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및 시조창에 대한 이해
시조가 교과서에 수록된 문학적 의미 이외에 음악적 특성이 결합되어 정신과 물질이 조화를 이루고 풍류와 낭만이 넘치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민족의 고아한 아름다운 음악예술임을 알아봅시다.
1. 서론
보통 시조라 하면 ‘이 몸이 죽고 죽어~’, ‘청산리 벽계수야~’ 등의 학교 교과 과정에서 배운 평시조들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또한 ‘전통 문학 중에서 우리 민족의 사랑을 가장 오래 받아 온 3장 6구 45자의 운문 장르이다’ 등의 생각 또한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시조라는 문학 장르의 반쪽만을 알고 있는 것과 같다. 시조라는 것은 본디 노래를 부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우리가 시조창이라고 알고 있는 따분한 국악 장르가 시조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다. 겉과 속이 온전해야 우리 몸이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듯이, 시조도 악곡과 노랫말이 함께 해야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빠른 템포의 생활에 젖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여유와 한가로움의 정서가 담긴 아름다운 예술이다. 이 글에서는 시조의 정의와 유래와 함께, 시조창으로는 어떻게 불리는가에 관해서 문학 자료와 함께 국악 자료를 함께 참고해서 살펴보자.
2. 본론
1)정가의 정의
정가(正歌)란 정악(正樂)에 속하는 성악곡을 가리키는 말로, 가곡·가사·시조 등 세 종류의 성악곡이 정가로 분류된다. 속가(俗歌)와 반대되는 개념의 노래인 정가는 ‘바른 노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주로 사대부와 선비 등의 계층에서 인격 수양을 위하여 불리어졌던 노래이다. 정가를 부를 때에는 ‘정가의 법도’ 즉, 5 음 이외의 소리는 잡소리이므로 사용을 금하고, 난초·매화의 암향 같은 그윽하고 청초한 흥취를 간직하여야 하며, 장미나 모란같이 화려한 멋을 부리지 말아야 하고, 격렬한 음의 떨림이나 폭넓은 음의 꺾임을 금하는 등의 법도를 지켜 자유로운 감정의 표현을 엄격하게 금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러한 정가의 엄격함은 조선 후기로 오면서 차차 무너져 상당한 속화가 이루어지게 되나 정가는 아직도 기본적인 본래의 고상함을 간직하고 있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정가 중 가곡(歌曲)은 소규모의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시조시(時調詩)를 얹어 노래하는 성악곡으로, 정가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노래로서 예술성뿐만 아니라 음악적 구성 또한 완벽하게 짜여 있는 노래이다.
가사(歌詞)는 가사체(歌詞體)의 긴 사설(노랫말)을 일정한 장단에 의해 노래하는 성악곡으로 그 감정 표현이 자유로운 편이고, 이들 세 종류의 정가 중 시조창과 가곡은 같은 시조시를 얹어 노래 부르는 성악곡이면서도 그 음악적인 형식과 장단, 음계, 연주 형태 등에 있어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시조창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음악이었던 반면에, 가곡은 피나는 훈련을 쌓아 올려야 했던 전문가의 음악이었다고 볼 수 있다.
