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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씀

설교 요약 (다니엘 6:3-10)

작성자청지기|작성시간15.11.21|조회수128 목록 댓글 0

 

감사(6:3~10)

 

추수감사주일이에요. 기쁘고 즐거워야 하는데, 왠지 슬프고, 가슴이 아파요. 우리 모두 삶에서, 영적인 일에서 무슨 추수를 했는지... 뭘 감사 하는지... 답답하네요.

어제는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최대 규모인 민중총궐기 대회도 있었어요. 우리 교인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불의하고 가혹한 세상에서, 가녀린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며 살아가요.

 

저를 돌아보고, 교회를 돌아보고, 나라를 돌아보는데, 멀미가 나는 것 같아요. 저를 보면 더 화가 나요. 지혜롭지 못해서... 똑 부러지게 분명하지 못해서... 이런 저런 생각에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아서, 설교 준비가 고역이었어요.

 

그런데 제 마음을 잡아 준 것은, 엉뚱하게도 민중가요였어요. 거센 바람이 불어 와서 어머님의 눈물이, 가슴 속에 사무쳐 오는 갈라진 이 세상에, 민중의 넋이 주인 되는, 참 세상 참 자유 위하여, 시퍼렇게 쑥물 들어도, 강물 저어 가리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내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1980년대의 노래가 2015년도를 살아가는 제게 마음의 진정제가 된 것은, 다니엘 시대, 80년대, 2015년도, 세 시대가 동시대로 오버랩 되어 서지 않을까 싶어요.

 

오늘이 추수 감사주일이긴 하지만, 요즘처럼 살아가기에 힘든 시대에 감사하세요라는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워요. 그리고 요즘처럼 의심 많고 믿음 없는 시대에 감사하자설교하는 게 부담스러워요.

 

그래서, 감사에 대한 설교를 하는 목사나, 듣는 성도나, 그저 교리적인 말, 의례적인 말로 들을 수 있어요. 감사를 강요당하는 것 같아 듣기 싫을 수도 있어요. 끊임없이 좌절을 권하는 세상, 쉴 새 없이 낙심과 상처를 권하는 사람들로, 희망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아서 그럴 거예요.

 

그래서, 다니엘이 존경스러워요. “피투성이어도 살아내고, 그럼에도 감사하고, 그럼에도 이겨낸 사람 다니엘이기 때문이죠. 나라는 망하고, 고난의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눌려 살던 다니엘이었어요. 어린 나이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어요. 그런데, 바벨론의 세 명의 총리 중에 한 명이 돼요.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을지 짐작이 가요.

그런데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총애했어요. 뛰어 났고, 허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야무지게 일했기 때문이죠(3, 4) 그런데, 사람들은 이상하죠? 다니엘이 그렇게 잘하면, 그를 본받아야 하는데, 도리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어요. 허물거리, 고발거리를 찾아요(4) 트집 잡으려고 이 잡듯 쑤셔요. 그러나, 아무 것도 찾지 못했어요.

 

그러자 사람들이, 다니엘을 처단시키기 위해서 모략을 꾸미는데, 일명 다니엘 처단 특례법이었어요. 비열한 모의였지요. 다니엘이 매일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걸 알고서는, 앞으로 30일 동안 바벨론 왕 외의 어떤 신에게라도 기도하면, 사자의 밥이 되게 하겠다는 특례법이었어요. 다니엘에게 올가미를 씌우는 거였어요.

 

다니엘에게 절대 절명의 위기였어요. 주변에는 정적들로 가득했어요(6, 7) 이때 다니엘이 어떻게 하나요? 10절을 볼까요.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 하였더라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가 왜 망해야 했나요? 하나님 살아계시는 겁니까?” 원망하고 살았어요. 자신들이 한 짓은 못 깨닫고 하나님 탓만 했지요. 그런데 다니엘은 기도했어요. 기도 내용도, “내가 이렇게 믿음으로 열심이 사는데, 왜 사람들은 내 말을 듣지도 않고, 나를 못 잡아먹어 난리입니까?” 원망하지 않았어요. 감사했어요.

 

다니엘에게는 급박한 기도제목이 있었쟎아요? “올무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저들의 모함을 막아 주십시오. 왕이 나의 진심을 알고, 내 편이 되게 해 주십시오

그런데 급박한 기도제목이 있었어도, 감사를 먼저 했어요!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나요?

첫째, 다니엘의 인생의 뿌리는 하나님이었고, 자신을 뿌리이신 하나님께 깊이 내렸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다니엘이 사자 굴에 잡혀 가지 않을 길이 있었잖아요? 삼십일 동안만 기도하지 않으면 살 수 있어요. 그런데도 기도해요. 뿌리 없는 식물이 하루라도 살 수 없듯이, 다니엘도 그랬던 거예요. 다니엘의 뿌리는 하나님이었어요. 단 하루도 그 하나님께 접촉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어요. 그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깊이 내려박았기 때문이었어요.

