 그 집안도 대충 곡절을 알것같도다.’ 하였다. 

 동환이 본래 술을 즐기는 이가 아니었으나 모처럼만에 옛적 동향친구 몇몇이 찾아와 함께 회포를 취했다. 밤새 술을 마시며 놀며 웃고 떠들다 밤이 깊었다. 이제 너무 취해 집에 돌아가봐야 하는데 동환은 ‘가기전에 창고에 무슨일이 있을지 모르니 한번 돌아봐야겠다’ 하였다. 친우들이 오히려 ‘지금 너무 취했는데 그 정신으로 무슨 확인을 하겠다고 하나. 이만 집에서 자고 내일 새벽 일찍 일어나 살펴도 별일은 없을것일세.’ 하니 동환이 취한 가운데서도 동향친구들을 꾸짖으며 말하기를 ‘세상에 항상 설마가 사람잡는다 하였고 작은 부주의나 방심이 큰 화를 부르는 법이라’ 하고 마침내 고집을 피워 병마창고로 가보았다. 

 이때 병마창고 근처에 작은 불씨 같은 것이 보였는데 날은 어둡고 동환은 술이 덜 깬 상태라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혹여 불이 붙은 것은 아닌가’ 더 가까이 가보려하다 그만 실수로 옆에있는 기름통을 넘어뜨리는 바람에 마침내 큰 불이 나고야말았다. 병마창고가 모두 타버려 이미 면책할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때 송(宋)의 법도에는 병마차고를 함부로 훼손하거나 불을 지르는일은 반역에 준하는 죄로 엄히 다스렸다. 법도에 의하면 동환과 그 아내는 참형에 처해지고 반역자의 자녀는 딸은 노예로 삼으나 아들은 열 살이 넘으면 그 부모와 함께 죽이고 열 살 미만일시 고아원에 맡겨 평생 아이가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게 나라나도록 했다. 이때 진아는 12살이오, 여상이 9살인지라 진아는 법도대로 노예로 팔려갔고 여상은 고아원에 보내졌다. 동환과 그 처는 법도대로 참형에 처해졌다. 

 

 이때 연주에서 남서로 300여리쯤 떨어진곳에 보진원(保眞院)이란 곳이 있었다. 보통은 흉년이나 질병,전란통에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들을 거두는곳이나 역모의 혐의로 처단당한 이의 10세 미만 아들들도 종종 맡겨졌다. 이곳의 원장은 이름이 한승(韓昇)으로 나이가 50이 넘겼는데 역적의 아들이 나이가 어리면 어차피 제 부모가 죽은 곡절을 알지 못하니 신경쓸 필요가 없으나 혹시 조금 자란 아이라 곡절을 아는 아이라면 스스로 개발한 ‘기억을 지우는 약’을 먹여 어릴 때 기억이 사라지게 했다. 여상이 맡겨지니 열 살에서 딱 한 살 모자라는 아홉 살인지라 근심이 되었다. 

 한승이 혹여 아이가 이미 커서 약효가 듣지 않을까 근심되어 결국 은밀히 밤에 불러 술을 권하며 이와같이 말했다. ‘너는 이미 아홉 살이니 이 나라 법도나 네 부모 죽은 곡절을 아주 모르진 않을 것이다. 원래 역적의 자손은 삼족을 멸하는 것이 세상 모든곳의 이치인데 그래도 열 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은 살려주게 하는 것은 송황(宋皇)의 지극하신 은덕과 은혜니라. 원라 보진원에 맡겨지는 아이들은 나이 열다섯이 되면 법도에 의해 스스로 나가 살길을 찾아야 하나 너는 그때가 되면 적당한 노자를 주어 하다못해 장사라도 하던가 주막이나 대장간 혹은 목공소에서라도 일을할수 있게 선처해주마. 부디 공연한 일을 벌여 화근을 부르지 말라’ 하였다. 

 여상이 이때 한승이 주는 술을 받아먹지는 않고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 너무 어린아이에게 술을 너무 먹이기도 곤란하여 그 정도에서 멈추었다. 이후 여상이 보진원에서 자랐는데 좀처럼 말을 하지 않고 아이들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무리중 힘이센 몇몇이 하루는 사소한 일로 트집을 잡아 여상을 괴롭혔는데, 여상은 아이가 괴롭히는 가운데서도 울지도 않고 저항하지도 않았다. 한승이 이를 우연히 보고 먼발치에서 한참을 지켜보다 아이들을 꾸짖은뒤 여상을 따로 불렀다. 그리고 말하기를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거든 그나마 하다못해 저항하거다 말이라도 해야지 그냥 맞고만 있으면 어쩌자는 것이냐 ? 네 처지와 근심하는 바는 모르는바 아니나 괴롭히는이가 있으면 염려말고 언제든 말하도록 하라. 네가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충분히 배려해주겠다.’ 하였다. 

