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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웅락천황

작성자조이|작성시간17.07.09|조회수51 목록 댓글 0

[출처 : 동북아 역사재단]


日本書紀卷第十四 

 

大泊瀬幼武天皇 雄略天皇 


 

대박뢰유무천황(오호하츠세와카타케루노스메라미코토) 웅략천황(유랴쿠텐노)

 

大泊瀬幼武天皇, 雄朝嬬稚子宿禰天皇第五子也.天皇, 産而神光滿殿, 長而伉健過人.

대박뢰유무 천황은 웅조유치자숙녜 천황 다섯째 아들이다. 천황이 태어나자 신령스러운 빛이 건물에 가득 찼으며, 성장하자 강건함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다.

三年八月, 穴穗天皇, 意將沐浴, 幸于山宮, 遂登樓兮遊目, 因命酒兮肆宴.

3년 8월, 혈수 천황이 목욕을 하려고 산에 있는 궁으로 행차하였다. 그리고 누각에 올라서 노닐었다. 혈수 천황은 술을​ 가져오게 하여 성대하게 연회를 베풀었다.

爾乃情盤樂極, 間以言談, 顧謂皇后[去來穗別天皇女曰中蒂姬皇女, 更名長田大娘皇女也.大鷦鷯天皇子大草香皇子, 娶長田皇女, 生眉輪王也.於後, 穴穗天皇, 用根臣讒, 殺大草香皇子而立中蒂姬皇女爲皇后.語在穴穗天皇紀也]曰 "吾妹稱妻爲妹, 蓋古之俗乎, 汝雖親眤, 朕畏眉輪王."​

그리하여 마음이 풀어져서 즐거움이 극에 달하자 잠깐 담소를 하다가 돌아보며 황후[거래수별 천황의 딸로 중체희 황녀라고도 한다. 대초료 천황의 아들 대초향 황자가 장전 황녀를 맞이해서 미륜왕을 낳았다. 후에 혈수 천황이 근신의 첨언을 듣고 대초향 황자를 죽이고 중체희 황녀를 세워서 황후로 삼았다. 이 일은 혈수 천황기에 있다]에게 "내 누이여[아내를 누이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옛 습속인 거 같다], 그대는 (나와) 친밀하다 하더라도 짐은 미륜왕을 두려워한다"라고 말하였다.

眉輪王, 幼年遊戲樓下, 悉聞所談.既而穴穗天皇, 枕皇后膝, 晝醉眠臥, 於是眉輪王, 伺其熟睡而刺殺之.​​

어린 미륜왕은 누각 아래에서 놀다가 얘기하는 것을 모두 들었다. 이윽고 혈수 천황은 취해서 황후의 무릎을 베고 누워 낮잠이 들었다. 이때 미륜왕이 그가 깊이 잠든 틈을 타서 찔러 죽였다.

是日, 大舍人[闕姓字也]驟言於天皇曰 "穴穗天皇, 爲眉輪王見殺."

​이 날 대사인[이름은 알 수 없다]이 달려가서 천황에게 "혈수 천황이 미륜왕에게 살해되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

天皇大驚, 卽猜兄等, 被甲帶刀, 卒兵自將, 逼問八釣白彥皇子, 

천황은 크게 놀라 곧 형들을 의심하여, 갑옷을 입고 칼을 찬 후 병사를 거느리고 스스로 장수가 되어 팔조백언 황자(야츠리노시로히코노미코)에게 따져 물었다. ​

皇子見其欲害嘿坐不語, 天皇乃拔刀而斬.更逼問坂合黑彥皇子, 皇子亦知將害嘿坐不語, 天皇忿怒彌盛.

황자는 헤치려 함을 알고, 묵묵히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황은 이에 칼을 뽑아 목을 베었다. 그리고 그다음엔 판합흑언 황자(사카아히노쿠로히코노미코)를 위협하였다. 황자도 역시 해치려 함을 알고, 묵묵히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황은 분노가 극에 달하였다.

​乃復幷爲欲殺眉輪王, 案劾所由, 眉輪王曰 "臣元不求天位, 唯報父仇而已."

​이에 그는 미륜왕도 죽이고자 하여, 자초지종을 조사하였다. 미륜왕은 "신은 원래 왕의 자리를 바라지 않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을 뿐입니다."라고 말하였다. ​

坂合黑彥皇子, 深恐所疑, 竊語眉輪王, 遂共得間而出逃入圓大臣宅.

판합흑언 황자는 의심받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여 몰래 미륜왕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함께 틈을 타서 빠져나와 원대신(츠부라노오호오미)의 집으로 도망쳐들어갔다. ​

天皇使々乞之, 大臣以使報曰 "蓋聞人臣有事逃入王室, 未見君王隱匿臣舍.方今, 坂合黑彥皇子與眉輪王, 深恃臣心, 來臣之舍, 詎忍送歟."由是天皇, 復益興兵, 圍大臣宅.大臣出立於庭索脚帶, 時大臣妻, 持來脚帶, 愴矣傷懷而歌曰,

천황은 사람을 시켜서 내놓으라고 하였다. 그러자 대신은 사람을 보내 "무릇 듣건대, 인신(人臣)은 일이 있을 때 도망쳐서 왕실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군왕이 신하의 집에 숨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판합흑언 황자와 미륜왕이 깊이 신의 마음에 의지하여 신의 집에 오게 되었습니다. 어찌 차마 보내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대신은 뜰로 나가 각대(脚帶)를 찾았다. 이때 대신의 처가 각대를 가지고 와서 마음으로 슬퍼하고 애통해하며 노래를 불렀다.

​飫瀰能古簸 多倍能波伽摩鳴 那々陛鳴絁 爾播爾陀々始諦 阿遙比那陀須暮

나의 지아비인 대신이 흰 베로 짠 바지를 일곱 겹으로 입으시고, 뜰에 서서 각대를 어루만지고 계시네

​大臣, 裝束已畢, 進軍門跪拜曰 "臣雖被戮, 莫敢聽命.古人有云匹夫之志難可奪, 方屬乎臣.伏願大王, 奉獻臣女韓媛與葛城宅七區, 請以贖罪."天皇不許, 縱火燔宅.

대신은 준비를 마치고 군문(군영의 문)에 나아가서 무릎 꿇고 절하며, "신이 죽게 된다 하더라도 결코 명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필부(匹夫)의 뜻도 빼앗기 어렵다고 한 것은 바로 신에게 해당하는 말인가 하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대왕께 신의 딸 한원(韓媛 카라히메)과 갈성(葛城 카즈라키)의 집 7채를 바쳐 속죄하기를 청합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천황은​ 허락하지 않고 불을 질러 집을 태웠다.

​於是, 大臣與黑彥皇子眉輪王倶被燔死, 時坂合部連贄宿禰, 抱皇子屍而見燔死.其舍人等[闕名], 收取所燒, 遂難擇骨, 盛之一棺, 合葬新漢𣝅本南丘.[𣝅字未詳, 蓋是槻乎.]

이에 대신과 흑언 황자와 미륜왕은 함께 불타 죽었다. 이때 판합부련지숙녜(사카아히베노무라지니헤노스쿠네)가 황자의 시체를 감싸 안고 함께 불타 죽었다. 사인(舍人 ; 흑언 황자의 측근을 섬기던 사람) 등[이름을 알 수 없다]이 불탄 것들을 모았으나, 누구의 뼈인지 가려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관 하나에 넣어서 신한(이마키노아야) 의본(츠키모토)[𣝅라는 글자는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이것은 槻(츠키 ; 느티나무)인 것 같다]의 남쪽 언덕에 합장하였다.

冬十月癸未朔, 天皇, 恨穴穗天皇曾欲以市邊押磐皇子傅國而遙付囑後事, 乃使人於市邊押磐皇子, 陽期狡獵, 勸遊郊野曰 "近江狹々城山君韓帒言『今, 於近江來田綿蛟屋野, 猪鹿多有.其戴角類枯樹末, 其聚脚如弱木株, 呼吸氣息似於朝霧.』願與皇子, 孟冬作陰之月・寒風肅殺之晨, 將逍遙於郊野, 聊娯情以騁射."

​겨울 10월 계미삭, 천황은 혈수 천황이 일찍이 시변압반 황자(이치노베노오시하노미코)에게 나라를 물려주고 후사를 부탁한 것을 원망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사람을 시변압반 황자에게 보내어 거짓으로 사냥하러 들로 나가자고 권하며 "근강(아후미)의 협협성산군한대(사사키노야마노키미카라후쿠로)가 '지금 근강 내전면(구타와타)의 문옥야(蚊屋野 ; 카야노)에 멧돼지와 사슴이 많이 있습니다. 사슴 머리의 뿔은 마른 나뭇가지와 비슷하고, 모은 다리는 관목과도 같습니다. 또한 호흡하는 숨의 기운이 아침 안개와 같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원컨대 황자와 함께 초겨울 바람이 쌀쌀한 새벽에 장차 멀리 교외의 들판으로 노닐어 잠시나마 정을 나누며 활을 쏘고 사냥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였다.

市邊押磐皇子, 乃隨馳獵.於是, 大泊瀬天皇, 彎弓驟馬而陽呼曰 "猪有."卽射殺市邊押磐皇子.皇子帳內佐伯部賣輪[更名仲子], 抱屍駭惋, 不解所由, 反側呼號, 往還頭脚.天皇尚誅之.

시변압반 황자는 이에 따라가 사냥하였다. 이때 대박뢰 천황이 활시위를 당기면서 빠르게 나아가 거짓으로 멧돼지가 있다고 크게 소리치고 곧 시변압반 황자를 활로 쏘아 죽였다. 황자의 장내(帳內) 좌백부매륜[다른 이름은 중수자(나카테코)이다]이 주검을 난고 놀라 한탄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뒹굴고 소리치며 시신의 곁을 왔다 갔다 하였다. 천황은 그도 베어 죽였다.

是月, 御馬皇子, 以曾善三輪君身狹故思欲遣慮而往, 不意, 道逢邀軍, 於三輪磐井側逆戰, 不久被捉.臨刑, 指井而詛曰 "此水者百姓唯得飲焉, 王者獨不能飲矣."

이 달에 어마 황자(미마노미코)가 삼륜군신협(미와노키미무사)과 이전부터 친하였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전하려고 찾아갔다. 그러나 뜻밖에 도중에 매복한 군사를 만나 삼륜(미와)의 반정(이하위) 근처에서 맞서 싸웠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사로잡혔다. 그는 처형을 앞두고 우물을 가리키며 "이 물은 오직 백성만이 마실 수 있을 것이다. 왕이 되는 자는 결코 마실 수 없을 것이다"라고 저주하였다.

十一月壬子朔甲子, 天皇, 命有司設壇於泊瀬朝倉, 卽天皇位, 遂定宮焉.以平群臣眞鳥爲大臣, 以大伴連室屋・物部連目爲大連.

11월 임자삭 갑자(13일), 천황이 유사에게 명하여 높은 단을 박뢰(하츠세)​의 조창(아사쿠라)에 쌓고 즉위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궁을 정하였다. 또한 평군신진조(헤구리노오미마토리)를 대신으로 삼고, 대반련실옥(오호토모노무라지무라야)과 물부련목(모노노베노무라지메)을 대련(大連)으로 삼았다.

元年春三月庚戌朔壬子, 立草香幡梭姬皇女, 爲皇后.[更名橘姬皇女.]是月, 立三妃.元妃葛城圓大臣女曰韓媛, 生白髮武廣國押稚日本根子天皇與稚足姬皇女[更名𣑥幡娘姬皇女], 是皇女侍伊勢大神祠.

원년 봄 3월 경술삭 임자(3일), 초향번사희 황녀를 세워서 황후로 삼았다[다른 이름은 귤희 황녀라고 한다]. 이달에 세 명의 비를 세웠다. 원비는갈성원대신의 딸로 한원이라 한다. 한원은 백발무광국압치일본근자 천황과 치족희 황녀를 낳았다[또한 다른 이름을 고번희 황녀라고 한다]. 이 황녀는 (재궁이 되어) 이세대신사를 섬겼다. ​

次有吉備上道臣女稚媛[一本云, 吉備窪屋臣女]生二男, 長曰磐城皇子, 少曰星川稚宮皇子.[見下文.]次有春日和珥臣深目女曰童女君, 生春日大娘皇女.[更名高橋皇女.]

다음으로 길비상도신의 딸로 치희(와카히메)[어떤 책에서는 길비와옥신의 딸이라고 하였다]라고 하는데, 두 아들을 낳았다. 큰 아들은 반성 황자(이하키노미코)라 하고, 작은 아들은 성천치궁 황자(호시카하노와카미야노미코)라고 한다[아래 글에 보인다]. 다음으로 춘일화이신심목의 딸로 동녀군이라고 하는데, 춘일대낭 황녀를 낳았다[다른 이름은 고교 황녀이다].

童女君者本是采女, 天皇與一夜而脤, 遂生女子, 天皇疑不養.及女子行步, 天皇御大殿, 物部目大連侍焉, 女子過庭, 目大連顧謂群臣曰 "麗哉, 女子.古人有云, 娜毗騰耶皤麼珥.[此古語未詳.]徐步淸庭者, 言誰女子."

