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양도성 4대문과 4소문, 그리고 성곽 모습들..
1395년 태조(4)는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도성을 쌓으려교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고 정도전에게 명하였다.
성터를 측정한 결과 백악(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멱산) 능선을 따라 도성을 쌓기로 결정 되었다.
1396년 태조(5년) 음력 1월9일 기공식을 올리고 춘추(봄,가을)2회에 걸쳐 전국에서 장정 19만7천4백명을 동원하였다.
98일만에 백악(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18,2km의 성곽을 쌓았다.
이후 세종때는 흙으로 된 구간은 모두 돌로 바꾸어 쌓았다.
영조때는 성곽 동쪽부근에 방어를 효율적으로 할수있게 치성을 쌓았다. 성이 완성된 후에는 배수지로 5칸의 수문과 성곽의 관문으로
4대문인 숭례문(남대문) 홍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숙정문(북문)을 두었다. 성문 사이사이에는 4소문인 소의문, 창의문,
혜화문, 광희문등 8문을 1396년에 완성 하였다. 서울성곽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구간이 훼손되었다.
1974년부터 박정희 정권시에 성곽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현재까지 총 길이 18,2km중 70%, 구간의 복원사업이 완료 되었다.
한양 성곽 18.2km
4대문과 4소문
- 숭례문(남대문) -
1395(태조4) 숭례문을 짓기 시작하여 1398(태조7)년 2월에 완공된 한양도성을 둘러 싸고있는 성곽의 정문인 숭례문이다. 정면5칸 측면
2칸의 중층건물이다. 숭례문은 세종때와 성종때 숭례문을 고쳐지었고, 숭례문 현판은 세종의 첫째아들 양녕대군이 썻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판에 관해선 이설이 많다고 한다. 축성은 죽정 최유경 선생이 추진 하였다. 600년을 지켜오던 숭례문은 6,25전쟁때는 포탄을
맞아 1961-1962년에 걸쳐 헤체 수리한 숭례문은 화강암으로 된 홍래현의 누기와 마름 석축으로 이루어진 기층 중앙에 홍예문이있으며
판문에는 철갑을 씌운 두짝의 대문이 달려있으며 1961년에 국보1호가 되었다. 2008,2,10 나쁜인간 한 노인의 방화로 인해 소실되었다.
지금의 숭례문은 5년간 공사 후 2012년 완공된 숭례문이다.
-*- 조선시대 한양성곽 -*-
4대문과 4소문 중 숭례문-광희문-홍인지문-혜화문 숙정문-창의문-돈의문-소의문 순으로 한양(서울)성곽 18,2km 둘레를 숭례문에서
시작되어 소의문으로 돌아오는 한양도성 성곽 둘레길이다.
** 숭례문(남대문)의 변천사 **
일제 강점기 전 성곽의 모습은 뚜렸하다. 숭례문에서 직선으로 광화문, 한양의 성곽은 남산에서 내려온 성곽은 숭례문을 지나 소의문은 정확히 식별이 된다. 좌측 끝 부분의 돈의문은 어렴풋이 나타난다. 돈의문을 지나 인왕산으로 올라가는 성곽이 뚜렸하게 나타난다.
영의문 북쪽 고개 바위산(현재 무악재)
영의문(현 독립문)
독립문(전 영의문)
돈의문
-- 남대문 변천사 사진 --
1880년대 새종대왕의 맏형인 양녕대군의 칠필 현판 숭례문
숭례문 안쪽에 있던 대형 창고인 선혜창(宣惠倉)에 창내장(倉內場; 남대문시장의 전신)이 들어섰다.
일제 강점기 때 숭례문으로 전철이 지나 다녔다.
6,25전쟁때 1951년,3월, 20일 포탄을 맞은 숭례문 모습..
1960년대 간단 수리한 숭례문 전경..
1962 - 1963년에 해체 수리한 숭례문 모습
2008년, 2월, 10일, 어느 미친 노인의 방화로 인해 소실된 숭례문 전경..
2012년 완공된 숭례문 모습..
-- 서울성곽 --
남산 백범광장에서 광희문, 홍인지문(동대문), 낙산, 혜화문, 숙정문, 백악(북악)산, 창의문(자하문), 인왕산, 돈의문, 소의문,
숭례문(남대문)까지 18.2km의 거리를 둘러 쌓은 성곽이 한양도성 성곽이다.
한양도성 남산구간 시작 지점에서 바라본 성곽 모습..
복원된 남산 성곽, 힐튼호텔앞 전경..
장충동 일대 한양성곽 모습..
- 4소문인 광희문(남소문) -
광희문은 동대문 운동장 곁에 있었다.
광희문 옛모습..
숭례문과 홍인지문 사이에 있는 사소문인 광희문은 소의문 처럼 도성에서 시신을 밖으로 이동하는 저승문 역활을 하였다. 한강나루를 나갈때도 이문을 이용하던 광희문은 1915년 자연붕괴되어 석물부분만 남아 있었다. 멀리는 북한산 우측은 홍인지문 우측에 보이는 문은 낙산..
광희문 앞 우마차의 길..
** 오간수문 **
오간수문은 한양도성을 수축하면서 물길을 낼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오간수문이다. 동대문 남쪽 성벽 아래로 흐르는 냇물이 도성밖으로 잘빠져 나갈수 있도록 1,5m크기의 아취형 5개수문이다. 사람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쇠창살로 만든 철문을 설치하였다.
1907년 일제가 청계천물이 잘 흐르게 한다는 명목으로 오간수문을 헐고 홍인지문으로 연결되는 성벽마져 헐었다.
이때부터 오간수문은 없어졌다. 1760년(영조36) 청계천을 준설하면서 수문앞에 쌓인 토사를 걷어내고 복원하였다.
동대문 운동장을 조선 시대로 복원 할때 땅속에서 나타난 황색의 옛골과 새로운 흰색돌로 조합한 옛 모습 오간수문의 형태이다.
청계천 복원할때 옛 오간수문을 상징한 모습..
** 홍인지문(동대문)과 혜화문(동소문) **
1398년(태조7) 동대문은 완공되었다. 그후 1868년(고종8)에 다시 재건 하였다.
앞면 5칸 옆면 2칸 2층 건물로 지었으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반달 모양의 옹성을 쌓았다. 보물1호이다.
성문앞에 둘러쌓인 반달모양의 옹성인 홍인지문..
홍인지문안으로 철길과 통로로 향하는 사람, 오간수문을 헐을때 홍인지문 옆까지 허물었다.