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進峰 傳

작성자훼드라|작성시간26.06.22|조회수39 목록 댓글 0

                                      進峰 傳 

 

 전송(前宋)이 이백년만에 쇠망하고 이어 후송(後宋)이 세워졌다. 후송이 7대 150년간은 그런대로 무난한 치세가 이어져갔다. 7대 강종(强宗)이 제위 22년만에 54세로 세상을 떠나자 처음엔 법도대로 장자(長子) 철(哲)이 제위(帝位)를 물려받아 8대 의종(義宗)이 되었다. 허나 차남 구(具)가 의종이 술과 노름을 너무 밝힌다는 이유로 즉위 15년만에 그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니 그가 9대 희종(熹宗)이다. 허나 희종은 후궁을 삼십명이나 둘 정도로 여색을 밝혀 선왕 의종이 술과 노름을 너무 밝힌다는 이유로 몰아낸 것이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희종이 재위 11년만에 병을 얻었는데 의원들이 진맥을 해보았으나 가망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에 희종이 황후(皇后) 홍씨(洪氏)에게 그간의 일을 눈물로 사죄한뒤 태자(太子) 유(裕)에게 양위의 뜻을 밝혔다. 희종이 아픈 가운데서도 내관의 도움을 받아가며 손수 조서를 작성하여 황후에게 내려 직접 어전회의에서 발표하라 명했다. 이때 유(裕)의 나이가 22세였다.  

 의종에게 본래 황후 연씨(延氏)가 있었는데, 의종이 폐위된뒤 희종이 연씨를 폐위시키진 않고 태비(太妃)에 봉하여 황도 남서쪽 칠십여리 떨어진곳에 의성전(義誠殿)을 지어주고 그곳에 임시로 기고토록 했다. 의성전은 본래 옛적 나라에 공을 세웠으나 나중에 역모를 꾀하다 처단당한 정승원(鄭承源)이라는 자의 별장이 있던곳으로 그 터를 적당히 수리해서 만든 것이다. 어떤이들은 의종이 제 형은 폐위시키면서 형수는 그나마 태비로 봉해 의성전에 살게 한 것을 보고 ‘그나마 일말의 양심이 있었나보다’ 하며 수군거렸다. 

 이때에 고미걸(高美傑),김중배(金中培),변영권(邊永勸),박한상(朴翰相)이란 자들이 있었는데 모두 옛적 진(陳)과 한(漢)과 노(盧)의 자손들이라 자부하는 자들이었다. 하루는 의성전을 찾아가 태비 연씨를 알현코자 했는데 원래 희종이 즉위하고 연씨를 태비로 봉해 의성전에 살게 했을 때 처음엔 50여명의 감시병을 두었으나 이후 30여명으로 줄었고 지금은 나태해져 열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이 허점을 이용 조정에서 내리는 양식을 전하는 일꾼이라 신분을 속이고 들어가는 것이 가능했다. 

 네사람의 방문에 연씨가 놀라니 먼저 고미걸이 입을 열어 말하기를 ‘역도 구(具)라는 자가 일찍이 제 형이 술과 노름을 밝힌다는 이유로 몰아내는 패륜망덕(悖倫亡德)의 죄를 저질렀고, 지금은 되려 그자가 서른명이나 되는 후궁을 두고 여색을 밝히니 제 형이 술과 노름을 밝힌다고 쫒아낸 명분이 무색해질 지경입니다. 이제 어느덧 그자가 천벌을 받아 병석에 누웠으나 어지 그런 패륜아의 아들이 황위를 물려받는 것을 두고볼수 있습니까. 이제 저희가 계책을 발위 황후의 핏줄로서 후계를 바로잡고자하니 비답(批答)을 주소서.’ 하였다. 연씨가 크게 놀라 ‘그대들이 대체 무슨수로 이미 수백리 떨어진 먼곳으로 귀양간 내 아들을 황위에 올릴수 있단 말인가 ?’ 하였다. 이에 김중배가 말하기를 ‘지금 송나라는 군제를 크게 세 개로 나누었는데 충훈부(忠勳部)는 나라 전체의 군제와 병력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고, 숭위부(崇衛部)는 황궁과 황도의 경비를 맡고 있으며 묘련부(妙練部)는 나라의 비상시에 외적이나 반란을 막을 비상한 군사를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어 나라의 군을 책임지는 세 개의 중요한 부서입니다. 허나 이 3부의 부장들이 모두 옛적 함께 동문수학하던 저희의 친우들이라 긴밀히 서신을 교환하면 충분히 황도의 군사를 무력화하고 일을 도모할수 있나이다.’ 하였다. 이후 황도에서 남서쪽 700리 떨어진 묘천(苗川)이란 곳으로 귀양간 의종의 장남 인(仁)과 남동쪽 900리 떨어진 골편(骨便)이란 곳으로 귀양간 차넘 석(錫)에게 은밀히 서한을 보내 역시 함께 일을 도모할 것을 준비하였다. 원래 인과 석은 의종이 폐위될 때 나이 겨우 12세와 9세였으나 어느덧 11년이 지나 모두 성인이 되어 있었다. 