 여상이 어느덧 자라 열두살이 되었는데 한승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께서 부모잃은 저를 지금껏 거두어 보살펴주셨으니 그 은혜 한량없거니와 이제 저도 컸으니 떠나고자 합니다. 어르신께선 절 열다섯살까지 돌보아주시겠다 하였으나 열두살이라면 그래도 작은 기술정도 배워서 제한몸 건사하지 못할일은 아니니 떠나고자 합니다.’ 하였다. 한승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법도가 어차피 열다섯살까진 여기서 자라야 하는데 어찌 미리 하지 않아도 되는 고생을 사서하려 하느냐. 너도 어느덧 나이 열두살이고 이만한 기골과 담대함이면 널 쉬이 괴롭힐만한이도 별로 없을 것이다. 조금만 더 참고 열다섯살때까지만 버티도록 해라. 그러면 이후의 일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였다. 

 이때는 여상이 수긍하고 물러났으나 얼마후 다시 한승을 찾아와 이와같이 말했다. ‘청컨대 노예로 팔려간 누이의 행방을 알고자 하나이다. 어릴때부터 저를 극진히 보살핀 누이를 지금껏 잊은일이 한번도 없었는데 다만 찾을길이 없고 제 나이 어려 그저 홀로 눈물만 지샜나이다. 나중에 열네살이 되든 열다섯살이 되든 때가되면 어르신께 더 이상 누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떠날것이니 다만 누이의 행방에 대해 알고계시거나 행방의 단서를 아는이나 방도가 있으면 알려주소서.’ 하였다. 이에 한승이 크게 놀라 입을 다물게 하고 말하기를 ‘네 어찌 이제와 철없이 망령된말을 하려드느냐. 너 또한 지금은 네 부모의 곡절을 모르지는 않을터. 지금와서 공연히 일을 벌리면 결국 큰 화를 면치 않게된다. 또 송이 아무리 옛적 중원땅을 잃고 척박한 서역으로 피난와 살고 있다 하나 이 땅도 보통 아니게 크고 넓으니 이곳에서 오래전 팔려간 누이를 찾는다는 것은 사막 한가운데 떨어진 실오라기 찾는것만큼이나 무모한일이다. 공연한 일 말 벌이지말고 열다섯살이 되면 그때 내가 약조한대로 먹고살길을 선처해 주도록 하겠다’ 하였다. 

 이후에도 여상이 몇 번을 더 찾아와 열다섯살이 되기 전에라도 떠날때가 되면 떠나고자 하며 또한 누이의 행방도 가급적 찾을길이 있다면 찾아보고 싶노라 청원하였다. 한승이 결국 근심치 않을수 없어 보진원 일을 보는 밑에사람 이릉(李陵)과 성옥(成鈺)을 불러 이와같이 은밀이 말했다. ‘천지사방에 삼족을 멸하는 법도가 있는 것은 결국 역모의 자손이 자라 나중에 화근이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라. 다만 우리 송황깨서 그 성은이 지극하고 하늘의 뜻을 볼줄알아 열 살미만의 어린아이까지 함부로 죽이진 못하게 하고 다만 머나먼 고아원에서 제 부모의 내력을 알지 못하게 자라게 하도록 배려한것인데 저 아이가 자꾸만 나라의 도리를 그르치려하니 이를 어쩔것인가 ?’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대책을 의논해도 뾰족한 방도가 없으니 이에 이릉과 성옥이 스스로 결단을 내리듯 이와같이 말했다. ‘아이를 말로 더 이상 타이르거나 설득할 방도가 없다면 다른 방도를 찾는길밖에 없지 않겠소이까. 어르신은 모르는걸로 하고 저희가 알아서 처리할터이니 너무 심려마시오소서.’ 하였다. 한승이 ‘그저 자네들만을 밑겠다’며 떠나보냈다. 

 원래 이릉과 성옥의 계책은 여상을 밤에 몰래 약을 먹여 재운뒤 인근 야산에 땅을 깊이 파묻어버리고 그곳에 파묻자는 생각이었다. 헌데 이때 여상과 친하게 지내던 보진원의 동료 하나가 우연히 이를 엿듣고 여상에게 고하였다. 여상이 미리 기지를 발휘하여 밤에 깊이 잠든체히여 둘을 방심하게 하고 이윽고 약을 먹여 없애려할 때 미리 준비한 모래주머니를 던져 두 사람을 쓰러트리고 멀리 달아나버렸다. 이때 어느덧 여상의 나이 열네살이었는데 이미 웬만한 성인의 턱밑까지 차올라 있을정도로 자라나 있었다. 