​동녀군은 본래 채녀였다. 천황이 하룻밤을 함께 하였는데 임신하였다. 드디어 여자아이를 낳았으나, 천황은 의심하여 키우지 않았다. 여자아이가 걷기 시작할 무렵 천황이 대전에 나아갔다. 이때 물부목대련이 모셨다. 여자아이가 뜰을 지나가자 목대련이 돌아보며 여러 신하에게 "아름답구나. 여자아이여! 옛사람이 말하기를 '너는 어머니를 닮았구나'[이 고어는 아직 자세히 알 수 없다]라고 하였는데, 깨끗한 정원을 천천히 걷는 여자 아니는 누구의 딸인가?"라고 물었다.

天皇曰 "何故問耶."目大連對曰 "臣觀女子行步, 容儀能似天皇."天皇曰 "見此者咸言如卿所噵.然, 朕與一宵而脤産女, 殊常, 由是生疑."大連曰 "然則一宵喚幾𢌞乎."

이에 천황이 "어찌 그러한 것을 묻는가?"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목대련이 "신이 여자아이가 걷는 것을 살펴보니 용모가 천황과 매우 비슷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천황은 "저 아이를 보고 모두 말하는 바가 경이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짐은 하룻밤을 같이 하였을 뿐인데 임신하여 여자아이를 낳은 것이 이상하다. 이 때문에 의심이 생긴다"라고 말하였다. 대련이 "그렇다면 하룻밤에 몇 번 품으셨습니까?"라고 하였다.

天皇曰 "七𢌞喚之."大連曰 "此娘子, 以淸身意奉與一宵.安輙生疑, 嫌他有潔.臣聞, 易産腹者, 以褌觸體, 卽便懷脤.況與終宵而妄生疑也."天皇命大連, 以女子爲皇女, 以母爲妃.是年也, 大歲丁酉.

천황이 "7번 품었다"라고 대답하자 대련이 "그 낭자는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써 함께 하였습니다. 어찌 가볍게 의심하시어 사람의 순결함을 인정하지 않으십니까? 신이 듣기로, 쉽게 임신하는 여자는 남자의 옷깃만 스쳐도 곧 임신이 된다고 합니다. 하물며 밤을 함께 보내셨으면서 함부로 의심하십니까?"라고 말하였다. 천황은 대련에게 명하여 여자아이를 황녀로 삼고 어머니를 비로 삼았다. 이해 의 간지는 정유이다.

二年秋七月, 百濟・池津媛, 違天皇將幸, 婬於石河楯.[舊本云 "石河股合首祖, 楯."]

​2년 가을 7월, 백제 지진원이 천황이 장차 행차하려는 데도 석천순[옛 책에서는 석하고합수(이시카하노코무라노오비토)의 조상인 순(楯)이라고 하였다]과 정을 통하였다.

天皇大怒, 詔大伴室屋大連, 使來目部, 張夫婦四支於木, 置假庪上, 以火燒死.[百濟新撰云 "己巳年, 蓋鹵王立.天皇, 遣阿禮奴跪, 來索女郎.百濟, 莊飾慕尼夫人女, 曰適稽女郎, 貢進於天皇."]​​

천황이 크게 노하여 대반실옥대련에게 명하여 내목부(쿠메베)로 하여금 남녀의 팔다리를 벌려 나무에 매달고 임시로 만든 단 위에 올려놓고 불태워 죽이도록 하였다[백제신찬에서는 "기사년에 개로왕이 즉위하였다. 천황이 아례노궤(아레나코)를 보내 여자를 찾도록 하였다. 백제는 모니부인의 딸 적계녀랑을 단장하여 천황에게 바쳤다"라고 하였다].

冬十月辛未朔癸酉, 幸于吉野宮.

​​겨울 10월 신미삭 계유(3일), 길야궁(吉野宮 ; 요시노노미야)으로 행차하였다.

丙子, 幸御馬瀬, 命虞人縱獵, 凌重巘赴長莽, 未及移影, 獮什七八, 毎獵大獲, 鳥獸將盡, 遂旋憩乎林泉, 相羊乎藪澤, 息行夫展車馬, 問群臣曰 "獵場之樂, 使膳夫割鮮.何與自割."

병자(6일), 어마뢰로 행차하여 우인(虞人)에게 마음껏 사냥하라 명하였다. 여러 봉우리를 넘고 넓은 숲을 지나는 사이 해가 지기도 전에 많은 짐승을 잡았다. 사냥할 때마다 많이 잡아서 날짐승과 들짐승이 없어질 지경이었다. 드디어 돌아와 임천(숲과 물이 있는 산속 또는 정원)에서 쉬면서 수풀이 우거진 습지를 거닐었다. 그리고 사냥꾼을 쉬게 하고 수레와 말을 정비하였다. 이때 천황이 여러 신하들에게 "사냥터의 즐거움은 선부(膳夫)로 하여금 고기를 베어 나누는 것인데, 스스로 고기를 베면 어떻겠는가?"라고 물었다.

群臣忽莫能對, 於是天皇大怒, 拔刀斬御者大津馬飼.是日車駕至自吉野宮, 國內居民咸皆振怖.​​

여러 신하들은 갑작스러워 대답할 수 없었다. 이에 천황이 크게 노하여 칼을 뽑아 수레를 모는 시종 대진마사를 죽였다. 이 날에  천황이 길야궁에서 돌아왔는데, 나라 안에 사는 백성이 모두 무서워서 떨었다.

由是, 皇太后與皇后, 聞之大懼, 使倭采女日媛舉酒迎進. 天皇, 見采女面貌端麗形容温雅, 乃和顏悅色曰 "朕, 豈不欲覩汝姸咲."乃相携手, 入於後宮, 語皇太后曰 "今日遊獵, 大獲禽獸.欲與群臣割鮮野饗, 歷問群臣, 莫能有對.故朕嗔焉."

​이로 인해 황태후가 황후와 더불어 그 사실을 듣고 매우 두려워, 왜(倭)의 채녀인 일원(히노히메)에게 술을 들고 맞이하도록 보내었다. 천황은 채녀의 용모가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자태가 온순하고 우아한 것을 보고 얼굴빛이 밝아지고 기뻐하며 "짐이 어찌 너의 고운 미소를 보고 싶지​ 않았겠는가?"라고 말하며 손을 잡고 후궁으로 들어갔다. 황태후에게는 "오늘 사냥을 했는데 짐승을 많이 잡았습니다. 여러 신하들과 더불어서 날고기를 베어서 들에서 잔치를 하고자 해서 여러 신하들에게 두루 물었으나 능히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짐이 크게 화를 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皇太后, 知斯詔情, 奉慰天皇曰 "群臣, 不悟陛下因遊獵場置宍人部降問群臣, 群臣嘿然理, 且難對.今貢未晩, 以我爲初.膳臣長野能作宍膾, 願以此貢."

황태후가 이 말의 뜻을 알고 천황을 위로하며 "폐하가 사냥터에 간 김에 육인부(宍人部 ; 시시히토베)를 두고자 여러 신하들에게 하문한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 신하들이 잠잠하게 있었던 것도 당연합니다. 또한 알았다 하더라도 대답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지금 바쳐도 늦지 않다면 제가 처음으로 바치겠습니다. 선신장야는 육회를 잘 만듭니다. 원컨대 이 사람을 바치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天皇, 跪禮而受曰 "善哉, 鄙人所云, 貴相知心, 此之謂也."

​천황이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어 받으며,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서로 마음을 아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고 하는데, 이를 이르는 말입니다"라고 말하였다.

皇太后, 觀天皇悅, 歡喜盈懷 更欲貢人曰 "我之厨人菟田御戸部・眞鋒田高天, 以此二人, 請將加貢爲宍人部."

황태후는 천황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기쁘고 마음이 즐거워 다시 다른 사람을 바치고자 하여, "저의 요리사인 토전어호부와 진봉전고천 이 두 사람을 더 바쳐서 육인부로 삼기를 청합니다"라고 말하였다.​

自茲以後, 大倭國造吾子籠宿禰, 貢狹穗子鳥別, 爲宍人部.臣・連・伴造・國造, 又隨續貢.

​이후에 대왜국조 오자롱숙녜(아고코노스쿠네)가 협수자조별(사호노코토리와케)을 바쳐서 육인부로 삼았다. 신(臣), 연(連), 반조(伴造), 국조(國造)도 또한 뒤를 이어서 바쳤다.

是月, 置史戸・河上舍人部.

같은 달, 사호와 하상사인부(카하카미노토네리베)를 두​었다.

天皇, 以心爲師, 誤殺人衆, 天下誹謗言 "太惡天皇也."唯所愛寵, 史部身狹村主靑・檜隈民使博德等.

천황은 제멋대로 사람을 잘못 죽이는 일이 많았다. 천하 사람들은 이를 비방하여 매우 나쁜 천황이라고 하였다. 단지 총애하는 것은 사부(史部)인 ​신협촌주청과 회외민사박덕 등이었다.

​三年夏四月, 阿閉臣國見[更名磯特牛], 譖𣑥幡皇女與湯人廬城部連武彥曰 "武彥, 姧皇女而使任身."[湯人, 此云臾衞.]​3년 여름 5월, 아폐신국견[또한 기특우(시코토히)라고도 한다]이 고반 황녀와 탕인 여성부련무언을 무고하여, "무언이 황녀를 더럽혀 인신을 시켰다"라고 하였다[탕인(湯人)은 유에(臾衞)라고 읽는다].

武彥之父枳莒喩, 聞此流言, 恐禍及身, 誘率武彥於廬城河, 偽使鸕鷀沒水捕魚, 因其不意而打殺之.天皇聞, 遣使者案問皇女, 皇女對言 "妾不識也."俄而皇女, 齎持神鏡, 詣於五十鈴河上, 伺人不行, 埋鏡經死.

무언의 아버지 지거유(키코유)는 이 소문을 듣고 화가 자신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무언을 꾀어 여성하(廬城河 ; 이호키노카하)로 데려가서 짐짓 가마우지를 물에 넣어 고기를 잡는 척하다가 방심한 틈을 타서 때려죽였다. 천황이 듣고 사자를 보내 황녀를 심문하게 하였다. 황녀는 "신첩은 모르는 일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후 갑자기 황녀는 신령스러운 거울을 가지고 오십령하(五十鈴河 ; 이스즈노카하) 물가로 가서, 사람이 다니지 않는 틈을 타 거울을 묻고 목매어 죽었다.

天皇, 疑皇女不在, 恆使闇夜東西求覓, 乃於河上虹見如蛇四五丈者, 掘虹起處而獲神鏡.移行未遠, 得皇女屍, 割而觀之, 腹中有物, 如水, 水中有石.枳莒喩, 由斯, 得雪子罪, 還悔殺子, 報殺國見.逃匿石上神宮.​

천황은 황녀가 없는 것을 의심스럽게 생각하여 한밤중에 계속 이곳저곳을 찾아보도록 하였다. 마침내 강가에 무지개가 나타났는데, 모양이 뱀과 같고 길이가 4~5장 정도였다. 이에 무지개가 걸려 있는 곳을 파보니 신령스러운 거울이 나왔다. 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황녀의 시신을 찾았다. 시신의 배를 갈라서 봤더니 뱃속에 물과 같은 것이 있었고, 그 안에 돌이 들어 있었다. 지거유는 이 때문에 아들이 죄가 없음을 밝힐 수 있었다. 그는 도리어 아들을 죽인 것을 후회하여, 그 복수로 국견을 죽이고자 하였다. (국견은​) 석상신궁(이소노카미노카미노미야)으로 도망가 숨었다.

四年春二月, 天皇射獵於葛城山, 忽見長人, 來望丹谷, 面貌容儀相似天皇.天皇, 知是神, 猶故問曰 "何處公也."長人對曰 "現人之神.先稱王諱, 然後應噵."

4년 봄 2월, 천황이 갈성산에서 사냥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키가 큰 사람이 나타나 다가와서 깊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게 되었는데, 얼굴과 모습이 천황과 비슷하였다. 천황은 그가 신인 것을 알았으나 짐짓 "어디 사시는 분인가?"라고 물었다. 키 큰 사람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신이다. 먼저 왕의 이름을 말하라. 그런 다음에 말하겠다"고 대답하였다.

天皇答曰 "朕是幼武尊也."長人次稱曰 "僕是一事主神也."遂與盤于遊田, 驅逐一鹿, 相辭發箭, 竝轡馳騁, 言詞恭恪, 有若逢仙.於是, 日晩田罷, 神侍送天皇, 至來目水.是時, 百姓咸言 "有德天皇也."​​

천황은 "짐은 유무존(와카타케노미코)이다"라고 답하였다. 그러자 키 큰 사람이 "저는 일사주신(히토코토누시노카미)입니다"라고 이름을 말하였다. 마침내 함께 사냥을 즐겼다. 이들은 사슴 한 마리를 쫓았는데, 활을 쏘는 것을 서로 사양하면서 말 머리를 나란히 하여 달렸다.​ 말을 공손히 하고 삼가하니 마치 선인을 만난 것과 같았다. 그러다가 해가 지고 사냥이 끝났다. 신은 천황을 모셔 전송하여 내목수(來目水 ; 쿠메노하카)에 이르렀다. 이때 백성들이 모두 덕이 있는 천황이라고 하였다.

