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문학, 문화계 소식

김형석 교수의 철학. 산책

작성자아라공|작성시간26.06.15|조회수30 목록 댓글 0


[ 김형석 교수의 철학 산책 ]

(과일) 나이 들수록 혼자가 행복한 이유

ㅇ 외로움은 수동이고 고독은 능동이다

백년을 훌쩍 넘긴 세월을 살아 낸 한 노교수가 조용히 인사를 드립니다.

이 밤 혼자 거실에 앉아 있거나 불을 끄고 누웠는데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천장을 바라보고 계신 분이 있다면
아마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빈 듯 한 느낌을 아실 겁니다.

내가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닐까?
왜 이렇게 곁이 허전할까?
젊은 날 제 연구실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제자들 동료들 술잔을 기울이며 밤을 세우던 친구들 우리는 영원할 것처럼 웃었지요.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하나 둘씩 멀어졌습니다.
어떤 이는 이해관계 앞에서 등을 돌렸고
어떤 이는 제 성공을 시기했고
또 어떤 이는 제가 기대했던 순간에 침묵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깊이 상처받았습니다.
내가 사람을 잘 못 본 것인가?
내가 부족했던 것인가?
수없이 자문했습니다.

그러나 100년을 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그 허무함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인생이 불필요한 가지를 스스로 처내는 과정이었습니다.
나무가 겨울을 맞기 전에 잎을 떨구듯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관계가 정리됩니다.

그것은 벌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렇게 배웠습니다.
진심은 통한다. 베픈 만큼 돌아온다.
오래된 인연은 배신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교과서와 다릅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동시에 놀랄 만큼 단순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우선에 둡니다.
상황이 바뀌면 태도도 바뀝니다.
저는 이것을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하며 확인했습니다.

기업을 일으킨 제자도, 정의를 외치던 동료도, 가족을 위해 희생하겠다던 친구도 이해관계가 얽히자 전혀 다른 얼굴을 보이 곤 했습니다.
그때 저는 분노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게 말합니다.
그것은 특별히 그 사람이 악해서가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조건입니다.
우리가 상처받는 이유는 상대의 본성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위에 기대를 얹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만큼 했으니 저 사람도 나를 위해 해주겠지.
그 기대가 무너질 때 가슴이 아픈 것입니다.
저는 한 때 오랜 법과 돈 문제로 등을 돌린 적이 있습니다.

30년을 형제처럼 지냈던 사람입니다.
저는 그가 끝까지 의리를 지킬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안위를 택했습니다.
젊은 저는 밤새 술을 마시며 배신을 곰씹었습니다.

허지만 세월이 흐른 뒤 깨달았습니다.
그가 변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 그의 본성을 드러냈을 뿐이라는 것을요.

여러분 지금 곁에 사람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자책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축하받을 일입니다.
가짜 기대가 걷히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는 양이 아니라 밀도로 남습니다.

수십명의 지인이 아니라 단 한명의 동행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때론 그 한 명조차 없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 공백은 두려워할 구멍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들어설 자립니다.
저는 제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
아무도 믿지 말자가 아니라, 아무에게도 과도하게 기대하지 말자라는
결심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기대를 내려놓자 분노도 함께 줄어 들었습니다.
누군가 도움을 주면 감사했고 주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본래 그런 존재라는 이해가
저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100년을 살아보니 관계의 붕괴는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 성숙의 통과 의례였습니다. 우리는 결국 사람을 통해서 상처받고 또 사람을 통해서 배웁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남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그 경험을 해석하는 나 자신의 깊이입니다.
혹시 오늘 밤 왜 이렇게 혼자인가 하고 마음이 시린 분이 계십니까?
그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 보십시오.

이제 무엇을 비워냈는가?
비워진 자리에는 반드시 진짜가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진짜는 대부분 타인이 아니라 오래 동안 미뤄두었던 자기 자신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깨닫습니다.
관계를 지키는 힘은 마음의 크기가 아니라, 거리에 정확함이라는 것을요.
젊은 시절에 저는 정반대였습니다.