 

 이때 진봉(進峰)은 나이 사십에 숭위부의 수장으로 있었다. 부장으로는 모희준(毛喜俊),류지영(柳指英)이 있었는데 본래 고미걸과 동문수학한 사이로 친분과 교류가 있었고 진봉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루는 진봉이 근무시간이 끝나 퇴근을 해야 하는데 모희준,류지영이 술과 약간의 음식을 갖고 들어와 ‘먼 북방의 오랑캐가 진상한 것이 있는데 저희만 먹기 아까워 장군(將軍)과 함께 하고자 찾아왔나이다.’ 하였다. 이에 진봉이 의아하여 ‘지금 송이 중원을 잃고 쫏겨온지 수백년이라 진상할 오랑캐가 없는데 어찌 이런 것을 먼 황도의 일개 부장들에게까지 바친단 말인가.’ 하였다. 이에 모희준이 나름 임기응변으로 머리를 굴려 말하기를 ‘북쪽에 서민족(緖敏族),진태족(晉兌族)이란 흉악한 무리가 있고 또 선대에도 암무족(暗務族),오승족(吳乘族) 같은 이들이 변란을 일으킨이가 있는데 어찌 오랑캐가 없다 하십니까. 또한 장군도 아시다시피 저희 선친께서 일찍이 북방의 경비를 서실 때 일부 그곳의 추장들과 친분과 교류가 있어 사사로운 진상품이 없을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사모하는 장군께 바치는것이니 사양치 말고 받으시오서.’ 하였다. 

 이에 진봉이 납득가는 말이라 생각하고 함께 술과 안주를 들었다. 다만 술맛이 이전과 달리 기묘하고 안주 또한 희귀하여 다시금 의아하여 ‘대체 이것들이 무엇인가 ?’ 하니 ‘북방 추운지역에 사람의 형상을 사뭇 닮은 진귀한 약재들이 많이나서 그것으로 술과 약을 종종 들인다 하였습니다. 이 술은 바로 그런 약재로 탄 진통주(眞通酒)라 하옵고 안주 또한 북방의 벽승(碧昇)이란 진귀한 짐승의 고기를 잡아 만든것이니 더는 의심치 마소서. 하였다.’ 이에 진봉이 과연 납득간다 생각하고 ‘이제 다시없을 천하 명주와 고기로구나. 이런 좋은벗들을 어찌 외면할소냐.’ 하고 함께 술과 음식을 들었다. 

 진봉이 어느덧 술에 거나하게 취해 말하기를 ‘그대들도 알다시피 송은 원래 옛적 드넓은 중원을 호령하던 진,한,노의 후예로 오호(五胡)의 난때 옛땅을 잃고 서역으로 피신해 사는몸. 언젠가 조상들의 뼈가 묻힌 저 땅을 회복해야 할것인데 이제 나라꼴은 말이 아니오 갈수록 쇠망해가고 있으니 이를 어쩐단말이냐 ?’ 비분강개 하였다. 이에 모희준,류지영이 맞장구를 치듯 ‘저희라고 어찌 그 치욕을 하루인들 잊을날이 있겠습니까. 마땅히 장군과 힘을 합쳐 좋은날이 오기만을 바랄뿐입니다.’ 슬퍼하며 울 듯이 말했다. 

 진봉이 어느덧 술에 거나하게 취해 쓰러져있었고 모희준,류지영은 이미 고미걸,김중배로부터 미리 받은 약조가 있어 이대로 시행하였다. 밤늦은 시간 본래 숭위부 말단 부장중에 만욱(滿昱)이란 이가 있어 지금껏 진봉을 사모해왔다. 술에 취해 잠든 진봉을 황급히 깨우려하니 깊은 밤에서야 깨어나 진봉이 눈비비고 일어나 ‘대체 무슨일인가 ? 희준과 지영은 다 어디로 갔는가 ?’ 하니 만욱이 비분강개한속에 간하였다. ‘모두 간악한 고미걸,김중배의 무리에 당했나이다. 모희준,류지영등은 본래 고미걸과 동분수학한자로 미리 내통이 되어있었고 충훈부와 묘련부에도 미리 고미걸의 무리와 내통한 부장들이 있어 지금 삼부(三部)의 군세를 모두 장악하였나이다. 지금 그들은 선대 술과 노름을 밝히다 폐위된 철(哲)의 장남 인(仁)을 황위에 올리겠다 하고 지금 삼부의 군사를 모두 몰고 황도로 진격하고 있나이다.’ 하였다. 

