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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작성자가(skies)|작성시간26.06.07|조회수28 목록 댓글 0

박완서 지음

1950년대 전후 서울의 피폐한 풍경이 눈에 보일 듯 그려지는 『그 남자네 집』은, 노년에 접어든 주인공이 첫사랑 ‘그 남자’가 살았던 돈암동 안감천변을 찾아가 옛 기억을 떠올리면서 시작된다. 먼 친척뻘인 그 남자네 가족이 내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오면서 고등학생이던 나와 그 남자는 처음 만난다. 그리고 몇 년 후, 전쟁 통에 미군부대에서 일하던 나는 퇴근길 전차 안에서 그 남자와 우연히 다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인연을 맺는다. 전쟁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황폐하고 남루해진 그 겨울, 나와 그 남자는 폐허가 된 서울 거리 구석구석을 누비며 ‘구슬’처럼 빛나는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생존’만이 가치 있던 시절에 음악과 문학을 즐기는 낭만적인 그 남자의 존재는 나에게 잠시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 있는 탈출구가 되어준다.
<출판사 리뷰>

그게 내가 벼락 치듯 깨달은 정답이었다. 나는 작아도 좋으니 하자 없이 탄탄하고 안전한 집에서 알콩달콩 새끼 까고 살고 싶었다. 그 남자네 집도, 우리 집도 사방이 비 새고 금가 조만간 무너져 내릴 집이었다. 도저히 새끼를 깔 수 없는 만신창이의 집,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 새끼를 위해 그런 집은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답이 나오 면 비밀은 없어진다. 나는 그렇게 초라해지고 싶지 않다. 인생이 살 만한 건 정답이 없기 때문인 것을.p122

첫사랑이란 말이 스칠 때마다 지루한 시간은 맥박 치며 빛났다. 그 남자를 다시 만나기까지는 일주일이나 남아 있었지만 오래간만에 맛보는 기다림의 시간은 황홀했다. 무엇을 입고 나갈까, 첫사랑이 긴 치마를 허리띠로 동여매고 시장바구니를 들고 나타난다면 그 남자가 얼마나 실망할까. 나 또한 그 남자가 첫사랑이거늘. 그건 첫사랑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나는 이것저것 좋은 나들이옷을 꺼내 입고 거울 앞에서 나를 비춰보았다. 어떤 옷은 점잖아 보이고, 어떤 옷은 촌스러워 보이고, 간혹 요염해 보이는 옷도 있었다.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남자가 나에게 해준 최초의 찬사는 구슬 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구슬 같은 처녀이고 싶었다.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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