2)시조의 정의
세계 각 나라마다 그들만의 자랑스러운 문화가 있듯이, 우리나라에도 이에 못지않은 훌륭한 전통문화 유산이 있다. 그중 지금도 널리 향유되고 있는 것이 바로 '시조' 이다. 이 때문에 시조는 한민족의 사랑을 가장 오래 받아온 예술이라 평가받고 있다. 시조는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준말로서,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와 시대적 현실이 4음보의 율격으로 조화롭게 표현된 한국의 대표적 서정 시가이다. 본디 시조는 노래 부르던 사설(辭說)과 그의 짝한 곡(曲)을 합쳐 이름한 것으로, 자신의 정서를 노랫말로 표현한 뒤 이를 직접 가락에 얹어 부르는 예술장르를 일컫는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정형시인 시조가 갖고 있는 형태적인 특성은 3장의 겉틀에 있다. 시조는 6구의 뼈대를 내포하고 있으며, 리듬의 단락을 위해 12음보(音譜)로 구분하고, 글자 수는 대부분 45자 이내를 원칙으로 한다. 이러한 시조의 형태적 특징은 다른 나라 정형시와의 비교에서 두드러진다. 우리나라와 인접해 있는 중국의 절구(絶句)시와 일본의 하이쿠는 형식이 엄격하여, 글자 수를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 시조는 종장의 첫 음보 3자와 둘째 음보 5∼7자가 고정돼 있을 뿐 그 밖의 음보는 마음대로 글자 수를 가감할 수 있는 특징이 있어, 자신의 생각을 보다 자유롭게 표현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시조가 일본의 하이쿠나 중국의 절구시보다 더 우수한 형식적 특질을 갖고 있다할 수 있다. (일본의 하이쿠는 2행으로 되어 있고 윗 구 5.7.5 아랫 구 7.7의 상하 2구 12음보. 중국의 절구는 기.승.전.결 4구) 그러나 일본의 하이쿠는 시조와 달리, 전 국민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성장해 오고 있다. 하이쿠를 담은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세계화를 위해 큰 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는 교육 현장에서조차 시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현실이고, 우리 것을 올바로 가르쳐야겠다는 의무감도 찾기 어렵다. 이 때문에 시조 창작(創作)은 전문 시인이나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자음 모음 24자를 깨우치면 한글을 마음대로 읽고 쓸 수 있듯이, 시조도 기본 형식만 익히면 누구나 지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조는 형식을 갖추되 완전히 고정되지 않고 적절한 파격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서정시이다. 이 때문에 시조는 임금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슬플 때나 즐거울 때, 당시의 마음을 노래할 수 있었던 국민문학이 된 것이다. 현대에서도 이어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3)시조창의 정의
이주환(李珠煥)의 <시조창의 연구> 가운데 [시조창 소고]의 서론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시조를 문학적 측면에서 보면 시조시요, 이를 음악적 측면에서 다루면 시조창인 것은 새삼스레 설명이 부질없을 것이다. 앞으로 이 강(講)에서 취급하는 시조 또한 그 시조창일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시조는, 가곡같이 5장이 아니고 3장으로 구분되었으며 대개 무반주로 불리는 단순한 성악이다.’ 가곡에 비하여 장식음이 적고 그 대신 꿋꿋하고 무거우며 그 미묘한 다이내믹을 그 생명으로 한다. 시조는 원래 짧은 노래라 하여 단가라 부르다가, 시절가조의 준말로 시조라 했다. '시절가조 (時節歌調)' 란 당시의 유행한 노래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서구 문화의 영향을 받은 문학 장르인 신체시, 자유시, 산문시 등과 구분하기 위해 국문학으로는 '시조시', 음악곡조로는 '시조창'이라 구분하고 있다. 이렇듯 현대에 와서는 명칭상 국문학의 술어로 시조시라 칭하고 음악의 곡으로는 시조창이라 하여 구분하니 시조창이 생긴 이전의 가집(歌集)은 청구영언(靑丘永言 : 1728년 남파 김천택 엮음. 998수를 곡조에 따라 분류하고 작자의 약력을 소개하였다. 