 진봉이 뒤늦게 사태를 깨닫고 크게 놀라 ‘대체 그게 무슨 해괴한 소리냐. 나는 그렇다치고 충훈부를 다스리는 이인성(李寅星) 장군이나 묘련부의 백승홍(白承弘) 장군들은 모두 백전불태의 명장들이신데 어찌 그런분들이 한낱 그런 도적떼들에게 당한단 말이냐 ?’ 하니 만욱이 거듭 땅을치며 분개하여 말하기를 ‘모두 같은꾀에 당하였나이다. 알고보녀 충훈부,묘련부의 부장들도 모두 미리 고미걸,김중배의 무리외 연통이 되어있는자라 미리 약속하고 같은 방식으로 이인성 장군과 백승홍 장군을 억류하고 제압한뒤 자신들이 직접 군을 통솔하여 고미걸,김중배의 휘하에 든것입니다. 우리 숭위부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였다. 진봉이 이에 더욱 격노하고 ‘어찌 그 버러지같은 것들이 한낱 오랑캐만도 못한 패륜의 짓을 저지른단 말이나. 내 일찍이 동서고금 사서 섭렵하지 못한 것이 없으나 저 머나먼 동이(東夷)나 서융(西戎) 또는 미개한 남만(南蠻)과 흉악한 북적(北狄)에서도 그런일이 일어났다고는 들어본바가 없는데 하물며 그 옛날 중원의 진한노(陳漢盧)의 피를 이어받은 충위용장(忠衛勇將)들이 그런 황망한짓을 벌인단 말이냐 !!!’ 거듭 분개하여 벽력같은 호통을 쳤다. 말단지장 만윽은 그저 혼자 울면서 ‘모두 버러지만도 못한 간교한 역적들에게 당한일입니다. 장군, 대체 이를 어쩌면 좋사옵니까.’ 하였다 

 

 진봉이 결국 군사를 몰아 고미걸,김중배의 무리에 대적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부장 모희준,류지영의 배신에 치를 떨고 있었다. 허나 만욱이 황급히 만류하며 말하기를 ‘지금 숭위부 뿐만 아니랴 충훈부,묘련부의 군사들이 모두 고미걸,김중배의 수하로 들어가 적의 무리는 일만이 넘고 지금 여기 남아있는 군사는 백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지금 대체 무엇을 어찌하시렵니까 ? 차라리 달아나신뒤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낫습니다.’ 하니 오히려 진봉이 칼로 만욱을 겨누며 ‘너도 역도와 한패거리가 되려느냐 ? 역적에게 가곘다면 이 자리에서 벨것이나 함께할것이라면 네가 내 마지막 수하가 될것이디.’ 하니 만욱이 울며 엎드려 ‘어찌 제가 장군을 배신하곘습니까. 죽는날까지 장군과 하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진봉이 마지막 백인의 결사대를 몰고 황궁으로 향했다. 

 이때 이미 고미걸,김중배는 황궁을 장악하고 황후 홍씨를 끌고나와 강제로 조서를 작성하게 했다. 본래의 조서는 병석에 누운 희종이 태자 유(裕)에게 양위한다는 내용이었으나 강제로 선왕(先王) 의종의 장남 인(仁)에게 양위한다는 내용으로 바꾸게 했다. 황후 홍씨가 처음엔 거절하였으나 고미걸과 김중배가 칼로 위협하니 결국 울면서 가짜조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 

 이때 진봉이 백인의 군사로 황궁에 당도하였다. 이때 고미걸과 김중배의 군사들은 이미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고 방심하고 있었는데 그 허점을 노려 궁안으로 들이쳤다. 고미걸과 김중배가 놀라 대응하니 양군이 대치하였다. 고미걸은 본래 숭위부 수장 진봉의 얼굴을 몰랐으나 김중배가 알아보았다. 이에 일단 설득하려 하였다. ‘역적 구(具)가 본래 적장(嫡長)이 아니었음에도 제 형을 부당하게 몰아내고 어린 조카들을 멀리 귀양보내 핍박하고는 스스로 여색을 밝혀 국정을 내던지니 간신은 횡행하고 나라의 기강과 법도가 모두 무너지는 망극지변에 이르렀나이다. 이에 그르친 법도를 바르게 세우고자 정의의 군사를 일으켰는데 어찌 장군같은분이 그 이치를 모르고 경거망동하시나이까 ? 지금이라도 우리와 손을 잡는다면 그 공훈을 저희가 반드시 잊지않고 선처해 드리리다’ 하였다. 이에 진봉이 거듭 노하여 ‘너희가 어찌하여 그러잖아도 무너지는 나라에 또다시 변란을 불러일으키느냐. 너희같은 자들이 계속 날뛰는바로 간신들이 설치고 백성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가고 있으며 나라의 기강과 법도가 모두 무너지고 있음을 어찌 모르느냐 ? 내 지금이라도 진실로 너희를 정죄하여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으리다’ 하였다. 김중배가 하는수없이 숭위부 부장 모희준과 류지영을 다시 불러 장군을 설득하게 하려 헀으나 진봉이 둘을 보자 거듭 불같이 노하여 ‘너희가 감히 치졸한 수법으로 모시는 장군을 기망하고 역도의 편에 서다니 도저히 용서할수 없도다. 내 오늘 너희를 손수 목베지 않으면 죽어서도 사자(使者)앞에 면목이 없으리라.’ 하고 바로 두사람에게 달려들었다. 허나 모희준과 류지영이 이미 지략을 발휘 미리 함청을 파놓아 진봉은 그물에 걸려 사로잡히고 말았다. 