 

 여상이 극적으로 이릉과 성옥을 쓰러트린뒤 보진원을 탈출하였다. 허나 9살때부터 오년동안 보진원에 갇혀살다시피 해서 세상물정은 물론 주변 지리를 알 수 없어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일단 무작정 멀리 달아나야겠다는 생각에 산과 강을 몇 번이나 건넜으나 어느덧 허기지고 지쳐 더는 갈곳이 없었다. 인근에서 간단한 들짐승이라도 잡아 구워먹으며 허기를 달랬는데, 혼자 문득 서러움과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려져 말하기를 ‘설사 지금 고향으로 간다 하더라도 부모님은 이미 역적의 이름을 받고 처형당하셨을것이고 하나밖에 없는 누이는 대체 어디로 팔려갔는지 알길조차 없으니 이 노릇을 어찌한단말인가.’ 탄식하였다. 

 일단 부친이 원래 병참(兵站) 관리의 일을 맡으셨으니 혹시 비슷한 직종의 일을 하시던이중 소식을 알수있는이가 없을까 수소문하기로 하였다. 헌데 뒤늦게 여상을 알아본 어떤이가 황급히 다가와서 말하기를 ‘이 아이가 큰일날짓을 하고 있구나 ? 내게 본래 너희 부친과 함께 병장기 관리의 일을 맡아하던이라 네 얼굴을 기억하나, 이미 역적의 누명을 쓰고 죽은이의 자손이라면 영원히 황도에는 들어올수 없으며 지방에서 산다 하더라도 관아나 군사일을 하는쪽에는 절대 다가갈수 없다. 비록 열 살 미만의 사내아이들은 살려준다고 하나 그 또한 본래 신분을 알수 없게 만든뒤 다만 먼 지방에서 본래의 신분을 모른채 조용히 살기를 원하는것인데, 이리 일을 벌이면 어쩌자는것이냐. 적당한 노자를 줄처이니 부디 먼곳으로 가서 어디 작은 주막일아라도 보며 살것이고 다시는 이곳에 나타나거나 부친이나 누이의 일은 물으려고도 하지말거라.’ 하였다. 여상이 문득 이야기를 닫고보니 이전 보진원에서 한승이 하던말과 거의 다르지 않아 문득 분심(憤心)과 함께 눈물이 솟구쳐오르며 이와같이 말하였다. ‘저분의 말이 이전 한승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나 이제 아직 어린몸으로 실제 역모를 꾸미거나 군사를 도모할 방도가 있는것도 아니고 다만 어릴때부터 각별히 자라고 나를 아껴주던 누이의 행방을 찾고자 함인데 그조차도 못하게 하면 대체 어쩌란말인가 ?’ 내 지금껏 살면서 한번도 조정을 원망해온바가 없으나 오늘의 일은 실로 야속하기 그지없구나.‘ 하며 사흘을 혼자 울고 또 울었다. 

 여상이 더 이상 이 일에 매달려봤자 별 소득이 없음을 깨닫고 조용히 떠나려하였다. 이때 여상에게 이전 부친의 친구라는이가 다시 찾아와 말하기를 ’네 신세가 하도 딱하여 차라리 한가지 방도는 일러주겠다. 이곳에서 남서로 20여를 가면 무천(舞天)이라 부르는 용한 무녀가 사는데 그녀에게 가서 알아보면 혹시 누이의 일을 알수도 있을지 모르니 일러주노라.‘ 하였다. 여상이 듣고 더욱 기가막혀 탄식하기를 ’어차피 누이를 찾을 방도가 없다하면서 이제 고작 일러주는게 허망한 무인(巫人)이나 찾아가보라 하니 차라리 아니함만 못하구나.‘ 하였다. 다만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심정으로 무천을 찾아가보았다. 

 처음 무천을 찾아갔을 때 무천이 사주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였는데 여상이 자신의 생년월일을 아는데 누이는 생년과 월일만 기억할뿐 시(時)를 알지 못하여 난감해하였다. 무천이 딱한 듯 바라보다 ’만약 사주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신통(神通)으로 알아보는수밖에 없다‘며 스스로 요령을 치고 춤을 추며 귀신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다시 다가와 말하기를 ‘네 누이가 이미 역모의 일에 연루되어 끌려간자라면 지금은 살았을수도 죽었을수도 없다. 지금 영력(靈力)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장담할수 없거니와 동남방으로 50여리를 가 신효암(神效巖)이란곳을 찾아가 알아보면 혹시 길을 찾을수 있을지 모르곘도다’ 하였다. 여상이 무천이 일러준대로 신효암이란곳을 찾아가보니 백진(白珍)이라는 노승이 살고 있었는데 여상의 일을 들어본뒤 말하기를 ‘지금 이곳에서 너의 누이를 찾기는 쉽지 않으나 다만 북서로 50여리를 가서 방귀암(方鬼巖)이란 곳을 찾아가보면 혹시 길을 찾을수 있을지 모르곘구나’ 하였다. 

 듣고보니 여상이 더 기가막혀 ‘세상의 무당,도사라는것들이 알고보면 전부 요괴요 땡중이라고나.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누이의 행방을 찾고자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심정으로 찾아왔건만 전부 해괴한말만 입에 담을뿐이로다. 실로 지난 시간이 아까울 따름이로다’ 하였다. 