秋八月辛卯朔戊申, 行幸吉野宮.

​가을 9월 신묘삭 무신(18일), 길야궁에 행차하였다. ​​​

庚戌, 幸于河上小野.命虞人駈獸, 欲躬射而待, 虻疾飛來, 噆天皇臂 於是, 蜻蛉忽然飛來, 囓虻將去.

​경술(18일). 하상의 소야에 행차하였다. 사냥꾼들에게 명하여 짐승을 쫓게 하고 직접 활을 쏘려고 기다렸는데, 등에가 날아와서 천황의 팔뚝을 물었다. 그러자 잠자리가 갑자기 날아와서 등에를 물고 사라졌다.

天皇嘉厥有心, 詔群臣曰 "爲朕, 讚蜻蛉歌賦之."群臣莫能敢賦者, 天皇乃口號曰,​

천황은 자신을 섬기는 마음이 있음을 기뻐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짐을 위하여 잠자리를 찬미하여 노래 부르라"라고 명하였다.​ 여러 신하들 중 감히 노래 부르는 자가 없었다. 이에 천황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野麼等能 嗚武羅能陀該儞 之々符須登 拕例柯 舉能居登 飫裒磨陛儞麻嗚須[一本, 以飫裒磨陛儞麼鳴須, 易飫裒枳彌儞麻嗚須.] 飫裒枳瀰簸 賊據嗚枳舸斯題 柁磨々枳能 阿娯羅儞陀々伺[一本, 以陀々伺, 易伊麻伺也.] 施都魔枳能 阿娯羅儞陀々伺 斯々魔都登 倭我伊麻西麼 佐謂麻都登 倭我陀々西麼 陀倶符羅爾 阿武柯枳都枳 曾能阿武嗚 婀枳豆波野倶譬 波賦武志謀 飫裒枳瀰儞磨都羅符 儺我柯陀播 於柯武 婀岐豆斯麻野麻登[一本, 以婆賦武志謀以下, 易 "舸矩能御等 儺儞於婆武登 蘇羅瀰豆 野磨等能矩儞嗚 婀岐豆斯麻登以符".]

"야마토의 여러 산봉우리에 사슴과 멧돼지가 숨어있다고 누가 이를 존귀한 자에게 아뢰었는가[어떤 책에서는 '존귀한 자에게 아뢰었는가'를 대군에게 아뢰었는가​로 바꾸어 놓았다]. 대군이 이를 들으시고 옥으로 장식한 호상(胡床)에 걸터앉아서[어떤 책에서는 '걸터앉아서'로 바꾸어 놓았다] 아름다운 비단으로 장식한 호상에 걸터앉아서 사슴과 멧돼지를 기다리고 계셨는데 멧돼지를 기다리면서 걸터앉아 계셨는데, 등애가 팔뚝을 물었다. 그런데 그 등에를 잠자리가 금방 잡아먹었다. 기어 다니는 벌레까지도 대군을 섬기는구나. 청령도왜(蜻蛉島倭)라는 이름으로, 너의 흔적을 남기도록 하자[어떤 책에서는 '기어 다니는 벌레까지도' 이하를 '이렇게 이름을 남기자. 왜국을 청령도(蜻蛉島)라고 하노라'로 바꾸어 놓았다]"라고 하였다.

因讚蜻蛉, 名此地爲蜻蛉野.

그래서 잠자리를 칭송하여 이곳의 이름을 청령야​라고 하였다.

五年春二月, 天皇, 狡獵于葛城山, 靈鳥忽來, 其大如雀, 尾長曳地而且嗚曰, 努力々々.俄而, 見逐嗔猪, 從草中暴出, 逐人.獵徒, 緣樹大懼,

​5년 봄 2월, 천황이 갈성산에서 사냥하였는데 홀연히 신비로운 새가 날아왔다. 크기는 참새와 같았고 꼬리는 길어서 땅에 끌렸다. 또한 "조심해, 조심해"라고 지저귀었다. 그러자 갑자기 쫓기던 성난 멧돼지가 풀속에서 뛰쳐나와 난폭하게 사람들을 쫓아다녔다. 이에 사냥하던 무리들은 크게 놀라 나무에 기어 올라갔다.

天皇詔舍人曰 "猛獸, 逢人則止.宜逆射而且刺."舍人, 性懦弱, 緣樹失色, 五情無主.嗔猪直來, 欲噬天皇, 天皇用弓刺止, 舉脚踏殺.於是田罷, 欲斬舍人, 舍人臨刑而作歌曰, ​

​천황이 사인(舍人)에게 맹수도 사람을 만나면 멈추게 된다. 가로막고 활을 쏘아 죽여라"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사인의 성품이 나약하여 나무에 올라 하얗게 질려서 정신 차리지 못했다. 성난 멧돼지는 곧바로 달려와 천황을 물려고 하였다. 그러자 천황이 활로 찔러 멈추게 하고 다리를 들어 밟아 죽였다. 천황은 사냥이 끝난 후 사인을 죽이고자 하였다. 사인은 형벌을 앞두고 노래를 지어 불렀다.

野須瀰斯志 倭我飫裒枳瀰能 阿蘇麼斯志 斯斯能 宇拕枳舸斯固瀰 

倭我尼㝵能裒利志 阿理嗚能宇倍能 婆利我曳陀 阿西嗚

​​우리 대군이 사냥하시던 성난 멧돼지 소리에 놀라,

내가 도망쳐 올라간 봉우리 위의 개암나무 가지여, 아아.

​皇后聞悲, 興感止之, 詔曰 "皇后, 不與天皇而顧舍人."

​황후가 이를 듣고 슬퍼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였다. (천황이)"황후는 천황과 함께 하지 않고 사인을 걱정하는가"라고 하였다.

對曰 "國人皆謂, 陛下安野而好獸, 無乃不可乎.今陛下, 以嗔猪故而斬舍人, 陛下譬無異於豺狼也."

​(황후는) "나라 백성이 모두 폐하를 일컬어 사냥을 즐기고 짐승을 좋아한다고 해도, 이는 오히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폐하는 성난 멧돼지 때문에 사인을 베려고 하십니다. 폐하를 비유하면 늑대와 다르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天皇, 乃與皇后上車歸, 呼萬歲曰 "樂哉, 人皆獵禽獸.朕獵得善言而歸."

​천황은 곧 황후와 수레를 타고 돌아왔다. 사람들이 "만세!"를 부르자 천황은 "즐겁도다. 사람은 모두 짐승을 사냥하였으나, 짐은 사냥 와서 훌륭한 이야기를 얻어서 돌아간다"라고 말하였다.

夏四月, 百濟加須利[君蓋鹵王也], 飛聞池津媛之所燔殺[適稽女郎也]而籌議曰 "昔貢女人爲采女而既無禮, 失我國名.自今以後, 不合貢女."

​여름 4월, 백제의 가수리군[개로왕이다]은 지진원을 불태워 죽였다는 소문을 듣고[적계녀랑이다] "과거에 여인을 바쳐 채녀로 삼았다. 그런데 이미 예의를 잃어서 우리나라의 이름을 실추시켰다. 앞으로는 여인을 바치지 말라"라고 의논하였다. ​

乃告其弟軍君[崑支君也]曰 "汝宜往日本, 以事天皇."軍君對曰 "上君之命, 不可奉違.願賜君婦而後奉遺."

이에 그 아우 군군[곤지이다]에게 "너는 마땅히 일본으로 가서 천황을 섬기도록 하라"고 명했다. 군군은 "왕의 명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원컨대 왕의 부인을 내려주신다면 명을 받들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加須利君, 則以孕婦嫁與軍君曰 "我之孕婦, 既當産月.若於路産, 冀載一船, 隨至何處, 速令送國."遂與辭訣, 奉遣於朝.

​가수리군은 임신한 부인을 군군에게 주면서 "나의 임신한 부인은 이미 산달이 되었다. 만일 가는 길에 출산하면, 바라건대 어디에 있든지 배 한 척에 실어 속히 본국으로 돌려보내도록 하라"라고 말하였다. 이윽고 작별하여 왜의 조정으로 갔다. ​

六月丙戌朔, 孕婦果如加須利君言, 於筑紫各羅嶋産兒, 仍名此兒曰嶋君.於是軍君, 卽以一船送嶋君於國, 是爲武寧王.百濟人, 呼此嶋曰主嶋也.

​6월 병술삭(1일), 임신한 부인이 가수리군의 말처럼 축자(츠쿠시)의 각라도(카카라노시마)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아이 이름을 도군(嶋君)이라 하였다. 이에 군군이 곧 배에 태워 도군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이가 바로 무령왕이다. 백제 사람들은 이 섬을 주도(主嶋)라 불렀다.

秋七月 軍君入京 既而有五子.[百濟新撰云 "辛丑年 蓋鹵王 遣王遣弟昆支君向大倭侍天皇 以脩先王之好也"]​

​가을 7월, 군군이 왕경에 들어왔다. 이윽고 다섯 아들을 두었다[백제신찬에 "신축년에 개로왕이 아우 곤지군을 대왜(大倭)로 보내 천황을 모시게 하였다. 형왕(兄王)의 우호를 닦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다].

​六年春二月壬子朔乙卯, 天皇遊乎泊瀬小野, 觀山野之體勢, 慨然興感歌曰,

6년 봄 2월 임자삭 을묘(4일), 천황이 박뢰(하츠세)의 소야에 놀러 갔다. 그리고 산과 들의 형세를 살펴보고 감개무량하여 노래를 불렀다.

 

舉暮利矩能 播都制能野麼播 伊底拕智能 與慮斯企野麼 和斯里底能 與盧斯企夜磨能 據暮利矩能 播都制能夜麼播 阿野儞于羅虞波斯 阿野儞于羅虞波斯

산에 둘러싸인 박뢰의 산은 문 밖을 나서서 볼 수 있는 산, 달려 나가서 가까이에 있는 보기 좋은 산, 산으로 둘러싸인 박뢰의 산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구나,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구나. ​

 

於是, 名小野曰道小野​.

​이에 소야를 도소야라고 이름하였다.

三月辛巳朔丁亥, 天皇, 欲使后妃親桑以勸蠶事, 爰命蜾蠃[蜾蠃, 人名也, 此云須我屢]聚國內蠶.

​3월 신사삭 정해(7일), 천황은 후비로 하여금 친상(親桑)을 행하게 해서 양잠하는 일을 권하고자 하였다. 이에 과라(蜾蠃)[蜾蠃는 인명이며, 스가루라고 읽는다]에게 국내의 누에를 모으도록 명하였다.

於是蜾蠃, 誤聚嬰兒奉獻天皇, 天皇大咲, 賜嬰兒於蜾蠃曰 "汝宜自養."蜾蠃卽養嬰兒於宮墻下, 仍賜姓爲少子部連.

​이에 과라가 잘못하여 어린아이들을 모아서 천황에게 바쳤다. 천황이 크게 웃으며 어린아이들을 과라에게 주며 말하기를, "네가 스스로 길러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과라가 곧 어린아이들을 궁의 담 근처에서 키웠다. 그래서 성을 내려서 소자부련(치히사코베노무라지)이라고 하였다.

夏四月, 吳國遣使貢獻也.​

​여름 4월, 오국(쿠레노쿠니)이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바쳤다.

​七年秋七月甲戌朔丙子, 天皇詔少子部連蜾蠃曰 "朕, 欲見三諸岳神之形.[或云 "此山之神爲大物主神也."或云 "菟田墨坂神也."]汝, 膂力過人, 自行捉來."

​​7년 가을 7월 갑술삭 병자(3일), 천황이 소자부련 과라를 불러 말하기를, "짐이 삼제악의 신(神)의 모습을 보고자 한다[어떤 책에서는 이 산의 신을 대물주신(오호모노누시노카미)이라고 하였고, 어떤 책에서는 토전(우다)의 묵판신(스미사카노카미)이라고 하였다]. 네가 완력이 남보다 뛰어나니 직접 가서 붙잡아 오라"라고 하였다.

蜾蠃答曰 "試往捉之."乃登三諸岳, 捉取大蛇, 奉示天皇.天皇不齋戒, 其雷虺々, 目精赫々.天皇畏, 蔽目不見, 却入殿中, 使放於岳, 仍改賜名爲雷.

과라가 "가서 그것을 붙잡아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삼제악에 올라 큰 뱀을 붙잡아서 천황에게 보였다. 그런데 천황은 재계(齋戒)를 하지 않았다. 뱀은 우렛소리를 냈으며, 눈동자를 번뜩였다. 천황은 두려워하여 눈을 가리고 보지 않았으며, 궁궐 안으로 물러나 숨으면서 산에 놓아주도록 하였다. 그래서 '뇌​(雷 ; 이카즈치)'라는 이름으로 고치도록 하였다.

​八月 官者吉備弓削部虛空 取急歸家.吉備下道臣前津屋[或本云 國造吉備臣山]留使虛空 經月不肯聽上京都.