 진봉은 사로잡힌뒤 고미걸의 무리가 만든 특수감옥에 갇혔다. 심문하는 장수들이 그를 불러내 고문하였는데 진봉이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이해할수 없다는 듯 말하니 ‘이미 너희에게 대권(大權)이 넘어갔는데 더 고문할게 뭐가 있느냐 ? 황제고 뭐고 이미 너희가 멋대로 갈아치웠으니 목을베든 삼족을 멸하든 너희 뜻대로 하라.’ 하였다. 이에 고미걸의 특명을 받은 부장 한명이 내려와선 ‘저희 수장(首長)께선 폐주 구(具)의 시절에 있었던 부패와 패륜의 법도를 모두 낱낱이 진상을 가리라 하였습니다. 장군께서도 선왕시절 높은자리에 계셨으니 분명 당시 권신들의 부패와 전횡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을것입니다. 아는 것을 모두 토해내시면 방면해 드리곘으나 만약 이를 발설치 않으시면 고문하는수밖에 없습니다.’ 하였다. 이에 진봉이 당치 않다는 듯 ‘평생을 우직하게 군에만 몸담은 내가 무슨 부패할게 있겠느냐 ? 그냥 역적으로 몰아 삼족을 멸하면 될 것을 고문해봤자 나올 것 없으니 그냥 이대로 죽여라.’ 하였다. 고미걸의 수하들이 진봉을 사흘밤낮을 고문하니 진봉은 더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의종의 장남 인(仁)이 결국 황위에 올랐으나 변란(變亂)을 주도한 고미걸,김중배,변영권,박한상 넷에 실권을 잡았다. 애초 황도 삼부(三部)의 군을 관리하는 충훈부,숭위부,묘련부의 수장들은 모두 반군(反軍)의 혐의로써 참형을 당하게 되었으나 다만 진봉은 그래도 과거 측근인 모희준,류지영이 옛정을 생각해 목숨만은 부지하게 해달라고 해서 황도 서남쪽으로 삼백여리 떨어진 안정현(安貞縣)의 향리로 보내지게 되었다. 향리(鄕吏)지만 고미걸이 이미 현령에게 별도의 밀지를 보낸 것이 있어 현청의 마굿간과 기르는 가축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게 했다. 

 진봉이 본래 아내 서씨(徐氏)가 있었으나 전란중에 병을얻어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이후 진봉이 혼자 향리일을 보며 수년을 살았다. 진봉이 본래 과거 황도에서 벼슬할 때 함께 교류하던 이정원(李定元),원광호(元廣鎬)라는 이가 있었는데 수소문 끝에 진봉의 행방을 알아내 안정현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처음 진봉이 이들을 보고 놀라 ‘그대들이 어찌 살아 여기까지 왔는가 ?’ 하니 이정원이 먼저 씁쓸히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가 삼족을 멸할 죄를 뒤집어쓰긴 하였으나 구족이나 십족을 멸할죄는 아닌데 다만 옛벗에 불과한 우리까지 연좌(連坐)될 일이 없지 않은가. 다만 그대의 소식이 궁금하여 수소문을 하려 들었더니 모희준이란 이가 알고 귀띰을 해주어 이렇게 찾아올수 있었네.’ 하였다. 원광호가 씁쓸히 웃으며 ‘모희준,류지영이란 자들이 그대를 배신하긴 했으나 그래도 이런 배려도 해주는 것을 보면 그렇게까지 극악한 무리는 아닌듯하네.’ 하였다. 허나 진봉은 다시 옛일이 되살아나 옛 상처와 함께 울화가 치밀어 올라 ‘이미 나를 배신하는 간악한 책략을 편것들인데 지금 더 논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 더 거론치 마시게’ 하였다. 이정원,원광호가 진봉을 만류하고 또 한편으로는 위로하며 말하기를 ‘우리도 어차피 그대와 옛 친분이 있었다는 이유로 연좌될일은 없으나 큰벼슬 하긴 글렀네. 어차피 비주류로 밀려나 평생 한직으로 살 바엔 차라리 벼슬을 아니함만 못하다 생각하고 이리 떠나온것이니 이따금 술이나 마시며 함께 농사나 지으며 어울리세나.’ 하였디. 진봉이 옛 친우들의 마음씀이 고마우면서도 다시금 옛일이 치밀어 올라 한바탕 울음을 터트렸다. 