그 밖에 가사 17수도 수록되어 있다)· 해동가요(海東歌謠 : 1763년 노가재 김수장 엮음. 883수를 작가별로 분류하고 자작시도 수록하였다)·가곡원류(歌曲源流 : 1876년 박효관·안민영 엮음. 시조와 가사수를 남창·여창으로 나누고 곡조에 따라 분류 수록하였다.)가 전해왔고 이후에는 육당시조집(六堂時調集),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 : 정확한 연대와 편자는 미상이며 시조 224수, 잡가 3편, 가사 4편이 수록되어 있다. 가집 중에서 유일한 판본이며 순 한글로 표기되어 있다. 특기할 것은 시조의 종장 끝구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4)시조창의 유래
고려 인종 때 문신 정서가 내시랑으로 임금의 총애를 받던 중, 그를 시기하던 간신들의 모함에 걸려 고향인 동래(지금의 부산)로 귀향 갔는데 그를 아끼던 임금이 오래도록 부르지 않아 임금을 사모하는 연군(戀君)의 뜻으로 지은 정과정곡인 삼진작(三眞勺, 三機曲), 곧 만대엽(慢大葉)·중대엽(中大葉)·삭대엽(數大葉)이 전해오다가 (만대엽은 조선 초기에 실전되고
중대엽은 영조 이전에 또한 실전되었다) 초삭(初數)·2삭 및 중·평·두거(中·平·頭擧)외 삼삭대엽이 전해오면서 발전하여 잦은 노래로 농·락·편(弄·樂·偏)등이 드는 곡이 파생하는 데 이를 우락시조·계락시조라 했다. 그 후 영조 때 가객 이세춘(李世春)이 정가로 엄숙한 우조(羽調)와 애원한 계면조(界面調)가 있는데 어찌 화평한 평조(平調)가 없어서 되겠는가 하고 새로 작곡한 것을 평시조라 명칭 하였다고 추정하는데, 문헌의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영조 때 학자 신광수(申光洙)의 <석북집(石北集) 관서악부>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시이다.
초창문개설태진 初唱聞皆說太眞
지금여한마외진 至今如恨馬嵬塵
일반시조배장단 一般時調排長短
내자장안이세춘 來自長安李世春
'일반시조에 장단을 배열한 것은 영조 때 서울에서 온 이세춘으로부터 비롯한다'라는 이 시에 근거해 시조는 대개 영조 무렵에 그 틀이 짜인 듯하다.‘ 이 시구(詩句)에서 시조라는 명칭과 그 창시자가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시조의 최초 악보로서는 <구라철사금보(歐邏鐵絲琴譜)>에 시조라는 곡명으로 양금보가 전하고 있다. 구라철사금보는 정조 때 지어진 양금 악보이다. 이러한 설 외에도 시조의 발생 시기에 대해서는 삼국시대(김종식 : 가집에 수록된 작품을 근거로 함), 고려조(조윤제, 이태극, 박성의, 김태준, 정병욱, 김병국 등 : 고려중엽의 별곡이 고려 말에 시조로 분화, 경기체가와 속가의 거리를 극복하고자 중엽쯤 발생, 소박하면서도 정제된 형식이 성리학자들에 적합, 한시절구에 담을 수 있는 시의를 담기에 적합), 조선조(이능우, 김수업, 성호경 : 정치적 안정기인 16세기에 정착, 진본 청구영언에 없는 고려조 작품은 인정할 수 없음. 16세기 초기 시조들이 음보율상 불안정성을 보임) 등의 주장들이 있다.
5)시조창의 종류
(1) 평시조
시조의 원형은 평시조이다. 유예지 시절에는 시조(현재의 평시조)한 곡뿐이었고, 그 뒤에는 삼죽금보에 이르러 시조(현재의 평시조)와 소이시조(騷耳時調:현행의 지름시조) 두 곡으로 늘어난다. 이러한 평시조는 모든 시조창의 근본으로서 단일 곡으로 '시조'라 일컬어지던 것이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많은 변화와 발전으로 여러 종류의 시조로 파생되었다. 이런 시조창의 기본이라는 뜻의 '평화한 시조'란 뜻에서 '평시조'라 했다. 이 '평시조'는 화평하고 웅장하게 불러야 한다. 곡태에 변동이 별로 없으며 모든 시조의 기초가 된다. 조선조 중엽까지는 주로 평시조만 불렀다. 전해져 내려오는 시조도 평시조가 대부분이다. 평시조의 주제는 다양하나, 시조가 주류를 이루었던 조선조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성리학적 이념을 담은 시조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성리학적 이념을 담은 시조들을 분류해 보면,
1. 성선의 확인 :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
2. 수기
1)모현 : 성현을 사모함
2)수신 : 군자의 점잖은 모습을 말하며 이렇게 되기를 갈망함
3)면학 : 학문의 연마에 힘씀
4)강호 생활 : 자연을 통하여 인격을 수양함
5)최고 경지의 추구 : 성리학의 최고 경지에 대한 동경
3. 치인
1)훈민 : 백성을 널리 교화하려 함
2)군은 : 임금의 은혜에 감사함
3)연군 : 언제나 군주를 생각함
으로 나눌 수 있다.