​8월, 관자​(官者) 길비궁삭부허공이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갔다. 길비하도신전진옥[어떤 책에서 말하기를, 국조 길비신산이라고 하였다]이 허공(虛空 ; 오호조라)을 머무르게 하여, 한 달이 지나도 상경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天皇 遣身毛君大夫召焉, 虛空被召來言 "前津屋, 以小女爲天皇人・以大女爲己人, 競令相鬪, 見幼女勝, 卽拔刀而殺.復 以小雄鶏呼爲天皇鶏, 拔毛剪翼 以大雄鶏呼爲己鶏 著鈴・金距, 競令鬪之 見禿鶏勝 亦拔刀而殺."

​천황은 신모군대부를 보내어 불렀다. 허공이 부름을 받고 와서 "전진옥이 어린 여자를 천황의 사람으로 삼고, 큰 여자를 자기 사람으로 삼아서 다투어 서로 싸우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린 여자가 이기는 것을 보자 곧 칼을 뽑아서 죽였습니다. 또 작은 수탉을 천황의 닭이라고 부르면서 털을 뽑고 날개를 자르고, 큰 수탉을 자기 닭으로 삼아서 방울과 쇠로 된 며느리발톱을 붙여서 다투어 싸우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털이 뽑힌 닭이 이기는 것을 보고 또 칼을 뽑아서 죽였습니다"라고 말하였다.

天皇聞是語, 遣物部兵士卅人, 誅殺前津屋幷族七十人.

​천황이 이 이야기를 듣고, 물부(物部) 병사 30인을 보내어 전진옥과 아울러 일족 70인을 베어 죽였다.

是歲, 吉備上道臣田狹, 侍於殿側, 盛稱稚媛於朋友曰 "天下麗人, 莫若吾婦.茂矣綽矣, 諸好備矣, 曄矣温矣, 種相足矣, 鉛花弗御, 蘭澤無加.曠世罕儔, 當時獨秀者也."

​이 해에 길비상도신전협이 궁중에서 시중을 들었는데 항상 치원(稚媛 ; 와카히메)을 친구에게 자랑하기를 "천하의 어떤 아름다운 사람도 내 아내만 못하다. 빼어나고 너그러우며 여러 가지 아름다움을 갖추었다. 빛나고 온화하며 구석구석 예쁘다. 또한 화장도 하지 않고, (머리에) 향기로운 기름도 바르지 않는다. 세상에 드문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天皇, 傾耳遙聽而心悅焉, 便欲自求稚媛爲女御, 拜田狹爲任那國司, 俄而, 天皇幸稚媛.

천황이 귀를 기울여서 듣고 마음으로 기뻐하였다. 그리고​ 친히 치원을 데려와서 여어(女御 ; 후궁을 뜻한다)를 삼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전협에게 벼슬을 주어 임나국사(任那國司)로 삼았다. 얼마 후에 천황은 치원을 가까이 하였다.

​田狹臣, 娶稚媛而生兄君・弟君.[別本云 "田狹臣婦, 名毛媛者, 葛城襲津彥子・玉田宿禰之女也.天皇, 聞體貌閑麗, 殺夫, 自幸焉."]

전협신(타사노오미)은 치원과 혼인해서 형군(에카미)과 제군(오토키미)을 낳았다[다른 책에서 말하기를, 전협신 아내의 이름은 모원(키히메)이다. 갈성습진언(카즈라키노소츠히코)의 아들인 옥전숙녜(타마타노스쿠네)의 딸이다. 천황이 용모가 아름답다는 것을 듣고 남편을 죽이고 친히 총애하였다고 하였다].

田狹, 既之任所, 聞天皇之幸其婦, 思欲求援而入新羅.于時, 新羅不事中國.天皇, 詔田狹臣子弟君與吉備海部直赤尾曰 "汝, 宜往罰新羅."

​그런데 전협이 부임한 곳에 갔을 때 천황이 자신의 아내를 총애한다는 것을 듣고 도움을 구하러 신라에 들어가고자 하였다. 이때 신라는 중국(여기서는 倭를 뜻한다)을 섬기지 않았다. ​천황은 전협신의 아들 제군과 길비해부직적미를 불러​ "너희들이 신라에 가서 벌해야 마땅하다"라고 말하였다.

於是, 西漢才伎歡因知利在側, 乃進而奏曰 "巧於奴者, 多在韓國.可召而使."

이때 서한재기인 환인지리(​歡因知利 ; 완인치리)가 곁에 있었다. 이에 나아가, "저보다 재주가 있는 자가 한국(韓國)에 많이 있습니다. 불러서 부려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天皇詔群臣曰 "然則宜以歡因知利, 副弟君等, 取道於百濟, 幷下勅書, 令獻巧者."

​이에 천황이 군신을 불러서 "그렇다면 환인지리를 제군 등에 따르게 하여 백제로 가서 함께 칙서를 전하고, 재주 있는 자를 바치게 하라"라고 명하였다.

於是弟君, 銜命率衆, 行到百濟而入其國, 國神化爲老女, 忽然逢路, 弟君就訪國之遠近, 老女報言 "復行一日而後可到."​

이에 제군이 명을 받들어 무리를 이끌고 가서 백제에 이르러 그 나라​에 들어갔다. 그런데 국신(國神)이 노파로 변해서 홀연히 길에 나타났다. 제군이 가서 나라가 먼지 가까운지 물었다. 노파는 "다시 하루를 더 가야 도착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弟君, 自思路遠, 不伐而還, 集聚百濟所貢今來才伎於大嶋中, 託稱候風, 淹留數月.

이에 제군은 스스로 길이 먼 것을 생각하여 치지 않고 돌아왔다. 그리고 백제가 바친 금래재기(今來才伎 ; 금래는 일본열도로 새로 온 도래인을 의미하며, 재기는 기술이 뛰어난 자란 뜻이다)를 큰 섬 속에 모아놓고, 바람을 기다린다고 하면서 여러 달을 머물렀다.

​任那國司田狹臣, 乃喜弟君不伐而還, 密使人於百濟, 戒弟君曰 "汝之領項, 有何窂錮而伐人乎.傳聞, 天皇幸吾婦, 遂有兒息.[兒息已見上文.]今恐, 禍及於身, 可蹻足待.吾兒汝者, 跨據百濟, 勿使通於日本.吾者據有任那, 亦勿通於日本."

​​임나국사 전협신은 제군이 (신라를)치지 않고 돌아가는 것을 기뻐하며 몰래 사람을 백제에 보내 "너의 목이 얼마나 튼튼하여 남을 치려고 하는가? 전해 듣건대 천황이 나의 처를 받아들여 이미 아이[아이는 앞의 내용에 보인다]도 있다고 한다. 지금 두려운 것은 화가 몸에 미치려고 하는데 발꿈치를 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의 아들인 너는 백제를 근거로 하여 일본과 연락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임나에 근거하여 또한 일본과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제군을 타일렀다.

弟君之婦樟媛, 國家情深, 君臣義切, 忠踰白日, 節冠靑松, 惡斯謀叛, 盜殺其夫, 隱埋室內, 乃與海部直赤尾將百濟所獻手末才伎, 在於大嶋.

제군의 부인 장원(​樟媛 ; 쿠스히메)은 나라에 대한 마음이 깊고, 군신의 의리가 간절하였다. 충성스러운 마음은 밝은 해보다도 낫고, 절개는 푸른 소나무보다 뛰어났다. 그래서 이 모반을 미워하여 자기 지아비를 죽여 집안에 몰래 묻고, 곧 해부직적미와 함께 백제가 바친 수말재기(手末才伎 ; 손을 사용하여 물건을 만드는 기술자를 말하며 통역도 포함되어 있다)를 이끌고 큰 섬에 머물렀다.

​天皇, 聞弟君不在, 遣日鷹吉士堅磐固安錢[堅磐, 此云柯陀之波]使共復命, 遂卽安置於倭國吾礪廣津[廣津, 此云比盧岐頭]邑.而病死者衆

​천황은 제군이 없어졌다는 말을 듣고 일응길사(히타카노키시), 견반[堅磐은 柯陀之波(카타시하)라고 읽는다], 고안전(코안젠)을 보내어 함께 복명하도록 하였다. 마침내 왜국의 오려(吾礪 ; 아토) 광진읍[廣津은 比盧岐頭(히로키츠)라고 읽는다]에 안치하였는데, 병들어 죽는 자가 많았다.

由是, 天皇詔大伴大連室屋, 命東漢直掬, 以新漢陶部高貴・鞍部堅貴・畫部因斯羅我・錦部定安那錦・譯語卯安那等, 遷居于上桃原・下桃原・眞神原三所.[或本云 "吉備臣弟君, 還自百濟, 獻漢手人部・衣縫部・宍人部."]​

그래서 천황은 대반대련실옥에게 명하여 동한진국(야마토노아야노아타히츠카)으로 하여금 신한도부고귀, 안부견귀, 화부인사라아, 금부정안나금, 역어묘안나 등을 상도원·하도원·진신원 등 세 곳에 옮겨 살게 하였다[어떤 책에서는 길비신제군이 백제로부터 돌아와서 한수인부(아야노테히토베), 의봉부(키누누히베), 육인부(시시히토베)를 바쳤다고 하였다].

八年春二月, 遣身狹村主靑・檜隈民使博德, 使於吳國.自天皇卽位至于是歲, 新羅國背誕, 苞苴不入於今八年, 而大懼中國之心, 脩好於高麗.由是, 高麗王, 遣精兵一百人守新羅.

​8년 봄 2월, 신협촌주청과 회외민사박덕을 사신으로 삼아 오국으로 보냈다. 천황이 즉위하고 이 해에 이르기까지 신라국이 속이고 배반하여 포​​저(苞苴)를 바치지 않은 지가 지금에 이르러 8년째였다. 그러나 중국(여기서는 일본을 의미함)의 의도를 매우 두려워해서 고구려와 화의를 닦았다. 이로 인해 고구려 왕이 정예 병사 1백인을 보내어 신라를 지키게 하였다.

有頃, 高麗軍士一人, 取假歸國, 時以新羅人爲典馬[典馬, 此云于麻柯毗]而顧謂之曰 "汝國爲吾國所破, 非久矣."[一本云 "汝國果成吾士, 非久矣."]其典馬, 聞之, 陽患其腹退而在後, 遂逃入國, 說其所語.

얼마 되지 않아 고구려 군사 한 사람이 잠시 나라로 들어갔는데, 이때 신라인을 전마로 삼았다[典馬는 우마카이于麻柯毗라고 읽는다]. 그가 돌아보며 "너희 나라는 우리나라에 의해 망할 날이 멀지 않았다[어떤 책에서는 "너희 나라가 마침내 우리의 땅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라고 하였다]라고 말하였다. 전마는 이를 듣고 거짓으로 배가 아프다 하고 물러나서 뒤에 있었다. 그리고 자기 나라로 달아나 들은 바를 말하였다. 

​於是, 新羅王, 乃知高麗僞守, 遣使馳, 告國人曰 "人, 殺家內所養鶏之雄者."國人知意, 盡殺國內所有高麗人.惟有遣高麗一人, 乘間得脱, 逃入其國, 皆具爲說之.

​이에 신라왕이 고구려가 거짓으로 지켜주는 줄 알고, 사신을 보내 급히 나라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집안에 기르는 수탉을 죽여라"라고 명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곧 그 뜻을 알고 나라 안에 있는 고구려인을 모두 죽였는데, 다만 고구려인 한 사람이 틈을 타서 도망쳐 자기 나라로 들어가 모든 것을 자세히 이야기 했다.

高麗王, 卽發軍兵, 屯聚筑足流城[或本云, 都久斯岐城], 遂歌儛興樂.

고구려 왕은​ 곧 군사를 일으켜 축족류성에 모여서[어떤 책에서는 도구사기성(都久斯岐城)이라고 하였다] 드디어 노래와 춤으로 즐거움을 돋우었다.

於是, 新羅王, 夜聞高麗軍四面歌儛, 知賊盡入新羅地, 乃使人於任那王曰 "高麗王征伐我國, 當此之時, 若綴旒然, 國之危殆, 過於累卵, 命之脩短, 太所不計.伏請救於日本府行軍元帥等."

이에 신라왕이 밤에 고구려군이 사방에서 춤추고 노래한다는 것을 듣고 적이 모두 신라 땅으로 들어온 것으로 알고, 이에 임나왕(任那王)​에게 사신을 보내어 "고구려 왕이 우리나라를 정벌하려 합니다. 이렇게 되니 흔들리는 깃발과 같이 불안합니다. 나라의 위태로움이 달걀을 쌓은 것보다 더하고 목숨의 길고 짧음을 심히 헤아릴 수 없는 바입니다. 엎드려 일본부 행군원수 등의 구월을 청합니다"라고 말하였다.

​由是, 任那王, 勸膳臣斑鳩[斑鳩, 此云伊柯屢餓]・吉備臣小梨・難波吉士赤目子, 往救新羅.膳臣等, 未至營止, 高麗諸將, 未與膳臣等相戰, 皆怖.