 이정원,원광호가 이미 진봉이 전란중 상처(喪妻)한 일을 알고있어 하루는 다시 찾아와 술을 마시며 이와같이 말했다. ‘그대가 안타까이 부하들의 배신으로 굴욕을 당했고 난군중에 아내마저 잃고 슬하에 자손도 없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은가. 그대 이제 겨우 나이 사십을 조금 넘긴 나이지 아작 살날이 적다고 말할 수는 없는때일세. 지금이라도 새장가를 드는게 어떻겠는가.’ 하였다. 이에 진봉이 ‘이런 처지에 무슨 장가들 여력이 있겠는가. 이런식으로 조용히 목숨이나 부지하며 여생을 보낼생각이니 공연한 소리를 마시게’ 하였다. 이에 다시 원광호가 그를 위로하며 말하기를 ‘내 막내누이의 딸이 지금 나이 열아홉인데 어미가 병으로 죽어 내려올 때 같이 왔네. 심성 유순하고 옛 선현의 도리를 일찍이 익혀 참하기 그지없으니 만나봄이 어떠한가 ?’ 하였다. 이에 진봉이 말하기를 ‘이미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대체 더 무엇을 하란 말인가. 게다가 그대의 막내동생의 딸이면 그만큼 나이도 더 어릴것인데 그런 어린 처자를 어찌 취한단말인가. 더더욱 당치않네.’ 하며 손을 내저었다. 진봉이 거듭 사양의 뜻을 밝히자 이정원,원광호가 진봉이 나이 사십을 넘겼음에도 아직 슬하에 자손이 없음을 이유로 들어 더욱 혼사를 추친하려 들자 진봉이 몇 번을 사양하다 결국 친구들의 성의를 더는 거절할수 없어 결국 혼사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진봉이 결국 원광호의 막내누이 딸인 주씨(朱氏)와 혼사를 치르게 되었다. 원래 진봉이 변란중에 붙잡혀 고문을 당할 때 불구(不具)가 되어 있었는데 지금껏 그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막상 친우들의 거듭되고 간곡한 청을 거절할수 없어 혼사를 치루었으나 한동안 주씨와 함께 침소에 들지 않았다. 혼사는 조촐한 가운데서도 현청의 관원과 하인들은 물론 동네주민들도 상당수 참석한 가운데 격식을 잘 차린 정중한 예식으로 치러졌다. 허나 이후 한동안 진봉이 주씨와 동침하지 않자 주씨가 의아하여 물었다. ‘제가 어린나이에 비록 나이많은 나으리를 받아들임은 크게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몰락한 나으리의 가문을 일으키는데 도움이 되게 함이요 또 미천한 몸으로 대인의 가문을 번창케할 막중한 소임또한 갖춘 몸입니다. 헌데 지금 나으리는 한사코 저와의 동침을 거부하시니 대체 무슨 까닭입니까’ 하였다. 이에 진봉이 나름 둘러대며 말하기를 ‘공무에 바빠 피곤하고 또 해야할 공부가 많아 쉬이 다른일을 볼 시간이 없소이다’ 하였다. 이에 주씨가 더욱 어이없어 반박하기를 ‘나으리께서 제가 비록 나이어린 여인이라고 바보로 아시는것입니까. 나으리께서 한때 잘나가는 명문가 자손이었다지만 지금은 몰락하여 현청의 한낱 한직으로 계시고 또한 비록 언젠가는 몰락한 가문을 일으켜야 할 소임이 있으시곘지만 지금은 변란중에 쫏겨오면서 변변한 서책하나 챙겨오지 못하였을텐데 지금 여기서 대체 무슨 공부를 하신단 말입니까 ?’ 하였다. 진봉이 더 대꾸할말이 없어 ‘그만한 사정이 있으니 부인은 그저 이해해주시기 바라오.’ 하였다. 

 주씨가 처음엔 진봉의 이와같은 태도를 이해할수 없어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다 결국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스스로 확인을 해보고자 하였다. 주위에 묻기도 민망한 사안이라 밤에 몰래 침소에 들어 스스로 옷을벗겨 확인하고는 기함할뻔하였다. 어린 주씨가 보기에 생전 처음 보는 희한한 광경이라 두렵고 겁이나 울면서 도망치고 말았다. 이때 주씨가 혼사를 치르기전에 본래 외숙이 되눈 원광호의 집에 머물고 있었기에 그의 집으로 갔으나 광호는 사정을 모르는채 꾸짖기를 ‘이제 이미 진봉에게 출가를 하였으니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하거늘 너는 어찌 네 외숙과 그 친우사이의 일을 이와같이 그르치려 하느냐 ?’ 하며 종아리를 쳐셔 내쫒아버렸다. 주씨가 오갈데없는 사이가 되어 그저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이때 마독(馬督)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본래 진봉의 밑에서 함께 마굿간과 가축일을 보는 하인이었다. 일 때문에 종종 진봉의 집에도 드나들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다 주씨가 혼자 우는 것을 몇 번 보았다. 돌아갈 처지가 못되는 주씨가 하는수없이 진봉의 집으로 돌아울 수밖에 없었는데, 속은 것이 분하고 화가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르 진봉의 은밀한곳 못볼꼴을 본 뒤라 더더욱 무섭고도 두려워 진봉의 곁에 다가갈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마독이 몇 번 집에 드나들다 결국 주씨의 우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엔 집안일이라 생각하고 별일 아닐것이라 신경쓰지 않았는데 몇 번 그 모습을 보고는 결국 마음이 쓰여 아니 다가갈수 없었다. 결국 하루는 저녁때 찾아와서 ‘부인께서 대체 무슨일로 이와같이 울고 계십니까 ?’ 하니 처음엔 주씨가 나름 품격과 예의를 갖춰 말하기를 ‘천한 것이 어찌 모시는 어른의 집안일에 함부로 관여하려 하느냐.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것이니 너는 네 하는일에만 충실할뿐 다른 문제에 신경쓰지 말거라.’ 하였다. 이에 마독은 무안하여 바로 물러났다. 

