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
지난 밤 세 번 꿈을 꾸었다. 그 세 장면이 아침에 일어나서도 생생하다.
죽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봤다. 평범한 가정집에서 살고 있었다. 아버지 방에 요가 깔려있고 그 위에 이불이 구겨진 채 놓여 있었다. 나는 아버지 방 열린 유리창 턱을 넘어가 요 위에 잠시 누웠다. 아버지가 따라와 나를 내려다 보더니 말한다.
“너 여기서 자려고 하니?”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다. 따뜻한 눈길로 나를 어루만진다.
“아니요, 저는 건넌방에서 잘 거예요”
나는 벌떡 일어났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어머니가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살피면서 걱정하는 눈빛이다.
잠에서 깼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게 뭔가 전하려고 하는 것인가? 이제 그만 오라는 말씀일까? 나는 소변을 보고 다시 잠을 청했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나는 험준한 산속 길을 가고 있다. 지그재그로 된 길을 따라 정상 가까운 깊은 계곡에 이르렀다. 절벽과 천연환경을 이용한 예술 작품들이 보인다. 어떻게 이렇게 산 속에 예술이 펼쳐질 수 있을까.
도중에 길을 잃었다.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아내가 운전을 하는 옆에 가만히 있었다. 내리막길은 온통 울퉁불퉁한 바위 천지다. 차는 급경사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좌석의 손잡이를 꽉 잡은 채 긴장해 있다. 아내가 액셀레이터를 밟았다. 순간 차가 공중에 떴다. 뒤에서 오던 다른 차도 허공에 있는 게 보인다. 자칫하면 차끼리 부딪칠 것 같이 아슬아슬하다. 어느 순간 차가 높은 빌딩의 꼭대기에 얹혀 있다. 아득한 땅바닥까지 연결되는 길도 계단도 줄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건물 난간에 서 있다.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본다. 섬뜩했다. 막막하다. 이게 끝이구나. 살고 싶다.
오줌이 마려운 바람에 잠에서 깼다. 살아서 침대 위에 있다. 다행이다. 다시 잠을 청했다.
야외의 공원에 내가 서 있다. 잔디와 벤치 놀이기구들이 온통 회색이다. 해도 보이지 않는다. 공원 구석의 벤치에 한 사람이 앉아 있다.
아는 대학 후배다. 정부 기관에 같이 들어가 혹독한 훈련을 받고 몇 년을 같이 일했다. 반가웠다.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또 다른 사람이 보인다. 김교수였다. 그 역시 같은 기관에서 근무했다. 입사 동기라 삼총사 같은 관계였다. 오랜만에 우리 셋이 모였네 하고 서로 반가워했다. 두 사람은 기관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아직 은밀히 그 기관에 적을 두고 있다. 그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잠이 깼다. 어느새 날이 밝아있었다. 꿈속에서 본 대학 일 년 후배는 십여 년 전에 췌장암으로 죽었다.
꿈이 너무 생생했다. 세 개의 맥락이 죽음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정해진 일과인 성경을 들췄다. 매일 한 장씩 읽고 그중 하루를 묵상할 화두를 얻는다. 요한 계시록 9장을 읽었다. 한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죽고자 하여도 죽지 못하리라’
육이오 전쟁이 끝나기 직전 나는 서정리역 앞의 토담집 방에서 태어났다. 인생 바닥인 피난민의 아들이었다. 울퉁불퉁하고 긴 인생 산맥을 넘어 지금은 노인이 되어 동해역 앞에서 살고 있다.
이제 죽음이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아쉽지만 받아들여야겠지. 좀 더 살고 싶은 본능이 꿈틀거린다. 글을 써 왔지만 지금에 와서야 마음의 바닥까지 간 솔직한 글이 뭔지를 알았다. 주위 사람들을 더 사랑해야 하는 걸 깨달았다. 그게 아쉽다.
어제 서울에 올라왔다. 오늘 점심시간 대학 동기들에게 밥을 사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조금 있다 나가야 겠다. 저녁에는 손녀를 만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