이로 인해 임나왕이 선신반구(​膳臣斑鳩 ; 카시하데노오미이카루가)[斑鳩는 이카루가伊柯屢餓라고 읽는다], 길비신소리(키비노오미워나시), 난파길사적목자(나니하노키시아카메코)에게 신라를 구원하도록 권하였다. 선신(膳臣 ; 사시하데노오미) 등은 군영을 설치하고 머무르는 데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고구려의 여러 장수들은 선신 등과 싸우기도 전에 모두 두려워하였다.

​膳臣等, 乃自力勞軍, 令軍中, 促爲攻具急進攻之.與高麗相守十餘日, 乃夜鑿險, 爲地道, 悉過輜車, 設奇兵.선신 등은 직접 힘써 군대를 위로하고 나서 군사들에게 빨리 공격할 준비를 시켜 급히 진격하였다. 그리고 고구려와 대치한 지 10여 일이 지나자, 밤에 험한 곳을 파서 땅굴을 만들어 군대의 무기와 식량을 모두 운반하고 매복병을 배치하였다.

會明, 高麗, 謂膳臣等爲遁也, 悉軍來追.乃縱奇兵, 步騎夾攻, 大破之.

​새벽, 고구려는 선신 등이 달아났다고 생각하여 병력을 모두 이끌고 추격해왔다. 그러자 매복병을 풀고, 보병과 기병이 협공하여 크게 깨뜨렸다.

二國之怨, 自此而生.[言二國者, 高麗新羅也]膳臣等謂新羅曰 "汝, 以至弱當至强, 官軍不救必爲所乘, 將成人地殆於此役.自今以後, 豈背天朝也."​

두 나라의 원한은 이로부터 생겼다[두 나라는 고구려와 신라를 말한다].​ 선신 등이 신라에게 "너희는 지극히 약한데도 지극히 강한 나라와 대적하였다. 관군이 구하지 않았으면 반드시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이번 싸움에서 하마터면 나라를 빼앗길 뻔하였다. 지금부터는 어찌 천조를 배반하겠는가!"라고 말하였다.

九年春二月甲子朔 遣凡河內直香賜與采女 祠胸方神. 香賜 既至壇所[香賜, 此云舸拕夫]及將行事 姧其采女.

​9년 봄 2월 갑자삭(1일), 범하내직향사(오호시카후치노아타히카타부)를 채녀와 함께 흉방신(무나카타노카미)에게 제사 지내게 하였다. 그런데 향사가 제단에 가서[​​香賜는 카타부舸拕夫라고 읽는다] 제사를 지내려고 할 때 그 채녀를 범하였다.

天皇聞之曰 "詞神祈福, 可不愼歟."乃遣難波日鷹吉士將誅之, 時香賜退逃亡不在.

천황이 듣고 "신에게 제사 지내고 복을 기원할 때에는 몸을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하고 난파일응길사(나니하노히타카노키시)를 보내 주살하게 하였다. 이때 향사는 달아나고 없었다.

天皇復遣弓削連豐穗, 普求國郡縣, 遂於三嶋郡藍原, 執而斬焉.​

그리하여 천황이 다시 궁삭련풍수(유게노무라지토요호​)를 보내 널리 나라 안에서 찾게 하였다. 드디어 삼도군(미시마노코호리) 남원(아위노하라)에서 잡아서 목을 베었다.

​三月, 天皇欲親伐新羅, 神戒天皇曰 "無往也."天皇由是, 不果行, 乃勅紀小弓宿禰・蘇我韓子宿禰・大伴談連[談, 此云箇陀利]・小鹿火宿禰等曰 "新羅, 自居西土, 累葉稱臣, 朝聘無違, 貢職允濟.逮乎朕之王天下, 投身對馬之外, 竄跡匝羅之表, 阻高麗之貢, 呑百濟之城.況復朝聘既闕, 貢職莫脩.狼子野心, 飽飛, 飢附.以汝四卿, 拜爲大將, 宜以王師薄伐, 天罰龔行."

3월, 천황이 친히 신라를 정벌하고자 하였다. 신​(神)이 천황에게 "가지 마십시오"라고 경고하였다. 천황이 이 때문에 가지 않았다. 그래서 기소궁숙녜, 소아한자숙녜, 대반담련(大伴談連)[談은 카타리箇陀利라고 읽는다], 소록화숙녜 등에게 "신라는 본래 서쪽 땅에 있었는데, 대대로 신하를 칭하였다. 나를 조공하여 알현하는 일을 어긴 적이 없으며 공직도 정성껏 바쳤다. 짐이 천하의 왕이 되기에 이르러서 몸을 대마의 바깥에 두고, 자취는 잡라(현재의 양산 지역)의 바깥에 숨기면서 고구려의 공물을 막고, 백제의 성을 삼켰다. 이에 다시 전혀 조빙하지 않고, 공직을 행하지 않는다. 이리 새끼와 같은 거친 마음을 품고 배부르면 날아가고, 배고프면 붙는다. 이에 너희들 네 사람을 대장으로 임명한다. 마땅히 왕사(王師)로써 핍박하고 정벌하여 천벌을 받들어 행하라"라고 칙을 내렸다. 

​於是, 紀小弓宿禰, 使大伴室屋大連憂陳於天皇曰 "臣, 雖拙弱, 敬奉勅矣.但今, 臣婦命過之際, 莫能視養臣者.公, 冀將此事具陳天皇."

​이에 기소궁숙녜는 근심하여 대반실옥대련에게 "신은 비록 졸렬하고 약하지만 삼가 칙을 받들었습니다. 다만 지금 신의 처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의 시중을 들 사람이 없습니다. 공​께서는 이 사정을 천황에게 자세히 말해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於是, 大伴室屋大連具爲陳之, 天皇聞悲頽歎, 以吉備上道采女大海, 賜於紀小弓宿禰, 爲隨身視養.遂推轂以遣焉,

​이에 대반실옥대련이 자세하게 아뢰었다. 천황은 이를 듣고 슬퍼하고 탄식하며, 길비상도채녀대해를 기소궁숙녜에게 주어 그를 따르며 시중들게 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수레를 밀어서 전장으로 보냈다.​

紀小弓宿禰等, 卽入新羅, 行屠傍郡.[行屠, 並行並擊.]新羅王, 夜聞官軍四面鼓聲, 知盡得喙地, 與數百騎亂走.是以, 大敗.

기소궁숙녜 등은 신라로 들어가서 근처의 고을을 다니면서 공격하였다[행도​(行屠)는 다니면서 공격하는 것이다]. 신라왕은 밤에 사방에서 관군의 북소리가 울리는 것을 듣고 탁지(喙地)가 모두 점령되었다고 생각하여, 수백 명의 군사와 더불어 도주하였다. 이에 크게 패하였다.

小弓宿禰, 追斬敵將陣中.喙地悉定, 遣衆不下.紀小弓宿禰, 亦收兵, 與大伴談連等會, 兵復大振, 與遣衆戰.

소궁숙녜는 쫓아가 적장을 진중에서 베었다. 그리고 탁지를 모두 평정하였는데, 남아있던 무리들은 항복하지 않았다. 기소궁숙녜는 또한 병사를 거두어 대반담련 등과 만났다. 병사들은 크게 떨쳐 일어나 남은 무리들과 함께 싸웠다. ​

是夕, 大伴談連及紀岡前來目連, 皆力鬪而死.談連從人同姓津麻呂, 後入軍中, 尋覓其主, 從軍不見出問曰 "吾主大伴公, 何處在也."

​이날 저녁, 대반담련 및 기강전래목련은 모두 힘껏 싸우다 죽었다. 담련의 시종이자 같은 성을 가진 진마려(津麻呂 ; 츠마로)​는 후에 군중으로 들어가 그 주인을 계속 찾았다. 그러나 군중에서 보이지 않자, "나의

주인 대반공은 어디에 계시는가?"라고 물었다.

人告之曰 "汝主等, 果爲敵手所殺."指示屍處, 津麻呂聞之, 踏叱曰 "主既已陷, 何用獨全."因復赴敵, 同時殞命.有頃, 遣衆自退, 官軍亦隨而却.大將軍紀小弓宿禰, 値病而薨.

어떤 사람이 "그대의 주인들은 결국 적의 손에 죽었다"라고 하면서, 시체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진마려가 듣고는 발을 구르고 절하며, "주인이 이미 돌아가셨다. 어찌 홀로 온전하겠는가"라고 말하였다. 뒤이어 다시 적에게 나아가 함께 죽었다. 얼마 후에 남은 무리들이 스스로 물러나자 관군 또한 마침내 물러났다. 대장군 기소궁숙녜는 병에 걸려 죽었다. ​

夏五月, 紀大磐宿禰, 聞父既薨, 乃向新羅, 執小鹿火宿禰所掌兵馬・船官及諸小官, 專用威命.

여름 5월, 기대반숙녜가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신 것을 듣고 신라로 가서 소록화숙녜가 거느리는 병마(兵馬)와 선관(​船官) 및 여러 소관(小官)을 맡아 마음대로 지휘하였다.

於是, 小鹿火宿禰, 深怨乎大磐宿禰, 乃詐告於韓子宿禰曰 "大磐宿禰謂僕曰, 我當復執韓子宿禰所掌之官不久也.願固守之."由是, 韓子宿禰與大磐宿禰有隙.

이에 소록화숙녜는 대반숙녜를 크게 원망하였다. ​ 그리하여 한자숙녜에게 "대반숙녜가 나에게 '나는 마땅히 머지않아 다시 한자숙녜가 거느리는 병사들을 맡을 것이다'라고  하였소. 원컨대 굳게 지키시오"라고 거짓말 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대반숙녜와 한자숙녜는 틈이 생겼다.

於是, 百濟王, 聞日本諸將, 緣小事有隙, 乃使人於韓子宿禰等曰 "欲觀國堺.請, 垂降臨."

이에 백제왕은 일본의 여러 장군들이 작은 일로 인해 틈이 생겼다는 것을 듣고 사람을 한자숙녜 등에게 보내, "나라의 경계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청컨대 왕림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是以, 韓子宿禰等並轡而往, 及至於河, 大磐宿禰飲馬於河.是時, 韓子宿禰, 從後而射大磐宿禰鞍几後橋.大磐宿禰, 愕然反視, 射墮韓子宿禰, 於中流而死.

​그리하여 한자숙녜 등은 말고삐를 나란히 하여 갔다. 강에 이르렀을 때 대반숙녜는 말에게 물을 먹였다. 이때 한자숙녜가 뒤에서 대반숙녜의 안장 뒷부분에 화살을 쏘았다. 대반숙녜가 이에 놀라서 뒤돌아보고 한자숙녜를 활로 쏘아 떨어뜨리니, 흐르는 강 속에 빠져 죽었다. ​

是三臣, 由前相競, 行亂於道, 不及百濟王宮而却還矣.​​​ 於是, 采女大海, 從小弓宿禰喪, 到來日本, 遂憂諮於大伴室屋大連曰 "妾, 不知葬所, 願占良地."

​이 세 신하는 전부터 서로 다투어 가는 도중에 소란을 피우니, 백제왕의 궁에 이르지 못하고 돌아왔다. 채녀대해가 소궁국녜의 관을 따라 일본으로 돌아왔다. 마침내 대반실옥대련에게 "첩은 장사 지낼 장소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좋은 땅을 정해주십시오"라고 조심스럽게 상의하였다.

大連卽爲奏之, 天皇勅大連曰 "大將軍紀小弓宿禰, 龍驤虎視, 旁眺八維, 掩討逆節, 折衝四海.然則, 身勞萬里命墜三韓.宜致哀矜充視葬者.又汝大伴卿與紀卿等, 同國近隣之人, 由來尚矣."

대련은 이를 천황에게 아뢰었다. 천황은​ 대련에게 "대장군 기소궁숙녜는 용처럼 날래고 범과 같이 노려보아 두루 온 세상을 아울러 바라보았으며, 반하는 무리를 토벌하고 사해를 평정하였다. 그리하여 몸을 먼 곳에서 힘쓰다가 목숨을 삼한에서 잃게 되었다. 마땅히 슬퍼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다해 장례를 치를 사람을 정하라. 또한 그대 대반경과 기경 등은 같은 지역에서 이웃한 유래가 오래되었다"라고 명하였다.

於是, 大連奉勅, 使土師連小鳥, 作冢墓於田身輪邑而葬之也.由是, 大海欣悅, 不能自默, 以韓奴室・兄麻呂・弟麻呂・御倉・小倉・針六口送大連, 吉備上道蚊嶋田邑家人部是也.

이에 대련은 칙을 받들어 토사련소조에게 무덤을 전신륜읍에 만들어 장사지내게 하였다. 이 때문에 대해(​大海 ; 오호아마)가 크게 기뻐하여 혼자만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한노실(韓奴室 ; 카라노야츠코무라), 형마려(兄麻呂 ; 에마로), 제마려(弟麻呂 ; 오토마로), 어창(御倉 ; 미쿠라), 소창(小倉 ; 워쿠라), 침(針 ; 하리)의 6인을 대련에게 보냈다. 길비상도(현재의 오카야마市 동부) 문전도읍의 가인부가 이것이다.

別小鹿火宿禰, 從紀小弓宿禰喪來, 時獨留角國, 使倭子連[連, 未詳何姓人]奉八咫鏡於大伴大連而祈請曰 "僕, 不堪共紀卿奉事天朝.故, 請留住角國."