 얼마후 새벽시간에 급히 현청의 일로 찾아뵐일이 있어 진봉을 만나러 왔으나 어인일인지 진봉은 보이지 않고 주씨의 방에 슬쩍 들아가보니 주씨 혼자 스스로 해괴한일을 하고 있었다. 차마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다만 주씨가 잠에서 깨 나올때를 기다려 ‘어르신께 급히 전갈드릴일이 있어 찾아왔는데 어르신은 보이지 않고 마님은 대체 무슨일을 그리 하시는것입니까 ?’ 하였다. 주씨는 거듭 위엄을 갖추고 꾸짖기를 ‘어르신은 다만 새벽불공을 드리러 가실뿐이요 나야 다만 어르신 아침 진지를 준비하러 나왔을뿐인데 천한 것은 무슨 그리 궁금한게 많으냐. 너는 네 일에만 충실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 고을 주변 십여리에 사찰(寺刹)은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난뒤 다시 일 때문에 진봉의 집에 들렀을 때 주씨의 우는 모습을 보고 다시 다가가 묻기를 ‘제가 알기로 어르신께서 젊은 부인을 얻은지 아직 반년이 채 되지 않아 마땅히 이 집에 밝은빛이 띄고 웃음꽃이 떠나지 않아야 하는데, 제가 이 집에 들를때마다 어둡고 우울한빛이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까닭입니까 ?’ 하였다. 주씨가 다시금 마독을 내치려 하였으나 기어이 참지 못하고 마독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한번은 현령이 고생하는 관원들을 몇몇 불러서 크게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실은 한번쯤 진봉을 위해 마련하고픈 자리였기에 진봉이 몇차례 사양하는데도 다른 향리들에게 특명을 내려 일부러 함께 자리하게 했다. 이후 술을 따라주며 ‘이때가 난세라 하나 따지고보면 세상에 난세가 아니었던때가 어디있겠으며 후송(後宋)이 생기고 어느덧 150년이 넘는다 하나 하루도 바람잘날이 없었소이다. 따지고보면 애초에 진,한,노가 망하고 오호(五胡)에게 망하고 서역으로 쫒겨올때부터 한족(漢族)은 이미 망조가 들었던 것이외다. 생각해보면 천하가 난세요, 처처(處處)가 난세이며 동서고금 어디에 난세 어닌 시절이 없으니 이런 난세에 억울한 누명 한두번 뒤집어쓰지 않은이가 누가 있겠소이가. 다들 그만한 사정과 팔자가 있으려니 피차 이해하고 살아가는 처지니 그저 공(公)께선 스스로 죄인이다 자책하지 마시고 그저 다함께 술이나 즐기사이다.’ 하였다. 이에 진봉이 현령의 말을 받아 말하기를 ‘죄인된 몸으로 그저 미관말직으로 자리에 붙어 한목숨 살아가는 것을 그나마 하늘의 운복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자중하며 살아가고 있을뿐이외다. 과분한 큰상을 제게 내려주시니 그저 현령어른의 은혜에 감읍할 따름이외다.’ 하였다. 

 진봉이 이날 밤늦께까지 거나하게 술에 취한뒤 들어와보니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진봉이 이날 잔치에서 많이 취헀지만 집에 돌아왔을땐 어느정도 술이 깨 있을터인데 분명 헛것을 본게 아니라 더욱 의심하였다. 다음날 날이 개어 주씨를 불러 물으니 주씨는 그저 조용히 탕국과 간단한 찬거리로 진지상을 내오니 진봉이 의심가서 물었다. ‘간밤에 내 현령께서 주신 주안상이 과하여 거나하게 취해 늦게 들어왔으나 부인께선 간밤에 무슨일이 없으셨소이까 ?’ 하니 주씨가 답하기를 ‘나으리께서 귀가가 늦으시어 그저 걱정하고 있었을뿐 다만 너무 피곤하여 돌아오신줄 모르고 잠들어 있었으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하였다. 진봉이 한층 더 의심이 갔으나 일단 묻지 않았다. 