 이후 스스로 일어나 혼자 동으로 20여리를 가서 만석(晩昔)이란 마을에 이르러 한 주막을 보고는 그곳에서 일거라를 달라 하였다. 천상 신분은 속여야겠기에 이름을 진덕(眞德)이라 고치고 주인에게 일자리를 달라 읍소를 하며 청하니 주인이 ‘마침 주방일을 보던이 하나가 근래에 탈이나 세상을 떠났으니 새 사람을 구하던 중이었다. 차라리 잘되었다.’ 하고 주인이 여상을 고용하였다. 

 여상이 이름을 진덕으로 고친뒤 삼년여를 살았다. 일을 함에 성실하기 그지없으니 주인이 총애하였다. 차츰 주인이 신임하니 진덕이 하루는 함께 술을 나누며 자신의 본래 이름만 밝히지 않은채 은근슬쩍 사연을 내놓아보았다. 이에 주인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자네의 심정과 처지는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으나 지금 이미 송나라는 나라에 망조가 들어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판국인데 하다못해 자네같은 사소한이의 딱한 사정을 들을 여력이나 있곘는가. 그러지말고 내 듣기로는 안 그래도 자네처럼 난세에 실망하고 좌절한 많은 선비나 지사,이인,기인들이 이주땅에서 서북쪽으로 더 가서있는 산채로 숨어들어 자신들의 낙원을 이루며 산다하니 차라리 그리로 가보는게 어떻겠는가.’ 하였다. 여상이 막상 들으니 그다지 마땅치가 않아 ‘어르신의 신경써주심은 고맙고 참고해볼만한 일이나 지금은 당장 누이를 찾는일에 급한데 어디일지도 모르는 천만리 떨어진곳까지 갈수가 없나이다.’ 하고는 손을 내저었다. 

 

 여상은 이때 주막을 떠나 손수 누이를 찾으러 돌아다니기로 했다. 손수 전단에 이름을 적고 기억나는대로 얼굴을 그려 보았으나 부모님의 일이나 구체적인 사정을 적을수는 없어, 다만 어린시절 누이와 있었던 일들이나 신체적 특징만을 깨알같이 적은 종이를 곳곳에 뿌릴 수밖에 없었다. 십여고을을 돌며 한참 그와같은 내용에 누이찾는 전단을 돌렸고, 하지만 좀처럼 소득이나 단서를 잡을수가 없었다. 

 하루는 누이를 찾는일에 지쳐 한 주막에서 혼자 술을 마신뒤 주인에게 묻기를 ‘이 산을 넘어 내일은 다른 고을로 가보아야 할 것 같은데 어느쪽으로 가면 좋소이까 ?’ 하였다. 이에 주인이 걱정되는 듯 ‘이 산은 여느 사내가 넘기 그리 어렵지 않으나 산속 깊은곳에 사람을 해치는 요괴가 산다하니 오늘 주막에서 하룻밤 묵으시고 내일 떠나시는게 어떻겠소이까 ?’ 하였다. 허나 여상은 당치 않다는 듯 또는 손님을 하나라도 더 잡아 숙박비를 벌려는 속셈인가 의심되어 ‘어찌 사람사는 세상에 요괴나 귀신이 그리 많다고 하시오이까 ? 모두 당치않은 말이외다’ 하고 뿌리치고 산을 넘으려했다. 

 산은 말한것처럼 길이 험하지는 않았으나 수풀이 우거져 밤에는 길을 찾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아 어쩔줄 모르고 있었는데 저만치 불빛과 작은 집채가 있었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밤이 너무 깊고 지쳐있어 하룻밤 묵을 것을 청하였다. 집은 작고 초라하였는데 안에서 하얀 소복을 입은 젊은 여인이 나왔다. 여인은 순간 여상을 보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이에 여상이 ‘혹시 정말 사람을 해치는 요괴인가 ?’ 하였는데 여인이 일단 말하기를 ‘이곳은 길이 험해 밤에 넘기가 쉽지 않소이다. 집은 누추하지만 하룻밤 묵게 해드릴 여력은 되어니 그리 하심이 어떻겠소이까 ?’ 하여 여상이 다행히다싶어 여인의 청에 응하였다. 

 방이 두 개였는데 그중 하나엔 어린아이 셋이 있었다. 의아한 여상이 ‘웬 아이들이오이까 ?’ 하니 여인이 답하기를 ‘어린시절 부모를 잃고 혼자 어린 동생 셋을 거두어 지금껏 낮에는 저자에서 장사를 하고 밤에는 이곳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을 따름입니다’ 하여 일단 여상이 납득이 가는지 수긍하였다. 

