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 쓴
오십대 쯤 남자가 나의 법률사무소로 들어왔다. 손에는 검은 007가방이 들려있었다. 그의 눈빛이 다부졌다. 오랫동안 운동을 한 듯 몸이 탱크같이 단단했다. 그가 공손하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전국구로 알려진 조폭두목이었다. 그는 인기 드라마의 모델이기도 했다.
“변호사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몸을 던져 변호해 주신다는 말씀을 듣고 왔습니다.”
그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세상은 조폭 두목이라고 하면 믿어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제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시고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순간 위축됐다. 그는 무서운 사람이다. 마음을 다잡았다. 진지하게 말하는 그의 얘기를 들었다. 진정성이 느껴졌다. 나는 그의 변론을 하겠다고 했다.
그가 가지고 온 007가방을 열어 내게 보였다. 그 안에 두툼한 지폐뭉치가 가득 들어 있었다.
“착수금으로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성공하면 다시 제가 알아서 챙겨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돈에 목말라 있었다. 유학 간 아이들과 따라간 엄마에게 돈을 보내야 했다. 마트에 가서 바닥에 떨어진 채소들을 주워다 국을 끓여 먹는다고 했다. 내게 그 돈은 꿀같이 달콤했다. 설사 낚시 바늘이 숨겨져 있더라도 나는 삼키고 싶었다.
그가 맡긴 사건은 나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 조폭 사건은 재판장이 나쁜 선입견을 가졌다. 희석시킬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다. 막 변호사가 된 친구가 있었다. 재판장과 같이 판사로 근무했다. 그에게 사건을 같이 하자고 했다. 조폭 두목은 친구에게 가서 허리를 더 굽히면서 돈이 든 가방을 건네주었다.
전관 출신인 그가 사수가 되어 변론을 했다. 열 두개의 기소사실중 열 한개에 무죄가 선고됐다. 밤 늦게 까지 진행되는 재판이 이년 동안 계속됐다. 우리들은 파김치같이 녹초가 됐다.
어느 날 건달인 그와 얘기를 나눌 때였다.
“참 이상해요”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뭐가요?”
“그 무서운 검사님들이 변호사가 되면 토끼새끼가 된 단 말이예요. 제가 돈을 드리고 부탁 하죠. 모든 걸 해결해 줄 듯 호기를 부려요. 그리고 사건이 끝나고 찾아 가요. 허풍 친 것 만큼 되지는 않죠. 그건 우리도 알아요.”
그가 씩 웃었다.
“방에 둘이 있을 때 아무 말 하지 않고 배를 한번 쓱 밀어버려요. 그러면 얼굴들이 허옇게 질리는 거예요. 받은 돈을 바로 토해내요. 모두들 그래요. 처음엔 내 돈이 달콤했다가 나중에는 그게 쓴 모양이예요.”
그의 눈동자에 순간 경멸하는 빛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 며칠 후 판사를 했던 친구가 내게 말했다.
“그 건달 두목이 내게 줬던 돈을 돌려달래. 열두개 기소 사실 중 열 한개를 무죄로 해줬는데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거야. 더러워서 돈 다 돌려줬어.”
씁쓸한 표정이었다. 그 친구는 겁먹었다. 약했다.
그 무렵 내가 그 조폭 두목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하나님한테 말이죠. 당신과 같이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나서 한번 맞짱 뜨면 어떨까요?”
나는 진짜 궁금했다. 그가 얼마나 센지. 그가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제가 저요”
그 덕분인지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뒤에서 욕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씁쓸했다.
나는 지금 파도치는 바닷가 앞에 서 있다. 달콤한 기억들이 파도를 따라 들어온다. 씁쓸한 추억들은 마음속까지 스며 들어온다.
그냥 씩 웃는다. 세상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