 하루는 마독과 함께 현청일을 보고 있는데 문득 짬이나서 진봉이 ‘한번 팔씨름을 해보자’ 했다. 마독이 긴장한 가운데서도 공연한 의심을 살까 두려워 진봉의 시합에 응했다. 다섯판을 해보았는데 세 번을 진봉이 이기고 마독은 두 번 이겼다. 사실 처음 한번 진봉이 이기고 다음 두 번을 마독이 이겨 마독이 유리한 상황이었으나 네 번째와 다섯 번째를 진봉이 이긴 역전승이었다. 이에 진봉이 마독을 한팔에 들고 휘휘 돌리며 위협하며 말하기를 ‘내 비록 어느덧 나이 오십을 바라보고 있고 또한 전장을 떠난지 오래되어 옛날과 같은 힘과 지략은 없으나 그래도 웬만한 장정 하나 꺾을만한 힘은 남아있다. 함부로 대들면 용서치 않으리다.’ 하였다. 마독이 섬뜩한 가운데서도 거듭 절을 올리며 진봉에게 사죄하였다. 

 마독이 아무래도 진봉이 뭔가 눈치챈 것 아닌가 의심되어 주씨를 찾아왔다. 그리고 말하기를 ‘이미 우리의 일이 돌이킬수 없는 관계까지 온 이상 여기서 더 주저하면 반드시 나으리의 의심을 사 더 큰 화를 입을것이오. 차라리 멀리 달아나는게 어떻겠소이까 ?’ 하니 주씨가 말하기를 ‘말은 그렇게 하나 현실은 그리 쉽지 않을것이외다. 무작정 달아난다 한들 돈은 어디서 구할곳이며 머물거나 의탁할만한곳을 또 어디서 구할것이며 새로운 곳에서 무엇으로 벌어먹고 살수 있을지도 분명치기 않지 않사오이까. 무작정 달아나는것만큼 어리석은일도 없소이다.’ 하며 주저하고 있었다. 허니 마독이 거급 주씨를 다그치며 말하기를 ‘이런식으로 주저하면 결국 언젠가는 발각나고 말것이오. 더 늦기전에 뭐라도 실행에 옮겨야 하오이다.’ 하였다. 

 실은 진봉이 이를 엿듣고 있었다. 단칼에 두 사람을 베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나 참고 물러난뒤 얼마후 다시 은믈히 주씨를 불러 물었다. ‘내 그대외 혼사를 치르고 어느덧 여러달이 지났으나 한동안 부인에게서 근심하고 어두운 빛이 떠나지 않ᄋᆞᆻ는데 지금은 오히려 밝아보이니 그것이 무슨 까닭이오이까 ?’ 하였다. 허니 주씨가 대답하기를 ‘처음 어린나이에 낯선곳으로 시집와 모든 것이 두렵고 근심될 수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나으리가 지극한 사랑을 주시니 더 우울할일이 무엇이 있으리이까 ?’ 하였다. 이에 진봉이 헛기침을 한번 하고 다시 묻기를 ‘이전에 볼때는 부인의 안색이며 자태가 마치 핏기잃은 화초처럼 시든 듯 하더니 요즘은 되려 생기발랄하오이다. 시든 화초에 누가 물이라도 준 것이오이까 ?’ 하였다. 이에 주씨가 뜨끔하면서도 가까스로 변명하며 말하기를 ‘이전에 살던 친정에서 제대로 먹지 못하여 피골이 상접한것이요 지금은 좋은 음식과 술을 매일같이 대접받으니 어찌 시든 화초가 생기를 되찾지 않을수 있으리이까. 모두 나으리의 은덕이외다.’ 하였다. 진봉이 술상을 엎어버리고 싶은 분개심을 참으며 말하기를 ‘이전에는 부인의 옷차림새가 항상 허술하고 남루하였는데 오늘날은 오히려 뭔가 잘 차려입고 마치 누군가에게 보져주려는 듯 하는데 무슨 다른뜻이 있으리이까 ?’ 하니 다시 주씨가 답하기를 ‘모든 것이 다 나으리에게 보이기 위함이지 어찌 다른뜻이 있으리이까. 또한 우리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 마땅히 가문의 법도와 예절을 가르쳐야할것이니 그전에 어미된 자로서 먼저 모범과 도리를 다할뿐이외다.’ 하였다. 

 진봉은 더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물러났다. 이후 밤이 깊어 혼자 밖으로 나와 하늘을 으러르며 탄식하기를 ‘이전 동이(東夷)에 어떤이는 아내가 잡귀와 정분이 난 것을 보고 춤을추고 노래를 불러 잡귀마저 쫒아냈다는데 나는 그럴 주제마저 못되는구나. 하늘아, 나는 이제 어쩌면 좋단 말이냐’ 하였다. 진봉이 마음같아선 불의한 두 남녀를 단칼에 베고 싶었으나 차마 사람을 죽일수는 없어 그러지 못하고 다만 어느날 밤 쇠꼬챙이 하나를 불에달궈 가져가서는 현청의 마굿간에서 관리하는 말 30여마리를 모두 눈과 항문을 쇠꼬챙이로 찔러버린뒤 달아나고 말았다. 