소록화숙녜는 따로 기소궁숙녜의 관을 따라 왔다. 이때 홀로 각국(​角國 ; 츠노쿠니)에 머물렀다. 그리고 왜자련(倭子連 ; 야마토고노무라지)[연(連)은 어떤 성을 가진 사람인지 자세히 알 수 없다]을 시켜 팔지경(큰 銅鏡을 뜻한다)을 대반련에게 바치고 "저는 기경과 함께 천조를 받들어 모실 수 없습니다. 그러니 각국에 머물러 살게 해주십시오"라고 간절히 청하였다.

是以, 大連爲奏於天皇使留居于角國.是, 角臣等初居角國而名角臣, 自此始也.

이에 대련은 천황에게 아뢰어 각국에 머물러 살게 하였다. 이 각신 등이 처음으로 각국에 살게 되었으며, 각신이라는 이름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秋七月壬辰朔, 河內國言 "飛鳥戸郡人・田邊史伯孫女者, 古市郡人・書首加龍之妻也.伯孫, 聞女産兒, 往賀聟家而月夜還, 於蓬蔂丘譽田陵下蓬蔂, 此云伊致寐姑, 逢騎赤駿者, 其馬時濩略而龍翥, 欻聳擢而鴻驚, 異體峯生, 殊相逸發.伯孫, 就視而心欲之, 乃鞭所乘驄馬, 齊頭並轡, 爾乃, 赤駿超攄絶於埃塵, 驅騖迅於滅沒.於是, 驄馬後而怠足, 不可復追.其乘駿者, 知伯孫所欲, 仍停換馬, 相辭取別.伯孫, 得駿甚歡, 驟而入廐, 解鞍秣馬眠之.其明旦, 赤駿變爲土馬.伯孫心異之, 還覓譽田陵, 乃見驄馬在於土馬之間, 取代而置所換土馬也."

가을 7월 임진삭(1일), 하내국이

"비조호군(飛鳥戸郡) 사람​ 전변사백손의 딸은 고시군(古市郡) 사람 서수가룡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백손의 딸이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사위집에 가서 축하하고 달밤에 돌아왔습니다.봉류구[봉류는 이치비코라고 읽는다]의 예전릉 아래에서 붉은 준마를 탄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말이 때로 용이 날아오르는 것처럼 갑자기 높이 솟아오르고 갑자기 뛰어올라 기러기처럼 놀랐습니다. 기이한 몸은 산봉우리처럼 생겼고, 특이한 모습은 빼어났습니다. 백손은 나아가 살펴보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에 타고 있는 푸른빛을 띤 백마를 채찍질해서 말머리를 가지런히 하고 고삐를 나란히 하였습니다. 그러나 곧 붉은 말이 뛰어올라 먼지를 일으키며 쏜살같이 달려가서 사라졌습니다. 이에 푸른빛을 띤 백마가 뒤처졌는데, 말이 늦어서 다시 쫓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 말을 탄 사람은 백손이 원하는 바를 알고 곧 멈추어 말을 바꾸고 서로 인사하며 헤어졌습니다. 백손은 준마를 얻어서 매우 기뻐하며 달려가 마구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안장을 풀고 말에게 먹이를 주고 쉬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붉은 준마가 흙으로 빚은 말로 변해 있었습니다. 백손이 이상하게 여겨 되돌아가서 다시 예전릉에 찾아가니 그곳에서 흙으로 만든 말들의 사이에 자기 말이 있는 것을 보고 자기 말과 바꿨던 흙으로 빚은 말을 그곳에 두었다고 합니다"

라고 보고하였다. ​

十年秋九月乙酉朔戊子, 身狹村主靑等, 將吳所獻二鵝, 到於筑紫.是鵝, 爲水間君犬所囓死.[別本云 "是鵝, 爲筑紫嶺縣主泥麻呂犬所囓死."]

​10년 가을 9월 을유삭 무자(4일), 신협촌주청​ 등이 오나라가 바친 두 마리의 거위를 가지고 축자에 이르렀다. 이 거위는 수간군의 개에 물려 죽었다[다른 책에서는 이 거위는 축자의 영현주니마려의 개에게 물려서 죽었다고 하였다].

由是, 水間君, 恐怖憂愁, 不能自默, 獻鴻十隻與養鳥人, 請以贖罪.天皇許焉.

이 때문에 수간군이 두렵고 걱정스러워 스스로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고니 10마리를 양조인(​養鳥人)과 함께 바치고 속죄하기를 청하였다. 천황이 허락하였다.

冬十月乙卯朔辛酉, 以水間君所獻養鳥人等, 安置於輕村・磐余村二所.

겨울 10월 을묘산 신유(7일), 수간군이 바친 양조인 등을 경촌과 반여촌 두 곳에 안치하였다.

十一年夏五月辛亥朔, 近江國栗太郡言 "白鸕鷀, 居于谷上濱."因詔, 置川瀬舍人.

​11년 여름 신해삭(1일), 근강국 율태군이 "흰 바다가마우지가 곡상의 물가에 있습니다"라고 보고하였다. 그래서 명하여 천뢰사인(川瀬舍人 ; 카하세노토네리)을 두었다.

秋七月, 有從百濟國逃化來者, 自稱名曰貴信, 又稱貴信吳國人也.磐余吳琴彈壃手屋形麻呂等, 是其後也.

가을 7월, 백제국에서 도망쳐 귀화해 온 사람이 있었다. 스스로 자신의 이름이 귀신이라고 하였다. 또 귀신은 오국의 사람이라고도 하였다. 반여의 오금을 연주하는 강수옥형마려 등은 그의 후손이다. ​

冬十月, 鳥官之禽, 爲菟田人狗所囓死. 天皇瞋, 黥面而爲鳥養部.

​겨울 10월,​ 조관의 새가 토전 사람의 개에 물려서 죽었다. 천황이 화가 나서 얼굴에 문신을 새기고 조양부로 삼았다.

​於是, 信濃國直丁與武藏國直丁, 侍宿, 相謂曰 "嗟乎, 我國積鳥之高, 同於小墓.旦暮而食, 尚有其餘.今天皇, 由一鳥之故而黥人面, 太無道理, 惡行之主也."

이에 신농국 직정과 무장국 직정이 숙직을 섰다. 서로 "아아. 우리나라에 있는 새를 모아서 쌓는다면 높이가 작은 묘와 같을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먹어도 오히려 남을 것이다. 지금 천황이 새 한 마리 때문에 사람의 얼굴에 묵형을 하였다. 크게 도리에 어긋난다. 악한 일을 하는 군주이다"라고 말하였다.

天皇聞而使聚積之, 直丁等不能忽備, 仍詔爲鳥養部.​​

천황이 이를 듣고 새를 모아 쌓도록 하였다. 직정 등은 갑자기 준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명령을 내려 (그들을) 조양부로 삼았다. ​

​十二年夏四月丙子朔己卯, 身狹村主靑與檜隈民使博德, 出使于吳.

12년 여름 4월 병자삭 기묘(4일), 신협촌주청과 회외민사박덕을 오(吳 ; 중국 남조의 宋을 뜻함)에 사신으로 보냈다. ​

冬十月癸酉朔壬午, 天皇, 命木工鬪鶏御田[一本云 "猪名部御田"蓋誤也]始起樓閣.於是, 御田登樓, 疾走四面, 有若飛行, 時有伊勢采女, 仰觀樓上, 怪彼疾行, 顚仆於庭, 覆所擎饌.[饌者, 御膳之物也.]

겨울 10월 계유삭 임오(10일), 천황이 목공인 투계어전[어떤 책에서는 저명부어전이라고 했는데, 아마도 잘못일 것이다]에게 처음으로 누각을 세우게 하였다. ​ 이에 어전이 누각에 올라 사방으로 빠르게 뛰어다니는 것이 마치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이때 이세의 채녀가 누각 위를 올려다보다가 그가 빠르게 다니는 것을 보고 뜰에서 넘어지면서, 들고 있던 천황의 찬을 뒤엎었다[찬은 천황이 드시는 음식이다].

天皇, 便疑御田姧其采女, 自念將刑而付物部.時秦酒公, 侍坐, 欲以琴聲使悟於天皇, 横琴彈曰,

천황은 문득 어전이 그 채녀와 간통하였다고 의심하고 벌을 주고자 하여 물부로 보냈다.​ 이때 진주공이 천황의 곁에서 앉아서 모셨는데 금(琴 ; 코토) 소리로 천황을 깨우치게 하고자 금(琴)을 타며 노래를 불렀다.

​柯武柯噬能 伊制能 伊制能奴能 娑柯曳鳴 伊裒甫流柯枳底 志我都矩屢麻泥爾 飫裒枳瀰爾 

柯拕倶 都柯陪麻都羅武騰 倭我伊能致謀 那我倶母鵝騰 伊比志拕倶彌皤夜 阿拕羅陀倶彌皤夜

신풍(​神風)이 부는 이세, 이세의 들에 있는 울창한 나무의 가지를 수없이 꺾으며 그것이 다할 때까지

대왕을 굳게 모시려는데 내 목숨도 길면 좋으련만 하던 목수는 얼마나 원통해 할는지.

​於是天皇, 悟琴聲而赦其罪.

이에 천황이 금(​琴) 소리에 깨닫고는 그 죄를 용서하였다.

十三年春三月, 狹穗彥玄孫齒田根命, 竊姧采女山邊小嶋子.天皇聞, 以齒田根命, 收付於物部目大連而使責讓.齒田根命, 以馬八匹・大刀八口, 秡除罪過, 既而歌曰, 

13년 봄 3월, 협수언의 현손 치전근명이 몰래 채녀 산변소도자를 범하였다. 천황이 듣고 치전근명을 물부목대련에게 맡겨서 죄를 추궁하게 하였다. 이에 치전근명이 말 8필과 대도(大刀) 8자루로 죄를 씻었다.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耶麼能謎能 故思麼古喩衞爾 比登涅羅賦 宇麼能耶都擬播 鳴思稽矩謀那欺

산변소도자로 인해 사람들이 탐내는 말 8마리를 내놓는 것은 조금도 애석하지 않구나​​

目大連, 聞而奏之, 天皇使齒田根命資財露置於餌香市邊橘本之土, 遂以餌香長野邑賜物部目大連.​

목대련이 이를 듣고 천황에게 아뢰니 천황이 치전근명에게 재산을 내어 이향(餌香 ; 에카)​의 저자거리에 있는 귤나무 아래에 두게 하였다. 마침내 이향의 장야읍(長野邑)을 물부목대련에게 내렸다.

秋八月, 播磨國御井隈人, 文石小麻呂, 有力强心肆行暴虐, 路中抄劫不使通行, 又斷商客艖䑧悉以奪取, 兼違國法不輸租賦.

​가을 8월, 파마국의 어정외 사람 문석소마려는 힘이 있고 마음이 억세었다. 그는 행동을 제멋대로 하고 포악하여 길 한가운데서 위협하고 빼앗아 통행할 수 없게 하였고, 상인들의 배가 가는 길을 끊어 모두 빼앗았다. 아울러 국법을 어겨서 조부를 내지 않았다.​

於是天皇, 遣春日小野臣大樹, 領敢死士一百並持火炬, 圍宅而燒.

이에 천황이 춘일소야신대수로 하여금 죽음을 무릅쓴 군사 1백 명을 거느리게 하였다. 이들은 함께 횃불을 들고 집을 둘러싸고 불태웠다.

​時, 自火炎中, 白狗暴出, 逐大樹臣, 其大如馬.大樹臣, 神色不變, 拔刀斬之, 卽化爲文石小麻呂.​

이때 화염 속에서 흰 개가 갑자기 뛰어나와 대수신을 ​쫓아왔는데 그 크기가 말과 같았다. 대수신은 동요하지도 않고 안색도 바꾸지 않으면서 칼을 빼어 베었다. 이는 곧 문석소마려로 변하였다.

秋九月, 木工韋那部眞根, 以石爲質, 揮斧斲材, 終日斲之, 不誤傷刃.天皇, 遊詣其所而怪問曰 "恆不誤中石耶."眞根答曰 "竟不誤矣."

가을 9월, 목공인 위나부진근이 돌을 가지고 나무를 괴는 받침대로 삼아, 도끼를 휘둘러 재목을 깎았다. 종일토록 깎아도 잘못해서 날을 상하는 일이 없었다. 천황이 그곳에 행차하여 이를 이상하게 여겨 "늘 돌을 잘못 때리는 일이 없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진근이 "아직 잘못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

乃喚集采女, 使脱衣裙而著犢鼻, 露所相撲.於是眞根, 暫停, 仰視而斲, 不覺手誤傷刃.

그리하여 채녀를 불러 모아서 치마를 벗고 속옷 차림으로 잘 보이는 곳에서 씨름을 하게 하였다. 진근은 때때로 멈추고 쳐다보고 나무를 깎다가 자기도 모르게 손을 잘못 놀려 도끼날이 상하였다.​

天皇因嘖讓曰 "何處奴.不畏朕 用不貞心, 妄輙輕答."仍付物部, 使刑於野.爰有同伴巧者, 歎惜眞根而作歌曰,​

​천황이 이에 "어디 사는 놈이냐? 짐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르지 않은 마음으로 함부로 대답을 하느냐"라고 큰 소리로 꾸짖었다. 그리고 물부에 보내 들에서 형을 집행하게 하였다. 이때 같이 일하던 기술자가 진근을 탄식하고 애석해하며 노래를 지어 불렀다.

