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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의 나, 속의 나, 두 증인/엄상익변호사

작성자grace|작성시간26.06.22|조회수21 목록 댓글 0

겉의 나, 속의 나, 두 증인

 

서초경찰서 수사과 사무실이었다. 김 경위는 베테랑 형사였다. 나는 그의 앞 접이식 철의자에 앉아 있었다. 명예훼손죄의 피의자 신분이었다. 신흥재벌 회장의 비리를 시사잡지 월간조선에 폭로했다.

 

그 한 달 전이었다. 재벌 회장을 민사 법정앞 복도에서 만났었다. 그는 내게 거액의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나를 거지로 만들어버리겠다고.

그가 독기 서린 눈길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내가 가진 모든 걸 동원해서 당신을 파멸시켜 주겠어. 평생 쌓아온 걸 거품으로 만들어주지. 내 고문변호사단이 움직이고 있어.”

 

나는 섬찟했다. 그는 충분히 나를 죽일 능력이 있었다. 그의 돈이 권력의 구석구석 안 간 곳이 없었다. 검찰총장의 동생을 비서로 부리고 있었다. 대통령의 노벨상 후원자였다. 서울지검특수부장도 그의 입김으로 목이 잘렸다. 그는 폭력 조직도 거느리고 있었다. 겁이 났다. 잘못 건드렸다는 후회가 일었다. 글에서 그를 오줌싸개라고 까지 했다. 그건 너무 과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런 사람들이 미웠다. 앞뒤 생각하지 않고 질러버렸다. 한심한 인간이다.

 

“거품으로 만들 만큼 평생 쌓아온 것이 없는 인간 입니다.”

 

그의 경고에 대한 나의 대답이었다. 내가 잃어버릴 게 있나? 떠오르지 않았다.

 

법원 경찰 이리저리 끌려다니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날은 형사 앞 철의자에 피의자로 초라하게 앉아 있었다.

 

담당 형사가 물었다.

 

“좌파죠?”

 

뜬금없는 질문이다. 빨갱이라는 소리다. 내가 자라던 사회에서 그건 가장 치명적인 말이었다.

 

“왜요?”

되물었다.

 

“부자를 공격하는 글을 썼으니까”

 

“아닌데요”

 

“그러면 정치하시려나 봐. 그렇죠?”

 

그가 비웃는 표정으로 씩 웃었다.

 

“언론에 글을 써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그리고 선거에 나가는 게 변호사들 아닌가?”

 

그의 시각이었다. 그는 나를 믿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더 이상 조사할 필요도 없는 사건이었다. 내가 발표한 글의 원본들이 수천 권의 잡지에 다 들어있었다. 오줌싸개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한 줄만으로도 유죄다. 늙은 형사는 나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가 뱉은 침이 뺨에 묻어있는 느낌이었다.

 

사건이 검찰로 송치됐다. 소환장이 날아왔다. 담당 검사는 법조 경력으로 치면 거의 이십년 후배뻘이었다. 법조에서는 사법고시 기수로 선후배를 따지는 풍조가 있었다. 얼마간 존중은 해 주겠지라는 기대가 있었다.

 

나의 얄팍한 이중성이다.

 

반쯤 열려 진 검사실 문으로 들어갈 때였다. 큰 책상 뒤에 앉아 있던 젊은 검사가 나를 힐끗 봤다.

 

“어이, 대기실에 가서 기다려”

 

건방이 가득 든 거친 목소리였다. 깔아뭉개려는 의도 같았다. 나는 을이다. 어쩔 수 없었다.

 

피의자 대기실로 갔다. 창문 하나 없는 사방이 막힌 방이었다. 감옥 같았다. 구석에는 박스 같은 잡동사니가 쌓여 있었다. 거기서 벽을 보고 기다렸다. 모욕감이 들었다. 형사의 놀림보다 더 아팠다. 같은 법조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검사들은 대질 신문이라고 하면서 상대방을 불렀다. 그리고 그가 물어뜯게 하면서 상황을 즐기기도 했다.

 

한 시간쯤 후에 검사실로 불려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공격하려는 상대방이 거기 있었다. 입에 허옇게 거품이 묻은 사냥개를 보는 느낌이었다. 실컷 물어뜯겼다. 나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분노로. 검사가 나를 보았다.

“컬럼을 통해서 우리 검찰을 자주 공격한 걸 압니다.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이렇게 하는 건 아닙니다.”

바로 그거였구나. 물어뜯긴 자리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검사가 덧붙였다.

“저는 먼지 한 점까지 뒤를 캐는 직업적 소명에 충실 하려고 합니다.”

 

민사 법정의 재판장은 나와 사법연수원 동기였다.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 나보고 형이라고 하면서 상냥하게 대해주었다. 법정에서의 그는 전혀 달랐다. 싸늘했다. 봐줬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선고를 앞두고 심장이 조여들었다. 불안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다. 거액의 손해 배상금을 주라는 판결이 선고됐다. 서운했다. 얄팍한 기대를 했던 내 자신이 서글펐다.

 

나의 판결은 컨베어 벨트를 탔다. 고등법원재판장은 나의 고통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단칼에 나의 청구를 잘라버렸다. 사막같이 메마른 법조계의 푸대접이었다. 법원 건물에 침을 뱉고 발로 차고 싶었다. 왜 법을 공부 했을까. 후회가 일었다.

한 메이저 일간지 사회면의 큰 박스기사를 봤다. 내가 동시에 다섯 건의 소송을 제기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기쁘다는 것인지 재미있다는 것인지.

 

재벌 회장님의 선언대로 나는 사망했다. 시체가 되어 길거리에 널부러져 있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경했다. 회장님이 좋아서 축하 잔치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무기력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밤중에 일어나 내 방에 들어갔다. 이십층의 창문 밖은 밤하늘의 허공이었다. 멀리 아래로 골목길이 내려다 보였다. 아무도 없었다. 모텔의 네온 불빛만 깜박거렸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전자시계의 파란 불빛이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기도했다. 그분한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고 따졌다. 진짜 날 도와줄 생각이 있기는 하시냐고 물었다.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침실로 돌아왔다. 아내는 등을 돌리고 자고 있었다. 당신 옥바라지를 할까 봐 걱정이라는 아내의 말이 가슴을 찔렀다.

 

기적이 일어났다.

 

담당 대법관이 원고지 백 장 가까운 분량의 대법원판결문을 썼다. 오줌싸개라는 표현은 과했지만 내가 주장한 진실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했다. 판결문을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울컥했다. 눈에 물기가 스며들었다. 그 대법관에게 무릎 꿇고 절을 하고 싶었다.

 

 

나는 일어났다.

 

시간의 강물이 흘렀다. 나는 지금 동해의 바닷가를 걸어가고 있다. 드넓은 수평선 위로 주홍빛 투명한 노을이 지고 있다. 아름답다.

 

[출처] 겉의 나, 속의 나, 두 증인|작성자 소소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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