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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십재경영(十載經營)

작성자아라공|작성시간26.06.18|조회수19 목록 댓글 0

십재경영(十載經營)

작자 미상

 


십년에 걸쳐 연목 걸어 집 한 채를 지으니  十載經營屋數椽

금강의 위요 월봉의 앞이라.  錦江之上月峰前

떨어져 이슬에 젖은 복숭아꽃은 강물 위를 붉게 물들이고  桃花浥露紅浮水

버들개지 바람에 흩날려 흰빛으로 나룻배 안 가득 채웠네.  柳絮飄風白滿船

돌길을 걸어 돌아가는 중은 산 그림자 밖에 있고,  石逕歸僧山影外

물안개 자욱한 백사장에 잠든 백로, 빗소리 가에 있구나.  烟砂眠鷺雨聲邊

만약 왕마힐(왕유)로 하여금 이곳에서 노닐게 했더라면  若今摩詰遊於此

그때에 굳이 남산의 망천을 그리고 읊진 않았으리.  不必當年畵輞川

 


<십재경영>은 그저 한량기 넘치는 음풍명월의 시가 아니다.

 시가로서의 의경미(意境美)․함축미․상징미가 물씬할 뿐만 아니라 선시로서의 현량경(現量境, 직관)․몽롱성․초월성․일상성․혀장성 등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시의 백미는 문학적 재기가 흘러넘치는 함련(제3, 4구)의 "강물 위를 붉게 물들이고[紅浮水]", "흰빛으로 나룻배 안 가득 채웠네[白滿船]"

초월적 선경을 드러낸 경련(제5, 6구)의 "산 그림자 밖[山影外]", "빗소리 가[雨聲邊]"이다.

 


복숭아꽃은 어리고 싱싱함을 상징한다. 이 시에서 시인 자신이 빠져 있는 달콤한 선열(禪悅)을 상징한다.

함련은 붉은색과 흰색이 대구를 이루어 시적 의경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색채는 본질적으로 심리적 반응을 나타낸다.

 


부(浮)와 만(滿)은 어떠한 수사도, 비유도, 기교도 없는 직관의 현량경이다.

불립문자의 언어도단을 주장하는 선에서는 저 우주 밖의 불법진리에 접근하는 기본적 사유방식이 '현량(직관)'이다.

 


새들은 연못가 나무에 깃들이고鳥宿池邊樹 중을 달빛 아래 문을 밀고 절 안으로 들어간다.

僧敲月下門가도의 시다.

일체의 망상이 없는 가운데서 마음에 와 닿는 광경 그대로를 표출한 마치 다른 사람의 꿈을 이야기하는 듯한 '현량경'이다.

 


배가 옮겨 가니 성의 나무 가까이 들어오고舟移城入樹

기슭이 넓어지니 동네가 물 위에 나타난다.岸闊水浮村

 


당나라 때의 시인 잠삼(岑參)의 이 시는 사색계교가 전혀 없는 현량경이다.

'현량'은 망상과 사량을 반대하며 지각 경험을 강조하고, 일체의 지성과 논리를 배격하며 체성(體性)의 일촉즉각을 중시한다.

 


소동파는 <문설(文說)>에서 "넘치는 물은 땅을 가리지 않고 흐른다[如滿斛源泉 不擇地而出]"고 했다.

 


생활 속의 감정이 흘러넘치지 않고는 이처럼 세찬 빗줄기가 쏟아지는 듯한 기세의 정치(情致)를 읊을 수 없다.

이런 일상 속의 현량과 직관의 미학은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자연스런 마음이 곧 불법진리라고 강조하는 선가의 '평상심시도'와 같은 맥락이다.

 선가의 평상심시도는 도가의 자연관이 발전한 것이다.

 


작품 속의 시인은 생활을 인식하고 반영하며 표현하는 주체가 된다.

시인이 처한 모든 객관적 현실은 예술을 반영하는 개체적 존재일 뿐이다.