 여상이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떠나려 하였는데 새벽에 그만 뒷간에서 낙상을 하였다. 여인이 놀라 약을 발라주고 치료를 해주었으나 생각보다 상처가 깊어 여상이 쉬이 움직이지 못했다. 이에 여인이 ‘이런 몸으로 어디로 떠나시려 하시오이까 ? 괜찮으니 상처가 다 아물떄까지만이라도 며칠 머물다 가소서.’ 하였다. 여상이 부담스러운 듯 ‘이런 누추한곳에 며칠씩 신세를 진다는것도 미안한 일이고 저 또한 갈길바쁜 몸으로 그리 쉬이 지체할수 있는 몸이 아니외다.’ 난감해하였다. 여인이 거듭 간곡히 청해 결국 상처가 아물때까지 머물기로 했다. 

 여인이 마을에 내려가 직접 의원을 데려와 약으로 치료해주고 그리고 밤에 술을 사와서는 여상을 대접했다. 그런데 한번은 술에취해 울며 말하기를 ‘못난 소녀가 감히 대인을 속였나이다. 실은 저 아이들은 소녀의 아이가 아니라 원래 어릴 때 부모가 역적의 누명을 쓰고 참형을 당한뒤 어린 동생을 잃고 저는 이곳저곳 노예로 팔려다니다 얼마전 극적으로 탈출한 몸이외다. 저 아이들은 그저 제가 평상시 저자에서 구걸하거나 부모잃은 어린아이 몇몇을 거둔것인데 그저 선행을 하면 잃어버린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찾을수 있을까하여 그 대신으로 생각하고 거두고 있나이다. 하지만 어느덧 세월은 속절없이 흐르고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으나 아홉 살때 헤어진 동생을 언제나 찾을까 막막할뿐이오이다.’ 하였다. 이에 여상이 놀라 ‘대체 어쩌다 동생과 헤어졌고 부모님의 함자는 어찌 되오이까 ?’ 하니 여인이 모든 것을 말하니 비로소 헤어진 누이와 동생을 찾은듯했다. 먼저 여인이 말하기를 ‘내 오직 열두살 때 헤어진 아홉 살 어린 동생을 찾을 요랑으로 신령님께 빌며 부모잃은 세 고아를 거두니 신령께서 어여삐 여겨 소원을 들어주신 모양이다. 어찌 이런일이 있을수 있단말이냐.’ 하였고 여상도 감격하여 ‘원래는 천하를 평생 떠도는 한이 있더라도 누이를 찾을 생각이었는데 이제 상봉하였으니 떠날일이 없소이다. 평생 이곳에서 누이를 지켜드리며 함께 일을 돕겠나이다.’ 하였다. 

 마침내 여상은 기껏 수십수백장 만들어 준비한 누이에 대한 전단은 모두 찢어 불태워버리고 누이와 함께 낮에는 장사를 하고 밤에는 아이들을 돌보며 살기로 했다. 헌데 며칠을 더 지내보다 문득 의심이 들어 이와같이 물었다. ‘내 기억에 어릴적 누이는 기름진 음식은 잘 안 먹는 듯 했는데 지금은 가림이 없는 것 같으니 어찌된일이오 ?’ 하였다. 여인이 순간 당황하여 ‘워낙 수년동안 여기저기 팔려다니며 고생하며 살다 식성이 변했나보다’ 둘러댔다. 이에 다시 여상이 의심스러워 ‘누이가 어릴 때 발을 다쳐 제가 치료해준일이 있는데 기억하시오 ?’ 하니 ‘어찌 그 일을 있겠느냐. 네가 그 고사리손으로 내 고운발을 호호 불어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실은 그때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아 지금도 높은산을 오를땐 좀 힘이든다.’ 하였다. 이에 다시 여상이 헛기침을 한뒤 묻기를 ‘누이는 어릴 때 고운 진달래,개나리 꽃문양을 수놓은 옷을 잘 지어 입곤 하였소이다. 지금도 그 솜씨를 발휘해주실수 있겠소이까 ?’ 하니 여인이 다시 당황한 가운데 ‘지금 당장은 쉽지 않으나 나중에 기회가 되면 원한다면 한 벌 손수 지어 보여주마.’ 하였다. 이에 여상이 거듭 노하여 칼을 들이대며 ‘대체 너는 뭐하는 요사스러운 계집이냐.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누이가 기름진 음식을 잘 들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발을 다친일이나 꽃문양 옷을 지어 입는다는건 모두 내가 꾸민 거짓말이다.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는 요사스런 계집이냐 ?’ 하니 여인이 결국 무릎꿇고 울며 모든 사실을 밝혔다. ‘소첩은 본래 젊은 나이로 남편을 잃고 혼자 아이 셋을 키우는 몸으로 그저 소첩을 지켜줄 든든한 사내라도 곁에 하나 있으면 하는 갈망이 있었을 따름입니다. 헌데 근자에 저자에서 헤어진 누이를 찾는 사내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차라리 거짓 누이 행세를 하여 이 자를 붙잡아두면 평생의 버팀목이 될수 있을까하여 일을 꾸민것입니다. 도령이 뿌린 전단을 미리 확보하여 모든 정보를 입수한뒤 꾸민일이나 그저 소첩의 어리고 딱한 처지를 이해해주셔서 지금이라도 차라리 의남매라도 맺고 함께 살수 업겠소이까 ?’ 하니 여상이 거듭 격노해 ‘내 누이가 아직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어찌 너같은 요가스런 계집과 그런 황망한 짓을 벌이느냐. 성질같아선 너와 아이들까지 단칼에 베어버리고 싶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인간의 정으로 용서하는것뿐이니 그리 알도록 하라.’ 여상은 짐을 챙겨 바로 떠났고 여인은 사흘밤낮을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구슬피 울었다. 