평시조에서 창으로 불리는 작품들은 3,4 조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작품들이다. 3,4조 형식에서 한 절에 한자라도 줄어지는 것은 창으로써의 선율이 한자 많음 보다 오히려 곤란하고, 또는 불능할 경우도 있으므로 독, 창 양면으로 충실한 ‘팬’들을 놓치게 된다. 물론 4자 이상도 리듬 상으로 무리를 가져오게 된다. 특히, 종장 첫 구절에서는 평조곡 전체의 미를 대표하려는 듯이 아주 세청으로 시초부터 집어 삼킬 듯이 첫 자를 극도로 흡축하면서 곧 연달아 둘째 자를 흡축하다가 채편으로 넘어 서서는 도리어 위의 된 청을 풀어 내리는 듯 한 조림으로 다시 궁편의 셋째 자를 맞아 들이서는 확 던지듯 하다가 어느덧 다시 주워 앉는 듯 한 조림으로 시종하는 특수한 격조로 절묘한 미를 보인다. 국문학의 시조에서 종장 처음 3자를 중요시하는 것과 관련성이 있다. 가창을 할 때의 특징이 국문학에의 시조에서는 단순히 지켜야 할 규칙으로만 명시되어 있지만, 이러한 내용 또한 가르쳐야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2) 사설시조
경제의 시조에는 가곡에서 보는 바와 같은 사설(편·엮음)시조가 없다. 사설시조는 지방제의 시조에만 있고, 이것이 지방제시조의 특징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지방제의 사설시조는 그 장단을 축소해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평시조 장단법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자수가 많은 장형시조를 채택할 경우에는 한 박자 안에 두세 자씩을 부르게 되므로 그 리듬에 변화를 일으킨다. 이처럼 사설시조는 말 그대로 '사설'이 많은 시조이다. 그러나 아무리 글자 수가 많아도 초장 5, 8, 8, 5, 8중장 5, 8, 8, 8, 5, 8 종장 5, 8, 5, 8,(합장이외에는 줄임) 박자 안에서 해결하여야 한다. 사설시조는 또한 장시조(長時調)라고도 한다. 조선 영·정조 이후에 서민문학이 일어났을 때 주로 중인(中人)·시조작가·부녀자·기생·상인 등 서민들과 몰락한 양반이 부른 장형시조(長形時調)이다. 형식은 초장(初章)·종장(終章)이 짧고, 중장(中章)이 대중없이 길며, 종장의 첫 구만이 겨우 시조의 형태를 지니는 것과, 3장 중에서 어느 2장이 여느 시조보다 긴 것이 있다. 엄밀히 따져서 사설시조란 창법에 따라서 분류한 시조 형식의 하나로서, 길어진 중장에서 연장법(延長法)을 써 가며 반음정 등을 넣어 변화 있게 부른다. 내용에 있어 서슴없이 대담하게 묘사·풍자하고, 형식 또한 민요·가사·대화 등이 섞여 통일성이 없는 희롱사로 변하였다. 조선 후기로 넘어오며 시조 또한 대중이 누리는 장르로 변화하면서 발생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창법 또한 자유롭게 변화한 것이다.
(3) 여창지름시조
지름시조의 '지름'은 '지른다'는 말로서 가곡의 두거나 삼삭대엽이 초장 처음부터 높은 소리로 질러 내듯이 지름시조도 초장 처음부터 청황종에서 청대려로 높이 내는 점이 평시조와 다른 점이다. 이 중 여창 지름 시조는 여성다운 소리로 곱게 지르는 것으로 속청으로 높게 부르는 부분이 많다. ('지름'과 '질음'이라는 용어는 시조창에서 통용되고 있다.)