 


경련의 '산 그림자 밖'과 '빗소리 가'는 이 시의 백미다.

 '외'와 '변'이라는 정련된 두 글자는 매우 큰 확장성을 갖고 의상의 운영에 탄력성을 부여하고 있다.

 '외'라는 글자는 세속을 초월해 노니는 선승의 물외적(物外的) 공간을 상징한다.

 '외'는 곧 언어 표현의 한계를 벗어난 불립문자의 세계를 대변한다. '변'자 역시 마찬가지다.

 


"산 그림자 밖"과 "빗소리 가"는 현허미묘한 시상 속의 이치를 잘 담아낸 시구이며 선구이다.

 외와 변은 이른바 "말은 길지 않지만 길게 말이 계속되는[言之不足 故長言之]" 가운데 사공도가 말한 "한 글자도 쓰지 않고 풍류를 다한다

[不着一字 盡得風流]"는 상외지상의 의경을 드러내 보여준다.

 


해 저물어 새는 냇가에 잠들고落日鳥邊宿

가을 들판의 사람은 한가로움 밖에 있다.秋原人外閑

 


왕유의 <수재 배적의 소대에 올라 짓다[登裵迪秀才小臺作]>에 나오는 시구다.

이 시구의 외자 역시 초월의 세계, 본세계, 우주의 바깥 등을 암시한다.

邊이 지상을 암시한다면 外는 '하늘'을 상징한다. 시는 지상에서 시작하여 하늘에서 끝나고 있는 것이다.

 왕유의 이 시구는 의도적인 사려의 흔적이 조금도 없다.

그저 눈앞에 나타난 경물을 있는 그대로 읊은 현량경으로 '外' 한 글자를 통해 물외로 벗어나 있는 세외지심(世外之心)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돌 길을 걸어 돌아가는 산 그림자 밖의 중"과 "물안개 자욱한 백사장에 잠든 빗소리 가의 백로"도 일체의 수식과 사려의 흔적이 없는

 현량경으로 물외로 초탈해 있는 선적인 시심이다.

 


'邊'자가 정련된 시어로 사용되어 무한한 함축과 선적 의경을 표출한 사례들을 살펴보자. 변은 際, 端, 涯 등으로도 표현된다.

 


황혼은 아직 구름 끝에 머물며暝還雲際宿

이 바위 위의 달을 희롱한다.弄此石上月

-사령운, <석문암에 묵으며>

 


꽃 같은 미인 구름 끝에 있고美人如花隔雲端

위로는 푸르고 깊은 높은 하늘 있네.上有靑冥之高天

-이백 <깊은 생각>

 


애끊는 사람 하늘가에 있다. 斷腸人在天涯

-마치원(馬致遠) <가을 생각>

 


산그림자 밖과 '빗소리 가'를 통해 이미지화한 '세외지심'은 볼 수 있는 실경이 아니라 오직 느낄 수만 있는 虛境이다.

 


고려 원감국사 충지선사는 <한가롭게 지내면서(幽居)>라는 선시에서 동중정(動中靜)의 선적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떠들썩한 세상 밖에서 살며棲息紛華外

아름다운 자연을 안고 노니노라.優遊紫翠間

소나무 숲 봄이 되자 한결 고요하고松廊春更靜

대나무 사립문은 한낮에도 닫혀 있네.竹戶晝猶閉

 


'절로 돌아가는 선승'과 '잠든 백로'라는 본체만 드러낼 뿐 그 비유체를 생략시켜버림으로써 더욱 함축적이고 정제된

시상을 만들어내었다. 이를 잠유(潛喩)라 한다.

 


물푸레나무꽃이 기와 위에 흐르고 있다.桂花流瓦

 


송대 주방언의 <해어화(解語花)>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서는 달빛으로 비유된 물푸레나무꽃만 나타나 있을 뿐 물[水]이라는 비유체는 나타나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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