 

 진아(眞阿)는 처음 대제학 벼슬하는 권응칠(權應漆)이라는 이의 집 노비로 팔려간뒤 그곳 마님의 배려로 이름을 유희(裕希)라 바꾸게 되었다. 허나 응칠의 집이 가세가 몰락하자 그 다음엔 이전 공신가문의 자손인 염동수(廉東洙)의 집으로 가게 되었고 이후 다시 명주땅 정태성(鄭泰成)이란 부호의 집 노비로 팔려갔다. 태성의 집에서 4년을 노비로 있었는데 이땐 다시 이름을 구부(構府)로 바꾸었다. 이때 태성의 집에 자주 들르는 친우로 오문현(吳文鉉),남태동(南泰東)이란 이가 있었는데 모두 나이는 오십을 넘긴이였다. 이때 문현이라는 이가 심부름하던 구부를 유심히 바라보다 은밀히 불러 사연을 물었다. 이에 구부는 자신의 사연을 바르게 밝히지는 않고 다만 ‘어린시절 부모를 잃고 여기저기 떠돌다 이곳저곳으로 노비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을 따름입니다. 어린시절 잃어버린 동생이 하나 있으나 지금은 소식을 알길없고 다만 이렇게 미천한 하녀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을 감지덕지하며 살고 있을 따름입니다.’ 하였다. 이에 문현이 탄식하며 ‘이 난세에 너같은 사연있는 아이가 어디 한둘이곘냐만 너의 상(相)을 유심히 보니 범상찮음이 느껴져서이다. 이렇게 평생을 떠돌아 다니느니 차라리 내 첩실이 한번 되어보는게 어떻겠느냐 ?’ 하였다. 처음 구부는 문현의 뜻을 알 수 없어 두려워 하였으나 문현이 거듭 간곡히 청하니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문현이 태성과 다시 상의한뒤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구부를 데려왔다. 

 문현의 첩실이 된뒤 이번엔 이름을 기주(技株)로 바꾸았다. 이때 문현은 상처한이 이미 이십년이 되었고 슬하에는 서(序)와 철(哲)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문현은 기주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하기를 ‘그저 가끔 이렇게 곁에서 말벗이나 되어주며 내 외로움만 달래주면 되고 다른뜻은 없느니라.’ 하였다. 서와 철은 아비의 소개를 받고 정중히 절하였다. 이후 다시 은밀히 찾아와 말하기를 ‘만약 아버님을 모시는 마음이 극진하고 변치 않을시 우리도 정중히 서모(庶母)로 대접할것이고 추후 적당한 유산도 떼어드릴것이나 만약 배신하는일이 있을시엔 용서없을테니 그리 아시라.’ 하였다. 

 이후 매일같이 기름진 술과 음식으로 기주에게 대접하고 서와 철도 매일 밤낮으로 정중히 문안을 올리니 기주가 차츰 시름이 덜어지고 낯빛도 밝아졌다. 하루는 문현이 기주에게 술을 따라주며 ‘고향생각이 나거나 예전 가족들이 그립지 않느냐 ?’ 물으니 기주가 답하기를 ‘대감께서 이미 하해와 같은 은혜를 주셨으니 어린 소첩이 무엇을 더 바라리이까. 그저 이 생활에 만족할뿐 다른 뜻이 없나이다.’ 하였다. 하루는 이번엔 장남 서가 찹아와서 은밀한 패물을 주며 ‘혹여 다른뜻을 품거나 이곳을 떠날 생각이 있으십니까 ?’ 물으니 다시 기주가 답하기를 ‘대감께서 저를 극진히 사랑해주시고 두분 도령께서도 저를 지극히 아껴주시니 신첩이 어찌 다른 마음을 품으리이까. 죽어서도 이 집 귀신이 되겠나이다.’ 하였다. 이에 서가 빙그레 한번 웃어보이고는 고개를 끄덕인뒤 방을 나왔다. 또 한번은 철이 찾아와 말하기를 ‘어찌 이곳 생활에 만족하냐 물으시면 그렇다고만 하십니까. 저라면 차라리 고향생각과 헤어진 가족을 잊을길이 없으니 한번만이라도 고향땅을 다녀오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저라면 차라리 적당한 노자를 쥐어주고 위로하며 한번 고향에 가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배려해 드렸을것입니다.’ 하니 오히려 기주가 씁쓸히 웃으며 답하기를 ‘사람마다 저마다 각자의 팔짜가 있으니 내가 지금 이곳까지 와 이미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는데 무엇을 더 바랄수 있습니까. 그저 운명에 순응하며 순리대로 살 뿐이니 도령께선 더는 다른 말씀을 하지 말아주소서.’ 하였다. 철은 이런 기주의 태도가 다소 딱하고 안타까운 듯 바라보았다. 