다니엘이 하나님께 뿌리를 내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2:19~21절에 답이 있어요.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다니엘이 찬송하고 감사하는데, 감사 제목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들이 아니었어요. 하나님 자체였어요. 천하의 왕을 좌지우지하는 자가 하나님이라는 것, 지혜자의 지식과 총명한 자의 지식도 하나님 손 안에 있다는 것... 이것이 다니엘이 감사하는 근간이었어요. 그 하나님이 내 하나님인 것이 감사했던 거예요.

 

불평이 강하고, 감사가 약한 저를 봐요... 다니엘처럼 하나님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지금 제게 급박하게 필요한 것은, 목회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기대할 때가 아직 아닌 것 같아요 하나님께 더 깊이 뿌리를 내릴 때이지, 부흥을 바랄 때가 아닌 것 같아요

 

16장이 생각났어요. 바울이 감옥에 갇혀요. 귀신들려서 점치는 여자를 고쳤는데, 그녀의 주인이 자기 수익이 끊어지는 것에 분노해서 고소를 했어요. 이 주인의 초점은 수익이었고, 자기 자신이었어요. 귀신들린 한 영혼이 고침 받은 것에 대한 기쁨은 없어요. 악덕 주인이었어요.

 

우리는 어떤가요? 나도 만약에 한 영혼 한 영혼을 보지 못하고, “수익에만 관심이 있고, “부흥에만 관심이 있다면, “나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다면, 악덕 목사, 악덕 성도와 별 다를 바 없어요.

 

그런데, 그 주인 때문에 감옥에 갇힌 바울이 한밤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 찬양을 해요.(16:25) 무슨 기도를 했을까요? 가장 급박한 기도는 감옥에서 벗어 나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그 기도는 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지진으로 옥문을 열어 주셨는데도 감옥에서 뛰쳐나가지 않았거든요. 그럼 무슨 기도를 했을까요? 살려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던 거예요!

 

그리고 감사를 했어요. 억울한 누명을 썼는데... 유럽에 오자마자 감옥에 갇혔는 데... 아무런 부흥이 없었는데... 매를 맞고 차꼬에 매여 탈진이 되었는데... 도대체 무얼 감사했나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감사를 했다는 것은, 바울도 다니엘처럼 하나님을 신뢰했고, 하나님께 인생의 뿌리를 깊이 내렸음이 확실해요. 그랬기에 감사가 가능했겠죠.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옥문도 열어 주셨고, 구원의 역사도 이루어 주셨어요. 기도하고 감사했더니, 바울의 한 밤중절망의 한 밤중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신비로운 한 밤중이 되었어요. 감사했더니, 바울의 한 밤중은 새 날을 열어가는 개벽의 한 밤중이 되었어요.

 

둘째, 다니엘이 그 지경에서도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전에 하던 대로가 비결이었어요.

10절에서, “...전에 하던 대로,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말씀하세요. 전에 하던 대로 감사했다말은, 갑자기 감사했다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노력 했다는 말이에요.

 

여러분! 감사는요... 저절로 되는 게 아니에요. 부단히 애를 써야 겨우 가능해져요. 그리고 감사는요... 아무런 갈등 없이 되는 것도 아니에요. 감사를 한 번 하려면 엎치락 뒤치락 하고 나서야 가능해져요. 감사하기로 뜻을 정해야 비로소 감사가 가능해져요. 본능대로라면, 감정대로라면, 현실대로라면 감사가 힘들어요.

 

다니엘은 믿음으로 살려고 할 때 마다, 뜻을 정했어요. 1:8에서도 뜻을 정하여우상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했어요. 감사도 그랬음이 분명해요. 저절로 되는 게 아니었어요. 뜻을 정하고 훈련하고 훈련을 하고 나서야 전에 하던 대로감사가 가능해진 것이었어요.

 

다윗이 쓴 시 57:7, 9을 볼까요.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다윗도 마음을 정하고 정하고서야 감사가 가능했어요. 감사가 시 571절 처음부터 대뜸 편하게 시작 된 것이 아니었어요. 감사하기로 작정하고 훈련하기 전, 1~6절까지 이렇게 말해요. “하나님, 내가 사자들 속에 있습니다. 불 가운데 있습니다. 사람들이 내걸음을 막습니다. 억울합니다.