(4)남창 지름 시조
겉청으로 남자가 꾸짖듯이 높게 지르는 부분이 많다.
(5) 중허리시조
속칭 중거 시조라고도 하며 중간부분에 (허리를 들 듯) 소리를 질러 부른다고 하여 중허리시조라 한다.
(6) 각시조
5박도 1각이고 8박도 1각이다. 다른 시조는 초장 5, 8, 8, 5, 8 중장 5, 8, 8, 8, 5, 8인데 중장에 5, 8, 5, 8박이 더 들어 있다.
이렇게 시조박자가 더 있다하여 각시조라 한다.
(7) 사설 지름 시조
질음 사설로도 부를 수 있는 초장을 질음으로 부르는데 ‘바람아’와 같은 식이다. 이 사설 지름 시조는 초장과 종장은 지름시조와 같고, 그 중장에서는 황종을 요하지 않고 중려를 요하기 때문에 마치 서도지방의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8) 온 지름 시조
초장은 남창 지름, 중장은 중허리 식으로 부르는 것을 말한다.
(9) 우시조
초장 중 팔 박 곡을 우조로 하고 중·종장도 평시조와 다르다.
(10) 우조 지름 시조
남창 지름 초장을 대동소이 격으로 한바탕에 중장 첫 5, 8, 8,박을 우조로 하고 그 밖에 종장도 질음 형태로 편곡되었다.
(11) 반각시조
초장이 평시조 종장이 사설시조이거나 초장이 사설시조 종장이 평시조이다.
(12) 엮음 지름 시조
남창 지름으로 시작하여 세마치장단으로 부른다.
6)현대 시조창의 문제
1. 고전적인 운율의 파괴 : 평시조의 경우 초장 14자, 중장 15자, 종장 15자 등 총45자 내외가 무너지고 있음. 고시조의 경우 엇시조에서도 최대 49자를 넘지 않음.
2. 형식보다 내용으로 : 외형적인 자수율 보다는 내용의 운율 즉 리듬을 중시.
3. 한 수 짜리 시조[단시조]보다 연시조[연형시조]를 선호 : 복잡한 현대의 사상을 좁은 그릇에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
4. 음악적 요소보다 글이 내포하는 의미를 더 중시.
5. 허사(예컨대, 종장 첫 음절에 ‘보아라’, ‘어즈버’, ‘두어라’등, 종장 마지막 음절에 ‘하노라’등)은 잘 쓰지 않음.
6. 시절가적 서정보다 심미안적 경치의 묘사, 즉 시적 표현에 더 비중을 두고 있음 : 얼핏 보아서는 자유시에다 리듬만 맞춘 것 같은 느낌을 줌. 따라서 자유시와 같이 '기승전결' 체계가 무너지고 있음.
시조는 문장(글) 보다는 가사(노래)가 뿌리임으로 아무리 글이 중요하다고 하나, 음률(音律)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현대 시조에서의 이러한 파격(破格)이 과연 진정한 변화이며 신선한 창작이기만 할까? 시조창으로 변환할 때에도 구성 체계의 미숙함으로 인해 곤란함이 많다. 국악 또한 옛 소재에서만 소재를 찾을 수는 없고 현대 시조와 함께 발전해 나가야 하는데, 현 시점에서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3. 결론
보통 시조와 시조창은 별개의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국문학에서의 시조는 원래 시조창을 일컫는 말이다. 국문학뿐만 아니라 국악 또한 관심을 기울여 시조의 내용을 파악해 보면 단순히 글로써만 파악하는 것보다 더 깊은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현대 시조의 내용을 국악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필요성도 보인다. 우리의 전통은 단순히 옛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계속해서 즐길 수 있고 이어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시조창이라는 가요 장르도 대중화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