누군가 어려움에 처하면 제 일처럼 나섰고, 부탁을 거절하는 법을 몰랐습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은근한 자부심이었지요.

그러나 그 칭찬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처음 한번 도와주면 고맙다며 두 손을 잡습니다.
두 번 째는 당연하다는 표정이 되고, 세 번째부터는 말이 짧아집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제가 사정상 거절하자 이런 말이 돌아왔습니다.
교수님 예전에는 안 그러셨잖아요.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쌓아온 것이 존중이 아니라 기대였다는 사실을요.

100년을 살며 수천 명의 제자와 동료를 보았습니다.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은 존경 받기 보다 소모됩니다.

늘 맞춰주는 사람은 신뢰 받기 보다 이용됩니다. 인간은 잔인해서가 아니라 익숙해지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합니다.

반복된 호의는 권리로 변합니다.
저는 이것을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형제 사이에서도 말입니다.
특히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우리는 선을 가장 쉽게 넘습니다.
가족이니까 이해하겠지, 부모니까 참아야지, 자식이니까 희생해야지.

그러나 가장 깊은 상처는 종종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생깁니다.
저는 노년에 접어든 제자들이 상담하러 올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산문제로 갈라선 형제 기대를 감당하지 못해 부모와 멀어진, 자식 은퇴 후 배우자와 낯설어진 부부 문제의 핵심은 애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경계가 없어서였습니다.

저는 어느 날부터 정중한 무관심을 연습했습니다. 이것은 차갑게 등을 돌리는 태도가 아닙니다.

예의는 지키되 내 내면에 깊은 방은
함부로 열지 않는 태도입니다.
웃으며 인사하지만 나의 약점과 욕망과 두려움까지 다 내어놓치는 않습니다.

상대를 통제하려 하지도 않고, 나를 설명하려 애쓰지도 않습니다.
그 거리를 지키자 관계는 오히려 오래 갔습니다.

제가 젊은 교수였을 때, 한 동료와 심하게 다툰 적이 있습니다.

그는 감정이 상한 채 절교하다시피 헤어졌지요.
몇 년 뒤 그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망설이다가 거리를 둔 채로 악수만 했습니다.
예전처럼 모든 것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 선택이 냉정해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월은 증명했습니다.
변하지 않은 본성은 상황이 비슷해지자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만약 제가 모든 문을 다 열어두었다면
상처는 반복되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환경이 잠시 바꿔 놓는 것처럼 보여도 본성은 조용히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합니다.
용서는 하되 경계는 풀지 말라고.
마음으로는 미워하지 않되 인생의 중심에는 다시 들이지 말라고.
그것이 나를 지키는 지혜입니다.

요즘 사회를 보면 관계의 필요가 더욱 깊어졌습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중장년층에게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은퇴 후 급격히 증가한다고 합니다.

직장을 떠나고 나면 관계의 상당수가 사라집니다.
그 공백을 메우려 무리하게 모임에 나가고, 원치 않는 자리에도 얼굴을 비춥니다.
그러나 억지로 붙잡은 관계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존감만 깎입니다.

저는 제 제자들에게 늘 말할니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말고 함부로 할수 없는 사람이 돼라.

무리한 부탁은 단호히 거절하십시오.
설명을 길게 하지 마십시오.
단호함은 자기 존엄의 표현입니다.
사람들은 부드럽지만 경계가 분명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고슴도치 이야기를 저는 참 좋아합니다.
추위를 피하려 다가섰다가 서로의 가시에 찔리고, 또 떨어졌다가 다시 다가오는 그 반복 끝에 적당한 거리를 찾는 이야기. 인간관계도 그렇습니다.

너무 멀면 외롭고 너무 가까우면 다칩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밀착이 아니라 상처없이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간격입니다.

모든 사람과 깊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몇몇과는 가볍게, 몇몇과는 오래, 그리고 대부분과는 예의 있게,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관계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정제되는 것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