이렇듯 엎치락, 뒤치락 하고. 넘어지고 깨지고 하다가, 감사하기로 확정하고 확정 한 뒤에, 훈련하고 훈련한 뒤에 그제서야 감사가 가능해져요. 내 본능, 내 감, 내 현실대로라면 감사는 불가능해요. 쥐어짜고 쥐어짜야 감사가 겨우 가능해져요.

 

여러분! 추수 감사주일이어도 감사가 진심으로 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대부분은 형식적인 감사를 하거나, 아예 감사를 하지 않거나 할 거예요. 현실을 보자면 그래요. 감정대로라면 그래요. “하나님, 내가 사자들 속에 있습니다. 불 가운데 있습니다. 내걸음이 막혔습니다. 억울합니다. 슬픕니다할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살면 언제 감사하게 될까요? 물이 바다로 흐르지만, 바다를 채우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욕망은 끝이 없어요. 채워져야 만족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만족을 모르는 사람으로, 영원히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살 거예요.

 

그렇게 사는 게 잘면 행복한 걸까요? 우리에게 유익이 될까요? 결코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살면, 불평과 투정이 반복될 거예요. 내 본능을 거스리고, 내 감정을 역행해야 해요. 감사하기로 뜻을 정하고 집념을 가지고 배우고 훈련해야 해요.

 

그렇게라도 감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감사는 능력을 낳고 기적을 불러 오기 때문이에요. 아멘을 안하시는데, 믿든지 안믿든지 여러분의 자유이지만, 능력을 얻고 기적을 원한다면 제발 믿으시길 바래요.

 

증거를 보여 달라구요? 우리 교회 성도들을 예로 들면, 질투하고 평가할 거니까, 본문을 가지고 이야기 할까요. 다니엘을 보세요. 사자 굴에 끌려가지만 살아 나와요. 다니엘을 모함했던 자들은 사자 밥이 되었어요. 그리고 바벨론이 망하고 페르시아가 패권을 잡을 때도 총리가 되었어요. 왕조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는데도 추락하지 않았어요. 그 세월이 67년이었어요. 67년 동안 하나님이 세워 주셨던 거에요.

 

그 지경에서 감사가 낳은 능력이었고 기적이었어요. 피투성이에서도 감사로 살아낸 결과였어요. 여러분! 믿음으로 기도해서 한 번의 복, 한 번의 승리는 있을 수 있어요. 불쌍하니까, 다급하니까, 한 번의 축복은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다니엘처럼 67년이라는 한결같은 계속의 축복과 승리의 비결은, 감사에 있어요.

 

바울이 빌 4:6에서 말씀하세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바울은 감옥에 있어요. “하나님이 해준 게 뭐가 있냐고... 내가 그리 순종하고 봉사했는데도 감옥에서 개고생 하냐고...” 하기가 쉬워요. 그런데 감사해요.

 

4:11~12에 그 비결이 있어요.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아,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배웠노니...배웠노라!”가 답이었어요. 훈련이 비결이에요. 훈련해서 감사의 사람으로 바뀐 거예요.

 

그리고 바로 그 뒤 빌 4:13에서 무슨 말씀을 하시나요? 잘 아는 말씀이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자족하며 감사하기를 배우고 배웠더니, 내게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이기게 하시는 능력을 받고, 기적을 얻더라는 거예요. 다니엘처럼 말이죠.

 

그래서 우리도, 추수감사주일 절기를 정해서, 훈련하는 것이고, 그래서 스마일 저금통으로라도 훈련하는 거예요. 우리도 능력을 낳고 기적을 주는 감사, 그 감사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말이죠. 그런 사람들로 변화되기를 축복해요.

 

말씀을 마쳐요. 추수 감사주일인데요... 이 감사주일을 최초로 명하신 때가 언제였나요? 34:22에서 수장절을 지키라 하시는데, 이것이 추수감사절이에요. 출애굽하고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에요. 먹을 양식도 하루 분씩 밖에 없을 때... 이스라엘 역사가운데 정말 힘들고 어려운 때...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때... 그때에, “감사하라며 절기를 정하셨어요.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 명령을 하셨다면, 쉽게 아멘 했을 것 같아요. 그러나 감사는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감사는 가나안에서만 감사하는 게 아니었어요. 힘겹고 지치고 가난한 광야에서도 감사하는 것이 참 감사였어요.

 

그래서 우리는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지켜요. 순종해서 추수감사주일을 지키는 여러분에게 시 50:23의 말씀을 드리면서 설교를 마쳐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감사로 예배하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하세요. 감사로 예배하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라고 인정해 주시는 것이고, 감사로 예배하는 자가 하 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도록 책임져 주신다는 축복의 약속이에요. 인정받고 약속받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드려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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