 기주가 하루는 다소 적적한지 인근의 주막에 들러 술을 즐기고 있었다. 기주는 본래 기름진 국을 좋아하지 않아 맑은국을 안주로 청해 주인이 내와 그것을 들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침 우연히 한 사내와 착석하게 되었는데 사내가 문득 느낌이 이상한지 묻기를 ‘혹시 어디서 무엇을 하시는 낭자오이까 ?’ 하니 ‘낭자는 아니고 본래 이곳저곳을 떠돌다 그나마 다행히 운이 좋아 지체높은 대감의 첩실이 되어 살고 있을뿐입니다. 그 외 다른뜻이 없습니다.’ 하였다. 사내가 다시 탄식하며 말하기를 ‘세상 그 어디에도 사연없는 중생이 없는곳이 없구료. 나 또한 뜻하지 않은 변란으로 가족을 잃고 하나있던 누이를 찾으러 방방곡곡을 떠돌고 있으나 어떤 몹쓸 요괴한테 사기까지 당하고 모든 것을 잃고 말았나이다. 그대도 보아하니 범상찮은 사연이 있나본데 이것도 인연인듯하니 함께 술이나 마십시다.’ 하였다. 신변에 대한 별다른 쓸데없는 이야기나 나누다 이어 기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너무 늦으면 저희 대감이나 도령들도 걱정하거나 꾸짖으실터이니 이만 가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헤어졌다. 실은 바로 기주 옛 이름 진아의 잃어버린 동생 여상이었으나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여상은 이전에 가짜누이를 진짜로 잘못알고 그때까지 쓰고 그렸단 방문을 모두 불에태워버린뒤라 그것을 보여줄수도 없었다. 두 사람은 이후 영원히 재회하지 못하였다. 

 

 여상은 요괴(가짜누나)에게 사기를 당한뒤 찢어버린 방문대신 새로운 방문을 수백장 더 만들어 더 머나먼 지역의 많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누이를 찾고자 했으나 여전히 그 행방은 닿을곳이 없었다. 한번은 마을을 돌아다니다 너무 지쳐 어느 한곳에서 잠시 며칠을 쉬며 머무르게 되었다. 우연히 한 경극을 구경하게 되었는데 내용은 이와 같았다.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나이 십칠세 정도 되는 오빠가 아홉 살,일곱살난 어린 두 누이동생을 돌보는 내용이었다. 헌데 머지않아 전란이 터지고 오라비는 나라의 부름을 받아 전쟁터로 떠나며 어린 두 누이를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오빠는 이웃과 친구들에게 어린 두 동생을 잘 부탁한다며 전장으로 떠나고자 하지만 사실상 사지(死地)로 떠나는것이나 다름없어 어린 두 동생이 오빠를 붙잡고 울며불며 못헤어지는 내용이었다. 동생들은 꼭 살아돌아오라며 오빠를 떠나보내지만 오빠는 끝내 전쟁터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고 죽기전의 오빠가 고향의 어린 두 동생을 신께 잘 부탁드린다며 그리고 고향의 동생들에겐 절대로 살만셔 사탄,마귀의 유혹에 빠지지말라는 내용을 노래하며 죽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여상이 극을 보니 극내용속 상황과 자신의 처지는 많이 달랐으나 ‘남매간의 정’을 노래한 것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극중애선 나이많은 오빠와 어린 여동생들이오 자신은 아홉 살때 세 살위 누나와 헤어지게 된 것이고, 극중에선 오빠가 전쟁터로 떠나 죽게되는것이고 자신은 아버지가 역적의 죄를 쓰게 되면서 나라법에 의해 누이하고도 헤어진것이지만 여하튼 남매간에 멀리 떨어져 서로를 그리워하고 슬퍼하는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아 여상은 극을 다 보고도 이와같이 탄식하며 한참을 울었다. ‘극의 내용은 나와 많이 다르지만 어찌 그 절절한 감정은 이리도 동일하단 말인가. 어린 누이들을 두고 전쟁터로 떠나는 나이많은 오라비의 심정이나 어린나이에 누이와 떨어져 사는 내 심정이나 어찌 다를수 있단말인가.’ 극이 끝나고도 한참을 운뒤에 관객이 다 떠나고 극장을 정돈해야하는 관리인이 와서 손짓하자 그제서야 극장을 떠날수가 있었다. 