 

婀拕羅斯枳 偉儺謎能陀倶彌 柯該志須彌儺皤 旨我那稽麼 拕例柯々該武預 婀拕羅須彌儺皤

아깝도다. 위나부의 목수가 치던 먹줄이여. 그가 없으면, 누가 치겠는가, 아까운 저 먹줄이여.

​​天皇聞是歌, 反生悔惜, 喟然頽歎曰 "幾失人哉."

천황이 이 노래를 듣고 다시 뉘우치고 애석해 하는 마음이 생겨 탄식하고 한탄하며, "사람을 잃을 뻔 했구나"라고 하였다.

乃以赦使, 乘於甲斐黑駒, 馳詣刑所, 止而赦之.用解徽纒, 復作歌曰, ​

이에 사면하는 사자로 하​여금 갑비의 흑마(갑비국에서는 좋은 말이 났는데, 황실의 목장도 이곳에 있었다)를 타고 달려가 형장에 가서 형을 중지하고 죄를 사하게 하였다. 또한 묶은 줄을 풀게 하였다. 그러자 (기술자가) 다시 노래를 지어 불렀다.

​農播拕磨能 柯彼能矩盧古磨 矩羅枳制播 伊能致志儺磨志 柯彼能倶盧古磨

범부채 열매같이 검은 갑비의 검은 망아지에 만약 안장을 얹었더라면,

아마 위나부의 목수는 죽어 있겠지!​

​[一本 "換伊能致志儺磨志, 而云伊志歌孺阿羅麻志也."]

어떤 책에는 죽었을 것이라는 표현 대신에 때맞춰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十四年春正月丙寅朔戊寅, 身狹村主靑等, 共吳國使, 將吳所獻手末才伎・漢織・吳織及衣縫兄媛・弟媛等, 泊於住吉津.是月, 爲吳客道通磯齒津路, 名吳坂.

​​14년 봄 정월 병인삭 무인(13일),에 신협촌주청 등이 오국의 사신과 함께 오(吳)가 바친 수말재기인 한직, 오직 및 의봉인 형원과 제원을 거느리고, 주길진에 머물렀다. 이 달에 오의 사신을 위한 길을 만들어 기치진로와 통하게 하고, 오판(吳坂 ; 쿠레사카)이라고 이름하였다.

三月, 命臣連迎吳使, 卽安置吳人於檜隈野, 因名吳原.

3월, 신련에게 명해서 오의 사신을 맞이하게 하였다. 그리고 오인(​吳人)을 회외야에 거주하게 하였다. 따라서 오원(吳原 ; 쿠레하라)이라고 이름하였다.

以衣縫兄媛奉大三輪神, 以弟媛爲漢衣縫部也.漢織・吳織衣縫, 是飛鳥衣縫部・伊勢衣縫之先也.

또한 의봉 형원에게 대삼륜신을 받들게 하고, 제원을 한의봉부로 삼았다. 한직, 오직, 의봉은 비조의봉부, 이세의봉 등의 시조이다.

夏四月甲午朔, 天皇欲設吳人, 歷問群臣曰 "其共食者, 誰好乎."群臣僉曰 "根使主可."

여름 4월 갑오삭(1일)에 천황이 오인(​​吳人)들을 접대하고자, 여러 신하들에게 "같이 음식을 먹을 사람으로 누가 좋겠는가?"라고 두루 물었다. 이에 여러 신하들이 말하기를 "근사주가 좋습니다"라고 답하였다.

天皇, 卽命根使主爲共食者, 遂於石上高拔原, 饗吳人.時, 密遣舍人, 視察裝飾, 舍人復命曰 "根使主所著玉縵, 大貴最好.

​천황은 곧 근사주에게 명하여 함께 음식을 먹는 사람으로 삼고, 드디어 석상​의 고발원에서 오인을 접대하였다. 이때 몰래 사인을 보내어 복장을 살펴보게 하였다. 사인은 "근사주가 장식한 옥만(옥으로 만든 머리 장식)이 아주 귀하고 가장 좋았습니다"라고 복명하였다.

又衆人云, 前迎使時又亦著之."於是, 天皇欲自見, 命臣連裝如饗之時, 引見殿前.皇后, 仰天歔欷, 啼泣傷哀.또한 여러 사람들이 "전에 사신을 맞이할 때도 또한 장식하였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천황이 직접 보고자 하여 신련에게 명하여, 향응을 열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꾸미고 대전 앞에 오도록 불렀다. 이때 황후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다. ​

天皇問曰 "何由泣耶."皇后避床而對曰 "此玉縵者, 昔妾兄大草香皇子, 奉穴穗天皇勅, 進妾於陛下時, 爲妾所獻之物也.故, 致疑於根使主, 不覺涕垂哀泣矣."​

천황이 "무슨 까닭으로 우는가?"라고 물었다. 황후가 상(床)을 내려가서 말하길 "저 옥으로 만든 머리장식은 과거에 나의 오빠인 대초향 황자가 혈수 천황의 명을 받아, 나를 폐하에게 바칠 때 나를 위해 준 물건입니다. 그 때문에 근사주를 의심하여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었습니다"라고 답하였다.

天皇聞驚大怒, 深責根使主, 根使主對言 "死罪々々, 實臣之愆."詔曰 "根使主, 自今以後, 子々孫々八十聯綿, 莫預群臣之例."乃將欲斬之,

​천황이 듣고 놀라서 크게 화를 내어 심하게 근사주를 질책하였다. 근사주는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실로 신의 잘못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천황은 "근사주는 지금부터 자자손손에 이르기까지 영원히 군신의 지위에 넣어서는 안 된다"고 명하고 곧 목을 베어 죽이려고 하였다. ​​

根使主逃匿, 至於日根造稻城而待戰, 遂爲官軍見殺.

근사주는 도망가서 일근(​日根 ; 히네)에 이르러 도성(볏집으로 만든 성일 것으로 추측된다)을 쌓고 맞이하여 싸웠으나, 결국 관군에게 살해당하였다.

​天皇命有司, 二分子孫, 一分爲大草香部民以封皇后, 一分賜茅渟縣主爲負嚢者.卽求難波吉士日香々子孫賜姓爲大草香部吉士, 其日香々等語在穴穗天皇紀.

​천황이 유사에게 명하여 자손들을 둘로 나누어 한쪽은 대초향부민으로 삼아 황후에게 봉하였으며, 한쪽은 모정현주에게 주어 자루를 짊어지는 사람으로 삼았다. 그리고 난파길사일향향의 자손을 찾아서, 대초향부길사라는 성을 내렸다. 일향향(日香々 ; 히카카) 등의 이야기는 혈수 천황기에 있다.

事平之後, 小根使主[小根使主, 根使主子也]夜臥謂人曰 "天皇城不堅, 我父城堅."天皇傳聞是語, 使人見根使主宅, 實如其言, 故收殺之.根使主之後爲坂本臣, 自是始焉.

일이 끝난 다음에 소근사주[소근사주는 근사주의 아들이다]​가 밤에 누워서 사람들에게 "천황의 성은 견고하지 않고, 우리 아버지의 성이 견고하다"라고 말하였다. 천황이 이 말을 전해 듣고 사람을 시켜 근사주의 집을 보게 하였더니 실로 그 말과 같았다. 그래서 잡아 죽였다. 근사주의 후예가 판본신(坂本臣 ; 사카모토노오미)가 된 것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十五年, 秦民, 分散臣連等, 各隨欲駈使, 勿委秦造.由是秦造酒, 甚以爲憂而仕於天皇.

15년, 진민(秦民 ; 진씨 성을 가진 집단)이 신련​​ 등에게 분산되어 각각 (신련들은) 원하는 바에 따라서 부렸으며, 진조에게 위임되어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진조주는 매우 걱정하면서 천황을 섬겼다.

天皇愛寵之, 詔聚秦民, 賜於秦酒公.公, 仍領率百八十種勝, 奉獻庸調絹縑, 充積朝庭, 因賜姓曰禹豆麻佐.[一云 "禹豆母利麻佐"皆盈積之貌也.]

천황은 그를 총애하여 조를 내려 진민을 모아서 진주공에게 주었다. 그래서 공은 180종류의 승​(勝 ; 지명 등에 붙이는 姓의 일종)을 거느리고 용(庸 ; 노동력이나 布 등의 현물을 부과시키는 세목)과 조(調 ; 지방 특산물이나 絹, 布 등 현물을 부과시키는 세목)로 비단을 바쳐 조정에 가득 쌓아두었다. 그래서 성을 내려 우두마좌라고 하였다.[어떤 곳에서는 우두모리마좌는 가득 채운 모습을 말한다고 한다].

​十六年秋七月詔, 宜桑國縣殖桑, 又散遷秦民, 使獻庸調.

16년 가을 7월, 조를 내려 뽕나무가 자랄 수 있는 국현에 뽕나무를 심게 하였다. 또 진민을 흩어져 살게 하여 용과 조를 바치게 하였다. ​

冬十月詔, 聚漢部, 定其伴造者, 賜姓曰直.[一云 "賜漢使主等, 賜姓曰直."]

겨울 10월, 조를 내려 한부(​漢部 ; 아야베)를 모아 그 반조를 정하고, 성을 내려서 직(直)이라고 하였다.[어떤 책에서는 내린다는 것은 한사주 등에게 성을 내려서 직(直)이라고 한 것이라고 하였다]

十七年春三月丁丑朔戊寅, 詔土師連等 "使進應盛朝夕御膳淸器者."於是, 土師連祖吾笥, 仍進攝津國來狹々村・山背國內村俯見村・伊勢國藤形村・及丹波・但馬・因幡私民部, 名曰贄土師部.

17년 봄 3월 정축삭 무인(2일)에 토사련 등에게 조를 내려 아침저녁으로 천황이 드실 음식을 담는 정갈한 그릇을 올리게 하였다. 이에 토사련의 조상 오사가 섭진국의 내협협촌, 산배국의 내촌과 부견촌, 이세국의 등형촌 및 단파, 단마, 인번의 자신의 민부를 바쳤다. 이를 지토사부​​(贄土師部 니헤노하지베)라고 하였다.

​十八年秋八月己亥朔戊申, 遣物部菟代宿禰・物部目連, 以伐伊勢朝日郎.

​18년 가을 8월 기해삭 무신(10일)​, 물부토대숙녜와 물부목련을 보내어 이세의 조일랑을 정벌하게 하였다.

朝日郎, 聞官軍至, 卽逆戰於伊賀靑墓, 自矜能射, 謂官軍曰 "朝日郎手, 誰人可中也."

조일랑은 관군이 온다는 것을 듣고, 곧 이하(伊賀 ; 이가)의 청묘에서 맞이하여 싸웠다. 그는 스스로 활을 잘 쏘는 것을 뽐내면서 관군에게 "조일랑의 화살에 누가 맞고 싶으냐? 라고 물었다.

​其所發箭, 穿二重甲, 官軍皆懼.​

그리고 그가 쏜 화살이 두 겹의 갑옷을 ŸQ었다. 이에 관군이 모두 두려워하였다.

菟代宿禰, 不敢進擊, 相持二日一夜.於是, 物部目連, 自執大刀, 使筑紫聞物部大斧手, 執楯叱於軍中, 倶進.朝日郎, 乃遙見而射穿大斧手楯二重甲, 幷入身肉一寸.

​토대숙녜는 감히 나아가 공격하지 못하였다. 서로 버틴 지 이틀 밤이 지나자 물부목련이 스스로 큰 칼을 잡고 축자의 물부대부수로 하여금 방패를 잡게 하고 무리를 꾸짖은 후 함께 나아갔다. 조일랑이 이에 멀리 보고 대부수의 방패와 두 겹의 갑옷을 활로 쏘아 뚫었다. 그러자 화살이 몸 속으로 1촌 가량 들어갔다.

​大斧手, 以楯翳物部目連, 目連卽獲朝日郎斬之.

대부수는 방패로 물부목련을 가렸다. 목련은 곧 조일랑을 잡아서 베었다.

由是, 菟代宿禰, 羞愧不克, 七日不服命.天皇問侍臣曰 "菟代宿禰, 何不服命."

​이 때문에 토대숙녜는 이기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 7일 동안 복명하지 않았다. 천황이 사신에게 "토대숙녜가 어찌 복명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爰有讚岐田蟲別, 進而奏曰 "菟代宿禰怯也, 二日一夜之間, 不能擒執朝日郎.而物部目連, 率筑紫聞物部大斧手, 獲斬朝日郎矣."

그러자 찬기전충별이 나아가 "토대숙녜는 겁이 나서 이틀 동안 조일랑을 사로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물부목련이 축자의 물부대​부수를 이끌고 조일랑을 잡아 베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天皇聞之怒, 輙奪菟代宿禰所有猪名部, 賜物部目連.​

천황이 이를 듣고 노하여, 곧 토대숙녜가 소유한 저사부(猪名部)를 빼앗아 물부목련에게 내렸다.

