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눈
서울 변두리 달동네 어둠침침한 방에서 그는 혼자 죽어가고 있었다. 폐암 말기. 육십대 쯤의 남자였다.
“기침을 하고 가슴이 아파 동네 의원에 가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어요. 의사가 폐사진을 들여다보더니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그냥 감기약을 처방해 주더라구요.”
말투에 원망이 서려 있었다.
“기침이 그치지 않고 피도 토하는 거예요. 그래서 큰 병원에 가서 다시 폐 사진을 찍어 봤어요. 의사가 그걸 보더니 폐암 말기라는 거예요. 탁구공보다 더 크게 암 부위가 보이는 데 처음에 찾아간 동네 의사가 모를 리가 없었다는 겁니다. 전이가 되기 전에 한쪽 폐를 잘라냈으면 살 수 있었을 거라고 하더라구요.”
그가 주먹을 꼭 쥐었다.
“나는 죽기 전에 꼭 할 일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걸 못하고 죽는 게 정말 억울해요.”
가슴이 먹먹했다.
“내가 마지막 소원이 있는데 한 가지만 들어주실래요?”
그가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뭔데요?”
“나 같이 없는 사람에게 무성의한 진료를 해서 죽게 한 병원에 소송을 걸어주세요. 억울해서 그렇게라도 하고 죽어야 할 것 같아요.”
그의 요청이 너무나 절실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소송을 제기해 주었다. 그의 생명이 하루하루 줄어들고 있었다. 그는 수시로 소송이 어떻게 됐느냐고 궁금해 했다. 그가 죽기 이틀 전, 병실로 찾아간 내게 말했다.
“내가 변호사비를 빚으로 남기고 죽어야 하는데 갚을 길이 없으니 어떻게 하죠?”
“우리는 얼마 후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거 아닙니까? 그때 갚으세요.”
그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그가 하늘나라로 갔고 영정사진 앞에는 나 혼자 앉아 있었다. 영정사진 속의 그가 사진틀 밖의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겠습니까?’
그의 한이 느껴졌다.
‘잠시 더 쉬고 계세요’
시간의 강물이 흘러갔다.
“눈을 움직이지 마세요.”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내 눈 앞에 바늘이 보였다.
“지금 바늘이 들어갑니다.”
날카로운 바늘이 빛을 튕기면서 다가왔다. 온몸의 세포가 공포로 얼어붙었다. 바늘이 눈알에 박혔다. 여덟 바늘을 꿰매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는 실로 꿰매고 있었다.
“전에 수술을 하실 때 시 신경을 다친 것 같아요. 그것 참”
수술을 하는 의사의 입에서 불쑥 그 말이 튀어나왔다. 백내장 수술을 했는데 부작용이 생겼다.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이번이 마지막 수술이었다. 그래도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온통 울퉁불퉁한 모래 벽이 보였다. 죽을까? 더듬더듬 계단을 올라가 아파트 20층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나를 상상해 보았다.
도심의 아파트 옥상 난간 위에 내가 서 있다. 서늘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도로는 자동차들로 꽉 차 있다. 그게 세상의 밀도다. 나는 허공에 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이다. 왜 나만? 이라는 원망이 스친다. 외롭고 무섭다. 죽어야 한다. 더 이상 살아갈 의미가 없다. 해 내야 한다. 눈을 굳게 감는다. 양팔을 벌렸다.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내가 허공에 떠 있다. 밤하늘의 별이 보인다. 예쁘다. 길바닥에 부서져 있는 내가 보인다. 질척한 피가 도로 위로 흐르고 있다.
내가 그럴 용기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까 다른 쪽 눈이 있었다. 이미 나는 늙었다.
‘잠시만 더 쉬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