 여상이 경극을 한번 더 보고싶어 며칠후 다시 공연장을 찾았으나 극단은 이미 다른지역으로 떠난뒤였다. 이에 여상은 다시금 허탈해하며 인근 개울가에서 혼자 한참을 또 슬피 울었다. 연극을 다시 못보게 된 아쉬움과 어디있는지 생사조차 모르는 누이에 대한 그리움이 한꺼번에 북받쳐 이와같은 시를 지었다. 

 ‘천지간에 죽지않고 살아만 있다면 / 어디선가 만날 수 있음은 분명할진대 

 막막한 대지에서 그 어느곳에서도 흔적을 알길 없으니  

 답답한 슬픔만 벅차오를 뿐이로다 / 아, 정녕 저 하늘 어디에 신이 있다면 

 혈연의 정을 어찌 이리도 애절하게 끊어놓을수 있단말인가. 

 그리운 누이여 무사히 살아만 있다면 / 설령 나 혼자 그 어떤 고통의 논밭을 헤맬지라도 

 이토록 찢어지는 가슴을 느낄일은 없을터인즉 ’ 

 여상이 개울가에서 울다 그만 잠이 들었는데 꿈에 웬 천사나 선녀같은 복장의 백옥같은 피부의 여인이 나타나 ‘내가 네 누이란다’ 하며 손수 여상의 이름을 부르기까지 하며 손짓하다 사라지고 말았다. 놀라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꿈임을 알고 다시금 허망하게 탄식하니 ‘이전에는 검은 요괴가 날 기망하더니 오늘은 하늘의 천사마저 내 꿈을 조롱하는구나. 천지 음양간에 날 가운데 두고 이토록 조롱하니 실로 비참하기만 할 따름이로다.’ 하였다. 

  
 여상이 결국 누이를 찾는일을 포기하고 산채로 들기로 했다. 애초 이주땅 북서쪽 이인,기인들이 사는곳을 말해준 주막주인을 찾아가니, 주막주인은 실로 5년만에 찾아온 여상을 보고 놀라며 한편으론 탄식하기를 ‘그대도 결국 이 난세를 탄식하며 세상을 포기하기로 한 셈인데 그 뜻은 충분히나 좀 미안하고 유감스럽게 되었네. 그때 내가 그와같은 이야기를 얼핏 들은바 있어 자네에게 해주긴 했으나 나도 실은 자세히 아는버는 거의 없네. 다만 명주땅에 가면 복선(復線)이라는 이가 있는데, 그가 봉명산 몇몇 두령과 이전부터 친분이 있었다고 하니 그에게 찾아가면 혹시 봉명산으로 들어갈 방도가 보일지 모르네’ 하였다. 

 여상이 주막주인에게 진심으로 사례한뒤 길을 떠나 몇주가 결려 명주에 당도해 복선을 찾았는데 복선이 일단 정중하 술과 음식을 대접한뒤 말하기를 ‘과분한 저를 이주땅 이인,기인과 친분이 깊은것처럼 소개해주신분이 계시다 하니 몸둘바를 모르겠소이다. 허나 내가 한때 봉명산으로 숨어든 한과(韓過),지두(池杜)등과 친분이 있었음은 사실이나 연이 끊긴지 너무 오래되었고 또 봉명산이나 천성산의 일도 이전과는 이치가 많이 달라졌다하니 함부로 찾아가봐야 화를 입을까 두렵소이다. 내 듣기로 서쪽으로 500여리를 더가 있는 안옥(安鈺)이란 고을에 사는 은광(恩廣)이라는 이가 있어 평상시엔 붓글씨와 도장파틑 일을 하고 태릉산 홍동범(洪東凡)이란 두령과 일정부분 친분이 있다 들었으니 차라리 그를 찾으시면 훗날의 일을 도모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소이다.’ 하엿다. 여상이 정중히 사례한뒤 에번엔 안옥땅 은광을 찾아가보았다. 

 은광아 갑작스러운 손님의 방문에 놀라워 하면서도 정중히 대접하며 말했다. ‘송나라가 망조가 들고 폭군과 암군이 연달아 즉위하니 내 주위 뜻있는 지사,이인들도 모두 세상을 저버리고 산채로 숨어든지 오래되었소. 부족하나마 직접 소개장을 써트릴터이니 뜻이 있으시면 한번 찾아가 보시는것도 나쁘진 않을것이오이다.’ 하고 손수 소개장을 써주었다. 

 여상이 은광이 써준 받아둔 소개장을 들고 마침내 길을 떠났다. 간간이 산적과 화적떼를 만나 위기를 모면할수 있었다. 무리중 황정(黃貞)과 병출(炳出)이라고 했다. 이들이 모두 여상의 딱한 사정을 듣고 입을모아 말하기를 ‘지금 이주땅 몇몇 산채에 뜻있는 지사,의인들이 계속 모여든다하나 나 또한 구체적인 곡절을 몰라 어지될찌논 모르겠소이다. 하였다. 이로인해 여상은 홍동범으로부터 받아든 서찰을 들고 다시 먼 행을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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