 

 진봉은 북으로 100여리를 달아났다. 일주일을 넘게 도망가서 한 마을에 이르렀는데 곡천(谷川)이라는 곳이었다. 마을은 작고 가난해보여 묵을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보였는데 저만치 작은 주막이 하나 보였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해 머물 것을 청하니 주인이 말하기를 ‘보다시피 여긴 살림이 가난하고 이따금 지나가는 장사치나 여행객이 있어 주막을 열긴 하오나 살림이 변변치는 못하다오. 손님이 묵는방 여분이 하나 있었는데 오늘은 마침 손님이 있어 더 재워줄 방이 없소’ 하며 쫏아내려 하였다. 허나 부인이 잠시 만류하며 말하기를 ‘원래 허드렛짐을 쌓아놓으며 창고처럼 쓰이는 방이 하나 있는데 그곳이라도 원하면 주무시기로 하시구려. 대신 방값은 두배를 내야하오.’ 하였다. 원래 진봉이 도망칠 때 챙겨온 노자가 다소 남아있어 두배를 내고 허름한 방에서 자야하나 오히려 더 고맙다 사례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보니 대충 아무래도 주막을 운영하면서 쓰는 이런저런 집기 따위가 여기저기 복잡하게 널려있었고 그나마 대충 구석으로 몰아넣으면 혼자 잘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대충 이불로 쓸만한 것을 찾아 그것을 덮고 깜빡 잠이 들었는데 ‘덜커덕’ 거리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떠보았다. 보아하니 8-9세 정도 되는 작은 여자아이가 들어와 작은 상자안에든 뭔가를 꺼내 입에 삼키고 달아났다. 처음엔 ‘혹여 저안에 작은 주전부리라도 있었나’ 싶어 대수롭지않게 여겼는데 그러다 아무래도 뭔가 석연찮아 상자를 열어보니 보석같은게 몇 개 들어있고 숫자는 많지 않았다. 처음 진봉이 이상하게 생각하기를 ‘만약 귀한 보석이면 이렇게 허술하게 두었을리는 없을텐데 뭔가 곡절이 있는듯하다’ 하고 일단 손대지 않기로하고 원래있던 자리에 돌려놓았다. 

 다음날이 되어 떠나려 하는데 부인이 잠시 진봉이 묵었던 방에 들어가보더니 뭔가를 가져와서는 ‘여기있던 작은 구슬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 네놈이 훔친것이냐 ?’ 하였다. 이에 진봉이 처음 억울하며 ‘당치않습니다 부인. 지금 제가 비록 제 신분을 밝힐수 없는 쫒기는 신세이나 원래 한때는 잘나가는 집안의 자손인 제가 어찌 그런짓을 한단 말입니까 ?’ 하였다. 이에 주인이 당치않다는 듯 ‘세상 도적놈들이 꼭 처음엔 너처럼 변명하더구나. 그런식으로라면 세상에 몰락하지 않은 집안이 어디있겠느냐 ?’며 더욱 의심하여 관아로 끌고가려 하였다. 헌데 진봉이 멀리보니 어제 보았던 그 여자아이가 저만치서 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에 ‘분명 저 아이가 훔쳐간 것이 분명하나 사실을 말하면 이 부부가 반드시 저 아이를 죽일것같다’ 하고는 억울하지만 자신이 죄를 뒤집어 쓰기로 했다. 주인이 말하기를 ‘너를 관아에 넘기는 것이 원래의 도리지만 이곳은 나라가 무너진뒤 새 현령이 부임하지 않은지 5년이 넘는다. 대신 이 근방 도적떼인 ’원성단(原盛團)‘에 넘길터이니 그곳에서 목숨을 구걸하든 살길을 청하든 네놈 마음대로 하라’ 하였다. 

 이후 원성단에서 왔다는 사내들이 내려와 진봉을 포박하여 끌고가니 진봉은 ‘이제 꼼짝없이 죽는구나’ 하였다. 산채로 들어가니 원성단의 두령이 잠시후 나와 말하기를 ‘우리가 비록 도적떼나 함부로 사람은 해치지 않는다. 만약 네가 내가 내는 문제를 맞출시 너를 살려 보내줄것이나 만약 맞추지 못하면 우리의 밥이 되거나 평생 이곳에서 노예로 살아야한다.’ 하였다. 이후 두령이 바닥에 큰 삼각형 몇 개를 그렸다. 진봉이 보아하니 작은 삼각형 세 개가 연결된 그림이지만 중간 삼각형과 가장 큰 삼각형을 합했을시 모두 여섯 개였다. ‘삼각형이 모두 몇 개냐 ?’ 두령이 물으니 진봉이 ‘여섯개’라 맞춰 두령이 살려주기로 했다. 이후 두령이 진봉을 데리고 갈림길로 데려와서는 ‘저쪽 북쪽 연기나는쪽엔 다른 도적떼가 사니 피해나는곳이 좋을곳이오 남쪽으로 가면 평탄한 길이고 이주땅으로 연결되니 그곳으로 찾아가보라’ 하였다. 진봉이 생각해보니 이 판국에 두령이 굳이 거짓말을 할것같지가 않아 말대로 남쪽길을 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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