​十九年春三月丙寅朔戊寅, 詔置穴穗部.

19년 봄 3월 병인삭 무인(13일)에 조를 내려 혈수부를 두게 하였다. ​


廿年冬, 高麗王, 大發軍兵, 伐盡百濟.爰有小許遺衆, 聚居倉下, 兵糧既盡, 憂泣茲深.

20년 겨울에 고구려 왕이 크게 군사를 일으켜 백제를 쳐서 없앴다. 그런데 몇몇의 남은 무리들이 창고 아래에 모여 있었다. 무기와 양식이 이미 다 떨어지고 근심하여 우는 소리가 매우 심하였다.

​於是, 高麗諸將, 言於王曰 "百濟, 心許非常, 臣毎見之, 不覺自失, 恐更蔓生.請遂除之."

​이때 고구려의 여러 장수들이 왕에게 "백제의 마음가짐이 범상치 않습니다. 신들이 볼 때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제 정신을 잃습니다. 다시 덩굴이 뻗어 자라듯 되살아날까 두렵습니다. 뒤쫓아 가서 제거하기를 청합니다"라고 말하였다. ​

王曰 "不可矣.寡人聞, 百濟國者爲日本國之官家 所由來遠久矣.又其王入仕天皇 四隣之所共識也"遂止之.[百濟記云 "蓋鹵王乙卯年冬 狛大軍來 攻大城七日七夜, 王城降陷, 遂失尉禮, 國王及大后, 王子等, 皆沒敵手."]

이에 왕이 "그럴 수 없다. 과인이 듣기에 백제국은 일본국의 관가(​官家)가 된 것이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또한 그 왕이 들어가서 천황을 섬긴 것은 사방에서 모두 아는 바이다. 라고 말하니 그만두었다.[백제기(百濟記에서는 개로왕 을묘년 겨룰, 고구려의 대군이 와서 대성(大城)을 7일 낮 7일 밤을 공격하였다. 그리하여 왕성이 함락되고 마침내 위례를 잃었다. 국왕과 대후, 왕자 등이 모두 적의 손에 죽었다고 적고 있다].

廿一年春三月, 天皇, 聞百濟爲高麗所破, 以久麻那利賜汶洲王, 救興其國.時人皆云 "百濟國, 雖屬既亡, 聚夏倉下, 實頼於天皇, 更造其國."[汶洲王, 蓋鹵王母弟也.日本舊記云 "以久麻那利, 賜末多王."蓋是誤也.久麻那利者, 任那國下哆呼唎縣之別邑也.]

21년 봄 3월에 천황이 백제가 고구려에게 멸망하였다는 사실을 듣고 구마나리(웅진 ; 공주의 옛 지명)를 문주왕에게​ 주어 그 나라를 세우는 것을 도왔다. 이때 사람들이 모두 "백제국이 비록 무리들은 이미 죽거나 창고 아래에 모여 근심하였는데도 오로지 천황에 의지하여 다시 그 나라를 세웠다"라고 말하였다[문주왕은 개로왕의 모제(母弟)이다. 일본의 구기(舊記)에서 이르기를, 구마나리를 말다왕에게 주었다고 하였으나 아마도 잘못일 것이다. 구마나리는 임나국의 하다호리현의 별읍(別邑)이다].


廿二年春正月己酉朔, 以白髮皇子爲皇太子.

​22년 봄 정월 기유삭(1일)에 백발 황자를 황태자로 삼았다. ​

秋七月, 丹波國餘社郡管川人・瑞江浦嶋子, 乘舟而釣, 遂得大龜, 便化爲女. 於是, 浦嶋子感以爲婦, 相逐入海, 到蓬萊山, 歷覩仙衆.語在別卷.

가을 7월에 단파국 여사군(餘社郡 ; 요사노코호리) 관천(管川 ; 츠츠카와)​​ 사람인 서강포도자가 배를 타고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이때 큰 거북이를 얻었는데, 갑자기 변하여 여자가 되었다. 이에 포도자가 반해서 부인으로 삼고 뒤따라서 함께 바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봉래산에 이르러 두루 신선들을 만났다. 자세한 이야기는 별권에 있다. 

​廿三年夏四月, 百濟文斤王, 薨.天王, 以昆支王五子中第二末多王・幼年聰明, 勅喚內裏, 親撫頭面, 誡勅慇懃, 使王其國, 仍賜兵器, 幷遣筑紫國軍士五百人, 衞送於國, 是爲東城王. 是歲, 百濟調賦, 益於常例.筑紫安致臣・馬飼臣等, 率船師以擊高麗.

​23년 여름 4월에 백제 문근왕이 죽었다. 천왕은 곤지왕의 다섯 아들 중 둘째인 말다왕이 어린데도 총명하므로 내리(內裏 ; 천황이 일상적으로 거처하는 공간)로 불러 친히 머리와 얼굴을 어루만지며 은근하게 훈계하고, 그 나라의 왕으로 삼았다. 이에 병기를 주고 축자국의 군사 5백 인을 함께 보내어 나라까지 호송하게 하였다. 이가 동성왕이 되었다. 이 해에 백제가 바친 조부가 평소보다 많았다. 축자의 안치신과 마사신 등이 선사를 거느리고 고구려를 쳤다.​

秋七月辛丑朔, 天皇寢疾不預, 詔, 賞罰支度, 事無巨細並付皇太子.

가을 7월 신축삭에 천황이 병으로 자리에 누웠다. 상벌을 내리는 일은 크고 작음의 구별 없이 모두 황태자에게 보내라고 명하였다. ​


八月庚午朔丙子, 天皇疾彌甚, 與百寮辭訣並握手歔欷, 崩于大殿.

​8월 경오삭 병자(7일)에 천황의 병이 오랫동안 심하였다. 백료와 더불어 이별의 말을 나누고 서로 손을 잡으며 흐느껴 울었다. 그런 후에 대전에서 죽었다.

遺詔於大伴室屋大連與東漢掬直曰 "方今, 區宇一家, 煙火萬里, 百姓乂安, 四夷賓服.此又天意, 欲寧區夏.所以, 小心勵己・日愼一日, 蓋爲百姓故也, 臣・連・伴造毎日朝參, 國司・郡司隨時朝集, 何不罄竭心府・誡勅慇懃.義乃君臣, 情兼父子, 庶藉臣連智力, 內外歡心, 欲令普天之下永保安樂.不謂, 遘疾彌留至於大漸.此乃人生常分, 何足言及, 但朝野衣冠, 未得鮮麗, 教化政刑, 猶未盡善, 興言念此, 唯以留恨.今年踰若干, 不復稱夭, 筋力精神, 一時勞竭, 如此之事, 本非爲身, 止欲安養百姓, 所以致此, 人生子孫, 誰不屬念.既爲天下, 事須割情, 今星川王, 心懷悖惡, 行闕友于.古人有言『知臣莫若君, 知子莫若父.』縱使星川得志, 共治國家, 必當戮辱, 遍於臣連, 酷毒流於民庶.夫惡子孫, 已爲百姓所憚, 好子孫, 足堪負荷大業, 此雖朕家事, 理不容隱, 大連等, 民部廣大, 充盈於國.皇太子, 地居儲君上嗣, 仁孝著聞, 以其行業, 堪成朕志. 以此, 共治天下, 朕雖瞑目, 何所復恨."

천황은 대반실옥대련과 동한국직에게 ​

"바야흐로​ 지금 천하는 한 집과 같으며 밥 짓는 연기가 만리에 피어오르니, 백성이 또한 편안하며 사방의 오랑캐들이 와서 복종한다. 이 또한 하늘의 뜻이니 온 나라를 편안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조심하고 자신을 격려하며 나날이 하루를 삼간 것은 대개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신(臣), 연(連), 반조(伴造)는 매일 조회에 참석하고, 국사(國司)와 군사(郡司)는 때에 따라서 조정에 모인다. 어찌 마음을 다해서 경계하는 칙(勅)이 은근하지 않겠는가? 의리로는 곧 군신이고, 마음에 잇어서는 부자와 같다. 바라건데 신련(臣連)들의 지혜에 의지하여 안팎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하늘 아래 영원한 안락을 보전토록 하고자 한다. 생각지도 못하게 병을 만난 지 오래 되어서 죽음에 이르려고 한다. 이는 곧 인생의 변함없는 이치이다. 어찌 말로 다 하겠는가! 다만 조야(朝野)의 의관이 아직 아름답지 못하며, 교화(敎化)의 정형(政刑)도 역시 아직 훌륭하지 못하다. 말을 꺼내어 이를 생각하니, 오직 한스러움만 남는다. 지금 나이는 어느 정도 되었으니(당시 나이 62세) 일찍 죽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근력과 정신이 한꺼번에 힘을 다하였다. 이와 같이 된 까닭은 본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편안히 기르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니, 자기가 낳은 자손에게 누군들 마음을 의직하지 않겠는가. 이제 천하를 위해서 상황을 잘 판단해야 한다. 지금 성천왕이 마음으로 패악을 품고, 행동은 우애가 모자란다. 옛 사람의 말이 있기를 신하를 아는 데는 군주만한 자가 없고, 자식을 아는 데는 그 아비만한 자도 없다고 하였다. 만약 성천이 뜻을 얻어서 나라를 다스린다면 반드시 살육을 행하여 신련에게 두루 미치고, 혹독함이 백성들에게 흐를 것이다. 무릇 악한 자손은 백성들이 꺼리는 바가 되고, 좋은 자손은 족히 대업을 등에 지고도 견딜 수 있다. 이는 비록 짐의 집안 일이라 해도, 이치는 숨길 수 없다. 대련 등은 민부가 넓고 커서 온 나라에 가득 찼다. 황태자는 왕위를 잇는 지위에 있으며, 인효(仁孝)가 드러나 소문이 자자하다. 그 행동과 업적이 짐의 뜻을 이루기에 충분하였다. 이로써 함께 천하를 다스린다면 짐이 비록 눈을 감는다 해도 어찌 다시 원통해하는 바가 있겠는가!"

라고 유조를 내렸다.

[一本云 "星川王, 腹惡心麁, 天下著聞.不幸朕崩之後, 當害皇太子.汝等民部甚多, 努力相助, 勿令侮慢也."]​

[어떤 ​ 책에서는 "성천왕은 속이 악하고 마음이 거친 것이 천하에 소문으로 드러났다. 불행하게도 짐이 죽은 후에 분명히 황태자를 해칠 것이다. 너히들 민부는 매우 많다. 노력하여 서로 협조하라. 얕보지 말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是時, 征新羅將軍吉備臣尾代, 行至吉備國過家, 後所率五百蝦夷等聞天皇崩, 乃相謂之曰 "領制吾國天皇, 既崩.時不可失也."乃相聚結, 侵冦傍郡.

이때 정신라장군 길비신미대가 길비국에 이르러 집을 나갔다. 그가 거느리고 있던 5백 명의 하이(궁정 경호 담당)들이 천황이 돌아가신 것을 듣고 "우리나라를 통괄하​여 다스리는 천황이 이미 죽었다. 이때를 놓칠 수 없다"라고 서로 말하였다. 이에 서로 모여서 이웃 군(郡)을 침략하였다.

於是尾代, 從家來, 會蝦夷於娑婆水門, 合戰而射, 蝦夷等或踊或伏, 能避脱箭, 終不可射.

​그러자 미대가 집에서 나와서 사파의 수문에서 하이와 만나서 맞붙어 싸우며 활을 쏘았다. ​하이들은 어떤 자는 뛰고 어떤 자는 엎드리며, 화살을 잘 피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활을 쏠 수 없었다.

是以, 尾代, 空彈弓弦, 於海濱上, 射死踊伏者二隊, 二櫜之箭既盡, 卽喚船人索箭, 船人恐而自退.尾代, 乃立弓執末而歌曰,

이에 미대가 빈 활시위를 당겼다. 그러자 바닷가에서 뛰고 엎드리던 자들 두 무리를 쏘아 죽일 수 있었다. 이윽고 두 개의 활집에 있던 화살을 모두 썼다. 곧 뱃사람을 불러서 화살을 찾으니 뱃사람이 두려워하며 스스로 물러났다. 미대가 이에 활을 세워 그 끝을 잡고 노래 불렀다. ​

​瀰致儞阿賦耶 鳴之慮能古 阿母儞舉曾 枳舉曳儒阿羅毎 矩儞々播 枳舉曳底那

길에서 전투를 하는 미대(尾代)라는 아이​, 어머니에게는 들리지 않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귀에는 전해지면 좋으련만.

​唱訖, 自斬數人, 更追至丹波國浦掛水門, 盡逼殺之.[一本云 "追至浦掛, 遣人盡殺之.]"

노래 부르기를 마치고 스스로 여러 사람을 베었다. 다시 추격해서 단파국(타니하노쿠니) 포괘(우라카케)의 수문에 이르러서 모두 공격하여 죽였다[어떤 책에서는 "추격하여 포괘에 이르러 사람을 보내어 다 죽였다"라고 하였다].

 


 

[출처 : 동북아 역사재단] 

http://archive.is/u6nz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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